제321화 자, 돈들 쓰세요. 돈(11)
소말리아 하르게이사.
[재진버츄얼은 투마로우 벨트에 ‘티처’를 공급하기로 발표했습니다. 또한 동시에 니콜라 모터스의 엘론 버스크는 투마로우 벨트에 자율 주행 도로를 건설한다고 뜻을 같이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팜봇을 기반으로 한 병원을 건설한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미국에서 코로나 백신이 FDA 승인을 얻어 전국에 유통되기 직전입니다. 그러나 의회는 팜봇을 이용한 코로나 백신 접종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으로 백신 유통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들의 이념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윌켄이 재준을 보고 안쓰러운 듯 말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의지가 확실하니까요.”
“그래도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그 의지가 꺾이는 날 그들은 죽는다고 생각하잖아요. 팜봇이 백신 접종에 도입되면 도날드의 재선이 거의 확실하지 않겠어요?”
“그게 좀 아이러니합니다. 도날드는 공화당인데 공화당이 더 팜봇의 백신 접촉을 막고 있잖아요. 저러면 공화당이 정권을 잡기가 더 어려울 텐데.”
“하하,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통령 번갈아 가면서 하잖아요. 마치 룰처럼. 공화당 입장에선 이번에 민주당에 내주고 다음에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겠죠. 지금 도날드는 공화당도 어쩌지 못하는 망나니니까.”
“하긴 도날드가 너무 모르죠. 정치인이라면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건 모른 척해줘야 하는데. 도날드는 가차 없이 드러내 버렸으니, 같은 편이라도 제발 없어졌으면 하겠어요.”
“오히려 다행이죠. 정치인이었으면 저희랑 친하게 지낼 일도 없었을 겁니다. 이용만 하려고 했겠죠.”
윌켄이 재준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
퀴니코가 다합실은행장 하산을 데리고 들어섰다.
산만 한 덩치의 하산이 어울리지 않게 달려와 재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네요. 그동안 은행이 꽤 성장했습니다.”
“모두 투마로우 덕분이죠. 프랑스와 영국에서 저희를 상업은행으로 대해 주니 다른 국가에서도 영업이 수월했습니다. 허허허.”
하산의 어깨가 꽤 들썩였다.
“하산, 이제부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네, 말씀만 하십시오.”
“일단 우리는 하르게이사를 중심으로 남쪽은 케냐 국경까지 서쪽으론 투마로우 벨트를 따라 자율주행 도로를 건설할 겁니다.”
“네.”
엄청난 사업이다.
하르게이사는 소말리아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지부티와 에티오피아와 가깝고 지척에 있는 아덴만을 건너면 예멘이고, 홍해를 통하면 사우디아라비아로 이동할 수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 유럽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요충지이다.
재준이 기준점으로 삼은 이유이다.
“도로는 기존에 있는 도로를 따라 건설됩니다. 도로 주변에 관개 시설과 발전 시설이 들어서고 마을이 만나는 지점에는 병원이 건설될 겁니다.”
“병원이요?”
“거창한 건 아니고 철골 구조로 된 종합병원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거창한 겁니다.
“저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병원에 다합실은행 지점을 설치해서 사람들의 편의를 도와주는 겁니다.”
“그게 다입니까?”
“하하, 네. 근데 이게, 쉬울 것 같은데 어려운 일이에요. 항상 새로운 것은 사람들을 꺼리게 하거든요. 그 중간 역할을 해주는 겁니다. 친근하게. 친절하게. 거리감 없이.”
“아하. 그런 일이라면 우리가 제격입니다.”
돈이 오고 가는 은행은 친절이 답이다.
어디 감히 돈 앞에서 목에 힘을 줄 수 있을까.
“대신에 아프리카 수출입 자금은 다합실은행을 통할 겁니다. 투마로우가 따로 은행을 설립하지 않고요.”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야지.
아프리카에 전 세계에서 큰소리칠 수 있는 대형은행 하나는 존재해야 한다.
북쪽으로 유럽이 있고 동쪽으로는 중동이 있다.
모두 돈이라면 선수들인데 자칫 움츠러들면 다음 할 일을 못 한다.
재준과 하산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 후 엘론이 도착했다.
“임재준.”
“어서 오세요.”
“여기 날씨 장난이 아니네요.”
엘론이 어느새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걸 포기하고 큼지막한 수건을 목에 둘렀다.
“그렇다고 그런 아저씨 패션을.”
“왜요? 지금 체면 차릴 때가 아니에요.”
누가 체면을 차리래요. 패션을 차려야지.
“엘론, 여기 윌켄이에요.”
“오, 정크 본드의 왕. 반갑습니다.”
이후로 퀴니코와 하산을 차례로 소개했다.
소개가 끝나자 퀴니코가 타블릿을 펼쳤다.
“엘론, 봐요.”
재준이 소말리아 도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프리카가 도로는 단순해요.”
“음, 그러네. 주요 도로 하나가 국가 전체를 관통하고 있네요.”
“그러니까 이 도로를 따라 자율주행 도로를 건설하면 시간과 경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어요.”
“전력은 공급이 원활합니까? 오면서 보니 전선이 보이지 않던데, 설마 지하에 매설한 건 아닐 거고.”
“그래서 투마로우 시티에서 태양광을 연구하는 기업에서 새로운 태양광 패널을 타진했더니 꽤 좋은 물건을 소개했어요.”
“태양광이면 효율이 많이 떨어질 텐데.”
“아니에요. 이번에 새로 페로브스카이트라는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기존 실리콘 패널보다 효율이 두 배 이상 좋아졌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 자율주행 도로 주변에 사용하면 충분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어요. 그리고 도로건설이 끝나면 아프리카 주민들이 사용할 정도의 전기도 공급이 가능하고요.”
“뭐 전문 기업이 조사를 했으니 그렇겠죠.”
엘론은 타블릿에 하르게이사에서 모가디슈까지 거리를 검색했다.
직선으로 약 1,000km.
공사 구간은 곡선이고 케냐까지 연장하면 대략 2,000km.
엘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표정을 구겼다.
도로를 포장하고 주변에 사물인터넷 칩을 설치하고 거기다 태양광 패널까지.
만만한 공사는 아닌데.
엘론이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재준에게 속삭였다.
“근데 이 많은 자금을 댈 수 있습니까?”
“그럼요.”
“투마로우가 돈이 많은 건 알고 있는데. 투자금 회수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요.”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핀 재준은 엘론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석유.”
음.
“우라늄.”
뭐?
“다이아몬드.”
헉!
엘론은 불끈 주먹을 쥐어 보였다.
“뭐 하시는 겁니까? 당장 시작해야죠.”
갑자기 퀴니코의 타블릿을 낚아챈 엘론은 지도를 확대해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좋네, 좋아. 충분해.”
“그렇죠.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값어치가 있습니다.”
“10년, 아니 5년이면 게임 체인저가 될 땅이 될 것 같아요.”
“원래 기득권이 있는 국가는 역사가 그렇게 흘러갔으니 지금 와서 바꾼다는 건 굉장한 에너지를 소비해야 가능해요. 하지만 여기는 그 정도 규모의 기득권은 없어요. 교사 없는 학교, 교수 없는 대학도 가능하고. 약사 없는 약국도 가능해요. 운전자 없는 택시나 버스, 트럭도 가능하고.”
엘론은 이번에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한 가지 또 걱정거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번엔 재준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근데 원래 아프리카에는 독재자들이 있는 곳인데. 그들이 방해하는 건 아닙니까?”
“아, 그 사람들.”
“왜요? 가능성 있는 거죠.”
“그 사람들 저기 부족 중에 섞여서 농사짓고 있을 거예요.”
“네?”
정치인을 포기하고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지.
“아니면 러시아 여행 중이거나. 아마 못 돌아올걸요.”
“그건 무슨 말이죠?”
“올리가르히가 블라디보스토크로 초청해서 간 사람들 꽤 돼요. 지금도 열심히 초청하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왜 못 돌아옵니까?”
“그들이 돌아오는 비행기를 탈 수가 없거든요.”
뭐야? 설마 납치?
“지금 납치라고 생각한 거죠.”
“아닙니까?”
“절대 아니죠. 그들은 코로나에 감염돼서 못 돌아오는 거예요. 코로나에 걸렸는데 비행기를 어떻게 타요. 병이 다 나을 때까지 러시아에 머물러야지.”
“기껏해야 석 달이면 나을 텐데요?”
“근데, 거, 이상하게 계속 변종에 감염이 된다고 하던데. 나을 만하면 걸리고 나을 만하면 또 걸리고. 뭐, 그동안 워낙 악행을 많이 저질러서 하늘이 벌을 내렸나 보죠.”
음.
엘론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이런 신박한 방법이 있었구나.
***
하르게이사를 시작으로 자율주행 도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주변으로 부족민들이 몰려와 신기한 듯 구경을 했다.
-저건 선진국에나 건설되는 도로라고 하던데. 자율주행 도로를 왜 여기에 깔아.
-선진국에선 말이 많으니까. 윤리에 문제가 있거든.
-그럼, 우릴 무시하는 거 아냐? 우리가 무슨 실험용이야?
-너 돈 있어?
-아니 없는데.
-그럼 너 차 있어?
-아니 없는데.
-그럼 잠자코 도로 건설하는 거나 지켜봐. 윤리보다 공짜가 더 좋은 거야.
-그건 그래.
그리고 철골 구조로 된 첫 번째 교사 없는 학교가 건설되었다.
-와, 나 또 공부하고 싶어. 정말 알기 쉽게 보여주는 것 같아.
-맞아. 나도 세계사에 대해서 배우는데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
-난 수학을 배웠는데. 어떻게 내가 모르는 부분을 귀신같이 찾아내서 알려 주는 거지? 신기해.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왔나 봐.
기존의 팜봇은 약국으로 변했고. 주변은 바둑판같이 정리가 잘 된 마을 형태를 갖추어 갔다.
이게 가능한 건 투마로우가 땅을 관리하고 있어서 땅에 대한 욕심을 부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내 땅이라고 우기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떡하냐고?
그럼 소송으로 해결해야지.
한 10년 동안 질질 끌려다니면서.
드디어 철골 구조의 종합병원이 지어졌다.
아프리카 각지에서 면허를 가진 의사들이 몰렸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마치 실제 수술을 하고 나온 것 같아. 이 땀 좀 봐.
-나도 시작 전에는 어찌나 긴장되던지 손발이 덜덜 떨렸는데. 시작하니까 철분을 먹은 듯한 맛이 나더니 이상하게 차분해지는 거 있지. 그리고 집중해서 수술을 끝냈어.
-야, 넌 마치 진짜 수술한 것처럼 말한다.
-진짜 놀랐다니까.
-곧 수술용 헬멧이 도착한대.
-수술용 헬멧?
-그걸 쓰고 수술을 하면 시뮬레이션처럼 침착해지나 봐.
-아니, 왜 선진국은 이런 좋은 걸 거절한 거야?
-거절한 게 아니라 도입을 할 수 없는 거지. 여기 아프리카는 의사가 적으니까 가능한 거야.
-근데 난 사실 이 모든 게 믿기지 않아.
-뭐가?
-아프리카 국경이 없어지고 부족끼리 모여 살고, 이렇게 병원도 생기고, 우리 아들이 교육을 받고 작지만 집이 있다는 거. 군대의 위협도 없고 강도와 살인도 일어나지 않아. 자원은 개발되고 건물이 올라가고 도로가 건설되고 있어. 전기도 들어오고 물이 풍부해서 이제 기아와 가뭄은 걱정도 안 해. 이게 왜 가능해진 것인지 신이 있다면 정말 감사하고 싶어.
-난 네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왜?
-그전에는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었으니까. 지금 무얼 먹을까만 생각했잖아.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