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8화 자, 돈들 쓰세요. 돈(8)
중난하이.
“딩쉐이, 저거, 저거 뭐야?”
시앙핑이 입에 거품을 물고 TV 화면을 가리켰다.
재진버츄얼의 ‘티처’가 한국에서 연일 화제가 되며 찬반으로 시끄러운 뉴스였다.
“‘티처’라고 개인 학습 인공지능입니다.”
딩쉐이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이게 언제 적 이야긴데 지금 난리야?
머릿속엔 온통 제로 코로나밖에 없으니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모르는 거지.
“머리가 똑똑해진다며.”
“그게 아니라. 잘 가르친다고 합니다. ‘티처’를 쓰고 공부하는 학생 99%가 공부하는 걸 즐겁게 생각한다고 보도가 나오긴 했습니다. 근데 99%는 좀 과장 된 것 같기도 하고요.”
“그게 뭔 상관이야? 10%만 돼도 성공 아니야?”
“그렇긴 합니다.”
어차피 영재는 1%니까.
10%가 영재가 된다면 대박이지.
“딩쉐이, 저거 만든 회사를 인수해 버려.”
아이고 머리야.
“주석님, 만든 회사가 재진버츄얼입니다. 뭔가 느껴지는 게 없습니까? 감이 많이 떨어지신 것 같은데요.”
너 요즘 목소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것 같다.
“재진버츄얼에서 뭘 느껴? 재진, 재진. 뭘?”
“‘재’자만 들어가면 무조건 의심해 봐야죠. 저거 임재준과 그의 아들 진이 만든 회사입니다.”
“뭐? 임재준?”
잠시 화면을 응시하는 시앙핑.
“그럼 우리가 또 한발 늦은 거야?”
“네.”
언제 앞서간 적은 있고요?
“그럼, 저걸 수입하면 되겠네. 우리가 임재준과 남도 아니고 서로 상부상조하는 사이잖아. 안 그래?”
주석님, 임재준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타진은 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아니 왜? 정당하게 수입하는 건데.”
“투마로우가 발표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티처’를 승인하지 않으면 해외로 수출하고, ‘티처’를 승인하면 우선 한국부터 공급한다고 합니다.”
“가만, 가만, 가만. 한국에 다 까는데 얼마나 걸려.”
“그거야 모르죠. 한국 학생만 1,000만에 직장인은 대략 2,000만 명은 되니까.”
“뭐, 뭐, 뭐? 딩쉐이. 그만, 그만해.”
“아, 네.”
“그럼 한국에 3,000만 개가 깔린 후에 우리가 수입할 수 있는 거잖아.”
“그냥 우리가 개발할까요?”
“저걸?”
“네.”
하하하.
시앙핑은 허탈하게 웃었다.
“딩쉐이, 우리의 문제점이 뭔지 알아?”
“말씀해 주십시오.”
“뭔가 베껴서 만들어. 그럼 그걸 수출하지 말고 내수에 팔면 되는데 욕심을 부려서 꼭 수출을 해요. 그럼 전 세계 각종 언론에 비교 기사가 떠. 그리고 중국 제품은 쓰레기란 소리를 들어. 이게 문제야. 근데 ‘티처’를 개발하면 똑같은 일이 안 벌어지겠어? 괜히 중국의 인공지능 수준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거 아니냐고?”
이럴 때는 주석답단 말이지.
중국 인공지능 수준이 인정받아도 문제고 쓰레기 취급을 받아도 문제다.
인정받으면 미국 기술 제재가 더욱 거세질 거고 인정 못 받으면 관련 제품이 안 팔릴 거고.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기다려? 뭘 기다려? 내 말은 그게 아니지. 3,000만 개가 만들어질 때까지 어떻게 기다려?”
“그럼요?”
“한국 정부가 승인을 못 하도록 만들어야지.”
오, 그러네.
이제 머리가 돌아가시네요.
“아, 그럼 시위대를 지원해야겠군요.”
“그렇지, 딩쉐이 감이 많이 죽었어.”
주석님만 하겠습니까?
“당장 시위대를 늘리겠습니다.”
“거칠고 거대하게 만들어. 한국 전체가 떠들썩하게. 정부가 절대 승인 못 하도록.”
“알겠습니다.”
이후 한국의 ‘티처’ 도입 반대 시위 규모가 급격하게 불어났다.
***
백악관.
“뭐라고요? 중국이 한국 시위에 개입을 하고 있다고요?”
도날드는 비서실장 서덜랜드가 가져온 CIA 자료를 보고 크게 놀랐다.
“아무래도 ‘티처’의 한국 정부 승인을 저지하려는 거 같습니다.”
“‘티처’가 승인되지 못하게 해서 수입하려고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중국인이 대거 시위대에 숨어들고 있습니다. 같은 동양인이고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있으니 의심하지 않는 듯합니다.”
이건 한국 정부가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인데.
시위대를 늘리는 건 중국으로선 일도 아니잖아.
근데 꼭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데?
“중국이 ‘티처’를 수입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지금 시앙핑은 사교육비 증가를 막기 위해 학과 수업과 관련한 사교육 기관은 일괄적으로 비영리 기구로 등록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신규 허가는 더는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신규 허가가 나오지 않으니 사교육 지하시장이 형성됐고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었습니다. 국민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티처’를 수입하면 사교육 지하 자금도 끌어내고 불만도 잠재울 수 있습니다.”
“하여튼 시앙핑답게 무식하기는. 근데 ‘티처’는 효과가 있나요?”
“효과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집중력이 좋아지고 성적도 오르는 건 거의 100%입니다.”
“그래요? 거, 신기하네.”
“그런데 더 신기한 게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티처’를 사용한 학생 100%가 공부를 좋아한다는 겁니다.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티처’를 한다는 학생들이 대다수라고 합니다.”
“뭐요? 건강을 해치면서? 그럼 마약이잖아.”
“마약은 아닌데 마약과 비슷한 효과가 있습니다. 중독성이 강합니다.”
“그럼, ‘티처’를 중국이 수입하면 중국 학생들이 전부 공부에 미친다는 소리잖아요.”
“그렇습니다.”
안 돼.
가뜩이나 기술 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차이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떠들어 대는데.
공부에 미친 13억 인구를 상대하라고?
“우리도 개입합시다. 절대 중국이 ‘티처’를 가져가면 안 됩니다. 한국 정부의 승인과 상관없이 중국으로 ‘티처’가 들어가는 건 절대 안 됩니다. 중국에 추가 제재를 가해 한국에 간접 경고를 하세요.”
워, 워.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조금 냉정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지금 중국과 아직 무역 분쟁 중입니다. 서로 쓸 수 있는 카드를 거의 다 썼습니다.”
“뭔가 더 있을 거예요. 지적 재산권을 더욱 강화하는 것도 생각해 보란 말입니다.”
“그건 이미 한계치입니다. 그보다는 임재준을 직접 만나서 미국이 먼저 수입하는 건 어떠십니까?”
“임재준?”
“중국에 들어가는 걸 막기보다는 우리가 전부 수입해 버리는 게 쉽지 않을까요? 한 10년 치를 전부.”
오호. 그래, 우리가 아주 10년 치를 미리 계약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네.
“서형길, 어때?”
그때까지 구석에서 신문을 보던 서형길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선금이라도 줘야 할걸? 도련님이 말만 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잖아.”
“선금?”
“그래.”
“못 줄 것도 없지. 일단 임재준과 만날 수 있게만 해 줘.”
“알았어. 바로 전화해 보지 뭐.”
도날드는 아주 뿌듯했다.
자신한테는 임재준과 언제든 연결할 수 있는 서형길이라는 핫라인이 있었다.
서형길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이사장님.
“도련님, 한국이 시끄럽던데. 괜찮으신 거죠?”
-힘들어 죽겠습니다. 이사장님이라도 옆에 있어야 하는데.
“아이고, 제가 옆에서 보좌해 드려야 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하하하, 도날드가 이사장님을 더 필요로 하니 어쩔 수 없잖아요.
“으이그 이놈의 도날드. 말이 나와서 그러는데 도날드가 좀 만났으면 합니다.”
-혹시 ‘티처’ 때문입니까?
“네.”
서형길이 도날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도날드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잘하고 있어.
-나도 슬슬 수출을 생각하고 있는데 잘됐네요. 얼마나 필요하다고 합니까?
“수량은…….”
서형길이 도날드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몇 대?’라고 입을 뻥끗했다.
10년 치. 10년.
도날드는 손가락 열 개를 피며 ‘10년’이라고 입을 뻥끗했다.
오케이.
서형길이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고 알겠다는 사인을 했다.
그리고.
“열 대입니다.”
-열 대요? 겨우?
도날드의 표정이 순간 썩어들어갔다.
열 대? 열 대라니.
아니야. 안 돼.
도날드가 날듯이 서형길에게 달려가면서 손으로 엑스자를 만들었다.
엑스?
저 사람 진짜 이랬다저랬다.
서형길은 도날드를 보며 인상을 쓴 뒤 재준에게 말했다.
“취소랍니다.”
-그나마 열 대도 취소요?
휙.
으이그, 정말.
결국, 도날드가 서형길의 핸드폰을 낚아챘다.
“임재준, 납니다. 도날드.”
-아, 도날드. ‘티처’ 열 대가 필요한 겁니까? 누구한테 선물이라도 하게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10년, 10년 치 물량 저희가 선점하겠습니다.”
-10년 치요?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닙니까?
“중국과 관세를 합의 보면 됩니다.”
-하긴 그러면 되겠네요.
미국은 중국과 서로 관세를 부과해서 매년 2,000억 달러(한화 240조)의 손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10년 치 물량에 대한 선금도 지불하겠습니다.”
-선금까지요?
“10년 동안 나오는 모든 물량을 미국이 독점하게 해 주세요.”
-그거야 어렵지 않은데. 일단은 한국 정부의 승인을 좀 지켜보고 결정하겠습니다. 한국이 거절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시죠. 가장 먼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기다리죠.”
툭.
후, 한고비 넘긴 건가.
도날드가 서형길에게 핸드폰을 넘기며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서형길. 다 자네 덕이야. 하하하.”
“좋은가?”
“그럼.”
이게 좋아할 일은 아닌데.
“근데 도날드, 한국 시위가 왜 일어나는지 알고 있는 거지?”
“그거야, 기득권 세력인 보수단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티처’ 승인을 반대하는 거잖아.”
“그럼, 미국은 보수단체가 없어?”
“뭐?”
아, 갑자기 머리가…….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자유수호동맹, 헤리티지재단, 윤리공공정책센터, 가족연구회, 미국을 위해 염려하는 여성, 남부침례신학교, 유대가치를 위한 연합회, 미국원칙프로젝트, 카톨릭 투표, 또 뭐가 있더라…….”
“그만.”
“아, 와스프(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s).”
“그만.”
“미국 대학교수들도 문제일 텐데.”
“그만하라고. 나도 알고 있다고.”
“내가 보기에는 한국보다 미국이 더 걱정인데.”
아, 집중력 떨어져.
‘티처’는 내가 필요하네.
임재준한테 우선 하나만 보내 달라고 할까?
***
현재증권.
“누구냐? 미국 대통령인 것 같은데.”
임병달은 통화를 마친 재준에게 살짝 다가가며 물었다.
“네, 도날드예요.”
“미국도 ‘티처’를 달래?”
“그렇죠, 뭐. 아마 중국 때문이겠죠.”
“중국이 왜? 지금 싸우고 있어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잖아요. 최소한 중국에 ‘티처’가 들어가는 걸 막겠다는 거죠.”
“그래서 10년 치를 선금 주고 선점하겠다는 거야?”
“네.”
“역시 통이 크네.”
“할아버지, 아니에요. 아마 이 사실을 중국이 알면 중국은 100년 치 선금을 준다고 할걸요?”
“뭐? 100년?”
“어쩌면 지금 상황이면 중국이 훨씬 유리합니다. 13억 인구를 교육시키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티처’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니까요. 얼마가 들어가든 훨씬 남는 장사예요.”
“그러면 넌 어쩔 생각이냐?”
“둘 다 주면 되죠.”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