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7화 자, 돈들 쓰세요. 돈(7)
현재증권.
“에잉, 아주 온 나라가 난리야. 난리.”
임병달은 못마땅한 듯 한쪽 얼굴을 찡그리며 신문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하하, 시위 때문에 그러십니까?”
“약사, 의사들은 왜 시위야?”
“팜봇이 자기들 밥그릇 빼앗을까 봐 그런 겁니다.”
“팜봇은 코로나 끝나고 철수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지랄이야? 하여튼 가슴하고는. 아주 다들 새가슴을 해서는.”
“누가 하도 약속을 안 지켜서 그런 걸 어떡하겠습니까?”
“그것도 지들이 그렇게 만들었잖아.”
쯧쯧.
임병달이 탁자 위에 있는 신문을 뒤적였다.
“아이고, 교사와 교수들도 시위 중이고. 내 손자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났어. 안달이.”
“‘티처’가 좀 세긴 합니다. 당장 교사와 교수는 실업자가 되게 생겼습니다. 하하. 코로나 아니면 신문에 실리는 기사가 없었는데. 역시 도련님은 타고나신 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엔 재준이 잘못이 아니야. 자기 자리 없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놈들 잘못이지.”
“약사, 의사만 조용히 해 주면 좋겠습니다. 이 와중에 파업도 생각한다니.”
“저놈들 말이야. 팜봇을 지금 철수해야 해. 자기들이 할 일을 팜봇이 대신해 주니까 시간이 남아도나 봐. 팜봇이 오기 전에는 힘들어 죽네 마네 하던 놈들이. 한심한 놈들.”
“지금까지 대접받던 사람들이라 더 할 겁니다.”
“근데 사람들이 투마로우가 어느 정도 되는 회사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아.”
“아직 SS전자보다 작다고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은행이라는 이미지가 한국에서는 대기업 밑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웃기는 작자들이야. 투마로우는 고사하고 현재증권이 SS전자보다 매출이 배는 많은데. 에휴, 누굴 탓하겠어.”
똑똑.
손님 오셨습니다.
“할아버지. 저 왔습니다.”
잉?
“진은 어디다 팽개치고 너만 왔냐?”
재준이 혼자 들어오자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진을 찾는 임병달이었다.
“진도 자기 회사가 두 개나 있어요. 걔 바빠요.”
“허, 6살짜리 아이가 회사 일로 바쁘다니까 정말 알면서도 이해가 안 되네.”
“전 이제 좀 익숙해요.”
“보약이라도 지어 먹여야 할 것 같은데.”
임병달이 진을 생각하는 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럼요. 도련님.”
재준과 정 행장은 오랜만에 악수를 나누었다.
“이번에 자금은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재진버츄얼사의 자금은 투뱅코에서 책임지기로 했다.
자금은 회사채를 발행해서 충당했다.
재진버츄얼사가 회사채를 발행하고 투뱅코가 100% 인수했는데 이것도 세간에 말이 많았다.
‘어떻게 신생회사가 회사채를 발행하냐’, ‘특혜 아니냐’는 기사가 실렸고 투마로우가 악의적 보도라고 명예훼손으로 해당 신문사를 고소해 버렸다.
그 이후 투마로우에 대한 추측성 보도가 많이 자제되긴 했다.
하지만 일단 질러 보는 습관은 여전했다.
이걸 뭐라 그럴 수는 없었다.
기자는 특종으로 먹고사는 족속이니까.
“일단 한국 청문회 결과가 안 좋으면 1조고요, 좋으면 10조까지 늘어날지도 몰라요.”
“결과가 좋다는 건 정부가 ‘티처’ 도입을 반대하는 거죠?”
“네. 반대하면 ‘티처’를 수출할 겁니다.”
“일단 준비는 하고 있겠습니다.”
가만있어보자.
기자들한테 특종을 만들어 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데.
임재준식 경영 원칙 하나.
일은 되도록 시끄럽게 한다.
“행장님, 대출 금액을 최대한 밖으로 새어 나가게 해 주세요.”
“네? 일부러 소문을 내라고요?”
“그렇죠. 되도록 해외에도 퍼뜨려 주고요.”
미국과 중국에 한바탕 소란을 피워 줘야지.
“음, 일단 알겠습니다.”
또 무슨 음모를 꾸미시는 겁니까?
“청문회라니?”
이제야 정신을 차린 임병달이 끼어들었다.
“저 또 청문회 가는 거 모르셨어요?”
“무슨 청문회?”
“‘티처’ 도입할지 말지 결정하는 청문회요.”
“그걸 왜 청문회를 해? 무조건 좋은 거 아니냐?”
“평범한 사람이 성공하는 걸 원하지 않는 사람들 많아요.”
“이런 빌어먹을 놈들. 우리 진이 만든 건데 잘못하면 제대로 꿈도 못 펼치고 사라지는 거 아니냐?”
“진 때문에 제가 할 일이 많아지고 있어요.”
“그게 부모가 할 일이야. 정 안 될 것 같으면 나한테 맡겨라. 내가 피눈물이 나도록 해줄게.”
“진정하세요, 할아버지.”
‘티처’가 도입되면 가장 먼저 난리 치는 인간은 중산층이다.
평범한 사람이 성공하는 걸 원치 않는 중산층들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봐와서 알겠지만 바로 그들이다.
의사 자식은 의사가 되어야 하고 판사 자식은 판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한국교육의 진정한 원동력인 중산층 학부모.
정부의 교육제도와 정책은 현재 한국의 교육체제를 만든 중산층 이상 학부모의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정부는 이들의 대리인일 뿐이고.
하긴 정부 관계자들도 이들에 속하긴 한다.
교육 카르텔이라 부르는 조직이 있는데 교육투자에 적극적이지 않은 정부 관료, 교육열이 강한 중상층 학부모, 기업화된 사교육 시장이 그것이다.
지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최대의 수혜를 보고 있는 이들도 이들이다.
일반 학생은 온라인 수업으로 학업 집중도는 더 떨어졌지만, 사교육으로 도배가 된 중산층의 자식들은 등급을 쉽게 올릴 수 있었다.
근데,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내가 겨우 한국의 중산층과 신경전을 펴야 하나?
이거 참, 진의 부탁만 아니면 그냥 미국으로 가 버리고 싶은데.
내가 참는다. 참아.
이게 부모가 할 일인가…….
***
재진버츄얼사의 ‘티처’ 학교 도입에 대한 청문회.
이번에도 재준은 증인석에 앉았다.
여기저기 재준을 곁눈질로 흘깃거리고 속닥이는 소리가 커 장내가 소란스러웠다.
-임재준이야. 임재준.
-생긴 건 기생오라비 같은데 그렇게 무섭다며?
-미국은 물론 중국도 꼼짝 못 한다나 봐. 웬만한 나라 대통령은 마중 나가서 90도로 인사 올린다는 소리도 있어.
-아프리카는 거의 90%가 임재준 땅이라는데.
-중국의 절반도 임재준 땅이라고 하더라고.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뭐, 굳이 나서서 정정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잔뜩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으니까.
이때, 의장이 청문회 시작을 알렸다.
“청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야당 의원이 증인으로 나온 교육부 장관에게 질문했다.
“교육부 장관은 ‘티처’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평등한 교육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등급에 맞게 교육이 이루어지면 특정 과목을 포기하는 학생도 줄고 좀 더 건강한 국민으로 사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재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은 뭐 좀 아는 사람이네.
“내 말을 곡해하나 보네요. 내가 언제 평등한 교육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도입에 찬성이냐 반대냐를 물어본 거잖아요.”
“그런 이야기라면 찬성입니다.”
“아, 찬성. 그럼 ‘티처’의 불법적인 개인 정보 수집을 허용하겠단 말이군요.”
여당 의원이 천하 일보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재준은 그 여당 의원을 유심히 살폈다.
천하 일보?
저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신문사잖아?
“그건 어디까지나 천하 일보의 정확한 증거가 없는 추측성 기사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사실이면 어쩌겠습니까? 아니라는 증거도 없잖아요. 그럼 진짜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것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재준은 의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핵심을 잘 짚었는데.
당연히 개인 정보를 수집하지.
‘블랙’이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수단이 머신러닝과 딥러닝인데.
데이터가 있어야 결정을 내릴 거 아냐.
“알아보겠습니다.”
“확실하게 조사를 해야 합니다. 투마로우라고 얼렁뚱땅 넘어가선 안 됩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한국 법을 정확히 준수해야 하는 겁니다.”
호통을 친 야당 의원이 재준을 흘깃 보고 앉았다.
저기요.
재준이 손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재준이 손가락 하나를 보였다.
한마디만 합시다.
네, 해 보세요.
의장이 허락했다.
재준이 일어서서 좌우를 죽 흩어보고는.
“개인 정보 수집하는 거 맞습니다. 불법적으로 수집하는 거…….”
중요한 순간에 말이 끊어졌다.
다시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는데.
“맞습니다. 동의받지 않고 개인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내가 저럴 줄 알았다니까?”
방금 입에서 불을 뿜던 야당 의원이 이번엔 펄펄 끓는 쇳물을 쏟아내듯이 고함을 쳤다.
“그래서…….”
재준이 또 말을 끊고 주위를 죽 둘러봤다.
“팜봇, 철수하겠습니다. 싫다는데 어쩔 수 없네요.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오늘부로 1,000곳의 선별진료소에서 팜봇을 빼겠습니다. 됐습니까?”
네? 뭐야?
“아, 아니. 임재준……. 대표. 우리가 말한 건 팜봇이 아니에요?”
야당 의원이 당황한 얼굴로 다시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뭔가 착오가 있나 본데요. 우린 지금 ‘티처’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알고 있어.
“그래요? 내가 깜빡 졸다가 들어서, 아, 미안합니다.”
재준이 앉으려다가 다시 일어섰다.
“근데, 팜봇이나 티쳐나 같은 원리로 움직이는 건데. 먼저 인간의 데이터를 받아서 최적의 선택을 도와주는.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재준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계속하세요. 이제 졸지 않고 들어야겠네요. 아, 나 참, 요즘 일이 하도 많아서 시도 때도 없이 졸린단 말야. 미안합니다.”
재준이 앉자 장내 분위기가 싸하게 돌아갔다.
더는 개인 정보 이야기를 꺼낼 수 없게 되었다.
여차하면 팜봇을 거두어 가는 불상사가 벌어질지도 몰랐다.
지금 약사와 의사가 팜봇에 대해 시위를 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혹시 팜봇이 한국에 눌러앉을까 봐 보여주기식 시위를 하는 것이고 당장은 팜봇이 없어지길 원하는 건 아니었다.
팜봇이 없다면 코로나 검사에 아주 큰 차질이 벌어지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이번엔 여당 의원이 발언권을 얻어 교육부 장관에게 질문을 했다.
“2일 자 동서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티처’를 사용한 학생들이 전부 약간의 환각 상태를 경험했다고 하는데 혹시 ‘티처’가 금지 약물을 사용하는 건 아닙니까?”
저걸 환각 상태라고 보네.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 행위는 없었습니다. 환각 상태라는 것도 일부 학생의 경험을 말하는 추측일 뿐입니다.”
“일부라고요? 여기 제가 조사한 자료가 있습니다.”
여당 의원이 준비해온 그래프와 자료를 보여주었다.
확실히 학생들은 열반을 경험한 것을 환각이라고 착각했다.
저 고귀한 경험을 단지 졸렬한 환각 따위와 견주다니.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
저기요.
재준이 다시 손을 들자 의장이 재준을 바라보며 발언권을 주었다.
또?
발언해도 좋습니다.
“그건 경두개 직류 자극기라는 건데. 뇌에 작은 전류를 흘려 넣어서 집중력을 강화하는 일종의 의술이에요.”
네?
뇌를 자극하는 거라고?
무허가 의료 기기?
찍어!
팟팟팟팟팟팟팟팟팟.
특종이다.
***
[재진버츄얼사의 ‘티처’는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은 의료 기기임이 밝혀졌습니다. 각종 시민 단체에서 투마로우를 비난하는 성명이 이어졌습니다. 정의사회구현변호사모임은 투마로우에 소송으로 맞서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티처’를 사랑하는 모임인 티사모는 재진버츄얼사의 ‘티처’는 사회계급을 대물림하려는 상위 계층을 깨부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하며 정부와 어용 시민 단체의 저열한 행태를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티사모를 주체로 하는 모임이 광화문에 집결하는 가운데 정부는 불법 시위는 공권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티사모는 자신들은 분명 사전 신고를 했으며 이유 없는 불허는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잘못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티사모 집회에 전국에 있는 초중고학생들과 대학생들이 합류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시위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코로나 시기에 대규모 시위를 허가할 수 없으며 이에 불응할 시에는 공권력을 투입해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티처’를 허가하라.
‘티처’를 허가하라.
[재진버츄얼은 대한민국 정부가 ‘티처’를 한 달 안에 승인한다면 국내에 먼저 제공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부는 기한을 한 달로 못 박은 건 승인이 나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수출하겠다는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음.
“진, 너 이거 알고 나한테 얘기한 거냐?”
“히히, 정상적인 방법으론 승인이 나오질 않으니까요. 저 돈 필요해요. 아주 많이.”
“그거 내가 준다니까.”
“필요 없는데요.”
“다음은 뭐야?”
“변호사, 검사, 판사.”
“그게 뭐야?”
“법을 다루는 인공지능을 만들려고요.”
뭐?
야, 그건 진짜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