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6화 이게 왜 중국에서 나와?(6)
투마로우 시티 병원.
샤말란은 프라이온 치료제 생산 시설 때문에 밤낮으로 정신이 없었다.
“일은 잘돼 가요?”
문 쪽에서 폴리의 음성이 들렸다.
“응, 아직까지는 차질 없이… 헉! 뭐야? 그 몰골은.”
샤말란이 고개를 돌려 폴리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폴리의 몰골이 며칠 한잠도 못 잔 사람처럼 머리는 산발하고 두 눈에 초점이 없으면서 얼굴색은 거무칙칙했다.
“선배, 쥐가 사람을 물 수 있죠?”
“그, 그렇지. 종종 그런 환자들이 있지.”
“그럼, 맞네. 밤마다 쥐가 절 공격해요.”
“뭐라고?”
“이거 보세요.”
폴리가 소매를 걷어 올리자 확실히 동물의 이빨에 뜯긴 상처가 보였다.
“그리고 여기도.”
다리도, 심지어 옆구리에도.
샤말란은 폴리의 상처를 살피며 말했다.
“투마로우 시티에 쥐가 있다는 소린 들어보지 못했는데.”
“그런데 있네요.”
“진료는 받았어?”
“네, 특별한 이상은 없대요. 발열도 없고. 의외로 깨끗한 놈인가 봐요.”
“농담이 나오냐? 당장 방역팀에게 연락해서 집안 소독부터 해.”
“했어요. 설마 이렇게 물리고 제가 가만히 있었겠어요? 벌써 여러 번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저녁마다 찾아오네요.”
“그래? 거참, 신기하네. 쥐가 그렇게 똑똑할 수 있나? 아니, 겁이 없다고 해야 하나? 사람 흔적이 있으면 도망가야 하는 거 아냐?”
“그러게요.”
신기한데?
샤말란은 관련 자료를 조사해 볼까 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지금 내 코가 석 자다.
일단 치료제부터 해결하고.
그나저나 저 몰골, 며칠 입원해야 하는 거 아냐?
“넌 오늘 집에 가서 쉬어.”
“그럴 생각이에요.”
“아니, 입원하는 건 어때?”
“저도 의사예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런데 치료제는 잘 되고 있어요?”
“응? 아직. 아무리 그래도 몇 번 생산 테스트는 해야지.”
폴리는 주변을 둘러보며 화학식으로 도배가 된 한쪽 벽을 봤다.
“내가 알기로는 인도에도 대단위 제약 회사를 보유하고 있다던데. 왜 여기서 시간을 끄는 걸까요?”
“뭐? 무슨 제약 회사?”
“투마로우 말이에요. 인도에 제약 회사가 다섯 갠가 있잖아요. 거기서 항우울제 만들고 있는 거 다 알아요.”
“근데 그게 왜?”
“왜 거기서 프라이온 치료제를 만들지 않냐고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뭔가 생각이 있겠지.”
폴리는 다시 화학식을 봤다.
“선배, 저거 미국에 전하면 안 될까요?”
“치료제 화학식을?”
“네.”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소용없는 짓이야. FDA 승인 어쩌고 하면서 한 달이 아니라 3년은 걸릴 거야.”
“그건 일반적인 전염병이고요. 이번엔 다르잖아요. 미국 제약 회사들에서 생산하면 전 세계에 금방 퍼질 텐데…….”
풋.
결국 샤말란이 웃으며 하던 일을 멈췄다.
“넌 아직도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고 믿고 있는 거야?”
“합리적이진 않아도 이성적인 존재는 맞잖아요.”
“그렇지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지. 그래서 졸겐스마를 200만 달러(한화로 26억 원) 주고 팔아도 이성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하지? 조킨비는 연간 100만 달러가 들어도 낫질 않아. 다니엘자는 2만 달러짜리 약을 48회나 복용해야 하고 마이아렙트는 연간 약값이 89만 달러. 럭스터나는 85만 달러. 폴로틴은 81만 달러. 브리누라는 2주마다 2만 8090달러, 블린사이토는 71만 달러. 더 이야기해 줘야 하니?”
졸겐스마는 척수성 근위축증.
조킨비는 허친슨 길포드 조로증 증후군.
다니엘자는 신경모세포종.
마이아렙트 지방이영양증환자의 렙틴 결핍치료제.
럭스터나는 망막이영양증.
폴로틴은 희귀 혈액암인 말초 T 세포 림프종치료제.
브리누라는 유아의 중추신경계 이상을 초래하는 희귀 유전자 질환인 배튼병 관련 유일한 치료제다.
블린사이토 미세잔존질환(MRD) 양성인 전구 B세포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샤말란이 따발총처럼 비싼 약들을 나열하자 폴리의 미간이 구겨졌다.
“설마…….”
“설마는 무슨. 죽어가는 사람들 놓고 아주 이성적으로 장사하는 게 제약 회사야. 프라이온 치료제를 미국이 아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 알아? 미국은 어마어마한 돈방석에 앉을걸? 뭐 처음엔 한두 개 정도 무상으로 주겠지. 그리고 계속 무상으로 줄까? 네 말대로 이성적인 인간들이라 돈도 이성적으로 벌걸?”
“선배…….”
“꿈 깨.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하지만 난 임재준은 다르다고 봐. 물론 강압적인 면은 있겠지. 로봇을 수출하는 건 그 일환이 될 거고. 그래도 없는 사람들의 주머니는 털지 않아. 지금까지 그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임재준을 정말 믿으세요?”
“넌 투마로우 시티에 왜 왔냐? 믿어서 온 거 아냐?”
“그렇긴 하지만.”
피식.
샤말란이 폴리를 보고 웃었다.
“저 7구역에서 항공 과학 연구하는 애들 알지?”
“네. 우주여행 준비하는 애들, 알죠.”
“거기 이미 온갖 이상한 무기들 엄청 많아. 레이저, 인공위성, 블랙홀, 진공 형성 등을 이용한 무기들.”
“네?”
“굉장하지. 블랙홀과 진공 형성 무기는 내가 보고 혀를 내둘렀으니까.”
“그런 게 있어요?”
“거기뿐이냐? 4구역에 로봇 연구하는 애들은 어떤데. 거긴 더 많아. 땅속, 물속은 물론 투명망토를 이용한 기술도 있어. 근데 왜 임재준이 팜봇과 메렛, 플라이드론과 마우스. 달랑 네 개만 보여준 지 알아?”
“글쎄요.”
“네가 좋아하는 가장 합리적인 인공지능, ‘블랙’의 도움을 받고 있어서야.”
“블랙이요? 우리가 물품 주문할 때 전화 거는 그 ‘블랙’이요?”
“그래, 우리는 물품이나 주문하지만, 임재준 팀원들은 ‘블랙’에게 여러 가지를 조언받을 수 있어. 지상 최대의 인공지능이니까.”
“그 이야기는 잘 알죠. 투마로우펠그리니 인공지능 회사 자체가 워낙 유명하니까요.”
“그럼 잘 알겠네. ‘블랙’이 임재준에게 인류에겐 더 강한 로봇은 필요 없다고 했다는 거.”
“네, 얼핏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요.”
“그럼 임재준은 이번 프라이온 감염 대처에 ‘블랙’에게 뭘 알려 달라고 했을까? 임재준이 ‘블랙’에게 프라이온을 이용해서 돈을 가장 많은 버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을까? 난 아니라고 보는데.”
“선배는 이번 대처가 ‘블랙’의 조언이 있다고 보는 거예요?”
“당연하지. 그리고 임재준은 최소한 더러운 선택은 하지 않아.”
“더러운 선택이 뭔데요?”
“너도 투마로우 시티에 좀 더 있어 보면 알아. 무얼 만들든 임재준은 절대 우리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래서 우린 윤리니 법이니 무시하며 연구를 하는 거고.”
폴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은 풀지 못했다.
그래도 사람을 살리고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이건 아무래도 시간을 끌어서 로봇을 팔아먹겠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데.
그나저나 왜 이렇게 피곤하지.
손발도 떨리고.
“선배, 나 집에 가볼게요.”
“그래, 근데 너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졌다. 입원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하루 푹 쉬면 나아질 거…….”
폴리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자 샤말란이 재빨리 폴리를 받았다.
“폴리, 폴리, 정신 차려! 폴리!”
샤말란은 주머니에서 플래시를 꺼내 폴리의 동공에 비췄다.
이거 왜 이래.
동공 반사가 일어나지 않잖아.
샤말란은 귀를 폴리의 가슴에 대었다.
아직은 힘차게 뛰고 있는 심장.
하지만 동공이 풀렸다?
뇌 신경이 손상되었다는 증거?
위험한 상황이다.
***
미국.
미국도 각 주별로 폐쇄된 지역이 존재했으며 팜봇의 도입을 놓고 국회에서부터 옥신각신 싸웠다.
“투마로우 로봇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민주주의 근간을 해치는 로봇을 받아들이잔 말입니까?”
“아니, 죽느냐 사느냐 문제에 민주주의가 왜 나옵니까?”
“로봇을 어떻게 믿습니까?”
“그럼 당신은 해결책이 있습니까?”
“왜 없습니까? 로봇이 하는 일을 인간이 하면 됩니다.”
“누가 저 안으로 들어갑니까? 당신이 들어갈 겁니까?”
“들어갈 사람이 왜 없습니까? 우리 국민을 무시하지 마세요.”
“웃기고 있네. 자신은 안 들어가면서 남이 들어가길 바라고 있으니 원.”
“뭐라고요? 지금 그거 나한테 한 말입니까?”
도날드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놈의 나라는 뭐만 하면 정치질이다.
***
일본.
일본은 코베 총리가 대놓고 반대했다.
“죽어도 임재준의 도움은 받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아세요.”
“총리님, 이러다 다 죽습니다.”
“자위대를 동원해서 지역을 봉쇄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지역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굳이 알 필요가 있습니까?”
“네?”
“치사율이 100%인데 알 필요가 있냐고요.”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한 사람씩 검사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언제 다 합니까? 그 시간에 감염돼서 죽어가는 사람은 어쩌려고요.”
“그게 내 책임입니까?”
모두 할 말은 많았지만 ‘책임’이란 말에 입을 닫았다.
***
프랑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유럽은 전부 팜봇 도입을 찬성하고 있습니다. 다만 메렛은 좀 두고 보자는 분위기입니다.”
“아니, 임재준의 말에 일리가 있는 거 아닙니까? 잘됐네요. 우린 메렛 도입도 찬성이니 빨리 팜봇을 달라고 하세요.”
“이미 신청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젊은 대통령 마크롱은 빠른 일 처리에 만족했다.
“그리고 기업들에게 아프리카 사업에서 서서히 손을 떼라고 하세요.”
“기업들이 반발할 겁니다.”
“아프리카 위생 상태를 알면서 아프리카에 들어가겠다는 겁니까? 누구 하나 죽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정 아프리카로 들어가겠다면 들어가서 돌아오지 말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프랑스를 포함해서 유럽은 아프리카 출국을 금지했다.
모두 예전의 아프리카를 생각하고 있었다.
***
투마로우 시티.
재준은 북조선 증권 센터 접견실에서 혼자 TV를 보고 있었다.
[러시아는 그리스 내에서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프라이온이 강타한 그리스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입니다. 시체가 사방에 널렸으며 정부 관계자들은 벌써 크레타섬으로 피신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에 희망은 없습니다. 버려진 땅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그리스라…….
저기도 끝난 건가?
벌컥.
윌켄이 들어서며 무언가 성취한 듯 주먹을 쥐어 보였다.
“보스, 치료제 생산 들어갔어요.”
“그럼 단둥시를 중심으로 중국 정화 작업에 들어가면 되겠군요.”
“네.”
음.
이제 시작이다.
하지만 재준은 프라이온의 발생 원인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누가 한 짓일까?
중국이 실수를 저지르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일까?
아니야, 그렇다기엔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발병됐어.
“보스, 고민 있습니까?”
평소와 다른 심각한 재준을 본 윌켄이 의아한 듯 물었다.
“아닙니다. 그보다 중국으로 들어가서 꽤 큰 소각장을 지어야 할 것 같은데.”
“이미 바이오헤자드 폐기물 업체에서 준비를 마쳤습니다. 단둥시 철강기업의 용광로를 이용할 생각입니다.”
“워서스틴과 페렐라는 뭐 하고 있습니까?”
“투마로우 시티에 진출해 있는 기업 중 부실한 업체 인수 합병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투마로우 시티에서 단 하나의 기업도 도산은 불가하다고 나름 열심입니다.”
“퀴니코와 블록은요?”
“둘은 지금…….”
벌컥.
윌켄의 말이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의해 끊겼다.
“아저씨.”
엘리자베스였다.
“왔니?”
“인도 좀 어떻게 해야겠어요.”
“오자마자 웬 인도 타령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