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3화 이게 왜 중국에서 나와?(3)
전 세계는 급한 대로 프라이온 발병지를 봉쇄했다.
문제는 발병지 안에 있는 사람들의 감염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었으나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자그마치 치사율 100%인 전염병이었으니까.
유일한 해결책은 하나, 팜봇의 도입이 대두되었다.
팜봇에 대해 비판 일색이던 선진국에서 먼저 투마로우에 팜봇 수출을 타진했다.
“팜봇을 수출할 겁니까?”
윌켄의 물음에 재준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글쎄요. 팜봇만 수출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렇겠죠. 도난당할 우려도 있고 기술을 훔치려는 의도도 있을 테니까요.”
“팜봇 옆에 드론과 메렛이 없으면 안 된다고 통보하세요. 그리고 언론에 기사도 내고.”
“알겠습니다.”
“타협은 없습니다.”
“네.”
기겁하겠지.
팜봇 옆에 킬러 로봇이 서 있으면 마치 로봇에게 지배당한 인간 같으니까.
“제약 회사 동향은 어때요?”
“백신은 아예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백신은 병원체를 인간의 몸에 주입해서 면역력을 생기게 하는 건데 프라이온은 미량이라도 뇌 속에 구멍을 숭숭 뚫어 버린다.
“그럼 치료제는?”
“글쎄요.”
치료제는 병원체를 죽이면 되는 일이니까 가능할 것 같은데.
재준은 도날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이 한 번 울리기도 전에 도날드가 소리쳤다.
-임재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미국에 있습니다.”
-휴, 다행이군요. 난 또 아프리카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미국이 안전하다고 믿는 건가?
아프리카가 더 안전하지.
“제약 회사들은 어떻습니까? 치료제는 만들고 있습니까?”
-아직 단서도 못 잡았답니다.
“아직도요?”
-투마로우에서 뭐 알아낸 거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걸 어쩐다.
아, 알겠어. 간다 그래.
핸드폰 너머로 도날드가 참모들에게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임재준, 바빠서 가야겠습니다. 뭐라도 나오면 연락 주세요.
“알겠습니다.”
툭.
미국도 아직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구나.
하긴 프라이온 단서를 잡았으면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을 벌써 치료했겠지.
프라이온, 프라이온.
최초 발생이 단둥시라고 했지.
왜 하필 거기일까?
재준은 단둥시가 맘에 걸렸다.
단둥시 PIM 공장 건설 현장을 다녀온 후라 더욱.
재준은 다시 딩쉐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딩쉐이, 최초 발생이 단둥시라고 하던데. 어떻게 발병된 건지 알아냈어요?”
-첫 번째 환자들은 고양이. 프라이온에 감염된 고양이를 잡아먹었답니다.
“뭐라고요? 고양이…….”
재준은 잠시 말을 멈췄다.
빌어먹을 그걸 왜 잡아먹어?
아니지, 쥐도 먹는데 고양이라고 못 잡아먹을 인간들이 아니지.
머뭇거린 딩쉐이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고양이가 시초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한 달 후에 랴오닝성 전역에서 산발적으로 프라이온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지점을 중심으로 퍼진 게 아니란 말이에요?”
-네, 그래서 랴오닝성을 폐쇄했습니다.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에선 뭐라고 합니까?”
-프라이온이 맞긴 한데 변형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프라이온은 잠복기가 1년에서 10년인데 이번 프라이온은 일주일이면 뇌 속의 뉴런을 다 죽인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변형이 만들어질 수 있지? 누가 일부러 만든 거예요?”
-그건 모르겠답니다.
이때, 톡톡, 윌켄이 재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손가락으로 TV 화면을 가리켰다.
CNN 속보가 방영되고 있었다.
[프라이온은 끓이거나 소독제를 뿌려도 사멸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프라이온은 끓이거나 소독제를 뿌려도 사멸하지 않습니다. 임상적으로 소독 불가능한 병원체입니다. WHO가 발표한 120도에서 죽는다는 발표는 사실이 아닙니다. 주의하십시오. 프라이온은 끓여도 죽지 않습니다]
뭐야, 저거.
“딩쉐이, 딩쉐이. 딩쉐이.”
딩쉐이는 이미 핸드폰을 떨어뜨렸나 보다.
“딩쉐이, 딩쉐이, 딩쉐이.”
-아, 임재준. 큰일입니다.
“왜요? 혹시 CNN 속보 봤어요? 120도에도 죽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뭔데요? 말을 해요?”
-죽은 고기를 시장에 유통시켰답니다.
“네?”
-단둥시의 축산에서 돼지들이 떼로 폐사했는데 그 고기가 시장에 유통되었답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인터넷, 인터넷에…….
“인터넷이요?”
중국 언론은 정부가 통제하고 있지만, 인터넷은 불가능했다.
윌켄이 재빠르게 U튜브를 검색해 해당 영상을 찾아 재준에게 보여줬다.
눈이 돌아간 상태로 죽은 돼지들이 트럭에 실려 도축장으로 가는 장면이었다.
U튜버는 이 죽은 돼지가 프라이온에 걸린 게 틀림없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미친.
툭.
딩쉐이의 전화는 끊어졌다.
“딩쉐이, 바로 발표를 해야지. 발표를.”
이미 끊긴 핸드폰을 잡고 재준은 딩쉐이를 찾았다.
이 사람 정신 줄을 놓았네.
하긴 지금 돼지가 얼마나 유통되었는지 알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
빌어먹을 어떻게 돼지가 프라이온에 감염되었다는 거야?
U튜버를 믿어도 되는 걸까?
어쨌든 돼지를 요리해서 먹어도 프라이온에 걸린다.
근데 이게 왜 세계로 삽시간에 퍼진 거지?
중국만 감염되어야 하는 거 아냐?
중국이 시작이 아닌가?
재준은 머리가 복잡한 듯 거세게 흔들었다.
왜?
아, 투마로우 시티!
김정은!
재준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띠리리리링.
-임재준 동무. 무슨 일입니까?
“고기, 지금부터 고기를 먹지 마세요.”
-고기요?
“네, 지금 프라이온 감염원인이 중국에서 시작된 거 같아요. 고기 종류는 전부 먹지 마세요.”
-알고 있습니다.
“투마로우 시티를 포함하여 북한 전체를 통제하세요.”
-근데……. 우리 공화국은 괜찮습니다.
“그렇게 자신할 일이 아닙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도 프라이온에 걸린 환자가 있었지만 투마로우 시티 병원에서 전부 멀쩡하게 나았습니다.
“나았다고요?”
-예방은 안 되지만 걸려도 주사 한 방이면 나아요. 뭐 뇌 손상은 있지만 더는 프라이온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이게 무슨 소리야?
벌써 치료제를 만든 거야?
“알겠습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와서 술이나 한잔합시다.
“네, 그럼. 이만 끊습니다.”
툭.
윌켄이 재준에게 다가왔다.
“치료제를 만든 겁니까?”
“그런 것 같은데. 가봅시다. 나머지 팀원들 전부 투마로우 시티로 집결시키세요.”
“네.”
***
중난하이.
“폐사한 돼지들 어떻게 된 거야? 정말 이번 전염병과 상관있는 거야?”
시앙핑은 딩쉐이가 들어오자마자 다그치듯 말했다.
“맞습니다. 프라이온에 걸린 돼지들이었습니다.”
“이런 미친 새끼들. 그걸 왜……. 아니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지. 그래 돼지들이 왜 프라리온에 걸렸대?”
“물입니다.”
“물?”
“단백질은 수용성이라 물에 녹는데 프라이온은 비수용성이라 물에 녹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걸 말이라고……. 그럼, 식수를 통해 감염된단 말이야?”
“그래서 랴오닝성을 폐쇄했는데도 탕산, 톈진, 베이징에서 감염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 허베이성까지 폐쇄해. 식수를 조사하라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력 가지고는 안 돼. 군을 동원해서라도 모두 집안에 감금시켜. 더 내려오면 중국은 망한다고.”
“저, 그보다 저희도 팜봇이 필요합니다.”
“그럼 당장 임재준에게 부탁하면 되잖아.”
“문제는 팜봇과 함께 드론과 메렛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건 나중 문제고. 당장 연락해.”
“네.”
***
인도 아바즈 파잘의 저택.
디노 파잘은 오늘 한 통의 소포를 받았다.
소포 안에는 두툼한 책 한 권과 볼품없는 볼펜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디노 파잘.
우타라칸드주에서 현금 동원 능력 하나는 제일이라는 소리는 듣는 아바즈 파잘의 아들.
뱅가모바이오사이언스의 유전자 수선으로 만들어진 수정란에서 태어난 천여 명의 천재 중 한 명.
3살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세간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현재 5살에 3개 국어에 음악과 작곡, 컴퓨터 프로그램밍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게 뭐니?”
디노의 어머니가 다가오며 물었다.
“친구가 선물을 보냈어요?”
“친구 누구? 너랑 어울릴 정도로 똑똑한 아이가 또 있어?”
“투마로우 시티의 진이요.”
“어머, 그 임재준의 아들이라는 진?”
“네.”
“우리 아들, 진이랑도 친하니?”
후후.
“당연하죠.”
“그 책은 뭐니?”
“진이 저한테 읽어 보라고 준 거예요. 작곡 인공지능 알고리즘이래요.”
“인공지능 알고리즘?”
“네.”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소매를 디노가 잡았다.
“엄마.”
“응? 왜?”
“갠지스강에 데려다 주세요.”
“거긴 왜?”
“갠지스강이 보고 싶어요. 문득 악상이 떠올라서요. 다듬고 싶어요.”
“그래? 그럼 가야지. 차를 대기 시킬 테니 준비되면 나오렴.”
“네.”
디노는 볼펜을 안쪽 주머니에 집어넣고 밖으로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타자 먼저 타고 있던 어머니가 자리를 쓸어 주었다.
“조심히 앉으렴.”
“네.”
탁.
문이 닫히고 차가 출발했다.
디노 아버지의 대규모 농장을 지나 갠지스강의 발원지라 일컬어지는 곳에 도착했다.
갠지스강의 길이는 총 2,506km, 유역 면적은 840,000㎢다.
히말라야산맥의 강고토리 빙하에서 발원하여 인도 북부를 동쪽으로 흐르다가 비하르 주 동쪽 경계에서 남동으로 방향을 바꾸어 벵골 평야를 지나 벵골만에 흘러든다.
갠지스강은 인도 국토의 1/4을 분지로 만들어서 비옥한 옥토를 형성했다.
“다 왔다.”
디노는 내리려는 어머니를 잡았다.
“어머니는 여기 계세요. 혼자 갔다 올게요.”
“혹시 물에 들어가는 건 아니지?”
“그럼요. 그냥 강바람만 조금 맞으면 돼요.”
“그래, 방해하지 않을게 갔다 오너라.”
“네.”
디노는 강을 향해 걸었다.
머릿속에 진이 보낸 메일의 내용이 떠올랐다.
“새로운 세상은 우리의 손으로.”
디노는 2살이 될 무렵부터 카스트 제도를 몸으로 느꼈다.
제1계급인 성직자 브라만, 2계급 귀족과 군인 크샤트리아, 3계급 상인 바이샤, 4계급 노동자 수드라, 그 아래 천민 찬달라.
디노의 아버지 아바즈 파잘은 찬달라 출신이었다.
카스트 제도를 피해 어릴 때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성공한 후 다시 인도에 터를 잡았다.
하지만 아직도 인도인들의 의식에서 카스트 제도는 지워지지 않았다.
인도의 가장 북쪽인 우타라칸드주에 터를 잡은 이유도 카스트 제도 때문이었다.
인도의 주력 도시들에서는 찬달라는 천박한 의식을 가진 잡종으로 취급받았다.
노력을 통해 얻은 보상이 한낱 태생의 문제가 되었다.
법으로 금지되었는데도 아직도 그 잔재는 거세었다.
디노는 품속에서 볼펜을 꺼냈다.
진이 보낸 볼펜이었다.
“프라이온.”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사실 진은 프라이온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라는 지시 사항도 없었다.
하지만 디노는 알 것 같았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그 한마디로 설명이 되었다.
새로운 세상은 우리의 손으로.
디노는 볼펜을 들어 갠지스강에 떨어뜨렸다.
이것으로 인도는 정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