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7화 내 패는 내가 만드는 거야(14)
케냐 몸바사.
“이번 소말리아에 투마로우가 벌인 해적 소탕 작전은 평소 평화에 대한 저의 소신이며 의지의 소산입니다. 물론 무장 세력들에게 인권이 있느냐 없느냐 말들이 많을 수 있지만, 저는 그런 폭력조직의 인권보다는 힘없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소말리아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게 더 우선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팟팟팟팟팟.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족히 백여 명은 넘는 전 세계의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재준은 케냐에서 이번 일에 대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아프리카 진출의 목적을 감추는 것.
또 하나는 시앙핑을 긴장시키는 것.
“그리고 저는 원합니다. 아프리카는 부족의 나라이며 부족끼리 울타리를 치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나라의 경계가 무의미하다는 건 아닙니다. 나라를 이루되 되도록 부족 사회를 유지해야 합니다. 왜 아프리카에 수많은 갈등이 존재하게 됐을까요? 왜 평화롭게 살던 부족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일까요? 모두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프리카 부족 여러분, 부족의 울타리를 만들고 싶다면 저희 투마로우에 알려주십시오. 컨테이너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팟팟팟팟팟.
“이상입니다.”
여기, 여기, 여기.
재준의 말이 끝나자 기자 전부가 손을 들었다.
거기.
재준이 기자 목에 걸려있는 출입증을 보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앤서니 기자입니다. 이번 해적 소탕 작전으로 알 카에다의 위협이 있을 겁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투마로우에게 테러를 자행하고 싶다면 그 책임은 져야 할 겁니다. 저에게는 수백만 대의 드론이 있습니다. 한 지역의 모든 생물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겁니다.”
“무고한 생명이 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말하는 겁니다. 그 죽음의 책임도 질 수 있다면 테러를 하라고. 또 다른 질문 있습니까?”
여기, 여기, 여기.
거기.
“BBC의 톰슨 기자입니다. 메렛에 대한 세간의 근심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에 백여 명의 과학자들도 성명을 냈습니다. 여전히 메렛을 포기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멍.
다음 말이 또 없나 모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또 다른 질문 없습니까?”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없습니까?”
“이유 같은 거 없습니다. 싸워야 하는데 군대가 필요한 게 이유가 될 수 있겠죠.”
“왜 싸우시려는 겁니까?”
“그럼 죽는 걸 보고 가만히 보고 있어야 합니까? 저는 그동안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습니다. 더 이상 미국에선 돈을 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선을 남미와 아프리카로 돌렸는데……. 거기서 지옥을 봤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번 돈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이기심으로 만들어진 지옥을 평화로운 곳으로 만드는 데 쓰인다면 좋은 일 아닐까?”
후.
서글픈 표정 한 번 짓고.
“지구 곳곳에서는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저 그게 다입니다. 불쌍하다.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왜? 귀찮으니까. 그리고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저건 잘못하면 남의 국가의 일에 참견하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고.”
흠, 흠.
여기저기 현실을 외면하려는 헛기침이 들렸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참견 좀 하려고 합니다. 싸워야지요.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려면 대화 가지고 안 되니까요. 싸워야 합니다. 이런 현실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그렇다 쳐도 여기 기자분들은 알 거 아닙니까? 그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으며, 그렇게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어떤지.”
후.
재준의 이마에 맺힌 땀 한 방울이 눈썹을 타고 내려와 눈 속으로 들어왔다.
아, 따가워.
재준은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그리고 촉촉한 눈으로 기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난 기업인이라 군대를 모을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외인부대 몇 명 고용하는 게 전부죠. 그래서 로봇을 만든 겁니다. 저 로봇을 만드는 데도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지만 유지하는 데도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갑니다. 그래도.”
재준은 오른손을 꽉 쥐었다.
“할 겁니다.”
이상입니다.
재준은 더는 질문을 받지 않고 기자회견장을 빠져나왔다.
밖에 대기하던 리무진에 올라탔다.
후.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넥타이를 풀었다.
“덥죠.”
윌켄이 차가운 아이스 커피를 건넸다.
“이야, 장난 아니네. 아니 왜 기자회견장에 에어컨을 안 틀어. 질문 몇 개 더 받으려고 했는데.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눈 속에 땀이 들어갔는데 너무 따갑고.”
하하하.
읠켄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재밌네요.”
“뭐가요?”
“역시 보스는 사람들 속 뒤집어 놓는 데는 최고예요.”
“왜요?”
“그래도 이번엔 좋은 쪽으로 뒤집힐 것 같아요.”
“그래요?”
“네~에. 내일 신문 기사가 눈에 훤히 들어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 임재준. 눈물 어린 기자회견. 자신의 전 재산을 아프리카 평화를 위해 쓰다. 뭐 이 정도 나오지 않을까요?”
“그러면 안 되는데……. 피곤해지겠네.”
“자원 개발 회사 끌어들이는 건 다른 루트로 세워야 할 것 같은데요.”
“아, 귀찮아. 일이 이렇게 꼬이나. 하필 그때 땀이 눈에 들어갈 건 뭐람.”
“더 좋은 거 아닙니까? 어떻게 세탁을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요. 이 기회에 북한에 투자 회사를 하나 차려서 진행하죠. 투마로우와 연결 고리를 끊어버리게.”
북한?
아니지. 북한은 돈이 너무 없어서 힘들지.
분명 투마로우가 뒷배라고 생각할 텐데.
돈도 많고 투마로우와 연결이 없는 괜찮은 곳이 없을까?
아! 있다.
“그보다……. 중국으로 하죠.”
“중국이요?”
“네, 몇 시에 만나기로 했죠?”
“20분 남았네요. 지금 약속 장소로 출발하겠습니다.”
“갑시다.”
리무진은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
몸바사 호텔 스위트 룸.
“어서 오세요.”
시앙핑은 재준을 보자 얼굴이 환해졌다.
그 옆의 당쉐이는 근심이 온몸을 누르는 듯 침울해 보였지만.
비밀리에 만나려고 했는데 임재준이 기자회견을 하는 바람에 이목이 집중되게 생겼다.
신경을 두 배는 쓰게 되니 눈알이 빠질 듯이 아팠다.
재준이 다가와 시앙핑과 악수를 나눴다.
“이제 마무리하고 중국에 들를 건데 뭐가 급하다고 오신 겁니까?”
“자, 일단 앉습니다.”
주변은 너무 조용했다.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호텔 한 층을 전부 빌린 것 같았다.
이러면 기자들이 더 의심하지 않을까?
하여튼 누가 중국인 아니랄까 봐.
“동영상은 아주 감명 깊게 봤습니다.”
“U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셨어요?”
“굉장한 무기를 만든 것 같던데. 야구 복장을 한 게 전부 로봇 맞죠?”
“하하하, 어떻게 아셨네요. 급하게 만드느라 외형을 만들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야구복을 입혔어요. 그래도 일반 구경의 총알은 로봇을 뚫지 못하며 속도는 최대 250km까지 낼 수 있고 적의 급소를 정확히 찔러 넣어 한 번에 즉사시킬 수 있어요. 그리고 저격용 로봇도 있는데 사정거리가 최대 15km이며 바람, 습도, 온도를 정확히 계산하여 원샷원킬을 자랑하죠. 아, 당연히 손 떨림이나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요.”
일부러 설명조로 장황하게 설명했다.
왜? 무엇 때문에 이 먼 케냐까지 왔는지 뻔하니까.
가뜩이나 반도체 때문에 머리가 아플 텐데.
로봇을 봤으니 얼마나 욕심이 나겠어.
음.
벌컥, 벌컥.
시앙핑은 물을 단번에 들이켜고 혀로 입술에 남아 있는 물기를 핥았다.
“저, 그래서 말입니다.”
“로봇을 사고 싶다면 거절입니다. 파는 순간 전 세계 비난이 나를 향할 테니까요.”
먼저 선수를 쳤다.
“아니, 아니, 로봇을 살 리가 있습니까. 지금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데. 그보다.”
“인공지능도 안 됩니다. 거긴 투마로우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한 번 더 애타게 하고.
“아니, 그거 말고. 반, 반도체를 좀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반도체요?”
“그 PIM인가 하는 게 있던데.”
“아, PIM이요?”
“네.”
당연히 되지.
팔라고 만든 건데.
우리 메렛에 들어가는 건 안 되지만 PIM이야 얼마든지 줄 수 있지.
“그럼……”
재준의 입에 시선 두 개가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공장을 지어드릴까요?”
완스이 완스에(만세).
딩쉐이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들고 만세를 외쳤다.
시앙핑도 자칫 따라 할 뻔했지만, 주석이라는 걸 자각하며 인내했다.
“정말 공장을 중국 땅에 짓는단 말입니까?”
“네, 단, 조건이 있어요.”
“말씀해 보세요. 가능하면 승낙하겠습니다.”
“공장은.”
공장은.
“단둥시에 지을까 생각하는데.”
“단둥시면 북한과 근접한 지역을 말씀하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압록강과 황해를 두루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 물류에 최적이죠.”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랴오닝성을 자치구로 설정해 주세요.”
“자치구요?”
“네, 안 됩니까?”
“안 되는 건 아닌데. 자치구는 좀…….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당연히 중국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못하게 하려는 거지.
“자, 여기 보세요.”
재준은 핸드폰으로 중국 지도를 폈다.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이 자치구가 되면 중국은 북한과 직접적인 국경을 접하지 않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요?”
“이 자치구들은 일종의 방어막 역할을 하게 되는 거예요. 봐요.”
맞다. 세 개의 자치구 성은 중국과 북한의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근데 방어막이 왜 필요합니까?”
“에헤, 이거, 이거. 딩쉐이. 주석님 보필을 이렇게밖에 못합니까?”
“갑자기 왜 저한테 화살을 돌립니까?”
졸지에 당한 당쉐이가 눈을 껌뻑였다.
재준이 다시 시앙핑을 바라봤다.
“다시 잘 생각해 보세요. 북한이 예전의 북한입니까? 예전의 공산국가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 국가도 아니죠. 애매해졌어요. 그리고 예전부터 북한이 좋아하는 국가가 어디였습니까?”
“중국?”
“중국이요? 아니죠. 미국이잖아요. 도날드 방문했을 때 엄청 좋아하면서 술까지 먹었는데.”
“도날드가 김정은과 술을? 그 사람 술 담배를 안 한다고 들었는데.”
“그러니까 엄청 친해진 거죠. 그리고 김정은이, 그 누구냐. NBA 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맨과 절친이잖아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럼 시앙핑 주석님은 김정은과 친하세요?”
“아뇨.”
“그럼 중국 스타 중에 북한에 초대된 사람 봤어요?”
“아뇨.”
“그럼 북한이 개방하면 어디랑 가장 친하게 지낼 것 같아요.”
“미국?”
“바로 그거라니까요. 김정은이 어린 시절을 어디서 보낸 줄 아세요?”
“스위스.”
“잘 아시네. 그러니까 북한을 어떤 나라로 만들고 싶겠어요? 바로 서방 세계가 아닐까요?”
“음.”
“그런데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봐요. 미국이 맨날 귀찮게 중국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허구헌 날 딴지 걸지 않겠어요? 거기다 반도체 공장까지 있으면 더욱 심하겠죠.”
“음.”
시앙핑은 듣고 보니 묘하게 상상이 됐다.
지금도 미국 무역 분쟁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중국이 북한을 어떻게 할까 봐 지속해서 감시하고 지적할 게 뻔했다.
그래도 성을 자치구로 만들면 자신이 직접 통치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았다.
재준은 마지막 패를 꺼냈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100% 중국에서 쓰세요. 남으면 수출하고.”
“정말입니까?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그럼 미국에도 공장 지으면 되죠. 미국도 하나 지어주면 입 싹 닫을 거예요. 그리고 미국 걱정은 왜 하세요? 나만 잘살면 되는 거 아닌가?”
“음.”
“지금 미국 무역 분쟁 중에 반도체 공급 원활하게 받을 수 있어요? 그게 가장 걱정이잖아요. 수출이야 안 되면 다른 나라에 팔면 되지만, 수입은 이야기가 다르잖아요. 내가 필요해서 수입하는 건데 그거 막히면 골치 아플 거예요.”
시앙핑이 딩쉐이를 바라봤다.
딩쉐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당한 거예요. 주석님.
그냥 대충 랴오닝성 주고 끝내세요.
안 주면 줄 때까지 괴롭힐 거 같은데.
완전히 파는 것도 아니고 자치권만 주는 건데.
이제 임재준 말, 듣기만 해도 피곤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