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302화 (302/477)

제302화 내 패는 내가 만드는 거야(9)

한정식집.

“아유, 귀여운 녀석. 많이 먹어라.”

“네.”

쩝쩝쩝쩝쩝.

진은 갈비찜을 맹렬하게 뜯고 있었다.

보통 진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며 말을 할 때도 고저가 없었는데 달고 짭조름한 갈비찜 앞에서는 입술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폭풍흡입 중이었다.

임병달은 음식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가 어쩌면 허심탄회하게 말을 할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주변 친구들이 잘해주는 거냐? 혹시 학교 친구들이 왕따시키진 않아?”

“할아버지, 저 친구 없어요.”

“친구가 없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친구는…….”

진은 친구란 말을 내뱉고 잠시 먹는 걸 멈췄다.

친구?

음, 투마로우 시티로 돌아가면 할 일이 생겼네.

싹 다 없애야겠다.

애써 피식 웃고는 무언가를 털어내듯 고개를 흔들고 다시 갈비찜을 먹기 시작했다.

“친구를 안 사귄 거니?”

“할아버지.”

“응?”

진이 임병달을 빤히 쳐다봤다.

임병달의 호흡이 약간 거칠어졌다.

왕따가 분명해.

임병달은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 마흔여덟 달 스물한 시간 됐어요. 제 나이 또래들은 말도 잘 못 해요. 물론 이런 갈비찜도 엄마 도움이 없으면 먹기 힘들고요.”

“응?”

피식.

“그렇구나. 그래. 그렇지. 내가 괜한 질문을 했네. 허허.”

허허 웃는 임병달을 향해 진도 미소를 지었다.

“그런 의도는 아닌데. 죄송해요.”

“아니다. 이 할아비가 널 너무 몰라서 그런 거지. 네가 미안할 건 없어.”

진이 먹던 음식을 내려놓았다.

“저에 대해서 궁금하시죠.”

“허허허, 당연하지 이 녀석아.”

“그럼,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다섯 살 때가 기억나세요?”

“다섯 살? 글쎄, 내가 뭐 했더라.”

“보통 인간들은 다섯 살 이전을 잘 기억하지 못해요. 그때가 뇌의 뉴런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시기거든요.”

“뉴런? 그렇구나. 할아비가 하나 배웠네.”

“하지만 전 엄마의 질에서 빠져나오는 순간도 기억하고 있어요. 제 시력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했지만 흐릿하게 기억해요.”

“태어나는 순간을 기억한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인간은 임신 5주부터 분당 25만 개씩 뉴런이 생성돼서 태어날 때쯤 1,000억 개의 뉴런을 가져요. 그러나 과다 생성된 뉴런들은 임신 8개월경 뇌가 거의 완성될 때부터 세포사멸로 자연스럽게 제거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에요.”

“그러냐?”

무슨 이야긴지 하나도 모르겠네.

“하지만 전 뉴런이 지금도 생성되고 있어요. 그래서 전 모든 걸 다 기억해요.”

“그래?”

뉴런이 지금도 생성된다고?

그럼 머리가 얼마나 좋다는 거야?

“부작용이죠. 아마 곧 죽을 거예요.”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죽다니. 어떻게 얻은 증손자인데. 죽다니?”

“하지만 너무 걱정 마세요. 뉴런을 죽일 방법을 연구 중인데, 아마 찾아내겠죠.”

“진아!”

임병달은 너무 놀라운 이야기를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는 증손자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쩝쩝쩝쩝쩝쩝쩝.

하지만 진은 걱정을 저만치 던져 버렸는지 여전히 갈비찜을 뜯었다.

이놈이 왜 이렇게 불쌍할까?

“할아버지가 도와줄까? 1,000억 달러라고 했지? 현재증권을 팔아 버리면 될 것 같은데.”

“아니요. 저도 회사를 가지고 있어요. 진코퍼레이션이라고.”

“진코퍼레이션?”

“네, 특허를 사고파는 회사예요. 물론 제 특허도 있고요.”

“48개월 된 아이가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고?”

“당연히 키워준 아빠가 경영하죠.”

“장사는 잘되고?”

“저희 최대 고객이 아빠거든요.”

“어느 아빠? 재준이?”

“네.”

거참, 이건 그냥 똑똑한 게 아니네.

하긴 김웅용 교수가 4살에 4개 국어를 하고 미적분도 풀긴 했지.

그래도 우리 진이가 더 똑똑한 거 같은데.

음, 유전자 수선이라…….

“너와 같은 아이가 많니?”

“전 세계에 1,000명 정도 있어요.”

“그 아이들이 크면 세상을 바꾸겠구나.”

쩝…….

진이 갈비찜 먹는 걸 중단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싱글 웃었다.

“아니요. 세상은 변하지 않아요.”

“왜? 너처럼 똑똑한 아이들을 신인류라고 하는 걸 신문에서 본 적이 있는데.”

“할아버지.”

“응?”

“세상은 똑똑한 인간이 아니라 미친놈이 변화시키는 거예요. 아빠같이 정신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이요.”

“헉!”

임병달은 너무 놀라 마시던 물잔을 놓칠 뻔했다.

진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너무 많이 알고 있구나.

“진아, 세상은….”

“할아버지, 손님들이 오나 봐요.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전 여기서 있을게요.”

“누가 와?”

“희미하지만 여러 대의 부드러운 진동이 느껴져요. 이런 외진 곳에 여러 대의 리무진이 등장하는 건, 아마 아빠 손님이 오는 게 아닐까요? 도날드 대통령과 시앙핑 주석이요.”

“진동을 느껴?”

“저는 감각도 민감해요. 이 갈비찜에 소량의 니코틴을 집어넣은 것도 느껴지고요.”

“뭐?”

“아마 맛을 위해 아주 소량의 담뱃가루를 넣었을 거예요.”

“안 돼. 진아 먹지 마라. 알면서 그걸 왜 먹는 거냐?”

“할아버지, 담뱃가루는 몸에 해롭지 않아요. 식물이잖아요. 집에 가면 이 레시피대로 해먹을 거예요.”

짭짭짭짭짭짭짭.

허, 정말 알 수 없는 아이다.

“나도 저쪽으로 갈 생각은 없어. 피곤한 사람들뿐이거든. 우린 그냥 여기서 이야기나 더 하자구나.”

“네.”

잠시 후.

문밖에서 여러 대의 차가 마당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허, 오감도 발달한 거야?

***

바로 옆 객실.

재준은 윌켄과 통화 중이었다.

“다음은 남쪽 해안가 난민촌 콜비요우 땅을 사들이세요.”

-네. 근데 좀 시끄러울 것 같아요.

“괜찮아요. 지금부터 한국으로 세계 모든 시선이 쏠릴 겁니다. 한바탕 시끄럽게 놀아 볼 거예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툭.

재준은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보스.

“베네수엘라 생산 공장 풀가동하고 공장 계속 늘려.”

-네. 그런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데요.

“유가가 70달러를 회복할 거야. 셰일 기업에서 엄청난 이윤이 날 거고. 아, 베네수엘라 석유도 중국에 팔 준비해.”

-유가가 회복한다고요?

“내 예상은 그래. 슬슬 준비해.”

-알겠습니다.

툭.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보스.

“블룸버그에 유가 상승한다는 기사 좀 뿌려.”

-유가요? 올라갈 때가 된 것도 같네요.

“블록한테도 알리고.”

-근데 한국에서 뭐 하십니까? 그쪽으로 도날드랑 시앙핑이 동시에 입국했다고 난리인데.

“그 정도는 약과지. 이제 전쟁에 버금가는 난리가 일어날 거야.”

-주인공은 당연히 보스고요?

“당연하지. 난 아무리 봐도 이런 일 체질인 거 같아.”

-어련하시겠습니까?

“암튼 언론 잘 주무르고 있어. 내가 신호를 보내면 준비해 둔 기사들 뿌려.”

-옛 썰.

툭.

모든 지시를 내리고 통화를 마무리하자 밖이 소란스러웠다.

도날드와 시앙핑, 그리고 대통령이 도착했다.

오늘의 만남은 비공식이었다.

내일부터 도날드는 대통령과 함께 공식 일정을 소화할 것이다.

시앙핑은 다시 중국으로 가려나?

아니지, 돌아가게 만들어야지.

잠시 후.

드르륵.

문이 열리고 도날드가 먼저 들어와 재준과 포옹을 했다.

팡, 팡.

“임재준, 정말 오랜만입니다.”

“하하, 우리 얼굴 본 지 얼마 안 됐어요.”

재준의 말에 도날드는 시앙핑을 돌아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들었지? 우리가 이런 사이란 말이지. 아주 자주 만나는 사이란 말이야. 아주 자~주.”

흥.

도날드의 말에 시앙핑은 코웃음을 쳤다.

자주 만나서 좋겠네.

하지만 나는 돈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이 멍청한 놈아.

돈 앞에선 친구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라고.

저리 비켜.

시앙핑은 도날드를 밀치고 재준에게 악수를 청했다.

“오랜만입니다.”

“하하,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먼 길은 무슨. 마음은 항상 곁에 있습니다. 하하.”

“자, 모두 앉으시죠.”

원탁으로 된 식탁에 모두 앉았다.

대통령은 도날드와 시앙핑, 재준을 보며 숨을 고르게 쉬려고 노력했다.

다들 보통이 아니야.

지금부터 최대한 말을 아끼자.

자칫 괜히 아는 척하다가 찍히면 나만 손해다.

도날드 옆에 앉은 나바로는 줄곧 시앙핑을 향해 분노의 눈빛을 보냈다.

시앙핑 옆에 앉은 딩쉐이 또한 나바로를 예의 주시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먼저 재준이 나섰다.

“자, 자, 오늘은 가볍게 한잔하면서 그동안 지낸 이야기나 해 보죠. 첫날부터 힘 뺄 필요는 없잖아요?”

“그럼, 그럼, 누구처럼 급하게 온 건 아니니까.”

“도날드 대통령은 술과 담배를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역시 언론 플레이였군요.”

역시 한마디 한마디에 가시가 돋았다.

쫄쫄쫄쫄.

재준이 방안의 일행들에게 술을 한 잔 따랐다.

건배.

재준이 잔을 살짝 들어 올리자 모두 비슷한 몸짓을 취했다.

그리고 단숨에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켁, 콜록콜록.

나바로였다.

술을 못하는데 지기 싫어서 원샷을 때렸다.

시뻘게진 얼굴로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독한 술이네요.”

그거 소주거든.

40도 술을 먹는 나라에서 17도짜리 술이 뭐가 독하다고.

그리고 마침 다행스럽게 따뜻한 국물 요리가 나왔다.

나바로는 자신 앞에 덜어진 국물로 속을 달랬다.

하지만 도무지 정신이 흐려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입을 열 수가 없어.

모두 침묵 속에 술과 음식으로 분위기를 때우자 재준이 나섰다.

“자, 자, 근데 언제까지 싸울 겁니까? 시간을 정해 놓고 싸우는 것도 나쁠 것 같진 않은데요. 전 세계 경기가 아주 나빠질 것 같아서 그리는 말이에요.”

“누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때까지?”

“남의 살림에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인간이 자리에서 내려오면 저절로 그만두겠지요.”

“남의 것을 훔쳐 가 놓고 자기 살림이라네. 거 참.”

“정당하게 개발했는데 자기 거라고 우기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아니, 반도체의 반자도 모르면서 언제 개발을 했다고 우기는지, 원.”

“아이고, 언제부터 남의 집 살림은 그렇게 염탐하고 다니셨나.”

“염탐은 중국이 잘하는 거지. 어디 쥐새끼처럼 이곳저곳에다 스파이에, 백도어에. 하여간 잘하는 게 저렇게 후져서야.”

“미국이야말로 약소국 노략질에 간섭 질에 후진 거로 따지면 일등이지.”

자, 자.

이런 싸움 말고 건설적으로 싸웁시다.

재준이 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한국은 왜 오신 거예요? 혹시…….”

재준이 둘을 향해 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한국을 끌어들이려는 건 아니죠?”

도날드와 시앙핑이 예리한 눈매를 하더니,

“한국은 미국의 영원한 우방 아닙니까?”

“먼 나라가 무슨 소용입니까?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는데 중국과 함께 갑시다.”

역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재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럼, 이 위에 좀 더 좋은 걸 얻으시는 분에게 우선 면담권을 드리겠습니다.”

네?

“그렇다면.”

“우리는.”

도날드와 시앙핑이 동시에 말을 꺼내고 서로를 노려봤다.

자, 자.

눈치 보기는.

“생각할 시간을 가지셔야죠.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시간은 3일 뒤 메일로 전달해 주세요.”

“메일로? 음, 그게 좋겠군요.”

“찬성입니다.”

여기서 서로 ‘받고 하나 더’를 외쳤다가는 끝도 없는 싸움이 될 것이다.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해야겠지.

한국 말고 투마로우에

이때,

야.

어디서 대뜸 고함이 들려왔다.

“이 기생충 같은 놈들이 어디서?”

나바로였다.

취했다.

겨우 한잔이었는데.

그리고 ‘푹’ 머리를 탁자에 처박았다.

아, 나바로를 잊을 뻔했네.

내일부터 힘 좀 쓰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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