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9화 내 패는 내가 만드는 거야(6)
투마로우 시티가 들어서고 한국의 기업들이 자리를 잡을 무렵 재준은 한국의 두 회사 SS전자와 SC하이닉스 대표를 만났다.
그때 두 대표와 나누던 대화가 떠올랐다.
“AI는 80년대에도 유망하다고 했습니다. 90년대에도 유망하다고 했고요. 2000년에 들어서도 유망하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유망합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을 연구하겠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이미 AI는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만 이를 구현할 하드웨어가 없을 뿐입니다.”
“이미 만들어졌다니요?”
“네, 이미 실리콘 밸리에서 AI에 대해 쏟아져 나온 수많은 아이디어와 특허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컴퓨팅 성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서 그저 연구에 그치는 겁니다.”
“그래서요?”
“AI는 초고성능 하드웨어가 필요합니다. 저희는 이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미국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드웨어는 우리가 독보적으로 앞서고 있습니다. 한국이 AI를 선도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란 말은 빼고요.”
“아, 죄송합니다. 투마로우.”
“투마로우도 빼고. SS전자가 선두하면 되지. 뭘 자꾸 끼워 넣어요?”
“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메모리는 선두 아닙니까?”
“그래서 이번에 PIM을 만들려고 합니다. 메모리 안에 CPU를 집적하는 방식의 반도체죠.”
“오, 신박한 아이디언데요?”
“성공만 하면 소프트웨어 기업이 저희 눈치를 봐야 할 겁니다.”
지금까지 미국 기업한테 눈치를 많이 봤구나.
“이렇게 하죠. 투마로우가 50%, SS전자가 25%, SC하이닉스가 25% 투자해서 투마로우 시티에 회사를 하나 새로 만듭시다.”
“왜 새로운 회사를 만들려고 합니까?”
“상장 기업들은 실적에 주가가 출렁입니다. 그럼 연구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SS전자와 SC하이닉스가 투마로우 시티에 들어오면 연구되는 논문을 전부 오픈할 수 있어요?”
“전부? 그건 좀.”
“거봐요. 그러니까 PIM에 관한 논문만 공유하자고요. 즉 회사를 따로 세우는 게 일하기에 편하죠.”
“그렇군요.”
“자, 회사 이름은 SSSC입니다. 두 회사 이니셜을 다 합친 겁니다. 이게 나름 선진국 방식이라고 하던데. 하하하.”
“저희는 괜찮습니다.”
이게 3년 전 이야기다.
그런데 왜 네가 결과물을 벌써 들고 왔냐?
내 기억으론 2022년에도 연구 중일 텐데.
재준은 무표정으로 진을 바라봤다.
“네가 도움을 준 거니?”
“그냥 마지막에 조금. 이미 거의 개발이 끝났는데 쿨링 부분에 제 특허를 사용한 거예요.”
“아, 발열?”
“네. 기존은 절연 플라스틱을 사용했는데 플라스틱으로는 발열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 작은 공간에 CPU와 메모리가 같이 움직이면 발열이 엄청나거든요. 그래서 제가 절연 금속을 사용하라고 이메일을 보냈어요.”
“그래서 네 특허를 사용한 거야?”
“그 외에도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제안했고요.”
“PIM으로 컴퓨터 성능을 어느 정도 끌어 올릴 수 있는데?”
“일반 컴퓨터에 탑재하면 속도는 16배 올라가고 에너지 소모는 80% 감소해요.”
“굉장히 빨라지네.”
“하지만 저희 로봇은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있어서 그 정도 연산으론 어림도 없어요. 최소한 1,600배는 빨라야 해요.”
“아니 그렇게 무식하게 빨라야 한다고?”
“경험이 없잖아요.”
“경험……. 그렇지, 인공지능은 경험을 쌓을 수 없지.”
“정확히는 경험을 쌓을 수 없게 만든 거죠.”
대충 알아들으면 되지.
없는 거나, 없게 만든 거나 그게 그거지.
인간이 대단한 건 정보 처리 능력이 아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무의식적인 반응이다.
걷기를 생각해 보면 인간은 그냥 걷는다.
무슨 계산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험을 쌓을 수 없는 로봇은 실시간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를 무지막지한 속도로 처리해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단순한 발 하나 떼는 것도 토양의 성질, 굴곡, 무게, 바람의 세기, 거기에 풀이라도 있으면 풀의 종류, 질감 등. 그뿐인가? 로봇 발의 속도, 세기, 무게…… 그만하자. 그리고 발을 내딛고 다시 반복.
영상에서 봤겠지만, 로봇이 천천히 바보같이 움직이는 건 관절이나 근육을 모방한 하드웨어 문제가 아니라 경험이 없어 너무 많은 계산이 필요한데 느려 터진 컴퓨터 때문이다.
“어쨌든 메렛 안에 PIM으로 도배를 했다는 거네.”
“네. 하지만 살인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야, 너 아직 4살이야?
어린아이 입에서 살인이 뭐니? 살인이.
“다른 일도 할 수 있게 하려면 기술이 더 발전해야 하는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한 가지에 특화된 게 효율적이니까요.”
“그럼 뭐든지 잘하는 로봇은 안 만들 거야?”
“아직은 일러요. 5G 인터넷이 정상 궤도에 이르고, 사물인터넷이 가능하고, 인공위성으로 실시간 데이터를 주고받아도 무리 없는 칩이 만들어지면 가능할 거예요.”
“그건 지금도 되지 않나? 이 핸드폰도 다 실시간 데이터 전송으로 구동되는 건데.”
“충전은요.”
“응?”
“모든 사물에 칩을 삽입해야 하는데 그걸 다 일일이 충전을 할 수 있어요?”
아, 이해된다. 이해돼.
충전이 필요 없는 칩이 필요하구나.
“갈 길이 멀다. 멀어도 너무 멀어.”
이때.
띠리리리링.
어? 정 행장님이잖아.
“오랜만입니다. 행장님.”
-도련님. 북한에 계시단 소릴 들었는데.
“네, 지금 투마로우 시티에 있습니다.”
-그럼, 회장님 좀 뵙고 가세요. 좀 곤란하신 듯합니다.
“왜요?”
-도날드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는데 회장님도 만나려고 합니다. 거절을 할 수 없어서 승낙은 했지만 곤란하신 것 같습니다.
엥?
“도날드가요?”
-네.
“알겠습니다. 내려가죠.”
툭.
통화를 끊은 재준은 진을 바라봤다.
“너도 갈래?”
“할아버지 보러 가는 건가요?”
“그렇지.”
“한번 보고 싶네요. 아빠 싸우는 것도요.”
“야, 내가 언제 싸웠다고 그래?”
“그럼, 협박하는 거로 하죠.”
“협박 아니거든. 대화라고 대화.”
“대화의 사전적 정의를 말씀드려요?”
“아니, 하지 마.”
“그래도 할아버지한테는 저를 아빠 아들이라고 하지 마세요. 심장에 무리가 갈지 몰라요.”
“야, 그건 네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알았어요. 맘대로 하세요.”
와, 도대체 뭔 애가 이렇게 차가워.
***
중난하이.
“케냐에서 소말리아 난민을 돕고 있다고? 진짜로? 그게 다야?”
시앙핑은 딩쉐이의 보고를 듣고도 믿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네, 확실합니다. 단 하나 걸리는 건 그 지역의 땅을 샀다는 겁니다.”
“땅? 난민 수용소 땅을 사서 뭐하게? 거길 개발해도 쓸모가 없을 텐데.”
“글쎄요. 저도 거기까지는 좀 더 조사를 해 봐야 알겠습니다.”
“그러면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네.”
임재준.
진짜 평화를 부르짖는 거야?
뭐, 잘 됐지. 우리가 항만 건설하면 도움은 되겠네.
설마, 우리가 항만 건설하니까 꼽사리 끼려는 거 아냐?
시앙핑의 얼굴이 급격하게 구겨졌다.
딩쉐이는 흠흠, 헛기침을 하고 다음 보고를 할 준비를 했다.
마치 이제부터 본론이니까 잘 들으라는 듯이.
“미국이 반도체 수출에 제동을 걸려고 합니다.”
“반도체? 석유에 이어 반도체까지?”
아주 싹을 자르겠단 거네.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을 텐데.
미중 무역 분쟁으로 중국은 미국 석유를 수입 금지했다.
수입 석유 의존도가 75%에 달하지만, 아직 여유는 있었다.
러시아에서 수입해도 되고 중국 서북부와 중앙, 북동부에서 매장량이 상당한 셰일층이 발견되었다.
이미 북동부는 투마로우가 개발해 준다고 약속도 했고.
하지만 반도체는 좀 애매했다.
중국 생산 제품에 사용하는 반도체의 75%는 28나노 반도체라 미국의 무역 분쟁에도 전혀 타격은 없었다.
다만 10나노 이하 제품들, 특히 5나노 반도체가 필요한 제품들이 문제였다.
“화웨이가 문제가 되겠네.”
“네, 화웨이와 ZTE가 문제입니다.”
“근데 이런 문제까지 정부가 나서야 하나? 자기들이 알아서 해도 되는 거 아닌가?”
“그렇지만…….”
받아먹은 돈이 하도 많아서 다들 난리인데요.
“화웨이는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 이미지가 강합니다.”
“됐어. 중국을 대표하는 건 공산당이지 기업이 아니야.”
“아, 네. 알겠습니다.”
“그것 말고, 정말 신경 써야 하는 건 임재준인데. 이번엔 확실히 북한에 있지?”
“네, 확실합니다.”
“그래……. 그런데…….”
한번 만나야 하는데.
내가 북한에 갈 수도 없잖아.
가겠다고 했는데 거절하면 꼴이 뭐가 되겠어.
그렇다고 중국에 들어오라 할 수도 없고.
미국하고 갈 데까지 갈 정도로 싸우고 있는데.
“임재준을 만나야 하겠는데.”
“지금이요? 상황이 꽤 애매합니다.”
“그렇긴 한데.”
“네, 안 좋습니다.”
“한국에서 만나자고 하면 어떨까?”
“네?”
절대 안 됩니다.
“어때? 한번 추진해봐.”
“주석님? 한국과 관계도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가는 거잖아. 임재준도 만나고, 반도체 공급도 만들고, 한국과 관계도 개선하고, 미국에 압력도 행사하잖아.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이 어딨어?”
“이 말씀은 안 드리려고 했는데, 곧 도날드가 한국을 방문합니다. 주석님이 싫어하는 나바로와 함께입니다.”
“그래? 잘됐네. 어디 그 잘난 낯짝이나 봐야겠어. 어떤 표정을 짓는지.”
“굳이 그걸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럼, 나보고 물러나란 말이야? 절대 안 돼. 우리도 한국 방문한다고 알리고 날짜도 못 박아. 나도 물러나지 않아.”
으휴.
이놈의 자존심 싸움은.
딩쉐이는 갑자기 예전 임재준 일이 떠오르며 해괴한 망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그게, 저, 연변 지역에서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해괴한 일이라니?”
“북한 국경에서 사람이 여럿 죽었다고 합니다.”
“연변에서 사람 죽는 게 해괴한 일이야? 그놈들 북한에 뭐 먹을 거 없나 기웃거리다 북한군한테 총 맞아 죽은 거 아냐?”
“총이 아니라 칼입니다. 그리고 김라한이 목이 잘려 죽었답니다.”
김라한? 그놈 쌈 좀 하는 놈인데.
그놈 때문에 연변에 잘 가지 않기도 하고.
근데.
“목이 잘려?”
“네, 아주 깔끔하게 베였다고 합니다.”
“깔끔? 지금 무협 영화 찍는 거야?”
“사람 목을 깔끔하게 베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뭐? 그럼 살인이 아닌가?”
“그건 아닙니다만.”
쯧.
시앙핑은 혀를 찼다.
이놈의 연변 조직들.
아주 이제 대놓고 지랄들이네.
거기 이제 중요한 일이 벌어지는 곳인데.
“딩쉐이, 거기 임재준이 셰일층 개발해 준다고 한 곳이야.”
“알고 있습니다.”
“근데 가만히 있는 거야?”
“그럼 어쩝니까? 헤이룽장성과 지린성은 투마로우가 임대한 곳이라 자치지구로 선언되어 있습니다.”
어, 그럼 군대를 파견하면 시끄럽겠네.
“그럼, 모른 척해. 언론 차단하고. 또 무슨 이상한 괴담 만들어 낼까 두려워.”
“알겠습니다.”
거참. 칼로 목을 자르다니.
데려다가 경호원으로 채용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