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8화 내 패는 내가 만드는 거야(5)
투마로우 시티.
스탠바이.
하나.
둘.
셋.
짝.
“전 세계 평화를 사랑하는 여러분 반갑습니다. 투마로우 시티에서 로봇을 연구하는 애니소튼의 테오 루카스입니다. 지금 저는 팜페어사의 팜봇과 저희 회사의 플라이드론과 메렛을 선보이고자 합니다. 이름이 낯설겠지만 하나하나 설명드리겠습니다.”
투마로우 시티 광장에서 동영상이 촬영되고 전 세계로 영상이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중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영상 시청에 열을 올렸다.
특히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빈국에게는 희망과도 같은 영상이었다.
“여기를 보십시오. 평범한 컨테이너처럼 보이지만 이 안에는 평화를 사랑하는 투마로우 시티의 기술이 집적되어 있습니다.”
지이이이잉.
컨테이너 옆문이 위로 올라가며 팜봇의 모습이 드러났다.
“우리는 이 로봇을 팜봇이라 부릅니다. 간단한 진료와 약을 조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보시죠.”
팜봇 앞에 사람이 앉자 순식간에 스캔되고 화면에 환자의 외부와 내부 상태, 유전자로 인한 가능성, 지역 특성까지 나열된 후 최종 진료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처방까지 완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분 남짓.
“역시 다시 봐도 대단합니다. 팜봇은 아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베네수엘라에서 그 모습을 처음 선보였는데 오진 없는 진료가 가능했습니다. 이제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약사와 의사를 대신할 로봇으로요.”
루카스는 손으로 귀를 감싸는 행동을 했다.
의사와 약사는 욕을 넘어 분노를 느낄 것이다.
“벌써 우리를 저격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의사, 약사 여러분 당분간 안심하십시오. 저희는 먼저 의료의 손길이 간절한 곳으로 팜봇을 보낼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지역으로는 바로 소말리아 난민이 거주하는 케냐를 선택했습니다.”
케냐의 소말리아 난민 지역에서 활약하는 팜봇의 사진이 몇 장 영상을 탔다.
왜 동영상이 없을까?
많이 알려서 좋을 건 없다.
모든 의심은 다음 말로 묻어 버렸다.
“그리고 저희가 가는 지역이 워낙 위험한 곳이라 팜봇을 위협하는 동물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플라이드론을 만들었습니다.”
컨테이너 윗부분이 열리며 대형 드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대형 드론의 아랫부분이 열리며 파리만 한 드론 수십 기가 쏟아져 나왔다.
루카스가 손을 뻗자 플라이드론 한 기가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이 작은 드론은 팜봇을 위협하는 동물에게 일산화탄소를 주입하여 잠시 호흡 곤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아, 목숨을 앗아갈 정도는 아니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거짓말이다.
한 번 물리면 즉사다.
그리고 동물이라고 말했지만, 인간도 동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일이 CNN에서 방영되었으니까.
“예전에 플라이드론을 보신 적이 있으시겠지만, 이번 플라이드론은 인공지능과 연계되어 실시간으로 위험한 동물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또한, 10분 비행 후에 컨테이너로 돌아와 자동 충전이 되며 다시 출격할 수 있게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자, 다음은 팜봇을 도와주는 로봇을 소개합니다.”
루카스의 말이 끝나자 컨테이너 옆에서 머리가 박스 형태인 로봇이 등장하였다.
정말 못생기고 어눌해 보였다.
다리는 캐터필러로 대체가 되어있고 상반신에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두 팔과 두 손이 있었다.
“이 로봇은 이름은 메렛이라고 지었습니다. 위험과 자비의 여신 메렛세게르에서 따왔습니다. 자리가 고정된 팜봇을 도와줄 로봇입니다. 이동이 자유로우며 일부 정밀한 동작도 가능합니다.”
메렛세게르,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침묵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으로 위험과 자비의 여신이다.
또한 왕의 무덤의 수호신이자 무덤 건설 장인의 신이기도 하다.
메렛에 대한 루카스의 설명은 의외로 짧았다.
길게 설명해서 세간의 시선을 끌 필요는 없으므로.
“오늘의 영상은 이상입니다. 투마로우 시티는 평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다음에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
영상의 파장은 대단했다.
루카스가 설명하지 않은 부분들이 투자은행을 통해서 퍼지기 시작했다.
-애니소톤 주식의 50%를 투마로우가 소유하고 있다는데.
-시장에 애니소톤 주식이 없어. 사고 싶어도 주식이 없다고. 가격만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투마로우, 수천억 달러는 벌었을 것 같은데.
-넌 꼭 뭐든 돈으로 따지려고 들어. 참,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은데. 전에 소말리아 언론에서 국경지대에서 저것과 비슷한 컨테이너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지 않냐?
-그래, 그런 기사가 있었던 것 같아. 워낙 강렬해서 기억이 난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뒤져 소말리아 언론이 실었던 사진을 찾아냈다.
그리고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내 말이 맞지?
-맞네. 투마로우 컨테이너는 약간 특이한데. 똑같네, 똑같아. 그럼 저 많은 시체들은 뭐지?
-플라이드론이 죽인 시체겠지.
-뭐라는 거야, 저 시체들 자상이 대부분이야. 플라이드론은 칼을 쓸 수 없다고.
-그럼, 메렛이 칼을 쓰는 게 아닐까?
-넌 상상을 해도. 박스 머리가 어떻게 칼을 쓰냐?
-그런가.
-그리고 북한 북쪽 국경에 컨테이너가 있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건 엄폐물이잖아. 뒤에 북한군이 대기하고 있고.
-아니 굳이 컨테이너를 엄폐물로 쓸 이유가 있나?
-남아도나 보지.
-새것처럼 보이던데.
-그게 어떻게 새것처럼 보이냐? 북한이 무역을 중단했으니까, 그 많은 컨테이너를 처리하기 곤란해서 가져다 놓았겠지.
-그런가…….
***
중국 연변.
“그러니까, 저 컨테이너 뒤에 북한 놈들이 없다는 거잖아.”
중국 연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조직의 수장인 김라한이 잘 다듬어진 마체테를 만지작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네, 확실합니다. 저건 그냥 전시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 그럼,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단 소리네.”
“근데 정말 들어가실 겁니까? 북한이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도 무언가 대비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저 안에서 무엇이라도 가지고 나오면 돈방석에 앉는 거야. 분명히 약속을 받았단 말이지.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아.”
“그래도…….”
쾅.
마체테의 옆면이 부하의 머리를 가격했다.
“이 새끼가, 언제부터 우리가 이것저것 따지면서 장사했냐? 일단 한몫 챙기면 광저우로 가서 떵떵거리며 살면 되는 거야!”
맞은 자리가 아픈지 머리를 벅벅 긁는 부하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어요. 바로 돌격하겠습니다.”
“빨리 끝내고 여자 끼고 술이나 한잔하자.”
“네.”
김라한은 입맛을 다시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김라한 일행은 컨테이너를 향해 조용히 다가섰다.
꼭 컨테이너 안에 무언가 불쑥 튀어나올 것 같았다.
믿기 어려운 소문이 돌았다.
컨테이너 안에 살인 병기가 숨어 있다고.
순식간에 수십 명이 죽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북한의 실상을 알고 싶어 하는 언론사가 내건 돈은 그런 위험 따위를 단숨에 날려 보냈다.
이번 한 번만 성공하면 연변을 떠날 수 있다.
나만 살면 돼. 다 죽어도 나만.
컨테이너 50m 앞까지 전진했다.
주변은 사람 키만 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몸을 숨기기에 적합했다.
그때, 컨테이너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손가락만 한 틈이 벌어지며 붉은 광선이 일대를 한 번 훑고 지나갔다.
뭐야? 비어있는 거 아니었어?
“야, 다들 긴장해.”
김라한이 뒤를 돌아 부하들에게 신경질을 부리는 순간.
징.
컨테이너 뒷문이 열렸다.
“저거, 저거 혼자 열린 거지? 누가 안에서 연 거 아니지?”
“그런 것 같은데요. 아니, 누가 멀리서 원격 조정하는 거 아닙니까?”
빡.
김라한은 헛소리를 지껄인 부하의 뒤통수를 갈겼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부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뒤로 물러났다.
“아니면 말지. 왜 때립니까?”
“이 새끼가 죽고 싶어?”
“아닙니다.”
뒷문이 열린 컨테이너에서 박스 머리를 한 로봇이 앞으로 움직였다.
머리를 진짜 종이 박스로 가렸고 덜컹거리는 움직임은 어눌했다.
덜덜덜덜덜.
요란한 캐터필러 소리.
그리고.
지잉.
김라한을 향해 시선이 고정되었다.
날 보는 거야?
김라한이 옆의 부하에게 고갯짓했다.
쏴 버려.
부하가 소총을 들어 조준했다.
하나, 둘, 셋.
탕.
머리에 총을 맞고 고개를 뒤로 젖혀진 로봇의 머리에서 박스가 벗겨졌다.
뼈대만 남은 금속 해골에 얼기설기 여러 색의 관이 얽혀있었다.
끼리릭.
고개를 좌우로 돌린 로봇이 김라한을 똑바로 쳐다봤다.
꼭 인간 같은데.
다음 순간,
끼끼끽.
로봇의 키가 늘어난다.
캐터필러로 가리고 있던 긴 다리가 드러났다.
인간의 다리는 아니었다.
마치 캥거루 다리 같은 모양.
그리고.
챙.
양손에 길고 휘어진 신월도가 들렸다.
팟팟팟팟.
달리기 시작했다.
헉.
김라한이 놀란 눈으로 소리 질렀다.
“뭐해? 이 새끼들아, 갈겨!”
탕탕탕탕탕.
사방에서 총알이 쏘아지자 로봇은 자세를 낮추고 좌우로 흔들며 달려왔다.
너무나 기민한 움직임이 로봇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김라한이 급하게 권총을 꺼내 겨누었는데.
사라졌다.
다음.
악!
좌측에서 비명이 들렸다.
총을 겨누었지만 허둥대는 자신의 부하만 보일 뿐이었는데.
윽, 악!
단발의 비명만 들리고 잡초만 흔들렸다.
씨발, 이게 뭐야.
로봇이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고?
다시.
헉.
칼이 꽂힌 채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는 부하들.
김라한은 오랜 암살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로봇이 사람의 급소, 정확히 소리를 내지 못하는 부분에 칼을 찔러 넣었다고 봐야 했다.
목이나 폐.
고수다.
달아나야 한다.
아니, 씨발, 로봇이 어떻게 고수가 될 수 있다는 거야?
김라한은 뒤를 돌았다.
왔던 길을 향해 달렸다.
그 순간.
슥.
익숙하지 않은 소리가 들리고 시선이 가로누워 떨어졌다.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아니, 경험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자신의 몸을 볼 수 있는 기이한 경험.
툭.
김라한의 잘린 목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아직도 목이 잘린 자신의 몸은 지면을 버티고 서있었다.
시야가 흐려지고 곧 암전되었다.
***
투마로우 시티 내 진코퍼레이션.
재준은 자신의 검지 끝에 작은 반도체 칩을 올려놓고 신기한 듯 보고 있었다.
“이게 PIM(Processing-in-Memory)이란 말이지?”
“네, 이제 양산 체제로 들어갈 거예요.”
진이 재준을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그러니까, 이 메모리칩 안에 CPU가 들어있다고?”
“맞아요.”
PIM. CPU를 내장한 메모리 반도체 칩이다.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보면 CPU가 한 개 있고, 물론 여러 개 있는 것도 있지만, 메모리는 별도로 256GB이나 512GB 정도를 장착된 걸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상식에 따르면 둘은 완전히 별개의 칩이다.
CPU는 머리, 메모리는 책상, 뭐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CPU가 정보를 가져와서 메모리라는 책상에 쫙 펼쳐 놓고 계산을 한다.
계산이 다 끝났으면 결과를 머리에, 즉 CPU에 저장해 둔다.
이게 전통적인 CPU와 메모리의 개념이다.
그런데 PIM은 메모리 안에 CPU를 집어넣었다.
그럼 머릿속에 책상이 있는 것과 같다.
즉, 컴퓨터 안에 수십 명의 천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자신이 계산한 결괏값을 서로 공유하는 모양이 PIM의 그림이다.
그야말로 초 슈퍼 울트라 파워 컴퓨터를 만들어 준다.
투마로우펠그리니 인공지능은 테니스장 다섯 개를 합친 공간에 수천 대의 서버가 들어가 있다.
하지만 PIM은 컴퓨터 한 대에 투마로우펠그리니의 서버를 구현할 수도 있다.
이게 PIM의 놀라운 능력이다.
재준은 칩을 들어 자신의 눈높이에 맞췄다.
이게 그때 그 칩이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