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5화 내 패는 내가 만드는 거야(2)
중난하이.
“그게 경제 제재를 한다는 이유야?”
딩쉐이의 보고에 시앙핑이 관자놀이를 눌렀다.
지적 재산권.
중국으로선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미 만연해 있는 특허 복제를 갑자기 중단하는 게 가능이나 할까.
“우리도 미국 제품에 관세를 매겨.”
“그러면 미국이 2차 보복을 가할 겁니다.”
“그럼 우리도 똑같이 갚아 주면 되잖아.”
시앙핑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국의 보복이 두려워 물러나면 모든 게 끝장날 것이다.
불법 복제가 어디 한두 개여야 말이지.
유럽, 미국 패션 명품을 짝퉁으로 만들었을 때 명품 기업으로부터 강력한 항의가 들어왔었다.
하지만 ‘이게 다 당신들 브랜드 홍보해 주는 거 아닙니까?’라고 도리어 큰소리를 쳤었다.
사실 맞는 말이지.
무슨 가방 하나에 수만 위안이나 하냔 말이야.
어차피 명품 살 수 없는 인민들이 몇백 위안으로 사면서 주변에 이름 알려주는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하잖아.
중국은 자칭 유럽 명품 홍보 대사가 된 양 전 세계에 짝퉁을 뿌려댔다.
그리고 더 나아가 TV 쇼, 영화, 드라마, 게임도 같은 맥락으로 베꼈다.
하지만 안 되는 게 있었다.
바로 첨단 과학 기술.
이건 로열티를 주고 사용하면 생산 단가를 절대 맞출 수가 없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지.
중국이 자체 기술로 만들 때까지 버텨야 했다.
“미국에 대두 수입을 넌지시 전달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지요.”
“빨리빨리 마무리 지어.”
***
AAG 빌딩 66층.
“윌켄, 투마로우 시티에 공장 지을 부지를 확보해 주세요.”
‘공장’이란 말에 의아해할 만도 한데 윌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뭐 이제 거의 포기한 수준이었다.
“네, 어떤 공장을 지으실 거예요?”
“로봇 공장.”
“팜봇과 드론, 그리고…… 킬러 로봇을 말씀하는 거죠?”
“맞아요. 앞으로 시끄러워질 거니까, 미리미리 선점해 놓는 게 좋을 거예요.”
앞으로 1년 후 CCW(UN 산하 특정 재래식무기 금지협약)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제네바에서 회의를 소집했지만, 만장일치 협약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킬러 로봇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시끌시끌하지.
시끄러운 이유는 완전히 자율적인 판단을 하는 킬러 로봇이 무장한 전투원과 무고한 민간인을 구별해 공격할 수 있을까? 그리고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해 더는 전투가 불가능한 군인들을 구분할 수 있을까? 라는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왜 문제가 되냐고.
완전히 자율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면 되지.
꼭 그걸 해내겠다는 일념으로 골머리를 썩일 건 뭐야.
연구할 게 얼마나 많은데.
인간처럼 움직이는 관절도 연구해야 하고, 눈, 코, 입, 아, 입은 아니다, 로봇이 먹을 수는 없잖아.
아닌가? 요리 로봇은 미각이 필요하려나.
암튼, 외형에 신경을 쓰자고 외형에.
자율적인 판단이 전쟁에 왜 필요한데?
전쟁하는 방식을 바꾸면 되지.
꼭 사람을 죽이려니까 그러는 거 아냐.
평화적으로 하면 어디가 덧나?
평화적인 전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재준이었다.
“그래도 걱정이에요. 만약 킬러 로봇의 존재가 알려지면 시끄러워질 수 있어요.”
“그걸 공격용으로 쓰니까 문제인 거예요. 우린 철저히 방어용으로 사용하면 될 것 같은데. 우리 팜봇을 지키는 목적으로.”
“방어용이라고 주장해도 분명 언젠가는 공격용으로 변한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거야, 그놈들 주장이잖아요. 언제 우리가 그런 거 신경이나 썼나요? 떠들라고 하세요. 우린 우리 뜻대로 밀어붙이면 돼요.”
윌켄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방어용이라.
“알겠습니다.”
이때,
“아저씨.”
엘리자베스가 인도에서 제약 회사 인수를 마무리 짓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야, 진짜 오랜만이다.”
좀 더 있어도 되는데.
“흥, 표정을 보니 반갑지 않은 것 같은데.”
“무슨, 정말 반갑다니까.”
“그렇다고 쳐 드리죠.”
“허, 진짜라니까. 근데 인도 제약 회사는 몇 개나 인수했어?”
“아저씨 말대로 실력 좋은 기업 다섯 개 인수해서 시설 투자하고 있어요. 조만간 설비만 갖춰지면 웬만한 약은 다 생산할 수 있을 거예요.”
“이야, 이제 알아서 척척 하는구나.”
“그리고 땅을 좀 샀어요.”
땅?
“지역 이름이 뭔데?”
“잠무 카슈미르요?”
뭐? 얘가 미쳤나?
“야, 거긴 분쟁지역이잖아. 총알이 날아다니는 곳에 왜 땅을 사?”
“그러니까 산 거죠. 싸잖아요. 그리고 인도 자치지구라서 인도 허가 없어도 살 수 있어요.”
“거기다 뭐하게?”
“작물을 심어야죠.”
“작물?”
어라? 분쟁지역에 농장를 만는다고?
분쟁지역에 농장…….
이거 좀 괜찮은 아이디어인데?
분쟁도 해결하고 땅도 싸게 사고.
잠무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지역으로 두 나라가 손을 대지 못하도록 자치구로 지정되어있다.
한국과 비슷한 크기인데 인구는 150만 정도.
평지는 아니지만, 농장으로 만들기 딱 좋은 곳이긴 하다.
“괜찮은데. 좀 많이 위험하지만.”
“당장은 그냥 내버려 두고 지켜보기만 할 거예요.”
당장 농장을 시작해도 될 것 같은데.
뭐, 어쨌든, 네 땅이니 맘대로 하고.
“베네수엘라 커피는 언제 수확하냐?”
“커피요?”
“응, 네가 커피 농장 만들자고 했잖아.”
엘리자베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미간을 찡그렸다.
“아저씨, 커피에 대해 하나도 모르죠.”
“커피? 어떤 면에서?”
“커피는 식재한 후 최소 3년이 지나야 열매가 맺기 시작해요. 그리고 바로 수확하는 것도 아니에요. 아라비카종은 6~9개월 후에, 로부스타종은 9~11개월 후에 열매를 따는 거예요.”
“뭐? 그럼 4년?”
야, 그걸 왜 이제 말하는 거야?
“몰랐구나. 하긴 곡물에 대해 뭘 알겠어. 남 협박이나 할 줄 알지.”
눈앞이 노랗다.
“아니, 그럼 그동안 들어갈 돈이 얼만 줄 알아?”
“그래 봐야 인건비밖에 더 들어요? 스페셜티 커피는 전부 수작업인데.”
헐.
“너 일부러 이런 거지.”
“당연하죠. 그래야 돈을 못 갚을 테고. 돈 못 갚으면 베네수엘라에서 뭘 해도 찍소리 못 하잖아요. 그때 땅을 차지하는 거죠.”
엥?
이게 뭔 소리야?
땅을 차지하려고 일부러 빚을 지게 했다는 거잖아.
그러고 보니 너 인도 잠무 카슈미르 지역도 그렇고 부동산에 관심이 많구나.
가만, 가만.
분쟁지역 땅이라…….
바로 이거네.
“윌켄, 북한에 공장 부지 알아보지 말고 베네수엘라에 알아보세요.”
“베네수엘라요?”
이게 다가 아니지.
“그리고 전 세계 분쟁지역에 의료진이 있잖아요. 국경 없는 의사회 같은.”
“거길 들어가려고요?”
“아니요. 거긴 무장을 할 수 없는 곳이에요. 괜히 무장세력에게 핑곗거리를 만들어 줄 수 있어요. 대신 10km 떨어진 곳에 PharZone을 만듭시다.”
윌켄은 재준에게서 지금까지와 조금 다른 유의미하고 선명한 변화를 읽었다.
“보스, 이번엔 어째 진짜 세계 평화에 봉사하려는 마음인가 봅니다.”
“세. 계. 평. 화. 요?”
“아닙니까?”
“아닌가? 세계 평화가 맞긴 하네요. 내 땅에서는 절대 싸우면 안 되니까?”
네? 내 땅?
어쩐지, 봉사하는 척하면서 땅을 차지하려는 목적이었어.
어유, 그럼 그렇지 유의미한 변화는 개뿔.
이때, 재준이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분쟁지역 이야기가 나오니 생각나네. 러시아 상황은 어때요?”
“그리스 무장세력과 대치 중이죠. 큰 변화는 없습니다.”
“돈 많이 들어가겠네.”
“이제 곧 국채 발행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러시아 국채 리파이낸싱 거부하세요. 아, 기존 국채 만기 연장도 거부하고요.”
“잘못하면 또 디폴트 선언하고 배 째라고 할 텐데요. 지금까지 이자는 꼬박꼬박 잘 납부하고 있습니다.”
“웬일이래. 유가가 떨어져서 돈이 모자랄 텐데. 잘 버티네요.”
“러시아야 세계 수요와 공급, 뭐 이런 거 신경 쓰지 않고 필요하면 마구 퍼내니까요.”
어쨌든 정신없단 말이잖아.
“그러면 통화를 할 때가 됐네요.”
“네? 지금요?”
“푸챠르랑 마카르 이후에 좀 서운한 면이 없지 않았잖아요? 슬슬 우리가 있다는 걸 환기시켜 줘야죠.”
재준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라 생각했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 전쟁을 벌일 것이다.
한쪽에선 죽네 사네 서로 으르렁거릴 때.
한쪽에선 희희낙락 좋은 시절을 보내면 어떤 기분일까?
재준은 핸드폰을 들었다.
띠리리리링.
푸챠르가 직접 받았다.
-이거, 이거, 굉장히 서운하네요. 그동안 연락도 안 주고.
“하하하, 저야 러시아에게 굉장한 선물을 받은 입장이라 너무 고마워서 그랬죠.”
재준은 마카르 일을 돌려 깠다.
-그건 저랑은 상관없는 일입니다.
“뭐,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까지야. 근데 요즘 투마로우 소식 접하고 계시죠? 베네수엘라 일도 그렇고.”
-아주 머릿속에 새기면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고맙고요. 그래서 이번에 국채 만기가 도래한 거 같은데. 음, 총 얼마더라. 8억에 20억을 합치면 28억 달러네요.”
-하하, 그냥 말하세요. 뭐, 우리 사이에 서로 간을 보고 그럽니까?
“아, 역시 깔끔하네. 그럼 원하는 걸 말하죠.”
-그러시죠.
“국채를 발행해 드리겠습니다.”
그 돈으로 열심히 그리스에 쏟아부으시고.
-정말입니까?
“투마로우가 아무르강 동쪽 지역에 마을을 하나 만들까 하는데. 그 땅을 담보로 제공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하하하하하하. 당연히 협조해야겠지요? 근데 사할린과 쿠릴 제도 때문에 일본과 마찰이 있을 텐데 괜찮겠어요?
“서로 좋게 대화로 해결해야죠.”
-하하하하하하. 당신이 대화를 한다고요? 그 대화 보고 싶기는 하네요.
“러시아에 해가 되지 않도록 잘 타이를게요.”
-기대되네요. 기대돼요.
“어쨌든 러시아 지하 자금을 이쪽으로 싹 몰아 놓을게요. 관리하기 편하게. 세금은 잘 내라고 말도 해 놓고.”
-역시, 역시, 하하하하하. 맘대로 하세요. 어차피 그쪽 땅은 개발된다면 러시아에 좋은 일이니까요.
“그럼, 그리스에서 연승하시고. 다음에 또 전화하겠습니다.”
-그러시죠.
툭.
전화가 끊기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퀴니코가 제일 먼저 물었다.
“보스, 방금 푸챠르 맞아요? 뭔데 저리 순순히 승낙해요?”
“그야 자기에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땅을 사겠다는 것도 아니고 임대하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개발해 준다는 건데, 거부할 이유가 없지.”
그게 아니잖아요.
“보스한테 원한이 많지 않나요? 그리스 내전도 아마 보스가 옆에서 부추긴 거 지금쯤이면 알았을 텐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푸챠르 정도면 이미 감정이 사치란 걸 알지 않을까? 오직 이익이냐 아니냐만 머릿속에 남아 있을 거야.”
그런가?
“그리고 아무르강 동쪽이면 그쪽 사람들 꽤 험하다고 들었는데. 사람 죽이는 건 다반사고.”
“알아, 그래서 우리한테 더 좋은 거야.”
자, 그럼, 북한에 머무는 올리가르히 친구들 좀 이리로 데려올까나.
재준은 엘리자베스를 봤다.
“마가리따 아줌마는 요즘 뭐해?”
“아줌마, 연애 중이잖아요.”
“뭐? 언제부터.”
“그야 모르죠. 저번에 딸 보러 스위스에 잠깐 간다고 갔는데 신문에 기사가 났더라고요. 스위스 재벌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와, 진짜 인정해 줘야겠구나.”
“뭘요?”
“그런 게 있어.”
2016년에 딸을 출산한다고 기억하는데, 그걸 지키네.
“아줌마는 왜요?”
“마가리따가 유럽에선 나름 유명하잖아. 부자들한테 투자 좀 받아서 러시아 개발 좀 하게.”
“아까 말한 아무르강 동쪽이요?”
“그렇지, 이제 우리 영역을 점점 넓혀야지.”
“중국은요?”
“거기도 같이.”
“사람들이 올까요?”
“오게 만들어야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니까.”
“그래요?”
엘리자베스는 재준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띠리리리링.
-엘리자베스.
“아줌, 아니, 언니, 연애하느라 연락도 안 주고. 섭섭해요.”
-아, 그, 그래. 미안. 내가……. 미안. 흑, 흑흑흑.
“마가리따 언니! 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