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화 내 패는 내가 만드는 거야(1)
백악관.
도날드는 급하게 국가무역위원장 브레드 나바로를 급하게 호출했다.
나바로는 ‘무역안보론’이란 이론으로 무역적자국을 적으로 간주하고 보복을 주장하는 급진론자였다.
특히 중국에게는 정도를 넘어섰다.
‘중국을 반드시 무너뜨려서 갈기갈기 찢어버려야한다.’라든가 ‘세계에 기생하는 경제적 기생충’이라는 말까지 공개석상이나 저서, 정책제안서에도 썼을 정도였다.
기생충은 숙주 없으면 살 수 없지만, 숙주는 기생충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고 오히려 기생충이 없어져야만 더 건강한 개체를 보존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똑똑.
들어오세요.
도날드와 초췌한 나바로는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어유,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왔네.
“요즘 힘들죠.”
도날드의 신임을 얻은 나바로지만 주변의 시샘은 극복해야 할 숙제였다.
“상관없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옳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저도 밀어붙이고 싶은데, 이거 참, 눈치가 보여서.”
이제 막 이야기를 꺼내려는 찰나.
삐.
비서가 보낸 내선이 울렸다.
“무슨 일입니까?”
“임재준이 왔습니다.”
도날드는 나바로를 봤다.
괜찮겠냐는 표정이었지만 나바로는 벌떡 일어서기까지 했다.
“제가 자리를 피해 드리겠습니다. 제 이야기는 다음에 하시죠.”
“아니에요. 아니에요. 앉아 계세요. 임재준과 같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워낙 임재준이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의 말을 들어 봅시다. 좋은 대안이 나올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영광입니다.”
도날드는 다시 앉으라고 손짓을 하고 비서에게 통보했다.
“들여보내세요.”
덜컥.
문이 열리고 재준이 빙글 웃으며 들어섰다.
도날드도 손을 들어 환영을 표시했다.
“어서 오세요.”
재준은 도날드와 악수를 하고 나바로에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사실 나바로, 당신을 만나러 갔는데 백악관으로 갔다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아, 그래요?”
도날드도 놀랐지만 나바로는 더 놀랐다.
임재준이 나를 왜?
서로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도날드가 먼저 재준에게 궁금증을 나타냈다.
“임재준, 나바로는 왜 찾으신 겁니까?”
“그건 무역안보론을 대통령님에게 적극 어필하라고 조언을 할까 해서요.”
“무역안보론을요?”
“제 생각엔 지금이 딱 적기라서요.”
“지금이 적기라고요?”
“곧 금융위기가 닥쳐올 겁니다.”
도날드는 금융위기라는 말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금융위기라니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건 또 무슨 얘기야?
“또 금융위기요?”
“또는 아니에요. 1987년 후반 블랙먼데이, 1998년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후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뭔가 공통점이 느껴지지 않나요?”
“뭐가요?”
재준은 양손을 들어 손가락을 쫙폈다.
“10년, 10년마다 금융위기가 찾아 왔잖아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다 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니, 금융위기가 그렇게 10년마다 찾아오는 게 맞습니까? 위험 요소도 없이 10년마다 한 번씩이요?”
도날드와 나바로은 믿지 못하겠단 표정을 지었지만, 재준은 당연하다는 듯 설명했다.
“음,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릴게요. 시장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마치 큰 항아리 같은 거죠. 자, 이 항아리에 돈이란 물을 계속 부었습니다. 어떻게 될까요? 맞아요. 언젠간 넘치게 됩니다. 이게 금융위기죠. 물이 흘러넘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요.”
“지금이 물이 넘치는 시기란 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럼, 좀 더 전문적으로 말하죠. 현재 GVC가 0.85까지 치솟았습니다. 이제 1에 도달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는 거예요.”
GVC는 세계 교역 탄성치로 세계경제성장률을 세계교역증가율로 나눈 값이다.
성장률과 교역량이라니까 굉장히 전문적인 용어 같지만 쉽게 말해 성장률은 수요, 교역량은 공급으로 생각하면 된다.
보이는가? 수요와 공급.
중요한 건 성장률이 아니라 교역량이다.
방금 말했듯이 이 시기 GVC가 0.85이고 성장률이 3.7이었으니까 교역증가량은 대략 4.2 정도가 나온다.
수요가 3.7, 공급이 4.2.
공급이 과하게 발생하고 있는 증거다.
2008년 이후 꾸준히 교역량이 증가했다.
그럼 10년이 지난 지금, 이 늘어난 상품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보기를 주면.
하나, 인구가 10년간 4.2%씩 늘어나서 다 소비했다.
둘, 인구 증가분을 넘은 공급은 점점 창고에 쌓여가고 있다.
빙고, 정답은 두 번째다.
1974년 이후 인구증가율은 1%대였고 계속 하락해서 현재 1.1% 정도.
자, 그럼 늘어난 교역량이 소비를 다 하지 못하고 창고를 차지하고, 차지하고, 차지하다 더 이상 공간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이제 그만.
수입을 중단할 것이다.
근데 생산이란 게 줄이겠다고 줄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게 다 인간이 먹고사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특히 중국같이 대량 생산이 기본인 나라는 특히 더.
중국은 수출국이고 미국은 수입국인데 중국은 더 이상 수출을 할 수 없다.
이럴 때 중국은 어떤 대책을 내놓을까?
간단하다. 사고 싶도록 매력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다.
아주 싸게. 아니면 원 플러스 원, 투 플러스 원, 뭐 이렇게.
가격을 후려쳤으니 수입하는 나라 입장에서는 혹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팔릴 거잖아.
쌀 때 일단 사고 봐야지.
여기서 끝나면 좋겠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기업들 또는 다른 국가들은 재고가 쌓이면서 경제가 폭망의 길로 접어든다.
재고가 한계치에 다다른 기업과 국가들이 하나둘 비명을 질러대며 부도가 나기 시작한다.
결국은 마지막까지 버티던 중국까지 두 손을 들고 포기하게 될 것이다.
이제 방법은 없다.
생산 인력을 거리로 내쫓고 나 몰라라 할 수밖에.
“그렇군요. 그럼 시장을 키워야 하는 겁니까?”
“그보다 먼저 물을 붓는 놈을 잡아서 수도꼭지를 잠가야겠죠.”
“그게 누굽니까?”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중국이라고.”
“언제요?”
“내가 베네수엘라에서 전화드렸잖아요.”
“아, 중국. 그래서 베네수엘라에서 전화를 주신 거군요.”
“네, 중국이 베네수엘라 뒤에서 왜 엉뚱한 짓을 했겠어요? 자기들도 공급처를 찾다가 무리수를 두는 거 아니겠습니까? 중국은 금융위기의 잠재적 위험 인자입니다. 자꾸 항아리 안에 물을 부어 넣고 있거든요.”
“아하.”
“하지만 이 위험인자를 처리할 인물이 바로 여기. 나바로 위원장님이고요.”
저요?
음, 그렇지. 당연히 내가 적임자야.
중국 이놈들을 갈아 마실 인간은 나밖에 없지.
나바로가 자신이 거론되자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도날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중국에 경제 제재를 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알죠. 어디나 반대는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곧 찍소리 못 할 겁니다.”
“저들을 꼼짝 못 하게 옮아맬 뭔가 있습니까?”
“굳이 노력을 안 해도 될걸요? 어차피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려서 연준에서 금리를 인상해야 하잖아요. 그럼 위안화도 절하할 겁니다. 투마로우 예상으로는 연준은 0.25% 금리를 인상하고 중국은 위안화 6.2에서 6.9로 0.89%나 절하할 거예요.”
예상한 적 없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니까.
누누이 말하지만, 자국 화폐 평가 절하는 나는 살고 너는 죽으라는 의미다.
불끈.
나바로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기회에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무역 흑자국은 현대 사회의 적입니다. 적.”
나바로는 무역 흑자국은 자국의 경제를 좀먹는 적이다.
흑자가 났다면 그만큼 자국의 물건을 사 줘야 한다.
그래야 두 나라의 경제가 균형 있게 발전하니까.
균형을 맞추기 싫다? 우리 물건을 안 산다?
그럼 강제로 사게 만들어야 한다.
바로 경제 제재를 가해서라도.
세계 2차 대전까지 경제 제재는 전쟁과 함께 행하는 무력 수단이었다.
현재 경제 제재는 전쟁이 억제된 채 남아 있는 유일한 무력 수단이라는 게 나바로의 이론이었다.
음.
도날드는 입술을 굵게 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바로, 만약 중국이 위안화를 진짜 저 수치로 절하하면 우리 눈치 보지 말고 밀어붙입시다.”
“네?”
재준은 도날드를 향해 어이없다는 듯이 눈을 껌뻑였다.
아니, 지금까지 내 얘기를 뭐로 들은 거야?
“중국이 선수를 치게 놔두시겠단 말이에요?”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손실이 이미 발생하잖아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에요.”
“그럼, 먼저 경제 제재를 가하란 말입니까?”
“당연하죠. 지금도 무역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그냥 두고 보잔 말이에요?”
“명분이 없습니다.”
“네~에? 명분이요?”
재준은 나바로에게 ‘너도 같은 생각이냐’라는 눈빛을 보냈다.
나바로는 재준의 눈빛을 즉각 알아차렸다.
“명분은 많습니다. 중국은 지적 재산권을 무시하며 중국 내 미국 기업에게 기술이전을 강요하고, 산업기밀을 도둑질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매년 수백억 달러의 손실과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명분은 충분합니다.”
“지적 재산권?”
“지적 재산권 침해 물품에 대해선 관세를 200% 부과해야 합니다.”
재준은 살짝 놀랬지만 바로 긍정했다.
200%?
내가 알기론 25%인데 200%는 뭐야?
하긴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좋다. 200%. 밀어붙여.
하지만, 도날드가 허들이 되었다.
“나바로, 200%면 중국도 미국을 상대로 관세를 부과할 텐데. 그건 같이 죽자는 겁니다.”
도날드가 불타오르는 나바로에게 찬물을 확 끼얹었다.
“그럼, 100%.”
“아니, 중국이 미국 기업 상품에 관세를 부과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수치여야지, 무턱대고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으로 수출하는 기업들 다 죽어요.”
어라, 의외로 도날드가 차분하네.
나바로가 이성을 찾았다.
“알겠습니다. 실사를 먼저 해보겠습니다.”
아, 재준은 아쉬운 탄식을 했다.
이런, 이런, 이렇게 해서 25%가 돼버렸네.
그냥 200% 밀고 나가서 누가 먼저 죽나 해야 했는데.
아니지, 그럼 기업이 돈을 안 갚아서 은행도 죽는구나.
근데 경제 제재로 중국이 말을 듣겠어?
“관세 가지고 되겠어요?”
“그럼, 또 다른 제재가 있습니까?”
“제재는 아니고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거예요. WTO, NAFTA, TPP에서 탈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건 어떨까요?”
네?
이번에도 도날드보다 나바로가 더 놀랐다.
아니, TPP는 중국이 곧 재가입 예정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기껏 미국 주도로 만들어 놓은 WTO와 NAFTA는 왜 탈퇴를 하겠다는 거야?
WTO는 세계무역기구라는 건 다 알 거고.
NAFTA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간 자유무역협정이다.
겨우 세 나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
사실 미국은 50개 주를 각각의 나라라고 봐야 한다.
주 하나하나에서 거의 국가 수준의 돈이 굴러가니까.
그리고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합치면 유럽과 맞먹는 크기가 된다.
“NAFTA는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에이, 미국과 중국이 싸우는데 캐나다와 멕시코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미국만 우습게 되잖아요.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금지하는 조항을 삽입하지 않으면 탈퇴한다고 압박해야죠.”
엥?
“그거참, 일리 있는 말이네요.”
“그렇죠.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중국이 그나마 움찔할 거예요, 절대 어설프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네, 무자비하게 몰아치십시오.”
도날드와 나바로가 굳게 의지를 다졌다.
좋아 잘하고 있어.
시앙핑,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