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3화 이 석유로 국 끓여 먹을 거야?(20)
카빌이 과이도의 턱을 잡아 들고 안쪽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재준은 핸드폰을 받으며 빙글 웃었다.
“카빌, 과이도 국회의장의 방을 수색해서 다른 핸드폰이 있나 확인해 줘.”
“네, 보스.”
카빌이 무전기를 들고 지시를 내렸다.
재준이 과이도 앞에 쭈구리고 앉아 핸드폰을 켰다.
“기회를 줄까?”
“난, 난, 정말 아닙니다. 이건 나라를 위해서, 맞아요. 나라를 위한 겁니다.”
“아, 나라. 어느 나라?”
“네?”
“어느 나라를 위해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거냐고.”
“그건…….”
마두로가 힘든 걸음으로 다가왔다.
“임재준, 과이도가 무슨 잘못을 한 겁니까?”
제준은 마두로를 한심한 듯 바라봤다.
“하하, 이 상황을 보고 뭔지 모르는 거예요?”
“아니, 알겠습니다. 근데 과이도는 저랑 15년을 같이 지낸 사인데. 어떻게…….”
“그러니까, 고인 물은 썩는다니까. 이런 건 생각 안 해봤어요? 자신보다 훨씬 정치 경험도 적고 세력도 없는 누군가가 자신을 제치고 대통령이 됐는데. 속이 쓰리지 않으면 이상한 거 아닌가요?”
마두로는 과이도를 봤다.
눈에 서글픔이 묻어 나왔다.
“정말인가, 과이도? 섭섭했어?”
“아니, 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네. 진심이야.”
마두로가 재준을 봤다.
과이도를 변호하려는 눈빛이었다.
“아니라는데요.”
쯧쯧쯧.
“그럼, 확인해 봅시다.”
재준은 핸드폰을 들어 통화 목록을 살폈다.
“가장 최근 통화를 누구와 했을까?”
재준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띠리리리링.
-전화 잘했습니다. 지금 후방 집결지로 후퇴합니다. 아니, 저런 첨단 무기들을 준비했으면 미리 통보를 줘야 할 거 아닙니까? 여보세요. 여보세요. 무슨 말이라도 해 보세요!
툭.
재준이 전화를 끊었다.
“이건 누구예요? 그냥 들어도 우리 편은 아닌 것 같은데.”
“모르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방금 나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번호를 누르는 걸 내가 봤어요.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딱.
재준이 손가락을 튕겼다.
“와, 이런 놀라운 인간을 봤나. 내가 통화 버튼을 누르는 척하면서 이렇게 막 번개같이 갱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거 정말 이런저런 쓰레기들을 많이 봐 왔지만. 당신을 쓰레기 중에 가장 창의적인 인간으로 인정합니다. 대단하네요.”
“사실이잖아요.”
“아, 그래? 내가? 고맙네. 나에게 이런 새로운 능력이 있을 줄을 꿈에도 생각 못 한 건데. 어디 나의 이 신박한 능력을 다시 한번 발휘해 볼까?”
재준은 다음 통화 번호를 눌렀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야 저기 오잖아. 막아.
툭.
“이것도 갱단이네. 갱단 내에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는 거지?”
“하나도 모릅니다.”
“허, 사람 끝까지. 뭐 그래도 의리는 있네.”
이놈 봐라.
이 정도면 실토하고 자신의 죄를 자백할 만한데 끝까지 잡아뗀다.
믿는 구석이 있다는 소리네.
이때,
“보스.”
카빌이었다.
카빌이 구형 핸드폰 하나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설프기는. 서랍 뒤에 공간을 만들어 숨겨둔 걸 찾았습니다.”
안 돼.
순간 과이도의 동공이 커졌다.
“그건 예전에 내가 사용하던 이미 죽은 폰입니다.”
“그래요?”
재준은 전원을 켰다.
딩딩딩딩 음악이 흘러나오며 핸드폰이 살아났다.
“죽은 폰치고는 충전을 꼬박꼬박했나 보네.”
어디 보자.
이거 너무 옛날 거라 나도 헷갈리네.
아, 여기 있네.
부르르르.
과이도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너무 반응이 과한데.
재준은 거침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차피 통화 한 사람은 한 명일 테니까.
띠리리리리링.
띠리리리리링.
띠리리리리링.
딸깍.
-과이도, 마두로는 어떻게 됐습니까? 죽였어요?
띵.
뭐야? 왜 네가 거기서 나와?
재준은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안다.
여기. 읍.
과이도가 소리를 지르려 하자 테론이 입안에 종이를 쑤셔 넣고 강력한 라이트 훅을 날렸다.
꽈당.
부르르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뻗었다.
-과이도, 말을 해 봐. 죽인 거야? 아니면 실패한 거야?
툭.
재준은 핸드폰을 끄고 물컵 안에 빠뜨렸다.
이거 재밌게 흘러가네.
시앙핑.
네가 베네수엘라 뒤에서 있는 흑막이었던 거야?
내 앞에서는 살랑거리더니 그게 다 연기였단 말이지.
읍, 읍.
과이도가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신음을 냈다.
쯧.
재준이 과이도를 지나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다가 휙 뒤를 돌아 마두로를 봤다.
“과이도는 죽이지 말고 어디 잘 가두어 놔야 하는데. 여기 지하 뇌옥 이런 거 없죠?”
“네?”
“있을 리가 없지. 여긴 중국이 아니니까. 뭐, 알아서 처리하세요. 더는 신경 쓰고 싶지 않습니다.”
“아, 네.”
“정 불쌍하다 싶으면 살려도 되고. 다시 똑같은 일을 당할 것 같다 싶으면 죽이든가. 뭐, 알아서.”
재준은 밖으로 걸어나갔다.
시앙핑. 시앙핑.
그래,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미처 내가 너무 안일했어.
하, 참 내. 역사가 바뀔 줄 알았는데.
이거 미중 무역 전쟁을 꼭 치르게 만드네.
이거 전적으로 네 책임이다.
주석쯤 됐으면 책임이란 것도 배워야지.
탕, 탕, 탕, 탕.
집무실 안에서 여러 방의 총성이 울렸다.
그렇지, 책임을 져야지.
***
백악관.
“뭐라고요?”
도날드는 재준과 통화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니까, 베네수엘라 뒤에 중국이 있었단 말입니까?”
-그러네요. 좀 더 확인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도날드는 통화를 마치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네놈들이 실력으로 G2가 될 리가 없지.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현재 미국 내에 있는 대사관을 중심으로 감시 붙이세요. 그리고 통신장비에 백도어 있는지 확인해 보고요. 무역 적자 폭이 얼마나 되는지 보고하세요.”
툭.
그동안 임재준 때문에 참아 왔는데 딱 걸렸어.
미국이 적선을 해줄 때 잘했어야지.
어디 감히 G2네 뭐네 하면서 까불어.
***
중난하이.
“베네수엘라가 뭐?”
방금까지도 시앙핑은 느긋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투마로우가 드디어 지린성에서 자율주행을 시작한다고 알려 왔다.
투마로우가 헤이룽장성과 지린성 셰일층에서 석유를 뽑아 준다고 해서 계약도 벌써 체결했다.
투마로우가 의료 로봇 ‘팜봇’을 아프리카 나라들과 계약한다는 소식에 일대일로를 다시 추진할 계획도 세웠다.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근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딩쉐이, 확실한 정보야?”
“네, 베네수엘라 갱단이 거의 전멸했다고 합니다. 과이도는 마두로 총에 맞아 죽었고요.”
시앙핑은 어제 걸려온 과이도의 전화가 떠올랐다.
그때구나.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투마로우는 어때?”
“의외로 조용합니다.”
“베네수엘라에서 다른 연락은 없어?”
“아직 없습니다.”
설마, 과이도 뒤에 내가 있다는 걸 눈치채지는 않았겠지?
“딩쉐이.”
“네.”
“모르겠지?”
“과이도가 죽었으니 모를 겁니다.”
“그렇지. 그놈이 마두로 손에 죽었으니까.”
근데 왜 이리 불안한 걸까?
이때,
똑똑.
들어와.
여비서가 급한 전갈을 가지고 들어와 딩쉐이에게 내밀었다.
주석과 대화 중에 전달할 정도면 중요한 사안이 틀림없었다.
“뭐야?”
음.
딩쉐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도날드가 미국 내 있는 저희 스파이를 색출하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불공정 무역에 대한 조사도 착수했고요.”
“아니, 상원에 그렇게 돈을 뿌렸는데, 또 불공정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대통령 당선되고 한 번씩 하는 겉치레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겉치레?”
“네.”
시앙핑의 촉이 그건 아니라고 말했다.
“딩쉐이, 지금 뭔가 불안한 게 느껴지지 않아?”
“네?”
시앙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매를 날카롭게 했다.
겉치레일 수도 있지.
투마로우만 걷어내면 말야.
베네수엘라, 그리고 도날드라…….
타이밍이 너무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느낌이란 말이지.
“지금 당장 스파이 활동 중단하고 통신장비 백도어 가동 중단해.”
“주석님!”
“뭔가 안 좋은 느낌이야.”
“당장 중단할 수 없는 활동이 꽤 됩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대로 중단해.”
시앙핑의 억양이 거세어졌다.
딩쉐이는 주석의 의외 반응에 주춤거렸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불안하다.
“딩쉐이, 임재준에게 전화 연결해.”
“네.”
딩쉐이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때 자주 연락하던 그 번호로.
띠리리리링.
-큭큭큭, 빨리도 전화하네. 왜 걱정이라도 되나요?
“주석님을 바꿔드리겠습니다.”
-그러세요.
딩쉐이가 시앙핑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시앙핑입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전화를 다 주시고.
뭐부터 말하지?
“미국이 중국을 타깃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아시지 않나요?”
-아니요. 요즘 북한에만 있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뭐, 또 두 분이 싸우신 건 아니죠?
“험, 험. 어린애도 아니고 싸움은 무슨. 전 취임 이후에 미국 대통령 얼굴도 못 봤습니다.”
-그러세요?
“그래요. 근데 지금 중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유를 알아야 대처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좀 도와주십시오. 이번 미국 대통령과 각별하다고 알고 있는데.”
-그럼요. 도와 드려야죠. 우리가 보통 사이도 아닌데.
“하하하. 그렇습니다. 보통 사이가 아니죠.”
-걱정 마세요. 제가 도날드에게 왜 그런지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뭐, 서로 풀 수 있는 문제는 대화로 풀어야죠. 평화적으로.
“그럼요.”
-그럼, 도날드랑 통화해 보고 바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아,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하.
서로 웃으며 통화를 마쳤다.
“어때?”
시앙핑이 딩쉐이에게 물었다.
“목소리 억양이나 통화 내용으로 봐서는 모르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조금 이상해.”
“뭐가 말입니까?”
“몰라도 너무 모르잖아.”
시앙핑의 촉이 발휘되었다.
역시 주석 자리는 딱지치기로 딴 게 아닌가 보다.
“무역 수지는 어때?”
“대략 3,500억 달러(한화 420조) 흑자입니다.”
“미국에서 대량으로 사들일 거 없을까?”
“미국 입장에서 반길 만한 상품은 곡물이 적당합니다.”
“곡물, 그거 괜찮네.”
“그럼, 대두 수입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래.”
딩쉐이가 그만 나가려 하자 시앙핑이 세웠다.
“아, 딩쉐이. 임재준, 진짜 북한에 있는 거 맞지?”
“네?”
시앙핑의 질문에 딩쉐이도 주춤했다.
그러게, 전혀 의심하지 않았는데.
딩쉐이는 핸드폰을 꺼내 급하게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링.
“나야, 임재준. 지금 미국에 없지?”
-아뇨, 지금 방금 AAG 빌딩으로 들어갔습니다.
“미국에 있다고?”
-네,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알았어. 지금부터 24시간 따라붙어.”
-네, 알겠습니다.
딩쉐이는 통화를 끊고 시앙핑을 쳐다봤다.
이미 통화 내용은 안 들어도 뻔했다.
“딩쉐이. 임재준이 미국 동향을 알고도 거짓말을 했다는 거잖아. 왜 그랬을까?”
꼴깍.
딩쉐이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만큼 시앙핑의 인상이 꽉 구겨졌기 때문이다.
시앙핑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거슬리네. 확 죽이는 건 어때?”
“주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