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화 이 석유로 국 끓여 먹을 거야?(16)
모든 건 데이터로 변환된다.
“오케이.”
-그럼 음악가도 증권사 직원도 병원의 의사도 같은 자료를 사용하니까 정보는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다른 분야라고 생각하던 인간들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하하하. 서로 이해하게 된다?”
-맞아요. 거기서 끝나지 않죠. 문제가 생길 겁니다.
“어떤 문제? 이제 서로를 잘 이해하고 협력하게 생겼는데.”
-데이터가 너무 방대해져 버리는 거예요.
“아, 그렇게 되겠구나.”
인간이 처리하지 못하는 데이터에 인공지능이 끼어들게 된다.
-그다음은 신뢰의 문제가 발생하죠. 더 이상 인간을 믿지 않아요. 데이터에 친구의 자리를 주게 되겠죠.
“큭, 우리를 말하는 것 같구나. 월가의 뱅커만큼 데이터를 친구로 여기는 곳도 없으니까.”
-증권 시스템, 아마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빠르고 가장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니까요.
“칭찬이니?”
-아니요. 사실을 말한 거예요. 증권 시스템은 지구촌 경제를 운영하고, 지구 너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고려하죠. 어디서 누가 과학 실험을 성공하고, 어디서 어떤 스타가 스캔들을 만들고, 어디서 어떤 화산이 폭발하고, 심지어 태양 표면의 불규칙한 활동조차도 주가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응, 그렇지.”
와, 엘리자베스가 놀랄 만하네.
이게 3살짜리 입에서 나올 말이야?
넌 3년 동안 TV를 다 외운 거니?
-이러면 곧 인공지능이 친구를 넘어서 이념을 가지게 될 거예요.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보다 우위의 개념이죠.
“너무 나간 거 아니니?”
-아빠는 정치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느려?”
-네, 과학은 분산된 데이터를 한곳에서 처리하지 않아요. 수십만 수백만 군데에서 처리하고 서로 이용하죠. 투마로우 시티처럼요.
“하하, 그거 내가 만들었다.”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어요.
하하.
나 지금 3살짜리에게 칭찬받고 좋아하는 거야?
-민주주의는 분산 처리로 그나마 공산주의 중앙 집권 처리보다는 생존을 오래 했지만, 이제 한계에 다다랐어요. 정치가 과학을 따라오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 해요. 그 예가 인터넷 아닌가요?
“인터넷?”
-인터넷을 생각해 보세요. 국경도 없고, 사이버 테러로 국경을 가진 나라의 안보를 위협하고, 사생활 침해도 심각한데 정치인들은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잖아요. 못하는 게 아니라 몰라서 못 하는 거예요.
“지금부터 통제를 하면 안 될까?”
-아마 정치가 합의를 할 때쯤이면 아마 저 멀리 달아나 있을 거예요.
“맞아. 그랬어.”
노래산맥이 그랬다.
P2P 방식으로 유통하더니 음반사 소송이 걸리자 슈퍼피어라는 방식으로 소송을 피해 갔다.
그러나 또 소송이 걸렸고, 그때는 필터링 기술을 도입으로 피해 갔다.
하지만 문화관광부까지 나서서 필터링 기술을 제지하려 하자 한 차원 높은 필터링 기술을 선보였다.
-이제 인공지능은 이념을 상징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문제도 있어요.
“뭔데?”
-인공지능을 정치권이 이용하는 거예요. 재앙이 닥치겠죠. 인간의 마음을 자신들 입맛에 맞게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요.
“정말 그런 정치인들이 등장할까?”
-모르죠. 물론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없기도 해요. 그런 인간이 생각하는 미래는 기껏해야 나찌나 공산주의 정도에 그칠 테니까요.
“그럼, 나 같은 돈이 많은 기업이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잠시 진은 말을 중단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기업인은 매우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어요. 기업인의 목표는 돈이니까요. 1,000억 달러를 벌기 위해 인공지능을 이용한다면 가능할 거예요. 그러나 자신과 같은 기업인의 등장으로 몰락하겠죠. 인공지능은 돈을 위한 수단보다는 지배에 초점을 둬야 해요.
“지배…….”
이번엔 재준이 말을 잇지 못했다.
긴 대화에서 느끼는 건 지금껏 살아온 경험이 이제는 쓸모가 없다는 거였다.
과학의 속도는 너무 빠르고 인간의 이성은 그 간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투마로우 시티에서 10년의 생명을 연장한 인간이 벌써 100명을 넘었다.
유전자 변형으로 태어나 진과 같은 3살이 된 아이가 이미 1,000명에 육박했다.
이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성장하고 있을까?
과학이 준 선물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미 진이 말했다.
지배.
1,000명의 천재들 중 진과 같은 생각을 하는 아이가 몇 명이나 있을까?
인류를 지배하려는 아이의 등장으로 앞으로 10년 후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공상과학처럼 세계를 지배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건 999명을 적으로 두고 싸우는 일이니까.
아마 한 분야를 자신의 손안에 넣겠지.
어떤 아이는 연예계를.
어떤 아이는 방산업체를.
어떤 아이는 부동산을.
재준은 생각했다.
난 금융을 지배하고 있는가?
지금보다 더 많은 걸 지배할 수 있는가?
진은 무엇을 지배하게 될 것인가?
“이야기가 너무 벗어난 건 아닌가 싶다.”
-히히, 아무튼 이제 전 돈을 벌어 내 병을 치료하는 데 전념할 거예요. 그동안 내가 돈을 벌 수 있게 사건 사고 많이 치세요.
“뭐?”
뚝.
통화는 끊어졌다.
참나, 어떻게 저런 놈이……. 내 아들이네.
하하.
‘참나’를 할아버지가 ‘참나, 참나’ 하셨던 게 이런 기분이어서였구나.
할아버지나 보러 갈까?
손주가 있다고 말을 하면 어떤 반응이실까?
극대노 하실 것 같은데.
아, 그전에 베네수엘라를 먼저 갔다 와야 하는구나.
우리 과이도랑 못다 한 이야기를 좀 나누어야지.
***
베네수엘라.
드디어 ‘팜봇’이 카라카스에 등장했다.
대형 컨테이너 두 대에 큼지막한 글씨가 새겨진 깃발이 휘날렸다.
pharmacy(약국).
그동안 제대로 된 진료를 받아 보지 못한 베네수엘라 주민들이 컨테이너로 우르르 모여들었다.
-자넨 왜 왔어? 멀쩡해 보이는데.
-난 뒷골이 땡겨서 왔지. 자네는?
-난 속이 안 좋아서.
-근데 저 안에 로봇이 있다며?
-진료받고 나온 사람들이 그러는데 순식간에 진료가 끝나고 옆으로 나오면 약이 나와 있다고 하더라고.
-대단해.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하는데 마두로는 뭐 하고 있던 거야?
-마두로니까 가능한 거야. 아직도 국회의원 중 반대하는 놈들이 적지 않다고 하더라고. 국민의 안전을 위한다나 뭐라나.
-미친놈들. 안전 좋아하네. 안전을 위한다는 놈들이 지금까지 우릴 사지에 내버려 둔 거야?
-그러게 말이야. 하여튼 정치하는 놈들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지금까지 해 먹던 걸 투마로우가 다 차단해 버렸으니 반대할 수밖에.
-하긴 커피 농장엔 손도 못 대지. 석유는 갱단이 장악했지. 아마 속이 무척 쓰리겠지.
-그래도 아직 갱단과 손잡은 의원 놈들 많아.
-그놈들 입장에선 이 약국 사업도 눈엣가시 같을 거야.
-에이 나쁜 놈들.
이때.
부아아아아앙.
저 멀리 흙먼지를 일으키며 트럭 십여 대가 으르렁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저거 뭐야?
-이런, 갱단이다. 약국을 훔쳐가려고 오는 거야.
사람들이 컨테이너 뒤로 숨자 컨테이너를 호위하던 군대가 총을 겨누었다.
수적으로 너무 열세인 상황.
사람들은 분노에 찬 눈빛이 갱단을 향했다.
저마다 슬그머니 바닥에 있는 돌을 집어 들었다.
-나쁜 놈들.
-더이상 당하지만은 않아.
십여 대의 트럭이 100미터 거리에서 멈췄다.
군대가 총을 겨누고 있는데도 모두 트럭에서 내려 이쪽을 노려봤다.
지휘를 맡은 놈이 트럭에 설치된 확성기 버튼을 눌렀다.
삐이이이잉.
“모두 물러서. 우린 컨테이너만 가져가면 되니까. 아, 물론 돈은 지불하고 가져갈 거야. 우리도 예전의 우리가 아니라고.”
말을 마친 놈이 손을 흔들며 동전 하나를 휙 던졌다.
땡그랑.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안 그래?”
킥킥킥킥킥.
자기들끼리 방금 한 행동에 대해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때,
끼이이익.
컨테이너 문이 열리고 안에서 누군가 메가폰을 들고 내려왔다.
재준이었다.
저벅저벅.
에에에에에에엥.
메가폰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갱단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우리 처음이지? 내가 투마로우 임재준이야.”
웅성웅성.
-저 사람이 임재준이라고? 근데 죽으려고 저러는 거야?
-그러게. 총이라도 맞으면 어쩌려고 맨몸으로 나갔대.
재준의 말은 이어졌다.
“내가 조만간 찾아가려고 했는데 수고를 덜어줘서 꽤 고맙네.”
갱들도 재준의 말에 응수했다.
“야, 네, 네, 네가 임재준이면 나, 나는 마두로다 미친놈아.”
킥킥킥킥킥.
약간 긴장한 갱들이 방금 한 말로 긴장이 풀린 듯 웃었다.
자신감이 생긴 놈들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당장 물러나라. 안 그러면.”
뒷말을 잇지 못했다.
‘죽인다’라든가 ‘죽을 수도 있다’ 뭐 이따위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아무리 그래도 투마로우 임재준을 모를 리가 없었다.
갱단은 주변을 확인했다.
임재준은 군대를 데리고 다닌다고 알고 있었다.
확신이 안 서자 다시 재준에게 말을 던졌다.
“혼자냐?”
재준이 저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그러자 컨테이너 위에서 가로세로 1미터의 대형 드론 네 대가 솟아올랐다.
빨리 끝내야지.
그래야 소문도 빨리 퍼질 거고.
더는 근처에 얼씬도 못 할 거고.
다음 드론이 재준의 머리 위까지 와서 멈췄다.
재준이 메가폰을 들고 피식 웃었다.
“선물이다.”
재준의 말이 끝나자 대형 드론 아래가 열리며 파리만 한 플라이드론이 갱단을 향해 날아갔다.
오직 전방 10미터 앞에 있는 사람만 공격하도록 프로그램된 플라이드론은 수가 족히 이백 기가 넘었다.
비행시간은 10분, 속도는 시속 30km.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공격한다.
아직 보완할 점이 많지만, 갱단 처리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100미터를 돌파한 플라이드론이 갱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뭐야?
팔을 휘저으며 드론을 물리치려는 순간 드론이 갱단 목에 달라붙어 ‘픽’ 하고 침을 쏘았다.
여기저기 드론에 물린 갱단이 속출했다.
탁.
드론을 때려잡은 갱단 하나가 목을 쓰다듬었다.
“뭐야, 이거 파리가 아니라 기계인데.”
기계라는 말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숨이 안 쉬어진다.
헉, 헉.
방금 갱단의 목에 주입된 일산화탄소는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을 닥치는 대로 끌어모아 갱단의 몸에서 산소가 부족하게 만들었다.
일산화탄소의 결합력은 자그마치 200:1로, 소량만 몸에 주입되어도 산소와 무차별로 결합을 시도했다.
숨이 안 쉬어져.
산소 운반 기능 저하 이후에 미토콘드리아의 세포 내 호흡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드론에 물린 갱들은 전신 마비와 신경세포 사멸이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비틀비틀.
결국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경련을 일으켰다.
이어 군대가 앞으로 진격하며 호흡곤란과 경련을 일으키는 갱단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절대 드론 앞으로 나서지 말라는 경고로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탕, 탕, 탕, 탕, 탕.
픽, 픽, 쓰러지는 놈들과 달아나려는 놈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지만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드론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
움직이는 표적은 무조건 달려들어 일산화탄소를 주입했다.
그리고 10분이 지나자 배터리가 소진된 드론들이 일제히 떨어졌다.
툭툭툭.
그리고 컨테이너에서 마두로와 과이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재준은 뒤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안전하다고 했잖아요. 내가.”
과이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금지된 화학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