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8화 이 석유로 국 끓여 먹을 거야?(15)
투마로우 시티.
가펑클 CEO는 투마로우펠그리니의 알고리즘을 장착한 일명 ‘팜봇’의 시연을 앞두고 있었다.
이 시연의 목적은 시간이었다.
얼마나 빠르게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느냐.
‘정확성이 중요한 거 아닌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로봇에게 정확성을 묻는 것은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 같은 질문이다.
데이터가 잘못됐다면 모를까.
그래서 정확성보다는 시간이 중요한 과제였다.
현재 초진환자의 경우 미국은 5분, 한국은 6.2분으로 진료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이 시간을 초과하면 어떻게 되냐고?
초과한 만큼의 비용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되지 않는다.
재능 기부, 무료 봉사, 뭐 의사 처지에서는 그렇다.
“떨리지.”
투마로우에 같이 갔던 ‘투루로’사의 존 고든이 다가오며 속삭였다.
가펑클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응답했다.
“아니, 완벽하거든.”
“진짜? 한 달 전만 해도 헤매고 있었잖아.”
가펑클은 고든의 눈을 바라보며 콧잔등을 살짝 움직였다.
그리고 속삭였다.
“자네도 알지? 투마로우의 유령.”
“알지, 나도 그의 특허를 사용할 거거든.”
“나도. 그 사람 특허를 몇 개 사용했지.”
“그래? 그가 의학 분야에도 특허를 가지고 있다고?”
“응.”
“그거 쉽지 않은 일인데. 난 법학이고 자넨 의학이잖아. 그 둘을 다 잘할 수 있다는 건, 좀, 뭐랄까?”
“컴퓨터 같지 않아?”
“그래, 맞아. 전에 투마로우에 갔을 때 본 인공지능 ‘블랙’. 그 ‘블랙’ 같은 느낌이야.”
“느낌이 아니라 블랙이 맞는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투마로우 시티에 있는 고민들을 어떻게 정확히 집어내서 답을 달아 줄 수 있겠어?”
“그렇지? 인간이라고 하기엔 좀 비현실적이 부분이 있어. 우리뿐만이 아니라 지금 살상용 드론을 제작하는 친구들도 투마로우 유령에게 메일을 받고는 문 걸어 잠그고 제작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러니까, 인공지능 아니면 그 많은 지식을 머리에 담고 있을 능력자는 없다는 거지.”
음.
가펑클과 고든은 투마로우의 유령이 ‘블랙’이라고 거의 확신했다.
자,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팜봇’의 시연 시간이 되었다.
총 환자는 10명. 연구진들은 환자의 병명을 알지만 ‘팜봇’은 모르는 상태.
정확하게 진단하고 정확하게 약을 조제하면서 걸리는 시간이 중요하다.
‘팜봇’은 외모는 인간의 형상이 아니다.
언뜻 안경을 맞추러 가면 볼 수 있는 시력 검사기와 비슷한 형태였다.
환자가 자리에 앉으면 주변에 장비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환자의 상태를 점검했다.
“환자 들어 오세요.”
연구원의 말이 떨어지자 첫 번째 환자가 앞으로 나와 의자에 앉았다.
지징.
망막 측정기 같은 것이 환자의 눈앞에 다가와 멈췄다.
【환자 이름 강문석. 남. 나이 42세. 과거 철 결핍성 병력이 존재합니다. 허리를 곧게 펴십시오.】
환자의 몸에 초록 불빛이 1초 정도 스캔을 진행했다.
【손톱이 얇고 위로 휘었습니다. 전형적인 빈혈 현상입니다. 장내 출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약의 조제는 필요하지 않으며 고기, 생선, 계란을 식단에 꼭 포함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순식간에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처방까지 마쳤다.
가펑클은 오른손을 불끈 쥐었다.
1분.
첫 번째 환자의 진료와 처방은 1분이 걸렸다.
고든은 신기한 듯 환자와 가펑클을 번갈아 쳐다봤다.
‘팜봇’은 현재의 상태와 과거의 병력을 비교했다.
어떤 환자는 가족사도 살펴보고 유전에 의한 병으로 재발성인지 초기 증상인지도 알아냈다.
심지어 환자의 지역에 유사한 질병이 돌고 있는지도 실시간 데이터를 통해 확인했다.
그것도 인간이 느끼지 못할 속도로.
꼭 약이 필요하지 않은 환자는 식이요법을 처방하며 되도록 약에 의존하지 않게 했다.
‘팜봇’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만을 말끔히 해소해주었다.
부정확한 진단 그리고 바가지요금.
그 어떤 의사가 환자의 과거 병력과 가족사, 심지어 지역 상황까지 살피면서 진료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시간.
9.4분.
열 명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물론 약의 조제는 옆에 있는 또 다른 로봇이 처리했다.
약을 찾고 약봉지에 담아 내놓는 속도 또한 환자가 약을 찾으러 걸어가는 스무 발자국 정도의 속도였다.
그리고 중요한 일이 벌어진 건 마지막 환자에서였다.
소화불량으로 섭외한 환자에게서 위암 진단을 내렸다.
연구원들도 깜짝 놀랐다.
단지 소화불량 환자인 줄 알았는데 위암이라니.
고든은 가펑클에게 물었다.
“암은 조직 검사를 실시해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진찰만으로 알아낼 수 있지?”
벅벅.
가펑클은 머리를 긁적인 후 어깨를 들썩였다.
“‘팜봇’은 의학용어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몰라. 하지만 비슷한 증상의 데이터가 수천에서 수만 개이니까. 위암으로 판단을 내렸을 거야. 이 경우는 조직 검사를 따로 받아 보면 알게 되겠지.”
“이야, 굉장하네. 미처 잡아내지 못한 중대한 질병도 찾아내는 거야? 팜봇 대단하다, 대단해.”
“알고리즘의 힘이야. 지금도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류해서 ‘팜봇’에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시켜 주고 있거든.”
“실시간? 우리가 알고 있는 인공지능과 투마로우 퀀트들이 알고 있는 인공지능은 많이 다른데.”
당연하다. 증권가에서 실시간 업데이트는 기본 중의 기본.
주식시장에서 실시간 업데이트가 없으면 그건 쓰레기 취급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실시간 업데이트가 되면서도 정상적인 동작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투마로우 퀀트들의 실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퍽퍽.
가펑클이 한시름 놨다는 생각에 자신의 가슴을 쳤다.
후.
“오늘은 다 끝난 것 같은데 맥주나 한잔하러 갈까? 내가 성공 기념으로 쏠게.”
“그래, 어휴, 10분 동안 너무 긴장했어.”
하하하하.
***
AAG 빌딩 66층.
오늘 재준은 혼자 66층에서 저 멀리 뉴욕항 너머 바다를 바라보았다.
안개가 잔뜩 끼어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저 저기 바다가 있다는 느낌으로 바라봤다.
꼭 내가 걸어온 길 같네.
현재증권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평사원을 자처했는데 어느새 세계에서 제일 큰 은행의 오너가 되었다.
이제는 멈출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무조건 가야 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말이지.
잠시 여유를 부리면 남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다.
그렇게 자신도 상대를 삼키며 지금까지 왔다.
한두 놈이어야 말이지.
그만큼 재준은 친구든 적이든 의식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베네수엘라.
언론에서는 간혹 신문의 한쪽 구석에 몇 줄로 소식을 전하고 있을 뿐이지만, 사실상 전 세계의 시선은 베네수엘라를 향하고 있었다.
투마로우가 어떻게 나오나 촉각을 세우면서.
혹시 법에 저촉되는 행위는 하지 않나.
혹시 비도덕적인 행동이 있지 않나.
비집고 들어갈 틈.
틈이 보인다면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다.
앞은 보이지 않는데,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걸어야 한다.
제기랄, 이번 일, 내 적성하고는 맞지 않는데.
이때,
띠리리링.
진?
아, 돈?
“네가 웬일이니? 전화를 다 하고.”
-안녕하셨어요?
어린놈이 목소리가 왜 이래?
마치 전화 응답기 같은 톤이잖아.
“안녕 못 하지. 다 알면서 왜 물어보니?”
-워낙 정보가 적어서 정확히는 몰라요. 다만 WTO 트위터에 베네수엘라에 대한 글이 자주 올라와서 대충만 알아요.
트위터?
WTO 놈들이 트위터에 베네수엘라 소식을 전하고 있다고?
확인해 봐야겠는데.
“그건 차차 이야기해 보고, 전화한 용건은 돈이니?”
-아니요.
돈이 아니라고?
“아니야? 1,000억 달러가 필요하다며.”
-그건 벌면 되죠.
뭐야? 이 근자감은.
“벌 수 있어? 이제 겨우 3살인데?”
-돈을 벌 수 있는 나이가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 그렇지. 너, 꽤 재밌구나. 그래, 어떻게 벌려고?”
-특허요.
“아, 특허. 그래, 셰일파쇄법도 엄밀히 말하면 너에게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건데.”
-그 로열티. ‘블랙’ 접근 권한으로 대신해 주세요.
‘블랙’을 달라는 거잖아.
“‘블랙’ 접근권을 달라……. 로열티 치고는 꽤 비싼 가격이네. 고민 좀 해 봐야 하겠는데.”
-아들인데요?
하하하.
이런 당돌한 놈.
“좋아, 블랙. 허락해 줘.”
재준이 천장에 걸린 스크린에 대고 소리쳤다.
【접근을 허락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진, 이제 됐니?”
-네.
“그래, 그럼 우리 네 이야기 좀 해볼까? 어떤 특허로 돈을 벌 거지?”
-아빠가 투마로우 시티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제 특허를 사용하게 될 거예요.
아빠?
좀 속이 간질간질하네.
“이거 완전히 내 사업에 숟가락을 얹겠다는 거네.”
-단시간에 돈을 벌려면 어쩔 수 없어요.
“그래, 아주 좋은 자세야. 보장된 돈벌이가 있는데 괜히 고생할 필요는 없지. 그래, 언제 시작할 거냐?”
-이미 ‘팜봇’에 내 특허가 몇 개 사용됐어요.
“벌써?”
와, 타고났네. 타고났어.
남의 돈 뜯어 먹는 데는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났어.
-그리고 선물도 하나 있어요.
“선물? 뭔데?”
-‘블랙’, 플라이드론을 띄워 줘.
진의 말에 ‘블랙’이 모니터에 아주 작은 드론을 보여줬다.
사람의 손 위에 앉아 있는 드론은 크기가 딱 파리만 했다.
아니, 블랙 이놈, 이미 진이랑 내통하고 있었던 거 아냐?
어떻게 말하자마자 알아듣지.
어쨌든.
“저게 드론이야?”
-네.
“저걸로 뭘 해? 딱 봐도 배터리 용량이 적어 얼마 못 날아갈 것 같은데. 드론은 최소한 20분은 버텨 줘야 쓸모가 있는 거야.”
-저건 살상용 드론이에요.
“살상용?”
-원래 저걸 개발한 회사는 농장에서 벌레 죽일 때 사용하려는 게 목적이었어요.
“벌레?”
그런데 원래라는 단어는 왜 사용한 거니?
“이게 왜 선물이지? 카킬에서 사용하면 딱 좋겠는데.”
-‘팜봇’을 지키는 목적이에요. 평화용이죠.
“아, 평화용.”
-네.
이놈 봐라.
인성은 어디다 팔아먹은 건가?
베네수엘라 갱단을 죽이는 데 사용하란 거잖아.
그래, 그렇다면.
“진, 물어볼 것이 있는데.”
-네.
“내가 베네수엘라를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하니?”
-그건 베네수엘라 문제가 아닌데요. 과학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시는 거잖아요.
“호. 핵심을 짚었는데?”
-아빠는 과학이 나아갈 길을 아세요?
설마 인류평화를 위해, 이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지?
“솔직히 내가 과학이 전공이 아니라 정확히 모르겠다. 투마로우 시티 결과물은 순간순간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대로 이용하는 거고, 나아갈 길은……. 어려운 문제지.”
-현재의 과학은 진화와 알고리즘을 결합한 인공지능이에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유기체의 생화학적 알고리즘과 앨런 튜닝의 튜링 기계 개념으로 만든 전자 알고리즘을 수학에 적용시키면서 인공지능이 태어난 거잖아요.
“가만, 가만……. 그래 이해됐다. 계속.”
퀀트의 알고리즘이 유기체처럼 진화를 한단 말이지.
-이제 그 어떤 현상도 전부 데이터라는 개념으로 통일돼요. 노래도 주식도 독감도 모두 데이터화 돼서 처리되죠. 모든 현상은 동일한 개념과 동일한 도구로 분석될 거예요.
“가만, 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