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4화 이 석유로 국 끓여 먹을 거야?(11)
투마로우 시티.
엘리자베스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밖으로 나왔다.
김정은과 도날드, 심지어 재준도 지랄 같은 성격의 소유자들이라 잘 맞는지 술집이 떠나가라고 떠들며 독주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아유, 시끄러.
엘리자베스는 주변을 죽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여러 번 왔는데도 올 때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네.
저긴 아주 다른 곳이 되어 버렸어.
이러면 갔다가 돌아오기 힘든데.
아니, 갈 수나 있을까?
터덜터덜 바람이나 쐬려고 걸어가는데.
“어? 이게 뭐야?”
밖에 한 줄로 죽 늘어선 킥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웬 킥보드?
이것도 첨단인가?
엘리자베스가 킥보드에 올라서자 운전대에 설치된 작은 창에 파란 불이 들어왔다.
중앙에 작은 원이 생기며, 【지문을 대세요】라는 문자가 떴다.
“이야, 지문인식이야? 언제 이런 걸 다 만들었대.”
지문을 대자 ‘웅’ 하고 킥보드 전체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목적지를 말하세요】라고 문자가 떴다.
말을 하라고?
주소가 아니라 목적지?
이것도 되려나?
“셀레나 집.”
엘레자베스가 말을 하자,
【인식】이란 문자와 함께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와 되네.
이것도 자율주행이야?
저절로 움직이네.
점점 속도가 붙더니 차도로 나가 킥보드 전용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야, 발전 속도가 장난이 아니구나.”
10분을 달린 후.
점점 속도가 줄어들더니 어느 집 앞에 멈추어 섰다.
여기가 셀레나 집이구나.
엘리자베스는 그냥 멀리서 진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저 앞에 거실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고 레이와 셀레나 둘이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게 보였다.
기웃기웃.
“음, 진은 보이지 않네.”
시선을 돌려 불 켜진 다른 방이 있나 살폈다.
없다.
“그럼 셀레나와 함께 있는 것 같은데. 작아서 안 보이는 건가?”
그냥 들어가 볼까?
놀러 왔다고 하면 되잖아.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한 엘리자베스가 문 쪽을 향해 걸어가는데 지하실에 불이 켜진 걸 발견했다.
“진은 저기 있는 건가?”
엘리자베스가 지하실로 다가서자 지하실 문이 열리며 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멈칫한 엘리자베스를 향해 진이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내가 오는 걸 알고 있었어?”
어쨌든, 오라니 갈 수밖에.
엘리자베스는 살며시 지하실로 다가갔다.
진이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엘리자베스는 진의 외모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알기론 3살일 텐데, 왜 이렇게 크지.
한 6~7살 정도는 돼 보이는데.
지하실 안으로 들어서자 사방이 전자장비로 꽉 차 있었다.
도대체 이게 다 뭐야?
모니터만 몇 개야?
너무 많은 모니터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전 세계 뉴스에, 전문 패널들의 방송에, 다큐멘터리까지.
다행인 건 소리가 무음 처리되어서 시끄럽지는 않다는 거.
그리고 한쪽에는 투마로우 시티 곳곳을 볼 수 있는 CCTV 영상이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 저걸로 내가 오는 걸 알아차렸구나.
그리고 수상한 문이 네 개가 있었다.
아마 저 문을 열면 다른 용도의 방이 있는 것 같았다.
진이 음료수를 들고 나타났다.
“내가 만든 건데 먹어 봐.”
“네가 만들었다고?”
일단 엘리자베스는 손에 들린 음료수를 바라봤다.
무색.
킁킁 냄새를 맡아봤다.
무취.
“이거 그냥 물이잖아.”
“아니야. 그 안에 렙틴이 있어.”
“렙틴이 뭐야?”
“설명하기 귀찮아. 그냥 나중에 찾아 봐.”
“그래.”
랩틴.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나선형 단백질이자 포만감, 식욕 억제와 관련된 호르몬이다.
엘리자베스는 음료수를 마셨다.
물이군.
그냥 물이야.
약간 밍밍한 물.
이 헛똑똑이 녀석.
“근데 넌 왜 지하실에서 혼자 있어?”
“여기가 내 방이야.”
방?
“누구도 이런 곳을 방이라 부르지 않아. 연구실 같은데.”
“연구실이라 불러도 되고. 근데 난 방이라 불러. 난 출퇴근을 하지 않으니까.”
“아, 네. 그러시군요.”
엘리자베스가 약간 놀리듯이 말했다.
“근데 엄마는 왜 여기 온 거야?”
“뭐?”
엄마?
“너 방금 뭐라고 그런 거니?”
“후후,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모른 척을 하고 그래? 임재준과 엘리자베스 유전자로 만들어진 게 나잖아.”
헐.
“널 길러준 셀레나도 알아?”
“당연히 알지. 뉴스에 몇 번이나 나온 건데.”
“아, 그렇구나. 그럼 셀레나한테도 엄마라고 불러?”
“그럼, 엄마의 의미가 꼭 유전자에 국한된 건 아니니까. 법적으로 신고된 사람도 엄마가 될 수 있어.”
와, 무슨 로봇이랑 이야기하는 것 같네.
“내 질문에 대답은 안 했는데. 여긴 왜 온 거야?”
“그야 너를 보러 왔지.”
“잉, 엄마가 느끼는 모정이란 건가?”
“글쎄. 그냥 네가 잘 있나 보고 싶었어. 공부는 열심히 하나 궁금하고. 그런데 너를 보니까 괜한 걱정을 했다. 공부는 네가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네.”
“그럴 거야. 내가 좀 똑똑하더라고.”
“그래?”
“거의 인공지능 수준이야.”
뭐라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
아니지, 수압파쇄법을 능가하는 대처법을 알려준 게 진이라고 했잖아.
얼마나 똑똑한 거야?
인공지능 수준이라고?
어디 그럼 펠그리니가 말한 인공지능의 답을 물어볼까?
“진, 베네수엘라 알아?”
“알지, 엄마랑 아빠가 거기 갔다 왔잖아.”
별걸 다 알고 있네.
아니지, 엄마, 아빠가 하는 일을 아들이 모르는 게 이상한 거지.
“그럼, 베네수엘라 국민이 행복해지는 방법이 뭘까?”
“행복?”
“그래, 행복.”
“엄마는 행복의 정의를 알고 말하는 거야?”
“응? 그거야 걱정이 없고 모든 것에 만족하는 상태가 아닐까?”
“어디서?”
“어디라니?”
“몸의 어디서 그런 상태를 만드냐고?”
“글쎄. 마음?”
픽.
진이 웃었다.
“그런 게 어딨어? 행복은 뇌가 만들어내는 무아지경의 상태를 말하는 거야. 불미스러운 과거를 잊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거. 그리고 예리함과 자신감을 얻는 단계.”
“그게 뭐니?”
“신경과학으로 말하면 인간의 감정, 행동 등을 결정하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의 호르몬이 균형을 잡은 상태야. 과다 분비는 황홀경을 만들어 무기력하게 하고, 불균형은 걱정과 불안, 집중력저하를 만들어. 둘 다 행복하지 않은 상태야.”
아, 혼미하다, 혼미해.
3살짜리 아이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 아니잖아.
“그래서 베네수엘라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는데?”
“가장 수준 낮은 방법은 불행한 요소를 제거해서 행복하게 만들어야 해. 베네수엘라는 너무 가난하잖아. 그럼 정부가 지출하는 비용으로 살 수 있는 인구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른 나라로 이주시키면 돼.”
어라?
펠그리니 인공지능이랑 대답이 얼추 비슷하네.
“그런다고 행복해질까?”
“그러니까 수준 낮은 방법이라고 했잖아. 어차피 인간은 과거를 잊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가 없어. 그렇지만 과거를 통해 배우지 않으면 미래로 나아갈 수가 없지.”
그렇구나. 그럼 원주민 이주도 별 효과가 없다는 말이네.
아니, 지금 내가 꼬맹이 말에 설득을 당한 거야?
하지만 맞는 말이라 반박을 할 수가 없네.
또 다른 해결책은 없는 건가?
“그럼, 진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나라면 전 국민에게 항우울제를 투여해서 인간을 개조하겠어. TCA(삼환계 항우울제)는 졸음을 유발하니까 적당하지 않고 SDRI(세로토닌 도파민 재흡수 억제제)에서 도파민을 농도를 낮게 제조하는 거야. 도파민 농도가 낮으면 동기 부여, 성취감도 줄어들고 성욕도 감퇴가 돼. 살인과 범죄가 줄어들고 성범죄도 거의 없어질 거야. 인구도 늘어나지 않고 점점 감소하고. 지금 베네수엘라에겐 가장 적당해.”
와, 너 인간이냐?
“그런 일을…… 인간이 해도 되는 건가? 너무 비도덕적이지 않아?”
“지금 베네수엘라 상황보다는 더 행복하잖아.”
헐, 그렇긴 하네.
강간, 폭행, 살인, 인신매매, 장기밀매.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성취감이 줄어들고 성욕이 감퇴되는 게 낫지.
근데 왜 꺼려지는 걸까?
“그래, 아저씨랑 상의해 볼게.”
“엄마, 카킬 후계자잖아.”
“그렇지.”
“그럼, 베네수엘라에 밀과 옥수숫가루를 수출하겠네. 그 안에 SDRI를 섞으면 돼.”
“곡물가루에 항우울제를 섞어?”
“간단하잖아. 베네수엘라 주식이 밀과 옥수숫가룬데. 식사 때마다 조금씩 먹으면 알약으로 먹을 필요도 없고. 거부감도 없잖아.”
“너 항우울제가 얼마나 비싼 약인 줄 아니?”
킥킥.
얘가 웃기도 하네.
“그건 병원에서 처방받았을 때지. 생산하면 100그람에 10센트도 안 해.”
“아, 생산. 생산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그럼 제약 회사를 인수해야겠네.”
“인수할 필요 없어. 인도 있잖아. 인도에 하청을 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그렇지, 인도.”
인도는 제네릭 제약 부분에서 전 세계 1위를 달리는 나라이다.
제네릭 의약품은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공개된 기술을 이용해 만드는 것을 말한다.
현재 인도에서 어떤 약이 하청을 받아 만들어지며 가격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대규모 양에 장기 계약이면 원가에 근접한 가격도 가능했다.
와, 나의 아들아.
진심 너는 천재다.
“카킬이 베네수엘라에 수출을 전담하면 쉽게 해결될 거야. 엄마가 나서면 되겠네.”
“내가?”
“아빠는 누굴 설득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엄마가 적당해.”
“그, 그래, 생각해 볼게.”
“그리고.”
진의 목소리가 한없이 차분해졌다.
“나 돈이 많이 필요해.”
“얼마나?”
“1000억 달러 정도.”
“뭐? 뭘 하려고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해?”
킥킥.
진이 또 웃었다.
“나 죽어가.”
“뭐? 죽는다고?”
“응, 내 뇌에서 뉴런이 아직도 생성되고 있어. 원래 임신 8개월부터 뉴런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난 아니야. 아마 부작용 같아. 이대로 두면 뇌가 폭주하고 말 거야. 죽는 거지. 치료할 장비들이 필요해.”
진.
엘리자베스는 얼이 빠진 모습으로 진을 쳐다봤다.
“그렇게 보지 않아도 돼.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아저씨한테 말해볼게.”
“응.”
진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때.
삐.
엘리자베스는 들을 수 없는 짧고 낮은 파장의 음이 울렸다.
진이 CCTV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가 내려오나 봐.”
어? 셀레나가?
“그럼, 진, 나는 갈게.”
“응.”
엘리자베스는 지하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뛰었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한참을 뛰고 나서 멈췄다.
진이 죽는다.
내 아들이 죽어.
아저씨한테 가야 해.
엘리자베스는 주변에서 킥보드를 찾아 올라탔다.
***
“아저씨.”
쾅쾅쾅.
엘리자베스는 임재준이 묵고 있는 숙소를 거칠게 두드렸다.
끼익.
“이 밤중에 무슨 일이야?”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셨는지 술 냄새가 확 풍겼다.
“잠깐, 들어가서 이야기해요.”
재준의 엘리자베스의 얼굴을 보았다.
심각하네.
“알았어.”
엘리자베스는 숙소 안으로 들어와서 일단 물을 한잔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생각하는데.
“엘리자베스, 왜 이래? 진은 잘 만나고 온 거야?”
헉!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에이, 후, 뻔하지. 네가 사라졌는데 투마로우 시티에서 갈 데가 거기밖에 더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