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282화 (282/477)

제282화 이 석유로 국 끓여 먹을 거야?(9)

SEC.

어두운 취조실에 블룸버그가 혼자 앉아 있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가뜩이나 집단 소송으로 머리 아픈데 SEC까지.”

홀로 중얼거리는 블룸버그의 목소리에서 불편한 심기가 잔뜩 묻어 나왔다.

한때 뉴욕 시장까지 지낸 자신이 취조실에 앉아 있다니.

제이크 너까지 나를 무시하는가.

근데 불러 놓고 왜 아무도 안 나타나는 거지?

30분째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임재준.

이렇게 반격해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있었던 사건을 미국에서 똑같이 당했다.

선례가 있으니 벌금을 피할 길은 없었다.

빨리 벌금이나 합의하고 끝내고 싶은데.

벌컥.

갑자기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블룸버그 앞으로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탁.

블룸버그 앞에 오드와가 서류를 집어 던졌다.

신경질적인 블룸버그를 오드와가 험한 눈매로 내려보았다.

오드와는 재준을 떠올렸다.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을 누르려는 상대를 압살하는 그 모습.

어디 나도 한번 해볼까?

SEC에서 잔뼈가 굵은 오드와라도 블룸버그 같은 거물을 다루려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바쁜 사람을 왜 부른 겁니까?”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럼 나도 세게 나간다.

“잘못이 있으니까 부른 겁니다.”

“그러니까 집단 소송 중이라고.”

“그것 말고 또 있으니까 부른 거라고요.”

“뭐요?”

이 건방진, 변호사 따위가 감히.

“프리먼 회장이 당신을 우리한테 고발했어요.”

“프리먼이 고소를 했다니 핑계치고는 너무 허술하군요. 다른 이유는 없습니까?”

“됐고, 내가 그런 거 일일이 설명할 이유는 없어요. 얼반 그룹 세무조사 이야기 왜 지어낸 겁니까?”

“지어내다니, 그럼 세무조사가 없단 말입니까?”

“같은 이야기 자꾸 하는 게 취미인 거 같은데. 여기 시장실도 아니고 민주당도 아닙니다. 그냥 묻는 말에 빨리빨리 대답하세요.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하고.”

“이 사람이…….”

“거 참, 말귀 못 알아먹네. 아무튼, 왜 지어낸 겁니까?”

“모릅니다.”

“아, 모른다. 모, 른, 다.”

오드와는 종이에 또박또박 글자를 적었다.

“그럼 지어낸 기자가 블룸버그 기자던데. 평상시 그 기자에게 지시를 내리는 편입니까?”

“누굴 말하는지 모릅니다.”

“아, 모른다. 모, 른, 다.”

다시 사각사각 종이 긁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얼반 회장 프리먼이 당신을 고발했다는 건 이미 말했고……. 거짓 기사로 주가가 20% 가까이 떨어져 200억 달러 손실이 발생했는데, 이건 알고 있습니까?”

“모릅니다.”

“또 모른다. 모, 른, 다.”

블룸버그는 오드와가 반복하며 적는 글자가 무척 거슬렸다.

“모른다고 왜 자꾸 적는 겁니까?”

“알아서 뭐하게요?”

“뭐요?”

“쓸데없는 질문 하지 마세요. 그냥 지금처럼 계속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됩니다. 자, 대충 마무리가 됐네요. SEC은 얼반 그룹의 손실액을 바탕으로 블룸버그에 600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겁니다. 인정하십니까?”

꽈당.

블룸버그가 갑자기 일어나자 의자가 뒤로 나뒹굴었다.

“600억 달러라니. 그런 벌금이 어딨습니까?”

“뉴욕 시장을 3선이나 하신 분이 시장실 구경이나 하고 내려오신 겁니까? SEC의 벌금 기준도 모르세요?”

“그건…….”

“손실액의 세 배. 아실 거 아닙니까? 이것도 모릅니까? 말씀 잘하세요. 지금 제가 적고 있는 거 언론에 다 알려지는 거예요.”

“그, 그건 아는데. 처음 손실액이 200억이었지만 거짓 기사라는 게 밝혀지고 주가는 거의 회복된 거 아닙니까?”

쯧쯧.

여기.

오드와는 자신이 적은 종이를 들어 블룸버그 눈앞에 보여줬다.

“모른다. 분명히 모른다고 적혀있는데요. 얼반 그룹 주가 20% 빠진 손실액이 200억 달러, 모른다고 했는데요.”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왜 모른다고 하신 겁니까?”

“그건 당신이 말을 했으니까 알게 된 거고.”

“그럼 내가 말을 안 했으면 600억 달러 벌금 내셔야 했네요. 여전히 모르시는 거니까, 벌금 600억 달러로 합니다.”

“잠깐, 제이크를 불러 주시오. 제이크를.”

탁.

펜을 거칠게 내려놓은 오드와는 블룸버그를 향이 찜찜해서 먹기 싫은 음식을 대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이크는 알아요? 모를 텐데.”

“시장일 때 안면이 있습니다. 제이크를 불러주세요.”

“그러니까 모른다는 겁니다. 그게 언제인데 지금 찾는 겁니까?”

“그냥 좀 불러 주세요.”

“거 참, 모른다니까 그러네.”

오드와는 핸드폰을 탁자에 놓고 스피커 폰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제이크의 번호를 눌렀다.

띠리리리링.

-취조 중 아니었나?

“네, 여기 블룸버그가 회장님과 면담을 하고 싶다는데요.”

-벌금 낸 후 만나자고 해.

툭.

오드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블룸버그를 쳐다봤다.

“당신은 회장님을 모른다고 했잖아요. 이제 좀 알겠습니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뭐, 아직도 뉴욕 시장 3번 했고 480억 달러를 가진 초대형 기업 블룸버그 CEO를 이렇게 대할 수 있냐 생각하시는 겁니까?”

블룸버그는 솔직히 ‘그렇다’라고 말할 뻔했다.

하지만 마치 입술 위아래가 붙어 버린 듯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나만 알려 드리죠. 앞으론 임재준과 싸우지 마세요. 뭐, 이게 경고 아닌 경고인데 사실 저희도 피곤합니다. 임재준하고 붙으면 꼭 SEC이 나서서 중재하니까요. 한두 번이어야지. 매번 우리도 피곤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이번엔 얼반 회장 프리먼도 꽤 화가 나 있어요. 거, 쓸데없이 괜한 일을 벌여서.”

탁.

오드와는 탁자에 놓인 서류를 잡아채서는 블룸버그를 내버려 두고 취조실을 나왔다.

꽝.

후, 후, 후, 후.

쿵쾅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잠시 심호흡을 여러 차례 했다.

이야, 괜히 임재준 흉내 냈다가 심장 떨어질 뻔했네.

잠시 숨을 더 내쉬고는 목을 전후좌우로 돌렸다.

아이고, 어깨도 뻣뻣하게 굳었네.

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려.

600억 달러 말할 때는 다리가 다 후들거렸네.

아니, 임재준은 협박을 왜 그렇게 잘하는 거야?

아무튼, 30분 후 들어가면 벌금 50억 달러 정도로 쉽게 합의 볼 수 있겠지.

***

AAG 빌딩 66층.

“도련님. 데려왔습니다.”

서형길이 전에 만났던 기자 하나를 재준이 앞으로 데려왔다.

“아, 이분이 그 유명한 블룸버그 기자님이세요?”

기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슬쩍슬쩍 눈을 치켜뜨며 눈치를 봤다.

“성함이…….”

“카터입니다.”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여기가 무슨 마피아 소굴도 아니고. 위스키 한잔할래요?”

“아, 네. 네.”

“그래요, 거기 앉으세요.”

재준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위스키를 가지러 갔다.

서형길이 기자 옆으로 슬며시 다가갔다.

턱.

움찔.

서형길이 기자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기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련님한테 사실대로 말해.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네. 알겠습니다.”

기자는 서형길이 세 번 어깨를 두드리고 물러가자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다.

이 넓은 곳을 혼자 쓰는구나.

역시 월가의 주인이라더니 엄청나네.

그리고 서형길이 임재준을 도련님이라 부르던데.

귀족인가? 아니면 엄청난 가문?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합니까? 자, 한잔하세요.”

재준이 위스키 잔을 건네자 기자는 두 손으로 받았다.

쫄쫄쫄쫄.

위스키가 잔에 떨어지는 소리가 청아하다.

건배.

재준이 잔을 들어 보이고 단숨에 들이켰다.

카.

“역시 클랜파클라스야.”

뭐?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들고 있는 위스키를 바라봤다.

클랜파클라스?

만 불짜리 술이라고?

“어서 마셔요. 맛이 괜찮으면 갈 때 한 병 챙겨드릴게.”

“네?”

꿀꺽.

기자는 마른 침을 삼킨 후 위스키에 입술을 대고 한 모금 마셨다.

재준이 피식 웃으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기자님, 우리 USB를 훔치셨던데.”

“네? 아닙니다. 전 훔치지 않았습니다.”

“에이, 거기 CCTV가 몇 갠데, 아, 훔치진 않았네. 내용만 복사하고 바닥에 버렸으니까.”

컥.

기자는 마시던 위스키가 목구멍에 걸려 얼굴이 시뻘게졌다.

어떻게 하지?

기자는 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정말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저기 저분이 워낙 무섭게 말을 하셔서……. 근데 CCTV 보시면 알겠지만, 처음에는 정말 돌려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는 무서워서…….”

아이고.

재준은 기자를 일으켜 소파에 앉혔다.

“이렇게 자신을 잘 아시는 분이라면 지금부터 이야기가 잘 풀릴 것 같네요.”

“네?”

“사실은 내가 부탁이 하나 있어서 보자고 했어요.”

“부탁이라뇨?”

“주변에 아는 기자들 많죠? 아, 메인 언론도 좋고 인터넷 전문 매체나 옐로우 매거진 다 좋아요.”

“네, 좀 알고 있는 사람이 꽤 됩니다.”

“역시 우리 이사님이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자, 한잔 쭉.

재준은 기자에게 위스키를 더하라고 손짓을 했다.

기자가 다시 마른침을 삼키고 위스키를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우리 기자님은 베네수엘라란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거긴……. 미국이 행정 제재를 가한 나라 아닙니까?”

“맞아요. 그런데, 그 뭐랄까, 우리 국민이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정말 끔찍하게 변했던데. 보신 적 없죠.”

“아, 네. 솔직히 신경 쓸 만한 나라가 아니라서.”

“맞아요. 우리에게 돈이 되는 나라는 아니죠. 굳이 알 필요는 없지.”

“네.”

“근데 그거 아세요? 그 안에 진짜 특종이 있어요……. 인육을 먹는다는 소문이 있거든요. 그것도 아기의.”

“네? 어떻게 그런 일이.”

“그죠. 지금 막 기자의 의무가 불타오르죠. 꼭 알려야 한다는.”

“네?”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

“자.”

재준이 USB 하나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여기 기자님이 USB를 복사하는 CCTV 화면이 담겨 있습니다. 이거 아니라도 기자님이 기사를 쓴 건 기정사실입니다. 자기 이름이 턱 하니 박혀 있으니 아니라고 발을 빼지도 못하는 상황이잖아요.”

“그건…….”

후.

기자는 인정하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말씀하시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베네수엘라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사화하세요. 그러면 허위 기사를 쓰게 된 배경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기자님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는 거로.”

끙.

기자는 괴로움에 신음을 내었다.

왜 아니겠는가?

이미 언론 바닥에서 찍힐 때로 찍혔는데.

해가 되지 않는다고 블룸버그를 계속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의 시선은 또 어떻게 피하고.

차라리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고민이 되나 보네. 그럼 이건 어때요? 본인 이름의 언론사를 차려 보는 건.”

“네?”

“그런 거 있잖아요. 퓰리처상을 탄 기자들. 빈국들의 실상을 알리는 뭐 그런 언론. 투마로우가 후원해 드릴게요.”

“후원이요? 정말입니까?”

“그럼요. 원하는 만큼 충분히.”

후, 후, 후, 후.

심호흡을 크게 한 기자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베네수엘라에 가겠습니다.”

“오, 의지가 대단하군요. 용병도 붙여드리겠습니다. 영국인 용병 구르카가 적당한 듯한데.”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구르카는 영국군 소속의 네팔인들로 구성된 외인부대다.

블랙워터만큼 실력이 출중하다.

블랙워터는 외부로 유출할 수 없으니 구르카가 적당했다.

의지로 불타오르는 카터 기자를 보며 재준은 피식 웃었다.

언론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세계 평화를 위해 제 한 몸 불사르는 사람들로 구성된 언론사.

먼저 베네수엘라의 민낯을 세상에 알려 줄게.

그러니까 나와라.

마두로 뒤에 숨어서 나를 끌어들인 너, 누구냐?

이건 단순히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니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