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0화 이 석유로 국 끓여 먹을 거야?(7)
브라질 마나우스.
워서스틴과 페렐라가 한적한 술집에 앉아 있었다.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정부 관료를 만나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남미의 대부분 나라를 돌면서 들었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베네수엘라요? 남미의 자존심을 위해 미국과 적대관계도 불사한 나라죠.’
하지만 베네수엘라와 국경을 맞댄 콜롬비아, 브라질, 가이아나에서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국경지대에선 베네수엘라를 죽일 듯이 저주했다.
그래서 브라질리아를 들러 베네수엘라 국경과 가까운 마나우스란 도시를 찾았다.
그리고 아르헨티나를 통해 소개받은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뭘까?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도대체.”
“인신매매나 밀수, 뭐 이런 거 아닐까?”
“나도 그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딸랑.
술집 문이 열리고 수염이 더부룩한 인물이 등장했다.
워서스틴은 살며시 손을 들었다.
남자가 다가와 앞자리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워서스틴이 마시는 위스키에 눈길을 보냈다.
“한잔하시겠어요?”
“그럽시다.”
쫄쫄쫄.
잔이 채워지고 남자는 술을 단숨에 넘기고 음, 하고 신음을 뱉었다.
“좋은 술이네요.”
“한잔 더 하세요.”
남자는 두 번째 잔도 단숨에 넘겼다.
“궁금한 게 있다고 왔는데.”
페렐라가 품속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남자 쪽으로 밀었다.
“이야기가 흥미로우면 한 개 더 드리겠습니다.”
“딱 보아하니, 미국 분들이시네.”
“그렇죠. 돈밖에 없는 미국인입니다.”
“돈 자랑하다간 이곳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져요.”
“걱정 마세요. 저희 투마로우 사람입니다.”
“네? 투마로우요?”
“네, 누군가 저희에게 총구를 겨눴다가는 먼저 머리에 구멍이 스무 개는 날 것입니다.”
“그럼, 다행이구요.”
쫄쫄쫄.
다시 잔을 채우며 워서스틴이 말했다.
“정부 사람들은 베네수엘라를 굉장히 우호적으로 말을 하던데. 베네수엘라 국경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달라지는 건 아십니까?”
흥.
남자는 자신의 잔에 있는 술을 또 한 번에 털어 넣었다.
“베네수엘라 국경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뭐죠?”
후.
“베네수엘라 국경에는 지독한 악취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을 지경입니다.”
“혹시 시체 썩는 냄새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대의 트럭이 국경지대로 시체를 가져와 묻고 있습니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습니까? 못 하게 말려야죠.”
“자기들 땅에 시체를 묻는데 우리가 뭘 어쩌겠습니까?”
“이게 가능합니까?”
“아직 저 나라를 모르는군요? 저긴 지옥입니다. 제가 옆에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몰락했어요. 오죽하면 국경을 넘어 쓰레기 더미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갈 정도입니다.”
“네?”
“썩은 음식도 모자랄 정도라고요.”
“네?”
페렐라는 이해할 수 없었다.
2013년 챠베스가 암으로 죽었다.
그때 뉴스를 통해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분명 무상급식에 무상의료로 다른 나라의 선망이 된 나라가 어떻게 몇 년 사이에 급속하게 몰락했을까?
그리고 너무나 통제가 심해 베네수엘라 상황을 밖에선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남자는 술을 한잔 털어 넣고는 말을 이었다.
“콜롬비아나 브라질 국경을 넘는 게 밀수를 위한 게 아닙니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 넘어오는 거죠. 그렇게 넘어오면 뭘 하겠습니까? 여자들은 몸을 팔고 남자들은 장기를 팝니다. 불법이 아닌 스스로 눈이나 콩팥을 파는 겁니다.”
워서스틴과 페렐라는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국경을 넘은 사람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베네수엘라 길거리엔 동물이 없답니다. 다 잡아먹었다는군요. 심지어 자기 자식도 잡아먹었단 소리도 있고, 설마 아니겠죠? 아유, 끔찍해. 병원에서는 유아들이 죽어가고 있답니다. 약이 없대요. 약이. 그거 있죠. 곪을 때 쓰는 약.”
“항생제요.”
“맞아요. 항생제. 그게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태반이라 하더라고요.”
“베네수엘라는 의료시스템이 전 세계 상위권에 속하는 나라인데요?”
맞다. 베네수엘라 의료시스템과 외과 시술은 세계 상위권이다.
특히 성형수술.
얼마나 뛰어나냐면 세계 4대 미인대회에서 미스 유니버스 7번, 미스 월드 6번, 미스 인터내셔널 7번, 미스 어스 2번을 할 정도로 미인을 탄생시킨 저력이 있다.
눈치챘겠지만 전부 성형으로 만들어진 미인들이다.
아예 미인 양성 학교가 있어서 대회에 최적화된 미인을 만들고 있다.
이 대회에 나가려면 동양풍으로 고치고 저 대회에 나가려면 서양풍으로 고치자, 뭐 이런 식이다.
심지어 미인 양성 학교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키가 중요하지 얼굴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사족이 길었다.
지금 베네수엘라의 심각한 경제 상황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남자는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갔다.
페렐라가 워서스틴이 들고 있던 술병을 낚아채 병째 나발을 불었다.
크아.
“이건 아닌데. 석유고 나발이고 여긴 아니다. 네 생각은 어때?”
“나도. 이건 뭐 국경을 넘어 마약이나 인신매매 정도로 생각했는데 국가 전체가 지옥이었어. 저긴 답이 없는 국가다. 핵이라도 떨어뜨려 싹 죽이고 다시 시작하면 모를까. 저 많은 인간의 생각을 어떻게 뜯어고치냐?”
“불가능해. 보스한테 불가능하다고 전하자.”
“근데 이상한 점이 있어.”
“뭔데?”
“이 많은 남미 국가들이 정말 모르는 걸까? 방금 말하고 나간 남자도 이렇게 자세히 아는데?”
“알 거야. 모를 수가 없지. 하지만 더 두려운 게 있잖아.”
“그게 뭔데?”
“미국,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념이겠지. 기득권을 빼앗길지 모르는 민주주의나 자신들이 나누어주는 걸 고맙게 여기지 않는 자본주의 같은 거.”
“너도 참…….”
워서스틴은 그다음 말을 하지 못했다.
***
AAG 빌딩 66층.
다시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남미는 어때?”
재준은 먼저 페렐라와 워서스틴을 향했다.
자신이 CIA 국장에게 들은 베네수엘라의 상황과 현재 남미 상황을 비교하기 위해서.
“결론부터 말하면 베네수엘라는 답이 없습니다. 거긴 인간이 살 곳이 못 됩니다.”
“하긴 나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어. 대통령과 만나고 인터넷을 뒤져 보니 두 분야에서 1등을 달리고 있더라고.”
“아직 잘하는 분야가 있다고요?”
“잘하는 건 모르겠고. 살인율과 범죄율 1위야. 세계 최악의 치안을 자랑하더라고.”
페렐라와 워서스틴은 충분히 이해했다.
자신들이 들은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살인과 범죄는 아름답게 미화되었을 정도였다.
“저희는 그보다 더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페렐라가 그동안 겪은 일들을 차분하게 털어놓았다.
아!
사방에서 탄성과 탄식이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재준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다.
쓰레기 같은 새끼.
마두로 이놈을 어떻게 죽이지?
나에게 작정하고 엿을 먹이려고 연기를 했단 말이지.
“일단 베네수엘라를 도와주는 건 폐기해야겠어.”
안 돼요.
엘리자베스가 매서운 눈으로 재준을 노려봤다.
“왜? 너도 들었잖아.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재준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손을 가로저었다.
“도와주긴 누굴 도와줘요? 베네수엘라를 포기하지 말란 말이죠.”
“그게 도와주는 거지.”
“내 말은 땅을 포기하지 말란 말이에요. 지금까지 버린 시간이 얼만데. 그 시간이었으면 기업을 열 개는 인수하고 팔아먹었을 시간이라고요.”
“아니, 네가 이렇게 나오니까 적응이 안 되네. 그러니까 베네수엘라 땅을 차지하잔 말이지?”
“네.”
“방법은 있어?”
“없어요. 차차 생각해 봐야죠.”
뭐야, 이 무대뽀는.
그래도 아주 잘하고 있어.
하마터면 나도 손을 털 뻔했는데.
“좋아, 그럼 워서스틴과 페렐라랑 같이 베네수엘라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연구해봐.”
“알았어요.”
다행이야.
당분간 졸졸 따라다니지 않겠네.
“아저씨, 그 전에 아저씨 일 처리하는 거 보고요.”
“무슨 일 처리?”
“지금 생각하는 거요.”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떼어내긴 뭘 떼어내. 오히려 더 붙어 다니게 생겼네.
“퀴니코, 얼반이랑 블룸버그는 어때? 뭐 한 방 먹일 거라도 나왔어?”
“펠그리니와 박혁의 도움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아?”
“저기.”
퀴니코가 어딘가를 가리키자,
박혁과 펠그리니가 서류를 잔뜩 실은 카트 두 개가, 아니 저 뒤에 블록도 있네, 세 개가 재준에게 도착했다.
“이게 다 약점이야?”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말해 봐. 이거 뭐, 언론에 쏟아내면 하루아침에 망하겠네.”
“그 정도 될 겁니다. 이건 전부 블룸버그가 실은 거짓 기사에 의해 주가 피해를 받은 기업들을 정리한 겁니다.”
“아, 그렇지. 거짓 기사가 이렇게 많으면 벌금도 상당하겠네. 근데 이게 다야? 뭐 결정적인 거 없어? 도덕적으로 천하에 몹쓸 놈으로 만든다거나, 법적으로 감방에서 한 30년은 썩을 만한 거.”
“블룸버그가 뉴욕 시장도 3선이나 했는데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 텐데요.”
“그래? 그럼 얼반은?”
“음, 얼반은 깨끗합니다.”
“그럼, 우리는 계속 은행 평가 순위에서 139위를 달고 있어야 하는 거네.”
퀴니코와 블록, 펠그리니와 박혁이 동시에 합죽이가 됐다.
어, 왜 이야기가 이렇게 되는 거지?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건가?
재준은 서류 더미를 돌며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거짓 뉴스라…….
얼반 그룹은 깨끗하다고?
그럴 리가 있나, 이미 은행 평가라는 장난질을 쳤는데.
음.
“블록, 얼반 그룹 이번 분기 실적 어떤 거 같아?”
“얼반 그룹은 계속 실적이 안 좋습니다. 구조조정 중이니까요.”
“퀴니코, 투마로우가 얼반 그룹에 공매도 때린다고 월가에 소문 좀 내고, 실제로 얼마 정도 공매도 진행해.”
“공매도요?”
“한 10억 달러 정도.”
“네~에. 알겠습니다.”
퀴니코는 좀 못 미더웠지만, 재준의 말이니 믿었다.
얼반 그룹이 실적은 안 좋아도 구조조정 소재만으로 주가가 내려가진 않을 텐데.
그래도 보스가 하는 일이라면 뭔가 반전이 있겠지.
“그리고 모두 저 자료에 나온 기업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집단 소송 진행해 봅시다.”
네.
모두 자료에 모여들어 앞으로 일 처리를 의논하고 있을 때 재준은 창가로 가서 저 멀리 뉴욕항을 바라봤다.
얼반과 블룸버그를 엮어 줄 사람이 필요하지.
그리고 나에게 이런 일을 아주 잘 소화해줄 사람이 있고.
재준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도련님.
“이사장님, 실력 발휘를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할 일이 생겼습니까?
“네, 이번 일에 이사장님 외에는 떠오르지 않아서요.”
-하하하, 제가 또 도련님에게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해야죠.
“그럼, 아지트에서 저녁에 술이나 한잔하시죠.”
-알겠습니다.
자신들이 뿌린 건 자신들이 거두어 가야 맞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