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7화 이 석유로 국 끓여 먹을 거야?(4)
프랑스 엘리제 궁.
“이건 무슨 자다가 일어나 바게트 먹는 소립니까?”
올랑도는 일주일 전에 재준이 온다는 전갈을 받고 모처럼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반갑게 맞았다.
오랜만에 느긋하게 식사와 와인을 곁들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하려고 했다.
뭐 사실, 임모탈 시술에 대해서 살짝 언급도 하고.
근데 느닷없이.
“말한 대로입니다. 베네수엘라를 프랑스령으로 하자고요.”
“아니, 무슈, 그게, 그러니까. 그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국제 사회 눈치도 봐야 하고. 유엔, 그렇지, 유엔의 허락도 구해야 하고. 그리고 베네수엘라 국민이 찬성은 하는 겁니까? 또 그리스 꼴 나는 거 아니냐고요.”
어휴, 대통령님 숨 좀 쉬고 말하세요.
“진정하시고요. 우리도 처음엔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딱하기도 하고 국민들도 강력하게 원하는 것 같았어요.”
“정말 불쌍했어요.”
엘리자베스도 거들었다.
“허, 이걸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만약 프랑스가 베네수엘라 국토를 령으로 선포하면 일단 남미가 다 들고 일어날 겁니다.”
“그런가요? 남의 나라 일에 참 참견하기 좋아하네요. 따끔하게 버릇을 고칠…….”
올랑도는 다급하게 재준의 말을 잘랐다.
“아니, 아니, 무슈, 그건 그렇게 처리하면 복잡해집니다. 일단 남미 다른 국가와 대화, 대화를 통해서 이해를 시켜야 합니다. 아시겠죠.”
“네, 일단.”
“그리고 국제 사회, 특히 미국과 중국도 이해를 시켜야 합니다.”
“아니 거긴 왜 이해를 시킵니까?”
“아마 그 둘이 가장 많은 국채를 보유하고 있을 테니까요. 무슈가 아르헨티나를 국채로 날려 버린, 아니, 괴롭힌, 아니, 합의를 본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아, 이게 바로 인과응보로구나.
내가 저지른 짓이 그대로 내가 당하게 생겼네.
“그러니까 빚을 다 갚아 버리면 편한데 그게 아니라면 대화를 해야 한다 이거네요.”
“그렇죠.”
“내 빚도 아닌데 내가 굽신거려야 하는 거고요.”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무슈가 그걸 할 수 있겠습니까?”
아, 하기 싫어진다.
갑자기 현타가 몰려온다.
그냥 여기서 입 싹 닦고 모른 척할까?
쿡.
엘리자베스가 재준의 생각을 읽었는지 옆구리를 세게 찔렀다.
안 돼요, 아저씨.
재준이 엘리자베스를 바라봤다.
아니, 너도 생각을 좀 해 봐.
이건 아니잖아.
내가 어떻게……. 말도 안 돼.
“대통령님, 정말 다른 방법이 없습니까? 일단 프랑스령으로 선포하고 배 째라로 나오면 다들 어쩔 수 없지 않을까요?”
후.
올랑도가 뱃속 깊은 곳에서 숨을 꺼내 뱉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참 뭐하지만 요즘 프랑스 라팔 전투기가 판매가 아주 호황입니다.”
“그거 그리스 러시아 내전 때문에 주변국들이 요청한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건 내가….”
올랑도가 이번에도 재준의 말을 낚아챘다.
“알아요, 무슈 작품인 거.”
“어떻게 아셨어요?”
“프랑스도 나름 괜찮은 첩보 기관이 있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가만, 우리도 첩보 기관 이런 거 만들어야 하지 않나?”
재준이 윌켄을 쳐다보자 윌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돈 많이 들어요 보스.
그리고 각국 첩보 기관을 이용하면 되지 굳이.
“하지 마?”
윌켄과 엘리자베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아 참. 그래서요? 라팔 전투기가 많이 팔리는데요?”
“자칫 베네수엘라 사건이 엮이면 전부 취소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엄연한 침공으로 규정합니다.”
“아니, 허락받고 프랑스령으로 만드는 건데 왜 침공입니까?”
“허락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다들 자국 이익이 침해당하면 침공이라고 주장합니다.”
아, 정말 답이 없네.
하기 싫다.
“아저씨!”
엘리자베스가 또 재준의 생각을 읽고 눈을 부라렸다.
“좋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남미 국가들과 이야기를 해 본 후 결정해야 할 겁니다.”
후.
“거기 그 카리브해국가공동체 말하는 거죠.”
“네 맞습니다. 최소한 그쪽과 대화는 해야 합니다.”
“33개국이나 되던데.”
“그래서 대통령이 바쁜 거 아닙니까. 쓸데없이 돌아다니는 곳이 아주 많아요.”
“이거 기업을 운영하는 거와 국가를 운영하는 거는 완전히 다르네요.”
“고충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쉽지 않아.
“에이, 술이나 한잔해야겠습니다. 대통령님도 같이 가시죠?”
“전 이미 선약이 있습니다.”
없으면서 있는 척했다.
올랑도 대통령은 오늘은 위로받고 싶은 날이지 위로해주고 싶은 날이 아니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일 장관들을 소집할 테니, 그때 다시 깊은 얘기를 해 보세요.”
장관들?
아니, 굳이 장관들까지.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재준과 일행은 엘리제 궁을 나왔다.
“윌켄, 기업이 아니라 국가로 넘어오니까 힘든 게 많은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경험이 없는 건 저도 마찬가지잖아요.”
“이야, 이거 쉽지 않겠는데.”
고민에 빠진 재준.
이때, 고민을 날려줄 핸드폰이 울렸다.
띠리리리링.
프랭키네.
“프랭키, 성공했습니까?”
-네, 성능이, 글쎄, 3배나 올랐습니다.
“3배? 생각보다 높네요.”
-언제 오실 겁니까?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복잡한 것보단 이쪽이 낫겠지.
재준은 보잉 747-8 VIP로 향했다.
***
일주일 전.
블룸버그가 실시하는 은행 평가가 미국 전역에 이루어졌다.
15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평가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각 주마다 리서치가 시행되었다.
첫 항목은 은행의 신뢰도를 물었고 중간으로 갈수록 은행의 독과점을 묻는 항목으로 이루어졌다.
마지막 몇 개의 항목에서 이념 성향을 묻는 질문으로 채워졌다.
리서치를 마친 국민들의 반응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야, 메일 받았냐?
-무슨 메일?
-무슨 메일은 블룸버그가 실시하는 은행 평가 조사지. 요즘 이게 가장 핫한데.
-아, 그거. 나도 성심껏 적어서 보냈지.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는데. 정말 궁금하지 않냐?
-뭐가?
-투마로우 말이야. 설문지가 은근 투마로우 안티던데.
-야. 그걸 믿는 인간이 있겠어. 당연히 아니지.
-근데 사실 틀린 말도 아냐. 북한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아마 러시아랑도 친분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투마로우가 무슨 스파이도 아니고. 공산주의 국가들과 친분이 있다는 게 말이나 돼?
-그래서 넌 전부 절대 아니라고 체크했어?
-절대는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에 체크했어.
-아니면 아닌 거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뭐야?
-아니, 그게 그렇잖아. 임재준 행보가 민주주의에 딱 부합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고.
-야, 방금 스파이 어쩌고 하더니 여기 설문에 넘어간 친구가 있었네. 아니, 배울 만큼 배운 놈이 그 맥락에 속아 넘어가냐? 하여튼 실속은 실속대로 챙기고 패륜은 패륜대로 저지른다니까. 야, 너 투마로우 때문에 집도 산 놈이 그딴 식으로 사람을 몰아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봐라, 투마로우 순위 안 나오면 그건 다 너 때문이다.
-그렇다고 투마로우가 순위가 바닥이겠냐?
일주일 후 은행 평가 순위가 블룸버그에 발표되었다.
1위 얼반 그룹.
.
.
.
139위 투마로우.
***
투마로우 시티.
오오오.
새로운 셰일파쇄법의 동영상이 흘러나오자 재준과 엘리자베스, 윌켄은 입 모양을 동그랗게 만들며 감탄을 했다.
프랭키 책임 연구원이 재준의 표정을 보며 싱글벙글 미소지었다.
“어떠십니까?”
“굉장한데요? 도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물 대신 액체 이산화탄소를 사용했습니다. 점성도가 물보다 낮아 적은 압력으로도 셰일층을 뚫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프로판트에 사용된 변형 보오크사이트나 지르코니아는 저희가 이번에 새로 만든 것으로…….”
음, 무슨 소린지 알고 싶지 않다.
한참 설명을 들은 재준이 말했다.
“아무튼, 환경 오염도 줄이고 셰일층은 좀 더 쉽게 틈을 만들 수 있단 말이죠?”
“네, 그리고 투마로우펠그리니에서 머신러닝과 인공지능이 지금까지 데이터를 분석해서 매장량이 가장 많은 곳을 정확히 찾아내 한 번의 파쇄로 이곳저곳을 뚫어보는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근데 투마로우펠그리니 뭐냐?
인공지능 회사 하나 만들라고 했더니 자기 이름을 붙인 거야?
그래도 양심은 있네.
투마로우를 앞에 붙이고.
“이제 셰일 가스와 오일 채취 단가가 25달러 밑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36달러에서 25달러면 굉장한데요. 프랭키, 당신이 셰일 기업들을 전부 구해냈어요. 아니지, 미국을 구했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프랭키는 재준의 칭찬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그냥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었다.
“저, 사실, 이번 새로운 파쇄법의 아이디어는 저희 연구소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진중한 얼굴로 프랭키가 말했다.
“우리 게 아니라고요? 그럼 로얄티를 지불해야 하는 겁니까? 거기가 어디예요?”
“로얄티까지 지불할 필요는 없지만, 알아는 두셔야 할 것 같아서요.”
“어딘데요?”
“진입니다.”
뭐라는 거야?
긁적긁적.
재준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자신의 뺨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진이라니요?”
정말?
엘리자베스가 너무 놀라서 재준의 팔을 잡았다.
“아저씨, 진이라잖아. 꼬맹이 진.”
재준이 프랭키를 보며 ‘맞아?’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프랭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제 갓 2살이 된 아이 진입니다. 나중에 보시면 아실 겁니다. 진은 말도 잘하고 곧잘 혼자 걷기도 합니다. 이번 아이디어도 저희 동영상을 보더니 한마디 던진 게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 저희는 마무리만 지은 겁니다.”
뭐라는 거야?
“그러니까, 2살짜리 꼬마가 저 첨단 공법을 동영상만 보고 이해를 했다? 이 말입니까?”
“네, 맞습니다.”
“아니, 물어봤어요? 이해했냐고?”
프랭키가 소리를 내지는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거 아십니까? 혹시 그 아이가 진짜 이해했으면 어떡하나 하는 쪽팔림.”
“네? 쪽팔리다고요?”
“네, 두려움이라고 해야 하는 게 더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못했습니다. 그냥 머리만 쓰다듬고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렇군요.”
허, 그놈 벌써 두각을 나타내고 있네.
아저씨.
엘리자베스가 재준의 팔을 잡은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재준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우린 그 아이를 보면 안 돼.
이렇게 멀리서 소식만 전해 들어야 해.
진이라…….
희미한 미소를 짓는 재준에게 윌켄이 다가왔다.
“보스, 이거.”
윌켄이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여주었다.
“블록한테 온 문자예요.”
“이건 또 뭡니까?”
“얼반 그룹이 블룸버그와 손을 잡고 은행 평가를 실시했다네요.”
그리고 윌켄이 몇 번 클릭으로 신문 기사를 띄웠다.
“139위? 지금 투마로우가 꼴찌란 말이에요?”
“일반 투자자들이 은행을 갈아타고 있다고 합니다. 뭐, 그리 큰 문제는 아니지만, 신용도에 문제가 생겼어요.”
허, 언젠가는 얼반이 일을 저지를 줄 알았지만.
치사하게 이런 식으로 치고 들어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