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6화 이 석유로 국 끓여 먹을 거야?(3)
체인피크.
“정말입니까?”
체인피크 CEO 제프 골드윈을 포함한 여섯 명의 이사가 모두 페렐라의 말에 놀란 표정을 했다.
“그럼요. 저희가 투자하고 주식을 받아도 좋고 회사채를 발행해서 필요한 자금을 만들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투마로우는 체인피크가 경영을 지속하기를 원합니다.”
사실, 페렐라는 재준이 말한 대로 버티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유를 물어보면 귀찮게 되니까 경영을 지속하라고 말했다.
다섯 명의 이사들이 수군거리자 제프 CEO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잠시만 조용.
“페렐라, 저는 투마로우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투마로우는 이유 없는 투자를 한 적이 없습니다. 솔직히 은행이 위기에 처한 기업을 배려한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도 못했고요.”
하하하.
워서스틴이 배려란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페렐라, 우리가 너무 각박하게 보였나 봐.”
“그러게. 우린 나름대로 충분히 배려하며 활동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페렐라는 워서스틴의 말에 대꾸하고 다시 제프 CEO를 보며 머쓱해서 어깨를 으쓱한 후 말했다.
“제프,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체인피크가 부도라도 나면 과연 여기서 위기가 멈출까요? 다른 셰일 기업들에게 불똥이 튈 텐데요?”
음.
“일리 있는 말입니다. 다른 기업들도 전부 어려움에 처해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번 유가 전쟁에서 미국이 한발 물러나면 선례를 남기게 되고 다른 분야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미국을 위한 겁니까?”
“아, 오해는 마세요. 애국심, 뭐 이런 건 아닙니다. 우린 은행이지, 연준이 아니니까요. 정확히 말해 미국보다는 투마로우 시티를 위한 일입니다.”
“음, 투마로우 시티를 위해서요?”
“투마로우 시티에서 수압파쇄법의 오염수를 정화하는 방법에 관해 연구 중입니다.”
수압파쇄법은 셰일층의 암반을 뚫을 때 사용하는 공법이다.
모래와 물, 화학약품을 사용하는데 이 화학약품이 주변 수질을 오염시킨다고 환경단체들이 난리를 치고 있었다.
재준이 말한 새로운 공법은 더 강력한 수압파쇄법을 언급한 거지 오염수 정화를 말한 게 아니지만, 페렐라는 그쪽으로 몰고 갔다.
“오염수 정화라면 실효가 있는지 없는지 환경단체들이 달려들겠군요.”
“그렇죠. 이미 시민단체와 국제기구에 미운털이 박힌 투마로우에게 칼을 갈고 있는데 그걸 휘두를 여지는 주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럴 때 미국이 힘으로 좀 눌러 줘야 우리도 이득을 볼 테니까요. 절대 미국이 물러서면 안 됩니다.”
“그런 거군요.”
오염수 정화로 돈을 벌려는 속셈이구나.
제프는 페렐라의 말은 이해했는데 아직 못 미더운 점이 남았다.
“체인피크는 채권을 발행해 봐야 다시 어려움에 처할 겁니다. 어차피 채권 만기에는 채권을 갚을 수 없어 부도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우디가 감산하지 않는 이상 유가는 몇 년간 올라가지 않을 거니까요.”
“그럼, 인수하겠습니다.”
제프는 웃으며 이야기하는 페렐라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인수를 하겠다고?
부도가 뻔히 보이는 기업을?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오염수 정화 뒤에 뭔가 있어.
하지만 투마로우가 체인피크를 인수해 돈을 번다고 해도 그건 투마로우 능력이지 내 능력은 아니다.
하지만 보고 싶다.
숨겨둔 패가 뭘까?
그럼 한발 더 나아가 볼까?
“혹시 다른 셰일 기업도 인수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지금 거의 페니 스톡 수준의 기업들도 꽤 있잖습니까?”
“네, 당연히 다른 곳도 다수 인수할 겁니다.”
역시 단순히 한두 개 투자 차원에서 인수하는 게 아니야.
“그럼 제가 직접 선을 대면 좀 더 편하게 인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하하하, 그렇게 해 주시면 편하긴 하겠네요.”
“그런데.”
워서스틴이 페렐라의 말끝에 단어 하나를 보탰다.
“제프, 우리 눈에 다 보여요.”
“뭐가 말입니까?”
“당신이 뭘 원하는지.”
“네?”
“그 뭐랄까, 우리 보스랑 붙어 다니다 보면 싫어도 보이게 되거든요. 특히 인간의 욕망이랄까. 뭐 그런 거.”
워서스틴이 자신의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눈에 다 보이게 됩니다. 지금 당신처럼.”
꿀꺽.
제프가 마른 침을 삼켰다.
이놈들 뭐야?
투마로우 인간들은 다르다고 하더니 진짜인가?
“괜찮아요. 뱀처럼 교활하게 자신을 숨기는 것보다는 훨씬 낫네요. 그래, 뭘 원하는 겁니까?”
“그게…….”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차라리 이들처럼 대놓고 이야기하는 편이 낫다.
“좋습니다. 말하죠. 제 생각은 투마로우가 셰일 기업을 여러 군데를 인수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건 맞아요.”
“합병이 이루어질 거고.”
“그건 비용 절감 차원에 당연한 거고. 다음은요?”
“합병 기업의 CEO를 제가 맡을 수 있겠습니까?”
오.
워서스틴은 페렐라를 보며 빙글 웃었다.
“괜찮은 제안이네요. 우리도 셰일 기업을 경영할 생각은 없으니까. 누군간 전문적인 사람이 필요합니다. 제프라면 가능합니다.”
“승낙하는 겁니까?”
“네.”
뭐야, 이런 중요한 사항을 보스의 허락도 없이 아랫사람이 결정한다고?
“임재준이 허락할 것 같습니까?”
하하하하.
워서스틴과 페렐라가 동시에 웃었다.
왜 웃는 거야?
내가 웃긴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하하하, 제프, 당신도 보스 밑에서 일을 해 보면 알겠지만 투마로우는 단 하나의 시스템만 존재합니다.”
“그게 뭐죠?”
“책임.”
“…….”
“보스는 일을 지시만 합니다. 그리고 우린 그 마무리까지 처리합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합니다. 책임지지 못할 일은 아예 시작도 안 하는 게 투마로우가 돌아가는 방식입니다.”
“…….”
“그러니까, 당신이 CEO를 원한다면 그 책임 또한 져야 합니다. 아, 물론 당신을 CEO에 앉힌 책임은 저의 몫이고요.”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실패하면?”
워서스틴이 페렐라를 쳐다보자 페렐라가 말했다.
“생각 안 해 봤는데. 아마 죽지 않을까?”
“음, 그렇겠지. 보스라면 헬기에 매달아 태평양 어딘가에 던져 버릴지도 모르고.”
죽인다고?
마피아야?
“제프, 절대 실패하면 안 됩니다. 근데, 일을 하다 보면 알아요. 보스가 시킨 일은 실패할 일이 없어요.”
“그게 말이 되나요?”
“말이 안 되는 것 같죠. 근데 말이 돼요. 보스가 손을 대서 실패한 일은 단 한 건도 없었으니까. 그냥 최선을 다해서 해 보세요. 단, 어떨 때는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도망치지 말고 그냥 들이받으세요. 신기한 일이 벌어지니까. 큭큭큭큭.”
미친놈들인가?
근데 나도 미친놈이 되어야 하는 건가?
워서스틴이 제프의 묘한 표정을 읽었다.
환영합니다.
투마로우란 지옥에 온 걸.
***
투마로우 시티.
새로운 수압파쇄법을 연구하는 뉴프랭키 연구소에서 침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대형 스크린에 실험 동영상이 돌아가다 탁 멈췄다.
“여기 이거 뭐야? 전과 비교해서 크게 나아진 게 없잖아.”
“분명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인제 와서 안 된다는 거야?”
“소량 테스트에는 가능했는데 생산수의 양이 많아지자 수압파쇄 효과가 크게 나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수압파쇄법은 물을 엄청난 압력으로 쏘아 셰일층에 틈을 만드는 것이다.
수압파쇄에 사용된 물이 셰일층에 투입된 후 가스와 함께 다시 지상으로 나오게 된다. 이를 생산수(produced water)라 한다.
생산수에는 파쇄에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첨가되어 있다.
“보오크사이트나 지르코니아 다 마찬가지야?”
“네, 둘 다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셰일층을 수압파쇄 한 후, 파열로 만들어진 지질층이 그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압력강하가 일어나더라도 파열 틈이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이 틈을 유지시키는 물질을 프로판트라 부르는데, 프로판트를 이용하여 갈라진 틈에 이송시켜 정착시키면, 파열 틈이 닫히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초창기 수압파쇄에 사용된 프로판트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모래를 사용하였으며, 현재는 약 85% 정도가 크기가 정해진 크기의 모래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모래에 섞이는 재료가 중요한데 레진코팅 모래, 세라믹 재료, 그리고 고강도 재료가 쓰이고 있다.
지금 이 고강도 재료로 보오크사이트나 지르코니아에 변형을 가해 수압을 증가시키려 했지만 실패였다.
“미치겠네.”
책임 연구원 프랭키는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앞뒤로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연구원을 봤다.
내가 뭐 하는 거야.
창피하게.
“미안해. 내가 조금 예민하게 굴었지.”
“아닙니다. 마지막 실험까지 꼼꼼하지 못한 저희 잘못이 큽니다.”
“아니야, 임재준에게는 내가 전화할게.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하면 되는 거지?”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
“아니야, 우리 시간을 정하지 말자고. 임재준이 원하는 것도 완벽한 거지 어설픈 성공이 아니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는 김에 젤화유체, 가교결합, 발포젤까지 다시 한번 살펴보자.”
“네, 알겠습니다.”
모두 꾸벅 인사하고는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이때, 나가는 연구원들 사이로 레이와 셀레나, 진이 들어왔다.
“아유, 또 안 된 거야?”
레이와 프랭키는 같은 대학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다른 연구로 헤어졌다가 투마로우 시티에서 다시 만났다.
오늘은 진이 태어나고 근 2년 만에 저녁 약속을 잡은 날이었다.
근데 프랭키의 표정은 자신의 근심을 숨기는 티가 역력했다.
“아, 레이 왔어? 셀레나도 왔네.”
“또 안 된 거냐고.”
“하하, 뭐 그렇지. 기존 수압파쇄법보다 강력한 공법을 만들려고 기존 물질을 좀 변형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
“밥은 먹었고?”
“아, 지금 몇 시야?”
“7시가 다 되었어. 밖에서 기다리다가 혹시나 해서 들어왔어. 프랭키, 가끔은 머리를 식혀야 한다고.”
“그거 셀레나가 들으면 믿을 것 같아? 넌 집에 일주일에 한 번 들어간다며.”
흠, 흠.
뭐 그런 이야기까지.
딸깍, 딸깍.
세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뒤에서 리모콘을 조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프랭키가 놀라서 돌아보는데 진이 실험 동영상을 돌려가며 보고 있었다.
프랭키가 신기한 듯 레이와 셀레나를 바라봤다.
“이 꼬마가 진이야?”
“응.”
이미 투마로우 시티 안에서는 진의 존재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최초의 유전체 변형 아기.
하지만 그 변형의 정도를 아는 이는 없었다.
단지 최초라는 수식어만 알았다.
프랭키는 진이 너무 진지하게 동영상을 보고 있자 잠시 기다려봤다.
진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영상을 보고 프랭키를 돌아봤다.
프랭키가 쪼그려 앉아 진과 눈을 마주했다.
“네가 진이구나.”
진은 대답을 하지 않고 프랭키를 가만히 쳐다봤다.
“동영상이 또 보고 싶으면 다른 것도 보여줄까?”
프랭키의 바람과는 다르게 진이 리모컨을 돌려주며 말했다.
“물 대신 액체 이산화탄소를 쓰면 되잖아.”
뭐?
액체 이산화탄소?
“진, 너 그게 무슨 소리니?”
진이 엄지와 검지를 붙였다 떼었다 하며 말했다.
“점성도가 낮다고.”
프랭키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해결책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