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4화 이 석유로 국 끓여 먹을 거야?(1)
AAG 빌딩 66층.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이 날 만나고 싶다며 회사로 연락이 왔다고요?”
재준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윌켄의 입에서 나오자 미간을 찡그렸다.
“그 인간 미국 대통령에게 선방을 날렸다가 재제받고 있잖아요.”
“그래서 보스가 필요한가 봅니다.”
윌켄이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마두로가 러시아 편을 들고 미국에 경고성 멘트를 날린 결과,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미국의 국가안보와 외교 분야의 ‘위협’이 되는 국가로 규정했다.
이렇게 되면서 세계 경제 1위인 미국의 제재가 시작됐다.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의 규정에 따라 베네수엘라 정부 기관과 정부 관리의 자산 거래를 차단하고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했다.
뭐, 행정 제재를 가한다고 해서 산유국인 베네수엘라가 겁을 먹고 움찔하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 제재를 가하면 모를까.
그래서 2차 행정 제재를 발표했다.
인종주의적 정책, 부의 불평등, 패스트푸드 산업, 부패한 정치인, 산업 오염, 성적으로 타락한 언론.
아니 근데 제재라면서 패스트푸드 산업은 왜 들어간 것일까?
패스트푸드가 이제 정치적 무기가 된 것일까?
너 까불면 햄버거와 피자 못 먹게 할 거야?
아니면 햄버거와 피자 많이 안 먹으면 혼난다?
2차 행정 제재하겠다고 발표하자 중남미 33개국 카리브해국가공동체(CELAC)는 미국 대통령을 강력히 비난했다.
저럴 줄 알았다.
패스트푸드, 성적으로 타락한 언론? 뭐야 이게.
UN도 미국의 2차 제재는 내부 주권문제를 훼손하는 것이며, 불간섭 존중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뭐, 대놓고 철회를 하면 모양이 빠지니까 대통령은 슬그머니 해외 순방에 올랐다.
그러니까 말만 하고 아직 시작도 안 한, 허공에 붕 뜬 상태였다.
“2차 제재를 시작하지 못하게 도와달라는 건가?”
“그렇겠죠.”
“그러면 입 좀 가만히 있지. 저렇게 떠드는 건 뭐야.”
재준이 헤드라인 기사를 가리켰다.
“그러게요.”
[미국의 행정 제재를 비웃는 마두로]
마두로 대통령이 미국 행정 제재를 비웃음을 살 만한 행동이었다고 비난하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신문 기사를 요약하면 마두로는 인종차별주의, 빈곤층, 기후 재앙, 총기 사고, 해외 테러리스트 척살은 베네수엘라보다 미국이 더 위험한 국가 아니냐고 따졌고.
미국은 중남미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석유와 자원 ‘부국’ 베네수엘라와 중남미 전체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항의한 것이다.
그런데,
베네수엘라가 석유와 자원의 부국? 부국?
자기가 부국이라고 하면 부국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뭔가 저기 시골 마을에서 땅 천 평 가지고 있는 유지가 서울에 있는 SS전자 회장에게 큰소리치는 느낌?
‘내가 말이야, 이 동네에서 기침 한 번 하면 말이야’ 하고.
말은 잘해야 한다.
뭐 하나 있다고 함부로 입을 놀리면 큰일 난다.
지금이야 행정 제재지.
우리 도날드가 경제 제재까지 하면 끝장난다.
암, 한 방에 훅 가지.
“만나 보실 겁니까?”
“꼭 만나야 하나요? 만나려면 베네수엘라로 가야 하잖아요.”
“그렇지요. 마두로가 미국에 올 순 없죠.”
“투마로우에 무슨 도움이 될까요? 우린 은행인데. 석유 사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아르헨티나 석유 기업을 쥐고 있어서 여러 일이 쉽게 풀렸습니다. 꼭 석유를 팔지 않아도 유대를 다져 놓으면 좋지 않을까요?”
음.
석유라.
당장은 별 도움이 안 되는데.
몇 년만 지나면 황금알을 낳는 기업이 되긴 한다.
그런데 베네수엘라 석유는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석유는 미국의 셰일 가스와 오일.
이제 슬슬 미국 셰일 기업들이 불을 지피니까 사우디아라비아가 기름통을 지고 화염 속으로 뛰어든다.
“그래요? 그럼 베네수엘라에 한번 가죠.”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견제용으로 베네수엘라를 활용하는 것도 괜찮은 카드 하나 쥐고 있는 거니까.
저기요.
“나도 가요.”
엘리자베스가 들어서며 손을 마구 흔들었다.
너도 가려고?
베네수엘라 꽤 덥고 짜증 나는 날씨를 가진 나란데.
“같이 가도 되긴 한데. 은근히 너도 고생을 사서 하는 편이다.”
“이유가 있어요.”
“이유가 있다고?”
“예전에 할아버지가 베네수엘라는 곡물을 수입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고 하셨거든요.”
“곡물을 수입할 수밖에 없는 나라는 많아.”
“베네수엘라는 정도가 심하다고 했어요.”
“그건 맞네. 베네수엘라 산업 구조가 좀 괴상하지.”
베네수엘라도 다른 산유국처럼 석유 이외에는 다른 산업이 발전이 전무했다.
대부분 국가는 농업을 장려하는데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는 특히 농업을 국가가 나서서 못하게 막았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국토의 17%가 대륙붕이어서 석유매장 가능성이 컸다.
미친 나라다.
나라의 17%가 대륙붕이라니.
이러니 국민에게 농업을 장려할 수 없지.
농사짓는 땅에서 석유라도 나오면 어떡해.
그래서 대부분 국토가 국유화가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강제 수용과 위협이 난무했다.
국유화를 위해 농산물 가격을 통제하니 농민들은 자금 여력이 없어 기계화가 어려웠다.
거기다 농사를 못 짓게 하려고 저녁 시간과 새벽 시간에는 농사를 제한했다.
그냥 석유 판 돈으로 수입해 줄 테니 농사 같은 거 하지 말라는 거지.
근데 참 무식하고 위험한 생각이다.
석유 자원이 에너지원으로 천년만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얼마 있으면 원자력도 있고 핵융합도 가시적 효과를 볼 텐데.
그래도 석유 화학에는 필요하겠네.
아무튼, 농업이 낙후된 건 자명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막는 건 아닌데.
석유로 번 돈으로 다른 산업에 투자는 해야지.
미래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는 관광 산업에 투자하잖아.
유럽 프로 축구 리그에 있는 구단도 몇 개씩 사들이고.
엘리자베스의 눈이 반짝였다.
얘 왜 이래. 베네수엘라에서 뭔가 일을 벌이려는 건가?
혹시 카길을 위해 농장을 만들려는 건 아니겠지.
베네수엘라는 대규모 경작을 하기에 토양이 그렇게 썩 좋은 편은 아닌데.
“근데 너 베네수엘라에서 농장 지으려는 건 아니지?”
“거긴 땅이 나빠서 작물 키우기에 좋지 않아요.”
“그럼, 뭐하러 가는 건데.”
“비밀이에요.”
“아, 비밀.”
그래 뭘 하든 해 보는 건 좋은 거지.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거니까.
아, 베네수엘라는 아니고 미국에서.
재준은 워서스틴과 페렐라를 호출했다.
잠시 후 워서스틴과 페렐라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보스.
“아니, 한 층 올라오는 건데 왜 뛰어?”
“할 일이 있다면서요. 기업 인수인가요?”
“맞아. 미국 내 셰일 기업이 원하는 걸 해줘. 기업을 팔겠다면 인수하고 회사채를 발행해 달라면 해줘.”
“셰일 기업이요? 거의 죽어가는 기업을 왜 도와줘요?”
“곧 유가가 올라서 돈이 될 것 같아서.”
유가가 올라간다고?
불가능한 일인데.
셰일 기업, 셰일 기업 하니까 단일 기업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아니다.
셰일 기업은 퇴적암 중 하나인 셰일이란 암석으로 형성된 지층에서 천연가스나 석유를 뽑아내는 기업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 당시 미국에만 30여 개 이상의 기업이 존재했다.
셰일 기업의 채굴 단가는 사우디같이 지층에서 석유를 뽑아내는 공정에 비해 높다.
사우디가 10달러라면 셰일은 30달러 이상이 들어간다.
당연하지, 사우디는 땅을 뚫는 거고 셰일 기업은 돌을 뚫고 들어가서 가스나 석유를 뽑아야 하니까.
문제는 단가가 높아도 기업이 이긴다는 거다.
사우디는 국가를 운영하기에 최소한 80달러 이상은 받아야 채산성이 맞는다면 셰일 기업들은 그야말로 사기업이니까 60달러만 받아도 절반은 남는 장사였다.
미국은 꽤 오래전에 셰일에서 가스와 석유를 뽑아 보려고 여러 연구를 거듭했고 드디어 2014년 오랜 연구 끝에 석유를 수출할 수 있는 산유국의 시대를 열었다.
사우디의 갑질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아니, 오히려 미국이 제1의 산유국이 될 날도 머지않았다.
자, 이제 시장을 독점하려는 사우디와 미국의 석유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이 벌어졌으니 유가가 죽죽 밀려서 바닥을 형성했다.
석유가 나오지 않는 나라는 계속 싸우길 바랐고 석유가 나오는 나라는 제발 멈추고 대화 좀 하자고 성화였다.
그 결과 사우디는 국채를 발행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고 미국 셰일 기업들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2016년 미국 셰일 기업 중 가장 잘나가는 기업이 체인피크인데 최고점의 주가가 183.4달러였다가 현재 11.85달러까지 떨어졌다.
자그마치 93.5%나 폭락한 상태.
유가는 점점 더 하락했고 OPEC은 감산으로 유가를 올려야 했는데 사우디아라비아는 절대 감산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이건 그야말로 기 싸움이니까.
기에서 밀리면 죽는다.
절대 유가가 올라갈 상황이 아니었다.
근데 보스는 왜 저렇게 자신만만하지?
재준은 나만 믿으라고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괜찮다니까, 괜찮아.
이제 셰일 기업을 투마로우 품으로 가져오란 말이야.
“보스, 사우디가 감산을 하지 않는 이상 유가는 올라가지 않아요.”
“그러니까 인수하려는 거야.”
“네? 유가 하락으로 셰일 기업들은 파산 직전이라니까요?”
“그래서 인수하라는 거라니까?”
엥?
도무지 무슨 말인지.
유가가 내려가는데 셰일 기업들을 인수하겠다고?
“사우디가 왜 감산을 못 하는지 알아?”
“그거야, 감산을 하면 시장을 빼앗기니까요.”
“그렇지. 그럼 서로 감산을 안 할 거잖아. 죽어라 가격 경쟁만 펼치겠지. 둘 중의 하나가 죽을 때까지.”
“그래서 미국 셰일 기업들이 줄 파산 직전이라니까요.”
“근데 여긴 미국이잖아. 기술이 발전하지 않겠어?”
네? 기술 발전?
그렇지, 이대로 가만있을 셰일 기업들이 아니지.
“오,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요?”
“그리고.”
재준이 둘에게 다가가서 속닥였다.
“한 달 뒤에 투마로우 시티에서 좋은 기술 하나가 나올 거야.”
“아하, 그럼 채굴 단가가 낮아진다는 거네요.”
“손익분기점을 25달러까지 낮출 수 있어.”
“그럼, 대박인데.”
“그러니까 사정을 두지 말고 셰일 기업을 인수한 다음 1년만 버텨.”
사우디 살만 국왕을 실제로 만나게 되겠네.
“알겠습니다.”
워서스틴과 페렐라가 의기투합하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다 말고 멈칫 섰다.
왜? 가다 말고 서는데?
“저, 보스, 내일 박민수랑 강호석이 북한 관세 문제 끝내고 미국에 들어오는데…….”
헉! 아니 왜 일이 이렇게 절묘하게 맞물리는 거지?
“미국 내에 있는 셰일 기업만 30곳이 넘는데, 아, 모두를 인수할 수는 없지만…….”
왜 날 그렇게 쳐다봐?
나 내일 베네수엘라 갈 거야.
“윌켄, 내일로 준비, 아니 오늘 저녁 비행기가 있을까요?”
“왜 그렇게 서두르십니까?”
“내일 날 잡아먹을 두 사람이 온다잖아요.”
“그럼 휴가를 보내시면 되죠. 그동안 고생했는데.”
저, 윌켄 그건 좀.
워서스틴이 윌켄을 향해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윌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워서스틴에게 말했다.
“아냐? 그런 거 아닌가? 휴가 안 돼?”
“아니, 인수가 한두 건이면 뭐 변호사 몇 명이 들러붙어서 할 수 있겠지만, 기업이 30개면 실력자가 필요해서…….”
“그럼 두 사람이 휴가 갔다 온 다음에 하면 되잖아.”
“그렇기는 한데, 아까 보스가 한 달 뒤에 투마로우 시티에서 좋은 기술이 나온다니까 시간이 그렇게 여유가 있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네.
윌켄도 이해했다.
바로 재준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보스, 못해도 내일 오전 비행기로 잡고 베네수엘라에 도착 시간을 알릴게요.”
“그쵸, 윌켄도 그게 좋겠죠.”
“네, 엘리자베스, 너도 오늘 준비 다 끝내.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거니까.”
어유, 얄미워. 또 도망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