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271화 (271/477)

제271화 속도보다 중요한 게 뭔지 알아?(12)

허허허.

차르라스의 웃음은 소리 없이 처절했다.

“알지, 잘 알지. 이렇게 만든 것도 다 우리라는 거. 포퓰리즘? 누가 몰라? 알면서 하는 거잖아. 쌓이고 쌓여 여기까지 온 거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말이야. 나는…….”

차르라스는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다.

나는 그리스를 이렇게 만든 책임이 없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 그럼 이 짐을 받아 줄 사람에게 넘기면 돼.

다 같이 죽어보면 알겠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한 건지.

“러시아에 핫라인 연결해.”

“수상님, 러시아는 안 됩니다.”

“이봐, 황금새벽당이 한 번 더 다른 나라를 침공하면 정말 끝장이야. 모르겠어? 지금 러시아가 그리스를 지배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이렇게 해서라도 이놈의 그리스를 보존해야 한단 말이야. 아니야? 나보다 더 좋은 선택이 있어? 나에게 알려줘 봐. 내가 그대로 따를 테니.”

으.

비서도 고개를 떨구었다.

더 좋은 방법? 있을 리 없다.

있다면 하나, 전쟁뿐.

모든 걸 걸고 알바니아든 북마케도니아든 치는 것이다.

알바니아보단 북마케도니아가 좀 낫긴 하겠다.

그렇지만 결과는 100% 패배다.

“알겠습니다. 러시아에 연락하겠습니다.”

“그래, 그거 이외에는 방법이 없어.”

비서실장은 러시아 핫라인을 돌렸다.

연결이 됐는지 전화기를 차르라스에게 내밀었다.

“차르라스입니다.”

-잘 지냈냐는 소리는 못하겠네요.

“알고 계시겠지만……. 이대로는 그리스가 힘들 것 같습니다. 치안이 저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단호히 대처하겠습니다.”

-수상의 의지가 그렇다면 일단 조만간 비행기를 띄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뚝.

끊어진 수화기를 바라봤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나을지 몰라.

국민? 국가? 지랄하고 있네.

그런 허울에 진짜 자신을 보지 못한다면 보게 만들어 주면 되지.

그리스 국민을 향해 차르라스는 칼을 꺼내 들었다.

다 같이 죽자.

***

시카고은행.

은행장 브레드 갈레키는 자신의 콧수염을 돌돌 말면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거참, 일이 복잡하게 돼가네.

아예 러스트 벨트가 도날드 유세의 중심이 되어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잖아.

“공사는 어디까지 돼 있지?”

“만테노에서 홀게이트까지입니다.”

즉 일리노이주에서 인디애나주까지 공사가 완료됐다는 말이다.

이제 오하이오주와 펜실베이니아주를 거쳐 뉴욕까지 공사가 남아 있었다.

“월가 건물은 매입했어?”

“네, 저희 서버를 옮기는 일만 남았습니다.”

“가능할까?”

“서버만으론 속도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겠지만 FPGA 기판을 믿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월가 내에 우리만 쓸 수 있는 전용선을 매설할 수는 없겠지?”

“그건 불가능합니다. SEC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럼 빨리 서버를 옮겨.”

“네.”

비서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쩝.

갈레키는 의자에 등을 바짝 밀어 넣었다.

러시아에서 온 자금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나고 있는데.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까.

비서실장이 보내겠다는 추가 자금은 왜 도착을 안 하는 거야?

정말 믿음이 안 가는 놈들이라니까.

이때,

띠리리리링.

세르게이.

타이밍도 기가 막히지.

“네, 갈레키입니다.”

-왜 아무 소식이 없는 겁니까?

“대통령 선거가 끝나야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선거요?

“네.”

-알았습니다. 선거 조기에 승부가 나도록 이쪽에서 힘을 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조만간 그리스에 일이 벌어질 겁니다. 그때가 기회가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뚝.

서로 군더더기 없는 통화 내용이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할 건지 어떤 반응을 신호로 삼아야 하는지 일절 설명이 없었다.

그런데도 갈레키는 알 수 있었다.

누가 선거에서 패배해야 미국 정치에 혼란이 가중될지 뻔했으니까.

지지 세력이나 경력 면에서 앞서 있는 힐러리.

그녀가 이번에 져야 한다.

후후.

갈레키는 지금의 자신이 있게 된 기억을 떠올렸다.

무역 상인과의 거래로 근근이 은행이란 이름을 유지하던 1년 전.

다섯 명의 퀀트가 자신을 찾아왔다.

정확히 말해 러시아 수학자들.

그들이 내민 제안은 너무나 달콤했다.

몇 번의 실적으로 그 유용성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비서실장 서덜랜드가 접촉해 왔다.

마치 잘 짜인 각본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러시아와 미국이 손을 잡았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역시 돈 앞에서는 그 무엇도 장벽이 될 수는 없어.

하나 장벽이 있다면 투마로우.

그냥 모른 척해주면 좋겠는데.

아니, 신기술이라고 투마로우도 선행매매에 동참하길 바랐는데 쓸데없이 정의롭단 말이지.

임재준이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인물이라고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왜 우리를 방해하는 걸까?

혹시 우리가 투마로우 거래를 방해한 적이 있던가?

있다고 해도 우리 방법이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해 줄 텐데.

임재준을 한번 만나 볼까?

아니야. 미친 생각이지.

그렇지만 한번 보고 싶기는 하단 말이야.

미친 척하고 한번 마주쳐 볼까?

정신 차리자, 이번에 그리스에서 기회가 온다고 했다.

그 기회를 끝으로 이 나라를 떠야 한다.

***

러시아는 그리스의 치안을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터키의 반대에 힘입어 해안을 이용하지 못했지만, 군용기를 통해 그리스에 입성했다.

그리스 국민들은 러시아의 개입을 반대했지만 차르라스는 러시아를 환영했다.

그리고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러시아 군대는 먼저 황금새벽당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거의 절반이 넘는 황금새벽당 인원을 사살하고 나머지 잔당들을 깔끔하게 체포하여 알바니아에 넘겼다.

그리스 국민들은 러시아의 무력행사에 분노했지만, 누구 하나 총대를 메고 들고 일어서는 이는 없었다.

제2의 차르라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무력에 깜짝 놀란 주변국들은 무장을 위해 무기를 대량으로 수입하기 시작했다.

이에 수해를 입은 국가는 미국이 단연 으뜸이고 중국이 다음을 이었다.

그리스의 상황은 SNS를 타고 전 세계에 퍼져 나갔지만, 나라는 고사하고 누구도 그리스의 상황을 변호해 주는 이는 없었다.

침묵.

그동안 을의 갑질에 분노를 느낀 전 세계는 그리스의 어려움을 외면했다.

오히려 좀 더 지속되었으면 하는 맘이 더 컸다.

이제 그리스는 전 세계인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도와주기는 싫고 그냥 내버려 두기도 뭐한.

그저 그냥 언제까지나 생각 중이었다.

***

백악관.

대통령은 서덜랜드의 보고를 듣고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는 유럽의 안정을 원한다는 선에서 마무리합시다.”

“그럼, 그리스와 러시아 언급을 한 번으로 하겠습니다.”

한 번.

“그렇게 합시다.”

“네.”

서덜랜드가 뭔가를 메모했다.

대통령은 그 메모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말을 꺼냈다.

“힐러리는 힘들겠죠?”

“네, 다음 대선을 준비하는 게 옳을 듯합니다. 도날드는 흠이 많은 인물이니까 4년이면 충분히 끌어 내릴 수 있습니다.”

“참나, 이럴 줄 알았으면 버니 샌더스를 올리는 건데.”

“셀럽들이 등을 돌리자 기업들도 등을 돌린 게 컸습니다.”

셀럽? 기업?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요? 아니에요. 힐러리의 구태의연한 선거운동이 문제입니다. 도날드처럼 현장을 뛰어다녀야 했는데. 지금은 아직 금융위기의 여파가 국민 가슴에 남아 있어서 유명인 몇 명으로 해결되는 선거가 아니었어요.”

“그럼 힐러리 자금은 중단할까요?”

대통령의 눈빛이 서늘하게 서덜랜드에게 꽂혔다.

마치 꺼내지 말아야 할 단어를 꺼낸 듯.

“서덜랜드, 지금 무슨 말을 한 겁니까?”

마치 자신은 모르는 말인 양 되물었다.

아차 싶은 서덜랜드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힐러리에 돈을 대는 기업들을 얘기한 겁니다.”

“그렇죠? 난 또 무슨 다른 의미가 있는 줄 알았네요. 하하.”

목소리까지 바뀐 대통령의 모습.

“어차피 이번 대선은 공화당에 주고 우린 다음 선거에 대비해야 하는데……. 돈이야 항상 필요한 거고, 아, 참, 임재준은 뭐 합니까?”

말을 슬쩍 돌린다.

“팀 일부가 유럽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스 주변국을 중심으로 군사 장비 확장을 원하는 국가에게 채권을 발행해준다고 합니다.”

하하하.

“역시 임재준이네. 아니 어쩌면 이 상황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고.”

후.

웃으며 말했지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 임재준과 손을 잡을 수 없을까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은 도날드가 버티고 있지만, 임재준은 어디 적을 두는 성격이 아닙니다. 선거가 끝나고 가벼운 식사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럽시다. 괜히 모나게 굴어봐야 우리만 손해지. 그럼, 이쯤에서……. 어?”

팍.

대통령이 말을 맺으려는 순간 전기가 나갔다.

서덜랜드가 재빠르게 전등 스위치를 몇 번 움직여 봤다.

“전기가 끊긴 것 같습니다.”

“뭐요? 백악관 전기가 끊겨요?”

빠라라라라 팟.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위급한 상황 때를 대비해 설치한 자체 전력이 가동되었다.

후다다닥.

비서실 직원 하나가 급하게 달려왔다.

“대통령님, 미국 동부가 전부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되었습니다.”

“뭐요?”

“콘-에디슨 발전소가 3시간 전에 발전을 멈췄습니다. 예비 전력이 바닥을 드러내 정전이 되었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아직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일단……. 서덜랜드, 발전소로 갑시다.”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대통령님은 여기 계십시오. 제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그럼, 빨리 움직여요.”

지금은 오후 4시.

조금 있으면 어둠이 찾아온다.

그때는 어떻게 해 볼 수 없게 된다.

미국은 1977년과 2003년에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었다.

주요 시설에는 자가발전 시설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이런 대규모 사태에도 안전했다.

문제는 국민들이 이용하는 일반 시설들이 위험에 빠질 것이다.

먼저 지하철이 멈춘다.

가로등이 없는 도로는 자동차들의 주차장으로 변할 것이고 마비된 도로에 정차된 차량은 기동력을 마비시킬 것이다.

모든 공급망은 일시적이지만 마비가 된다.

그 짧은 시간을 버티는 게 관건이다.

실리콘벨리와 텍사스의 첨단 공장부터 미세한 공정을 다루는 반도체 연구실까지 모두 엄청난 손해를 볼 거고.

아, 하수처리는 또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할 수 없으니 상수원은 오염됐을 것이다.

수돗물을 마시던 빈곤층에서 전염병이 발병할지도 모른다.

서덜랜드는 거리로 나왔지만, 도로를 이용하기에는 벌써 늦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밖은 벌써 지옥이었다.

아아아악! 불이야!

곳곳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니 화재가 일어난 곳이 벌써 여러 곳이었다.

아마 어둠을 견디지 못하고 불을 다루다 일으킨 사고가 분명했다.

아직까진 괜찮아.

애써 자신을 위로하는데,

여기 사람 살려.

밖에 누구 없어요.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난무했다.

이건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의 소리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삐삐.

서덜랜드의 인공위성 무전기에 신호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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