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9화 속도보다 중요한 게 뭔지 알아?(10)
한층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재준의 연출이었다.
부아아아앙.
재준과 도날드를 태운 차가 급발진을 하며 출발하자 다시 유세장에는 롤링스톤즈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
우와아아아아아.
군중들의 함성을 뒤로하고 GT40은 멀어졌다.
뭐야? 이거 뭔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촉이 좋은 CNN 리포터가 카메라에게 신호를 보내고 쫓기 시작했다.
부아아아앙.
GT40은 무서운 속도로 달려 휴론에 도착하자 재준과 도날드는 내려서 달리기 시작했다.
휴론은 유세장에서 가장 가까운 오대호 주변 항구 도시.
“아니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겁니까?”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해 보는 겁니다. 어, 저기 있네.”
재준의 말에 도날드가 앞을 바라보니,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하는 쾌속정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51.36노트의 세계 기록을 자랑하는 괴물.
이름하여 플라잉 노트.
플라잉 노트 위에 엘리자베스가 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기야, 여기. 이 무식한 인간아. 갱, 협박꾼. 사기꾼아.”
물론 들리지 않는 거리였다.
헉헉헉.
플라잉 노트에 도착한 재준과 도날드가 빠르게 올라타자 시동이 걸렸다.
잠깐만요. 잠깐.
뒤늦게 도착한 리포터와 카메라가 엘리자베스를 향해 숨을 헐떡이며 손을 내밀었다.
“우리도 태워 주세요.”
엘리자베스는 바로 타라는 손짓을 했다.
이왕 시끄럽게 하려면 증인이 있어야겠지.
“타요.”
“감사합니다.”
음.
재준은 아주 만족스럽게 엘리자베스를 바라봤다.
확실히 일 처리가 늘었어.
아주 좋아.
부아아아아아앙.
플라잉 노트가 출발하고 오대호를 거칠게 헤치고 지나갔다.
CNN 리포터는 급하게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부장님,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뭐야, 하나도 안 들려.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플라잉 노트의 소음에 통화가 어려운 상황.
리포터는 팟팟팟 몇 장의 사진을 찍어 부장의 핸드폰에 전송했다.
“보이십니까? 도날드와 임재준이 일을 벌였습니다. 빨리 헬기 지원 바랍니다.”
-헉, 이게 뭐야?
도날드와 임재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요트.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감도 안 온다.
뭐 하는 거지?
사진을 확인한 CNN 부장의 고함이 핸드폰으로 전해졌다.
-야, 당장 헬기 띄워. 특종이야. 특종.
-그래, 내가 책임진다니까 빨리. 빨리.
요트가 디트로이트 윌리엄밀리켄 항구에 가까워져 오자 속도를 줄이고 선착장에 섰다.
재준과 도날드가 뛰어내리자 이번엔 GT40의 2002년형 포드 GT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리자베스가 재준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 난 홀랜드로 간다.”
“오케이.”
최르르르르르.
재준과 도날드는 GT에 몸을 싣고 다시 굉음을 내며 출발했다.
부아아아아앙.
***
긴급 속보입니다.
도날드 대통령 후보와 투마로우 임재준이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지금 이들은 클리블랜드 유세를 마치고 미국의 자존심인 GT40을 몰고 오대호까지 이동하였으며, 이후 플라잉 요트로 디트로이트에 도착한 상태입니다.
아, 다시 GT를 몰고 출발했다고 합니다.
***
끼이이이익.
GT가 도착한 곳은 조 루이스 아레나 경기장.
백혈병 어린이를 위한 자선 경기가 한창이었다.
선수는 타이슨과 홀리필드.
1997년 경기중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때기를 물어뜯는 사건 이후 18년이 지나 자선 경기에 나섰다.
물론 둘은 화해를 했고 둘 다 은퇴한 상태.
2009년에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타이슨의 막내딸이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타이슨은 몇 년을 침묵으로 보내고 속죄하는 맘으로 백혈병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 경기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홀리필드도 동참 의사를 밝혔고.
둘은 최선을 다해 경기를 펼쳤다.
경기가 끝나고 둘은 얼싸안은 후 두 손을 높이 들어 관중을 향했다.
짝짝짝짝짝.
친선경기이며 어린이를 위한 행사이기에 사람들은 입추의 여지가 없이 꽉 들어찼다.
타이슨이 마이크를 잡았다.
“홀리필드 고마워.”
서로 주먹 인사를 하고,
“감사합니다. 여러분 혹시나 이번 행사에 저의 지난 과오 때문에 망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짝짝.
휘이익. 휘이익.
관중들은 박수와 휘파람으로 타이슨에게 존경을 표했고 타이슨이 다시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때,
“천만, 천만 달러 기부합니다.”
모두의 고개가 위층 맨 위에서 내려오는 두 명의 인물에게 고정되었다.
도날드?
가만, 저긴 임재준?
둘은 천천히 내려와 무대로 향했다.
“도날드, 자네가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지금 클리블랜드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타이슨과 도날드는 원래부터 꽤 친한 사이.
“여기, 임재준이 자네 행사에 천만 달러를 기부한다기에 내가 부리나케 달려왔지.”
임재준?
재준은 타이슨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타이슨은 재준을 포옹으로 답했다.
이어 홀리필드까지.
타이슨이 마이크를 들었다.
“여러분 저의 친구 도날드와 천만 달러를 기부한 투마로우 임재준에게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와아아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
휘이익, 휘이익.
군중은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촤르르르르르르.
카메라가 일제히 돌아갔고 그 중 CNN의 카메라도 있었다.
특종이다. 특종.
***
긴급 속보입니다.
도날드와 임재준이 클리블랜드에서 디트로이트로 달려간 이유는 오랜 친구인 타이슨의 백혈병 어린이 자선 경기에 참석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임재준은 그 자리에서 천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다시 검은 늑대 발바닥이 그려진 블랙워터의 헬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났다고 합니다.
저희 취재진이 급히 헬기로 쫓아가고 있습니다.
갑자기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자세한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지만, 일종의 선거 유세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다시 속보로 알려드리겠습니다.
***
투다다다다다다다닥.
블랙워터 헬기가 미시건 주의 동쪽 끝 디트로이트에서 서쪽 끝인 홀랜드에 도착했다.
재준은 내리며 테론과 카빌에게 손 인사를 하고 바로 엘리자베스가 대기하고 있는 플라잉 요트에 올랐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그냥 헬기로 밀워키까지 날아가면 될 것을.
으유, 저놈의 관종.
부아아아앙.
플라잉 요트가 다시 물살을 가르며 밀워키를 향했다.
요트 앞에서 바람을 맞으며 재준과 도날드가 섰다.
“다음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위스콘신 대학이요.”
“거기 누가 또 있습니까?”
“클린트 이스트우드.”
“클린트가 거기 왜 있습니까?”
“오늘 위스콘신에서 특별 강의를 한다고 했습니다. 어디 보자.”
재준이 시계를 보며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시간이 빠듯하긴 한데. 나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아저씨, 곧 도착해요.”
“오케이.”
플라잉 요트가 하버뷰에 들어서서 속도를 줄였다.
와아아아아아.
이미 뉴스를 접한 밀워키 시민들이 플라잉 요트를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그리고?
도날드, 도날드, 도날드.
를 외쳤다.
재준은 도날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어때요. 금방 인지도가 올라가는 것 같지 않아요?”
“허, 이거 이렇게 유세를 하는 건 처음이라 어리둥절하네요.”
“자, 갑시다. 이제 시작이니까.”
재준은 주변을 살피자 워서스틴이 저쪽에 거대한 무언가를 천으로 덮고 있는 게 보였다.
저쪽.
재준이 성큼성큼 다가가자 워서스틴이 천을 확 들어 올렸다.
우와!
주변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은은한 은빛을 내는 오토바이 Y2K가 있었으니까.
오토바이 주제에 롤스로이와 엘리슨이 만든 항공기 엔진이 장착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오토바이.
후, 후.
심호흡을 한 재준은 오토바이에 앉았다.
개조한 뒷좌석에 도날드가 앉았다.
워서스틴이 고생 좀 했겠는데. MTT가 자신의 오토바이를 개조하는 걸 아주 싫어하는데.
그래도 홍보해 주고 좋지, 뭐.
원래의 재준, 아니 차강진의 오토바이 운전 실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다.
속도를 내는 건 꿈도 못 꾸는 실력, 하지만,
왜 이렇게 자연스러운 거야?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느낌인데.
이럴 땐 망나니 임재준이 되살아 난 것 같아.
어디 한번.
시동을 걸자.
크아아아아앙.
마치 땅속으로 파고 들어갈 것 같은 소리가 울렸다.
헬멧을 쓰며 재준이 말했다.
“도날드, 가 볼까?”
“오케이.”
부릉, 크아아아아아앙.
미친 듯한 소음과 함께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속도로 재준과 도날드가 멀어졌다.
워서스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워서스틴도 보스는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어느새 다가온 엘리자베스.
“이게 다 무슨 짓이래.”
“이건 다 그놈의 인터넷 속도 때문이야.”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요즘 매일 속도, 속도, 속도 하면서 중얼거렸거든. 그러니 모든 문제를 속도로 풀고 있잖아.”
“그래?”
“아니면 왜 이런 미친 계획을 짜겠어.”
“하긴 위스콘신 대학에서 영화감독 클린트를 만나고 전용기로 로스엔젤레스로 날아가 농구 스타 르브론을 만나고 헐리우드로 가서 영화배우 로다주를 만난 후 다시 테네시까지 날아가 빌보드 스타인 싱어송라이터 마일리 사이러스를 만난다. 이건 확실히 미친 짓이지. 거의 미국을 하루 만에 돌겠다는 거잖아.”
“미쳤어. 어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팀원들도 전부 같은 생각인 거 같은데.”
끄덕끄덕.
엘리자베스는 인정했다.
이 계획은 너무 무모한 계획이었다.
하루 만에 미국 여섯 개 주를 왔다 갔다 하겠다는 생각 자체도 엉뚱하지만, 만나는 스타들도 문제가 있었다.
“근데 타이슨과 클린트는 도날드를 지지하는 셀럽이라서 만난다고 해도 르브론이나 로다주, 심지어 마일리는 도날드를 싫어하는 스타들 아닌가?”
“그래서 보스가 같이 가는 거야.”
“그들이 보스를 좋아해?”
“좋아할 수밖에 없지.”
“좋아하는 게 아니라 싫은 티를 못 내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내 말도 그거야. 괜히 보스에게 잘못 보이면 앞으로 인생이 어떻게 꼬일지 모르는데 싫은 티를 낼 수가 없지.”
“그러면 자연히 도날드는 호감을 받게 되겠네.”
“아마 보스가 노리는 것도 그걸 거야. 러스트 벨트를 잘 지키라고 했더니 진짜 도날드가 잘 지켜줬으니까.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이번 일을 계획했을 수도 있고.”
“아유, 그나저나 어떡해. 내일부터 신문에 도배가 되겠네. 또 한바탕 시끄러워지겠어.”
“내 말이.”
***
속보입니다.
도날드와 임재준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감독과 위스콘신 대학에서 만나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두 명사의 방문에 위스콘신 대학에 일시적으로 군중이 몰려 대학 일대의 교통이 마비되었습니다.
***
속보입니다.
LA 클리퍼스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타 컨퍼런스 경기가 종료되는 순간 도날드와 임재준이 등장하며 장내는 삽시간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이날 르브론은 도날드와 임재준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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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입니다.
마블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촬영 현장에 도날드와 임재준이 등장했습니다.
촬영장 공개를 극도로 꺼리는 마블이지만 잠시 촬영을 중단하고 임시 거처에서 도날드와 임재준을 만났다고 합니다.
이날 임재준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로버트의 아내가 운영하는 영화 기획사에 관한 이야기를 한 시간가량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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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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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CNN의 뉴스는 속보로 도배가 되었다.
커뮤니티 사이트엔 댓글로 찬반 여론이 불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