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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267화 (267/477)

제267화 속도보다 중요한 게 뭔지 알아?(8)

도날드 유세 현장.

“여긴 말이지. 여러분의 땅이고 여러분의 직장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저기.”

도날드는 뉴욕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전부 때려눕혀야 정신을 차린다는 거지. 내 말이 틀려!”

도날드는 주먹을 쥐고 누군가를 위협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와아아아아아아.

도날드. 도날드. 도날드.

재준은 그런 도날드를 보며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도날드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내 꼴리는 대로 하란 말이지.

잘 보라고, 내가 기존 정치인들에게 빅엿을 먹여줄게.

도날드는 14년 넘게 예능을 해온 방송인으로 WWE 프로레슬링에도 오랫동안 관여했던 경험이 있었다.

심지어 레슬매니아에 두 번 참가한 경험도 있다.

지금 저 포즈, 저게 바로 도날드가 더 락이 보여주었던 마이크웍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잖은가.

“러스트 벨트라니 누구 맘대로 그렇게 부르라고 했지? 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부른 거 아냐? 우리가 언제 이 땅이 녹슬었다고 느낀 적 있나?”

아무도 없지.

여긴 아직 일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널렸다고.

여긴 오일링 벨트란 말이지.

와아아아아아아.

“오, 좋아, 브라더. 나는 여길 오일을 바른 민들민들거리는 곳으로 생각하는데, 그리고 앞으로 더 기름칠이 돼 있는 곳으로 만들 거란 말이야. 그러니 나를 믿어 보라고. 내가 반드시 각자의 손에 스패너를 놓지 않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와아아아아아아.

“근데 말이야. 솔직히 저쪽에 있는 인간들이 할 수 있으면서 안 하는 것들이 많지. 그중 하나가 바로 불법 이민자들이란 말이야. 그들이 우리 삶을 갉아 먹고 있는데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아. 그놈들이 내 직장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멕시코에 장벽을 세워서 불법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할 건데. 어때?”

와아아아아아아.

“혹시 여러분이 내가 돈이 많은 부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래서 내가 자유롭다니까. 난 대통령이 되면 불법 자금을 받을 일이 없잖아. 내 맘대로 할 수 있단 말이지. 중국, 그 웃기는 자들이 미국에 물건 팔아서 돈을 벌어가면서 미국 물건을 안 사간다는 게 말이 되냐고. 우리가 뭐 호구인가?”

재준은 도날드의 연설을 들으며 아주 만족했다.

그래, 막 나가는 거야.

듣는 사람이 다 시원하잖아.

도날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보기에도 민망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게 잘하는 거라고? 저게 진짜 대통령이 될 사람이 할 말이야? 반말에, 상대 디스에. 어휴, 누구랑 붙어 있으니 사람이 변했네. 아주 저질로 변했어.”

엘리자베스가 이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잘하는데.”

“저게요? 자기 유권자 아니면 정치인이든 기업인이든 심지어, 국가에게 욕설을 퍼붓는데? 저 말하는 것 좀 봐요. 뭘 모르는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니까.”

“너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모르는 거야? 이제 있는 척, 아는 척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클릭 몇 번이면 다 들통나는 시대에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게 왜? 저기 봐. 사람들 엄청 좋아하잖아. 그동안 얼마나 억눌렸으면. 쯧쯧쯧.”

“아이고 잘났네. 잘나셨어요. 정상적인 사람이 없어. 전부 오염되고 있는 거야. 누구한테.”

“너부터.”

“난 아니거든요.”

흥.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바라봤다.

값비싼 슈트를 입은 몇 명의 사람들이 유세장 뒤편에서 도날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근데 아저씨. 저 사람들은 뭐야? 여기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하고 여길 계속 감시하는 것 같은데.”

“그래?”

재준은 엘리자베스가 쳐다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검은 양복을 입은 일반적인 회사원.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로고가 새겨진 고급 세단.

응? 저 차의 로고는 꽤 익숙한데.

아무튼, 로고 뒤에는 커다랗게 ‘시카고’라고 프린트되어 있어서 어디 출신인지는 알 수 있었다.

“시카고 놈들이잖아.”

“저 사람들이 왜? 시카고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여긴 상관없는 곳이잖아.”

“아니지. 시카고에서 출발해서 뉴욕까지 광케이블 공사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곳곳에 공사가 진행되는 구간에서 도날드 선거 운동을 하고 있잖아. 공사가 일시 중단된 거야.”

“중단?”

엘리자베스는 미간을 찡그리며 재준을 봤다.

“그럼, 일부러 여기서 선거 유세를 하는 거예요? 아직 본격적인 선거에 돌입하지도 않았는데.”

“그렇지. 어때? 내 아이디어가.”

“그럼, 여기서 계속 선거 유세를 할 거예요?”

“당연하지. 저기 보이려나. 10km 뒤에 그리고 앞에. 일렬로 죽 늘어서서 선거 유세를 하는 거야. 도날드가 다른 지역으로 가도 여긴 매일 매일, 아주 지겹게.”

헐.

시카고 사람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겠네.

“여길 좀 돌아서 공사할 수도 있잖아요.”

“아니, 그렇겐 안 돼. 이길 아니면 힘들지. 그럴 거면 기존의 선을 이용하지 왜 여기에 매설하겠어?”

“그런가?”

“그렇지.”

갑자기 적에게 연민이 생긴 엘리자베스는 시카고 사람들을 쳐다봤다.

대충 그만두지.

아저씨랑 엮여서 좋은 꼴 본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재준은 순간 고급 세단에 새겨진 로고가 번쩍 떠올랐다.

저건 시카고뱅크의 로고였다.

로고가 은행과 전혀 상관없이 총 두 자루가 크로스 되어 있어서 방산 업체인 줄 착각했던 것까지.

맞아, 시카고뱅크는 힐러리에게 거액의 선거자금을 유통하고 그 내역을 공개하길 거절했지.

그럼 이 공사는 힐러리 선거자금을 위한 거란 뜻인가?

힐러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무언가 이득을 얻을 것이고.

설마 선행매매의 합법(?)은 설마 아니겠지.

아니지, 그럴 수도 있지.

잠시 후 시카고 사람들은 그만 돌아가자는 듯 신호를 주고받으며 돌아섰다.

100여 미터를 걸어가더니 그들이 타고 온 승용차에 올라탔다.

“어때?”

현장을 보고 온 사람이 차 안에 있는 이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만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이거 매일매일이 돈인데. 하필 선거철에 일정을 잡아서는.”

“원래 선거철에는 러스트 벨트에 아무도 오지 않았어. 여긴 민주당 텃밭이니까. 도날드란 미친놈만 빼고.”

“이제, 어쩌지?”

“우리가 할 게 없어.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제기랄, 하필 공사가 절반이나 진척된 상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건 뭐야?”

“본사에 전화 한번 해봐. 우리도 한계가 있잖아. 돈을 더 대든가. 아니면 여기서 접든가.”

“그래야겠지…….”

일행 중 하나가 핸드폰을 들어 통화를 시도했다.

띠리리리링.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그래, 상황은 안 좋겠지.

“네. 10km마다 선거 본부를 설치해 놓아서 공사는 일단 중단되어 있습니다.”

-후후, 그렇단 말이지. 약간 우회할 여유도 없고?

“전혀 없습니다. 그럴 바에는 기존 선을 이용하는 게 효율적입니다.”

-그래……. 근데 정말 우리가 매설할 위치에 정확히 선거 본부가 설치된 건가?

“네. 너무 정확해서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하하하. 알았어. 그만 철수해.

“네.”

왜 웃으시는 거지?

지금 굉장히 심각한 상황인데.

***

시카고.

“들으셨죠. 상황이 이렇습니다.”

콧수염 신사가 서덜랜드에게 핸드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금이 더 필요한 거면 걱정 마세요. 이미 얘기해 놓았으니 입금될 겁니다.”

“자금 문제가 아닙니다. 시간이 문제지요.”

“선거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면 안 됩니다.”

“자꾸 우리한테 떠넘기지 말고 그쪽에서 해결할 일은 해결해 주셔야지요. 우리야 장소가 확보되면 공사를 진행하면 되는데 이건 우리가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끙.

서덜랜드는 신음을 내었다.

빌어먹을 도날드.

하필 왜 러스트 벨트로 몰려와서.

“근데 아까 보고를 들어서 아시겠지만, 우리 공사 구간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이게 뭘 뜻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렇지.

우연치고는 일치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

“우리 쪽에서는 공사 구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정보가 새어 나갔다면 버라이즌에서 새어나간 겁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뭐야? 이놈은 뭐가 이리 태평해.

“우리가 알아보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리고…….”

콧수염이 하던 말을 멈추고 자신 앞에 놓인 술잔을 매만졌다.

“월가에 직접 들어가야겠습니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요.”

“그건 분명 위험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투마로우는 그렇게 만만한 놈들이 아닙니다.”

“압니다. 하지만 우린 사람을 상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싸우는 상대는 알고리즘, 시스템입니다. 만약에 패하더라도 다시 짜면 되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당신은 사람이 아니고 뭔데요? 임재준은 분명 당신을 알아내서 제거하려고 할 겁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아는 임재준은 절대 불법을 저지르지 않던데. 업자를 시켜 누굴 죽인다거나 고문을 했다는 소린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한번 붙어 보고 만약에 실패한다 해도 크게 손해 볼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껏해야 돈 몇 푼 날리는 거죠.”

여기 또 임재준을 모르고 덤비는 놈이 있네.

그러다 제이콥이 어떻게 됐는지 아나?

이거 말을 할 수도 없고.

“당신은 돈 몇 푼이지만 만약 우리 정체가 들통나면 대통령이 바뀌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 일이 없게 하는 게 그쪽 일인 걸로 아는데. 자꾸 책임을 이쪽으로 넘기는 듯한 말은 하지 마십시오.”

이 능구렁이 같은 놈.

시카고에서 무역 상인으로 잔뼈가 굵은 놈이라 상황파악이 빠른데도 절대 서두르지 않아.

어쩌면 월가에서 투마로우에게 한 방 먹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지.

이번 싸움은 인간 대 인간이 아닌 퀀트 대 퀀트의 싸움이니까.

어쩌면 임재준은 손 놓고 당할 수도 있어.

“좋아요. 월가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알아보겠습니다.”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힐러리와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아이고, 이거 말하지 말아야 할 이름을 입에 올렸네요. 그냥 못 들은 거로 해주십시오.”

일부러 들으라고 해놓고.

이놈 은행장이란 놈이 마치 꼭 갱단 같은 느낌이야.

“입 좀 조심하세요. 자칫 누가 듣기라도 했다면 이번 선거에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걱정 마시라니까 그러네요. 지금 내가 진짜 잘못 말한 거로 보입니까?”

능구렁이 같은 놈.

“압니다. 우리도 되도록 협조할 테니 월가에 들어가면 실수 없이 일을 처리해야 할 겁니다.”

“아까부터 같은 말을 하게 하는데 우린 이미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비서실에서나 잘해 주세요.”

이놈이 자꾸 힐러리에 이어 비서실까지 내뱉고 있어.

시카고은행장 브레드 갈레키.

이놈도 뒤 좀 캐서 약점을 확실하게 쥐고 있어야 안심이 되겠어.

러시아에서도 자금을 지원받는단 소리가 있던데.

설마 이중 스파이는 아니겠지.

아니, 모를 일이야.

사람 속을 어떻게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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