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266화 (266/477)

제266화 속도보다 중요한 게 뭔지 알아?(7)

레이와 셀레나 집.

“셀레나, 나 왔어요.”

“쉿 조용.”

퇴근한 레이에게 셀레나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주었다.

뱅가모에 팀장으로 복직한 레이는 일주일에 한 번 들어오면 잘 들어오는 편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왔는데 셀레나가 TV를 보는 아기를 뒤에서 턱을 괴고 쳐다보고 있었다.

조용히 셀레나 옆으로 다가갔다.

“뭐 하는 거야?”

“진이 하루 종일 저러고 있어요.”

셀레나는 레이에게 아기를 보라고 손가락으로 진을 가리켰다.

진은 재준과 엘레자베스의 유전자를 가진 아기 이름.

셀레나가 하루 종일 지켜본 진은 TV를 보며 입으로 옹알옹알거리고 있었다.

레이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이제 7개월이니 시각이 아직 형성되지 않아 가운데 형상 외에는 뿌옇게 보일 텐데. 뭘 알고 보는 건가?”

“그런 것 같아요. 유아는 TV 소리를 끄고 봐야 머리가 발달한다고 해서 음소거를 하니까 진이 저를 노려보는 거 있죠?”

“뭐? 노려봐? 안구 운동이 가능한가? 아니,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현했다고?”

“그러니까요. 지금도 잘 들어 보면 옹알거리는 것 같은데 나레이터의 음성을 따라 하고 있어요.”

“정말?”

레이는 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옹알옹알.

정말 비슷하네. 진짜 따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레이는 걱정 반 기대 반의 심정이었다.

일반 아이와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단 울지를 않았다.

보통 아이들은 배가 고프거나 응가를 하면 울음으로 표현을 하는데 진은 달랐다.

배가 고프면 분유가 있는 곳에 가고 응가를 했다면 기저귀가 있는 곳에 가서 부모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빨리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듯.

그리고 하루 종일 TV를 시청하는 게 일이었다.

옆에 리모컨을 딱 놓고.

아무리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벌써 앉을 수 있는 근육이 생겼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저 리모컨은 사용할 줄 알아?”

“아니요. 그냥 마구 두드려서 채널이 바뀌면 또다시 뚫어지게 쳐다봐요. 잘못 눌러서 엉뚱한 화면이 나오면 제가 바꿔주고요. 제가 하는 일은 그게 다예요.”

“잠은?”

“잘 자요. TV를 보다가 어느샌가 보면 옆으로 쓰러져 자 버려요.”

“거참, 신기한 아이네. 피곤할 텐데.”

레이가 안쓰러운 표정을 짓자 셀레나가 화제를 돌렸다.

“요즘 회사는 어때요?”

“말도 마. 매일 철야야. 머리라도 똑똑한 자식을 원하는 부모가 어디 한둘이겠어. 전 세계에 돈 있는 사람은 다 몰린 것 같아. 심지어 나이 지긋한 노인도 자식을 갖겠다고 왔어.”

“에휴. 그렇겠죠. 자신들이 못다 이룬 꿈을 자식에게 투영할 기회인데 오죽하겠어요. 적은 돈도 아니잖아요?”

“그렇지, 한 가지 수선에 1,000만 달러니까. 비싸긴 하지. 지금 안정적인 수선은 세 가지까지야. 3,000만 달러지. 그런데도 대기 번호가 끝도 없어. 회사실적은 매 분기 서프라이즈라니까.”

“인력 충원은 하고 있어요?”

“그럼. 하지만 이 분야가 지금까지 눈치만 보던 분야인데 전공자가 얼마나 되겠어. 다행인 건 곧 대학을 세운다니까 그나마 인력풀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꼭 재조업 같아요.”

후.

“맞아. 요즘 들어 문득문득 이게 진짜 잘하는 일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아.”

“여보, 이미 시작된 세상이에요. 뒤돌아보지 말아요. 앞으로 20년이면 우리가 알던 세상이 아닐 거예요. 그게 찬란한 신세계든 암울한 아포칼립스든 이제 그들이 만들어 갈 거예요.”

“그렇긴 한데. 아포칼립스면 어쩌지?”

이때,

진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쉿.

시끄러.

헉!

레이와 셀레나가 동시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7개월에 말을 한다고?

***

러시아.

푸하하하하.

푸챠르가 세르게이의 보고에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심각한 보고였다.

그리스가 유럽 연합을 탈퇴했다는 충격적인 발표였다.

거기에 주변국들은 그리스에서 유입되는 난민에게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철저한 봉쇄였다.

그런데 푸챠르가 놀라기는커녕 재밌다는 듯 크게 웃었다.

“임재준이 3차 구제금융 협상에 참석해서 차르라스를 짓밟았단 말이지.”

“네, 정확한 내용은 곧 알게 되겠지만 차르라스가 이틀 동안 식음을 전폐할 정도라고 합니다.”

“멍청한 차르라스. 한 나라의 수상이란 놈이 상대가 누군지는 알고 대화를 하든 싸움을 하든 해야 할 거 아냐? 임재준이면 일단 피하고 봐야지. 하여튼 머리 나쁜 놈이라니까.”

“내부 정보통에 의하면 그리스 문제로 한동안 나라 밖 상황을 신경 못 쓴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문제라는 거지. 그럴 때일수록 밖의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야 하는 건데. 다른 나라를 이용해서 그리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거 아냐? 멍청한 놈. 뭐 우리로선 잘된 일이지.”

푸챠르의 말에 세르게이가 이해가 안 되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된 일이라면 어떤 점을 말씀하신 겁니까?”

쯧쯧쯧.

푸챠르는 ‘너도 별수 없는 놈’이라는 듯 혀를 차며 벽에 있는 지도를 가리켰다.

“저기.”

“네, 어디를 말씀하신 겁니까?”

“그리스, 그리스 위치 말이야. 절묘하지. 유럽과 아프리카, 아랍의 중심에 있잖아. 참 좋은 땅을 가졌어. 삼면이 바다이고. 바로 러시아가 원하는 지정학적 위치야.”

“설마 그리스를 품으시려는 겁니까?”

“내가 차르라스가 멍청하다고 왜 했겠어?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다른 나라를 이용해야 우리가 살 수 있는 거라고.”

“…….”

“당장 차르라스한테 전화 연결해 봐.”

“네.”

세르게이는 전화를 걸어 큰 소리 몇 번 쳤다.

“그러니까 수상을 바꾸라고.”

잠시 후 세르게이가 푸챠르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연결되었습니다.

“여보세요.”

-네, 차르라스입니다.

“꽤 힘든 시간을 보내시는 것 같은데.”

잠시 말이 없다가,

-도와주실 겁니까?

“그럼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 전에 말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관세동맹에 가입하면 됩니다.”

관세동맹은 2010년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결성됐다.

통합관세율, 통합관세법을 적용했으며 2011년부터는 3국 간의 통관절차가 모두 폐지됐다.

지난번 그리스 1차 구제금융 때 러시아가 한 번 제안했는데 그리스가 거절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럽시다. 우선 곡물과 석유, 천연가스를 공급하죠.”

-감사합니다.

관세동맹이 원하는 건 하나다.

바로 러시아에 복속해서 미국을 중심으로 확장되어가는 글로벌 경제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

뚝.

전화를 끊고 지도를 바라보는 푸챠르의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그리스라…….

이거 의외로 큰 수확이 될 수 있겠는데.

“당장 곡물을 공급할까요?”

“아니, 확실히 관세동맹 서류에 사인을 하면 그때 조금 풀어줘. 그리스 놈들은 아쉬운 게 뭔지 모르는 놈들이야. 살려 내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할 놈들이지. 이런 놈들은 죽지 않을 만큼만 살려 놓으면 돼. 나는 그리스가 필요한 거지, 그 땅에 사는 쓰레기들이 필요한 게 아냐.”

“네.”

푸챠르는 아주 만족했지만, 세르게이는 큰 문제가 떠올랐다.

나토.

“대통령님, 그리스가 관세동맹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리스가 나토를 탈퇴한다는 전제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에 러시아군이 들어갈 명분이 생기는 거잖아.”

또 침략을 하겠다고?

“우린 가만 있어도 돼. 그리스 주변국들이 알아서 그리스에 총을 들이밀 테니까, 그때 동맹국 보호를 핑계로 점령하면 되지. 거참, 임재준이 웬일로 우리에게 도움을 다 줬어. 하하하.”

“그럼,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항이 중요하게 되겠군요.”

“그렇지. 크림반도를 차지한 게 이렇게 도움이 되네. 하하하.”

크림반도가 중요해진다.

세르게이는 이번 일만 잘 되면 ‘크림반도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스에 군대가 파견된다면 당연히 가장 중요한 항구는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항이다.

여기가 그리스를 통제하는 전초 기지 역할이 될 게 뻔했다.

잘하면 크림반도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세르게이. 크림반도는 자네가 지금보다는 훨씬 잘 다룰 수 있잖아.”

“그렇습니다.”

좋아, 그렇지, 이렇게 나와야 그림이 되지.

“이번 미국 일만 처리하고 크림반도로 갈 준비하도록 해. 거기도 자네가 없으니 돌아가는 게 영 못마땅해.”

“알겠습니다.”

추가로 현안을 정리한 세르게이는 밖으로 나왔다.

후.

됐다.

이제 알고 트레이더와 힐러리 메일 해킹 문제에 집중하면 된다.

제발, 이번 일만 무사히 끝내자.

세르게이는 다짐이라도 한 듯 거세게 기침을 내뱉었다.

***

AAG 빌딩 66층.

“와, 보스는 언제 그리스에 가신 겁니까?”

펠그리니는 일주일 만에 연구실에서 나왔더니 또 재준이 대형 사건을 터뜨린 소식을 듣고 엄지 척을 날렸다.

그 옆에서 박혁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조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재준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속도보다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바로 기동력이란 거야. 남자는 기동력. 사업을 하려면 기동력이 필수지.”

“아니 무슨 알고 트레이더도 아니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뭐, 그렇게까지.”

쯧쯧.

이 소리는 재준이 혀를 찬 게 아니다.

“근데 그리스는 왜 또 못살게 괴롭히는 거예요?”

엘리자베스가 못마땅한 심정으로 내뱉은 말이다.

재준이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엘리자베스를 봤다.

넌 두꺼비를 삶아 먹었니?

볼살은 왜 부풀리고 그래?

“돈을 안 갚는다잖아.”

“그럼 살살 달래서 일을 하라고 해야지. 다짜고짜 유럽 연합에서 쫓아 내버리면 어떻게 돈을 갚아요?”

“아니야, 그렇게 하면 안 돼. 살살 달래는 것도 개인일 때나 가능한 거지. 나라를 상대할 때는 그러면 안 돼. 그리스를 봐. 이놈 저놈 이야기 들어 본다고 하더니 아예 국민 전체의 의견들 들어 본다잖아.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그렇게 해서 언제 일을 진척시키고 언제 돈을 벌어?”

“으이그, 못마땅해.”

“아니 너는 왜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몰라요.”

“그나저나 카킬과 ADM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같이 가자.”

“만날 필요 없어요.”

“이건 네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중요한 문제라고.”

“아저씨가 원하는 거 이미 내가 이야기했어요. 그리스에 곡물 당분간 들어가지 않아요.”

“뭐? ADM도?”

“네. 협박도 좀 하고.”

와, 이제 손발이 조금 맞는 거야?

“네가 어떻게 알고?”

“신문 보고요.”

헉!

그새 배웠네.

이제 인공지능이 알려줬다고 해야겠다.

펠그리니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보스, 알고 트레이더들이 버라이즌과 짜고 케이블을 매설한다고 합니다.”

“그래? 어떻게 알았어. 신문에도 안 나왔는데.”

흠, 흠.

박혁이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아, 실력 발휘를 좀 했구나.

“매설 구간은 알아냈고?”

“여기요.”

펠그리니와 박혁이 지도를 가져와서 쫙 펼쳤다.

“여기 이렇게.”

펠그리니가 시카고와 뉴욕을 일직선으로 죽 그었다.

“이렇게 직선이란 말이지?”

“네. 절반 정도 진행된 상태예요.”

“절반. 근데.”

어디서 많이 보던 곳인데.

“여긴 러스트 벨트네.”

“네. 맞아요.”

가만 여기는 도날드가 대선 동안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지역인데.

그렇다면 아주 잘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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