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1화 속도보다 중요한 게 뭔지 알아?(2)
“우선 헤드헌터로 위장해서 경쟁사 퀀트에게 접근해 면접을 핑계로 알고리즘 설계를 묻는 겁니다. 그리고 알고리즘이 괜찮다 싶으면 며칠 후 퀀트에게 탈락했다고 알리고 입을 닦는 겁니다.”
나쁜 놈이긴 한데.
“음, 하지만 헤드헌터가 실토하기 전에는 입증하기가 어렵겠군요.”
“또 있습니다. 퀀트를 입사시킨 다음 알고리즘이 완성되면 수익을 내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그리고 퀀트의 회선에 딜레이를 걸어서 수익률을 떨어뜨리고 해고해 버리는 수법도 있습니다.”
이건 좀 더 나쁜 놈이네.
“음, 하지만 이것도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회사를 압수 수색할 수가 없으니 어렵네요.”
“최근 기소된 사건이 하나 있는데 리버스 엔지니어링 프로그램을 사용한 예입니다.”
“음, 이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이라 회사의 불법을 잡아내기가 힘듭니다.”
에이.
결국 재준이 폭발했다.
“그럼, 앉아서 자수할 때까지 기다린단 말이에요?”
“아니, 왜 화를 냅니까? 나도 답답하니까 그런 거지.”
“그럼,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뭐가 뭔지 아직 모르겠단 말이에요. 그렇다고 퀀트를 다 잡아 가둘 수는 없잖아요.”
에이.
제이크와 재준이 서로 고개를 돌렸다.
펠그리니는 중간에 끼어서 둘을 황당하게 쳐다봤다.
“두 분 다 공부 좀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둘 다 모르면서 서로 미루는 거 같은데.”
재준과 제이크가 동시에 펠그리니를 쳐다봤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가 왜……. 모르네. 몰라.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후.
“사실 퀀트는 뱅커가 아닙니다. 탐험가나 과학자에 가깝습니다. 시장과 데이터 사이의 상관관계를 푸는 걸 즐기는 거죠. 저처럼.”
너처럼…….
재준의 펠그리니를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했다.
맞아. 돈도 싫다. 직위도 싫다.
오직 연구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할 뿐이었지.
“그럼, 너 같은 순진한 사람들을 뒤에서 이용해 먹는 놈들이 나쁜 놈이네.”
“그렇죠. 그러니까 퀀트를 잡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긁적긁적.
제이크가 뭔가 잡힐 듯 말 듯 하자 자신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을 긁었다.
“그럼, 책임자만 잡으면 되는데. 뭔가 될 것도 같은데 딱 맞아 떨어지는 게 없네.”
이때.
쾅.
재준이 책상을 내리쳤다.
아, 깜짝이야.
“그럼, 퀀트 펀드를 만들어 보자.”
“네?”
“퀀트 종류별로 펀드를 만드는 거야.”
“왜요?”
“대중에게 알리는 거지. 우리부터 이런저런 기법을 이용해서 수익률을 이렇게 저렇게 만들겠다고 다 까발리는 거야.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기업은 소송을 걸어.”
아.
“그럼, 너도나도 자신들의 알파를 펀드로 만들어 발표하겠군요.”
“그래, 맞아. 수익률 경쟁을 벌이겠지.”
“그럼 점점 경쟁이 심화되면 수익률이 떨어지잖아요.”
“바로 거기야. 1억 벌던 놈이 만 달러 벌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맘이 급해진다?”
“그렇지, 그럼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어.”
“음, 그럼 먼저 FPGA 회사를 찾아가야 합니다.”
“찾아가긴 뭘 찾아가. FPGA 회사를 인수해 버리면 되지. 어떤 회사가 있지?”
“자일링스와 알테라가 있습니다.”
“자일링스? 알테라?”
“네. 아는 기업입니까?”
당연히 알지.
자일링스는 AMD에 인수되고 알테라는 인텔에 인수되는 기업이잖아.
그래서 AMD와 인텔의 주가가 수직 상승했지.
이 둘이 어떤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는 건 아는데.
그 시장이 FPGA 시장이었어?
“그다지 자세히 알지는 못해.”
“FPGA 시장이 이제 막 시작한 터라 실적이 대단한 기업은 아닙니다.”
“괜찮아. 알고 트레이더들이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하려면 어쨌든 두 기업을 인수해야 하잖아.”
“그러면 됩니다.”
“그럼, 워서스틴과 페렐라에게 이야기해서 인수하도록 하고. 다음은?”
“속도를 못 내게 하려면 저희 시스템을 풀가동해서 월가 인터넷 회선에 과부하가 걸리게 해야 합니다.”
“뭔 그런 무식한 방법을.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까?”
“박혁을 데려오면 되지. 적당히 과부하를 걸면 되는 거 아냐?”
음.
“그렇죠.”
“그다음은?”
“회선을 새로 매설해야 하는데 이건 기업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버라이즌이나 AT&T에 문의는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되겠네. 제이크.”
“응. 아. 왜요?”
재준과 펠그리니의 대화를 멍하니 듣고 있던 제이크가 먼 나라에서 돌아와서 대답을 했다.
“버라이즌과 AT&T에 힘 좀 써줘요. 혹시 월가에 신규 광케이블 공사를 해 줄 수 있냐고요.”
“그러죠. 광케이블.”
“퀀트 펀드가 생기면 전 세계 투자자금이 몰릴 겁니다. 그만큼 트래픽이 발생할 거라고 둘러대면 될 겁니다.”
“내가 나서 보겠습니다.”
자, 이제 슬슬 긴장시켜 볼까?
속도를 올리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면 어서 꺼내 봐.
***
투마로우는 다양한 퀀트 펀드를 시장에 선보였다.
기업의 수익이나 브랜드 가치를 수치로 보여주는 펀드.
주식을 주로 거래하는 페어 트레이딩 펀드.
옵션을 주로 거래하는 페어 트레이딩 펀드.
주식과 자원 선물을 짝을 맺어 거래하는 페어 트레이딩 펀드.
주가에 영향을 주는 요인 분석하는 펀드.
패턴 인식 기술과 머신러닝을 도입한 펀드.
등등등.
월가 투자은행들도 이에 질세라 수도 없는 퀀트 펀드들이 쏟아냈다.
또한, 다른 투자은행과 연합하여 거대한 거래전략으로 퀀트 개발자, 퀀트 데이터 애널리스트, 퀀트 에널리스트, 알고리즘 트레이더가 연합하여 수익을 내는 대규모 펀드까지 등장했다.
여기에 투마로우는 자사의 퀀트 펀드와 유사한 알고리즘을 사용하면 소송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월가는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다.
조용히 사무실에 처박혀서 알고리즘을 연구하던 퀀트들은 어쩔 수 없이 시장에 자신의 알고리즘을 선보여서 증명을 해야 했다.
투마로우는 이에 한발 앞서 퀀트를 검증하는 모델검증 퀀트를 만들어 퀀트를 제어하기 시작했다.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이상 현상이나 이상 가격이 나타나지 않는지, 공식이 잘못되었거나 가정에 오류가 있는지 잡아냈다.
거기에 하나 더 리스크 매니지먼트 퀀트를 선보였다.
파생상품의 위험을 분석하고 수치화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같은 큰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방지했다.
재준의 계획대로 누군가 미미하게 월가 인터넷 회선에 가끔씩 과부하를 걸었다.
시카고 알고 트레이더들이 주로 하는 행위가 선행매매 외에도 두 가지가 더 있었다.
싸게 매수하기 위해 허위매물을 싸게 내놓고 다른 거래자들이 이를 매수하려 할 때 재빨리 취소하는 레이어링.
비슷하게 끊임없이 주문을 올렸다 취소하기를 반복하며 마치 시장이 트렌드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스푸핑.
근데 이게 속도 저하로 자주 실패하여 손실이 늘어났다.
잠시 알고 트레이더들이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
시카고.
“시카고는 직선 광케이블 시공이 완료되었습니다. 여기.”
머리를 뒤로 단정하게 넘기고 잘 다듬은 콧수염을 기른 이가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에게 은행 금고 열쇠 한 개를 넘겨주었다.
저 열쇠를 열면 최소 몇백에서 몇천만 달러가 있을 것이다.
“그럼 시카고는 문제없이 돌아가겠군요.”
“근데 요즘 월가가 문제입니다. 큰돈은 월가에서 나오는데 속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저희도 주시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해결할 예정입니다.”
쩝.
열쇠를 넘겨준 남자가 손으로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우리는 준비가 다 되어 있는데 그쪽에서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광케이블을 직선으로 매설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잘 알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돈 때문이라면 저희가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이른 시간에 매설해야 그만큼 이득이 늘어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버라이즌과 협의해 보겠습니다. 그쪽도 매설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 같던데.”
“진작에 말씀을 해주시지.”
하여간 정치인이란.
꾸물거리기는.
그냥 대놓고 투자하라고 하면 될 것을.
꼭 먼저 말을 하지 않는단 말야.
시카고와 뉴욕 간 기존 케이블 왕복 속도는 14.5밀리 초였다.
2010년에 스프레드 네트워크 선이 매설되었고 왕복 속도는 13.1밀리 초.
2012년 맥케이브라더스 선은 9밀리초.
지금 매설 계획을 준비하는 트레이드웍스 선은 8.5밀리 초가 될 것이다.
기존 케이블 선이 장애물을 피해 구불구불 매설되었다면 스프레드 네트워크와 맥케이브라더스 선은 거의 일직선에 가까웠다.
이번에 매설할 트레이드웍스 선을 위해 산을 뚫고 강에 교량을 서치해서 좀더 직선에 가깝게 매설했다.
0.5밀리 초를 앞당기기 위해 수천억 달러가 투입된다.
이들에게 속도는 그 정도 가치가 있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서덜랜드는 탁자 위의 열쇠를 가볍게 쥐고는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콧수염을 매만지는 사내는 피식 서덜랜드의 등에 대고 비웃음을 흘렸다.
제이콥 대타라더니 영 미덥지가 않네.
***
AAG 빌딩 66층.
“알고리즘이요?”
박혁이 재준 앞에서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다 말고 물었다.
“그래, 알고리즘.”
“이건 해킹과 상관없는 문제입니다. 정상적으로 접근이 가능한데 단지 속도만 높여서 매매를 가로채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해결은 가능한데. 저쪽은 합법이고 우리는 불법입니다. 그게 문제지요.”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거네.”
“그렇지요. 그리고 상대의 알고리즘을 알아내는 것도 불법이라면서요. 그럼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그럼, 수량이 적은 주식을 살 때 우리가 수량이 많은 주식을 사 버리면, 어때?”
“그것도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상대 아이피를 항상 추적해야 하는데 그것도 불법이잖습니까?”
헐.
그러네.
술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불법도 저질러 본 놈이 잘 아네.
“그럼, 저쪽 알고리즘을 알아낼 방법은 없는 거야?”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뭐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거야?”
“트래픽이 발생해서 속도가 느려지면 아마 자기들만 사용하는 전용선을 구축할 겁니다. 그게 속도의 기본이죠.”
“전용회선?”
“네. 시카고와 뉴욕을 잇는 최단 거리의 전용회선이요.”
“몇 개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건 여러 회사가 사용하는 회선이고 그것 말고 저들만 사용하는 전용선이요.”
“그래?”
이때.
띠리리링.
“네, 제이크.”
-버라이즌이 새로운 광케이블을 깐다는 정보가 있어요.
“그래요?”
재준은 스피커 폰으로 전환해서 탁자에 올려놓았다.
-근데 이상한 건 서덜랜드가 직접 버라이즌에 지시를 내렸다는 겁니다.
“그게 이상한 겁니까? 당연히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하는 건데.”
-공사비 4천억 달러 전액 시카고에서 흘러 들어가고 있다면 문제가 되겠죠.
“4천억 달러?”
4천억 달러를 투자할 만큼 월가 돈을 훔쳤다는 소리네.
어쩌면 투마로우에도 왕창 손해를 입혔을 거고.
허, 참나. 이놈들을 어떻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