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260화 (260/477)

제260화 속도보다 중요한 게 뭔지 알아?(1)

언제부터 투자은행이 퀀트를 채용하기 시작했을까?

놀랍게도 1970년대부터다.

NASA는 달에 착륙하는 데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도대체 이런 일에 왜 그만한 돈을 투자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이제 달에 갈 일이 없느니 예산을 40%를 감축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한 이론 물리학자들이 해고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트남 전쟁이 터지면서 물리학이 전쟁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고, 반인륜적이라며 NASA 예산을 또 대폭 삭감했다.

과학으로 삼시세끼 밥을 말아 먹던 이들이 갈 곳을 잃고 헤매며 어디 연구소 임시직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이때 블레이크 블랙과 마이런 슐즈가 블랙-슐즈라는 옵션 방정식을 완성했다.

이게 뭐냐면 자신이 투자하려는 옵션을 집어넣으면 옵션의 적정 가격을 알려주는 신박한 공식이었다.

시장 상황과 투자자의 심리 등등을 고려하며 가격을 책정하던 뱅커들은 이제 옵션 코드만 치면 짠 하고 가격이 튀어나왔다.

가격 책정에 골머리를 앓던 뱅커들에게 거의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자, 우리는 경험에서 알 수 있다.

모든 뱅커가 이 방정식을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항상 그렇듯 주가는 계속 올라간다.

방정식은 가격에는 상승한 시장이 반영되니까.

계속 오르다 보면 어떻게 돼?

결국, 1987년 대폭락이 일어났다.

시장이란 물이 차면 흘러넘치기 마련이다.

폭락 시작되자 당연히 모두 매도에 동참하여 시장을 아주 끝장을 내버렸다.

이제 월가는 망하는 일만 남았는데.

주저앉아 있을 수 없는 이들이 새로운 기법을 만들어 냈다.

시장 전체를 반영하니까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반성과 함께 페어 트레이딩이라는 기법이 등장했다.

일명 통계적 차익거래.

원리는 간단하다. 같이 움직이는 종목을 짝으로 묶고 갭이 발생할 때에 투자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알아서.

예로 호주 달러와 옥수수가격을 페어, 즉 짝으로 묶어 놓는다.

어느 날 호주 달러가 올랐는데 옥수수가격이 주춤거린다.

그때 알고리즘이 재빠르게 그 갭만큼 옥수수가격 선물에 투자한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알 수 없는 찰나의 순간에 갭을 시스템이 인지해서 이익을 취했다.

이게 바로 알고리즘, 즉 시스템의 힘.

이런 짝을 3,000개 이상 만들어 실시간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자그마치 한해 28%라는 경이적인 수익을 올렸다.

기껏해야 두세 명의 퀀트 인건비로.

수천 명의 펀드 매니저도 벌어들이기 힘든 돈을 알고리즘이 여기저기 갭을 찾아 투자하더니 일 년 후 턱 하고 수천억 달러를 벌어 놓았다.

호레이!

이제 월가는 이 갭을 찾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내는 퀀트에 목을 맬 정도였다.

이 갭을 찾는 알고리즘은 기업마다 다르며 극비에 속했다.

이 알고리즘을 월가에서 부르는 이름은 ‘알파’.

‘알파’는 월가에서 성배이며 금괴였다.

이 알파의 선두주자는 당연히 펠그리니.

펠그리니가 운영하는 서버의 크기가 농구 코트 3개를 합쳐 놓을 정도의 공간이라면 얼마나 큰지 감이 올 것이다.

모두 행복 회로를 돌리는 이 시점에.

당연히 안전할 줄 알았던 알파 중 하나인 라이트 캐피탈에서 대형 사고가 터졌다.

문제는 이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알파가 말썽을 다 부리네.”

“보스, 문제가 또 있습니다.”

“또? 알파에 또 문제가 있다고?”

“알파는 아니고 그동안 지켜보고 있던 시카고 트레이더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시카고? 그놈들은 무역상인이잖아.”

“몇 년 전부터 이놈들이 슬금슬금 월가의 퀀트들을 스카우트해 갔습니다. 그래서 뭐하나 계속 정보를 취합했는데, 월가 거래소에서 대규모 거래를 낚아채 가고 있습니다. 점점 횟수가 증가하고요.”

“낚아채 가? 무역 상인들이 왜 증권을 낚아채?”

“그야 돈이 되니까 그렇죠.”

그렇긴 하네.

돈이 되면 뭘 못 하겠어.

근데 감히 월가에 와서 장난을 친다고?

아니 근데 표현이 이상하네. 낚아채?

“펠그리니, 어떻게 월가의 거래를 낚아채 가는데?”

“원래 시카고 트레이더들은 주문이 들어오면 더 싼 물건을 찾아서 매수한 다음 주문자에게 이문을 붙여 팔고 있는 건 아시죠?”

“그야 당연히 알지.”

“월가는 주문이 들어오면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 반면에 시카고 트레이더들은 주문이 들어오면 가능한 한 빨리 싼 물건을 사야 합니다.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요. 인공지능도 그쪽으로 발전되어 있고요.”

“속도?”

월가도 나름 속도하면 서럽지 않은 족속들인데.

우리보다 빠르다? 그것도 인공지능 자체가?

“이들을 알고 트레이더라고 부릅니다.”

“거참, 피곤한 놈들이 등장했네.”

“맞아요. 월가 뱅커와 다르니 대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뭐가 다른데?”

“우리는 다른 은행 ‘알파’보다는 자신의 ‘알파’를 개발하는 데 집중하는데 알고 트레이더들은 상대 알고리즘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 집중하거든요. 이번에 월가에서 거래를 낚아채 갔다면 이미 월가의 거래 시스템의 약점 파악이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뭐야, 그럼 매번 당한다는 소리잖아.”

“그러니까 심상치 않다고 했잖아요.”

“체결된 거래를 낚아채 가는 건 불법이잖아.”

“그렇죠.”

“참 나, 이런 귀찮은 놈들.”

불법이면 SEC을 찾아가 봐야겠는데.

제이크도 알고 있으려나.

“펠그리니, 그럼 해결 방법이 뭐야? 우리도 저놈들 알고리즘을 파악해야 한다는 거야?”

“그보다 속도를 올려야 해요. 알고리즘보다 속도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속도?”

“네.”

말이야 막걸리야.

인터넷 속도를 어떻게 높여.

지금 보유한 서버도 최상급이고.

인터넷도 버라이즌에서 가장 비싼 서비스를 받고 있는데.

도대체 무얼 어떻게 속도를 올린다는 거야?

“방법은 있어?”

“찾아보고 있습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 우선 같이 SEC에 가보자. 불법이라면 SEC의 도움을 받아야지.”

재준은 자신의 영역이 아닌 부분에서 위험에 처했다.

공학자가 문제가 아니겠지.

***

SEC.

“어서 오세요.”

제이크는 약간 핼쑥해지긴 했지만, 표정을 지극히 밝았다.

SAK뿐만 아니라 내부자 거래를 일삼는 GPR을 비롯한 전문가 네크워크 기업들까지 깔끔하게 처리해서 그런지 월가의 평화에 일조했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를 보고 웃는 저 얼굴에 찬물을 확 끼얹어야 하잖아.

이거 또 문제를 가져와서 미안한데.

제이크는 재준과 펠그리니와 악수를 하는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그래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설마 또 범죄 조직이 있는 건 아니죠? 하하하하.”

웃네. 미안하게.

“제이크, 혹시 알고 트레이더라고 아나요?”

“알고 트레이더라면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퀀트로 알고 있는데요.”

“네, 그들이 월가 시스템의 약점을 파고들어 거래를 가로채고 있다는데. 들어 보신 적 있습니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재준이 펠그리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네가 설명해.

“그들이 하는 방식은 우리가 하는 통상적인 차익거래와 다릅니다. 거래를 낚아채는 방식으로 수익을 얻는 겁니다.”

“거래를 낚아채는 건 뭡니까?”

“Reg NMS 규제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Reg NMS 규제요? 그건 그냥 주문이 들어오면 가장 싸고 적은 물량부터 거래하는 거잖아요.”

“네, 맞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봐요.”

“그러니까 월가의 은행에 어떤 주식 10,000주 매수 주문이 들어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뉴욕증권거래소에 1,000주, 도쿄 일본거래소그룹에 10,000주가 있습니다. 그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1,000주를 사고 나머지 도쿄로 건너가 9,000주를 매수하게 됩니다.”

“당연하죠. 시스템이 그러니까.”

“알고 트레이더들은 이 점을 파고들었습니다.”

제이크의 눈이 물음표로 보일 만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약점입니까? 흥미롭네요.”

“그럼 방금 예로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뉴욕과 도쿄만 말해 보겠습니다.”

“네.”

“시카고 알고 트레이더의 알고리즘은 월가에 주문이 들어오는 순간 뉴욕에 1,000주와 도쿄에 10,000주를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월가 시스템이 1,000주를 매수하는 순간 10,000주의 가격을 올려버립니다. 한 번 발동한 월가의 시스템은 망설임 없이 오른 가격의 주식을 매수합니다.”

“네?”

제이크가 ‘이게 무슨 말인가’라는 표정으로 펠그리니를 쳐다봤다.

뭐라는 거야?

주문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가격을 올린다고?

무슨 플래시 맨이야?

“그게 가능합니까?”

“0.0001초만 빨라도 가능합니다.”

“네?”

0.0001초?

제이크도 놀랐지만, 소수점 네 자릿수를 들은 재준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가 보다 했지만 설마 0.0001초?

“아니, 다 같은 최고 사양의 서버에 가장 빠른 인터넷 회선을 사용하는데 누군 빠르고 누군 느리다고요?”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속도를 어떻게 높이는데요?”

“속도를 높이는 방법의 하나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FPGA(Field-Programmable Gate Array)라고 있습니다. 회로기판에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는 겁니다. 회로에서 컴퓨터까지 걸리는 미세한 딜레이를 줄여서 속도를 높이는 거죠.”

“아. FPGA. 네. 네.”

제이크가 알아서 한 말이 아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튀어나온 단발성 탄식이었다.

“그리고 직선으로 전용 광케이블을 매설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아, 광케이블. 직선으로.”

미친 거 아냐?

주변에 장애물이 있는데 어떻게 직선으로 깔아?

그리고 광케이블을 정부 허락 없이 막 설치할 수 있다고?

펠그리니는 제이크의 허탈한 표정을 무시하고 설명을 이었다.

“저희는 그저 알고리즘이라고 말하고 신경을 크게 쓰지 않지만, 옵션거래에서 투자은행의 알고리즘들은 지금도 1초에 수천 번의 초단타 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아, 네. 1초에 수천 번. 네.”

툭.

재준이 정신 차리라고 제이크 어깨를 쳤다.

어?

“제이크, 당신은 SEC 회장이에요. 근데 처음 듣는 이야기예요?”

“아, 네. 네. 그게, 방금 펠그리니가 말했잖아요. 알고는 있는데 크게 신경 쓴 적이 없다고. 우리는 불법적인 거래를 하는 사람을 잡지 컴퓨터를 잡지는 않으니까요.”

“그럼 이건 불법이 아니란 말이에요?”

제이크는 곰곰이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이미 체결된 거래를 조작하는 것은 불법적인 선행매매에 해당하는데. 네, 맞아요. 불법입니다.”

“근데 증거를 찾을 수 있겠어요?”

“그러게요? 본인이 직접 자백을 하지 않는 0.0001초의 거래에서 무슨 증거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제이크는 멍한 상태로 대답하자 펠그리니가 당차게 말했다.

“있습니다. 증거.”

정신이 번쩍 든 제이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증거가 있다고요?”

“알고리즘을 분석해서 증거를 찾아낼 수는 없지만, 상대 알고리즘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오, 그래요?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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