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9화 하늘이 스스로 돕는 것 같지, 전혀(11)
“김여정 동무가 대학 총장을 하라고요. 사실 북한에 어떤 인재가 있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총장에 앉아서 머리 좋은 북한 주민을 입학시키면 딱이겠는데.”
“총장?”
“그래도 안 됩니까?”
“됩니다.”
김여정은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올려 김정은에게 건배를 권했다.
민망하지?
총장이란 말에 김여정의 반대는 쏙 들어갔다.
김여정의 등장은 김정은이 지도자가 된 것만큼 급하게 이루어졌다.
1988년생이니까 아직 서른이 안 된 나이.
직위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부부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라고 거창하게 덧씌워져 있지만 누가 인정이나 하겠는가.
속 빈 강정이지.
그런데 대학 총장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것도 투마로우 시티에서 운영하는 대학이면 세계적인 명성을 가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드디어 허상인 아닌 실질적인 권력을 손에 넣을 기회.
“총장이라면 내가 잘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당연하죠. 할 일이 무엇입니까?”
재준이 김여정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머리 똑똑한 인민들 찾아내서 대학에 입학시키면 됩니다.”
“인재야 북한에 넘치고 넘칩니다.”
“거, 괜히 노동당 간부 자식이라고 대학에 막 집어넣고 그러는 거 아니죠?”
“백두혈통을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합니까? 확실히 똑똑한 머리를 가진 인민만 입학시킬 겁니다.”
“음. 믿음직스럽습니다.”
하하하하.
김정은이 김여정 어깨를 토닥거리며 웃었다.
“잘해야 한다.”
“걱정 마세요. 저도 한다면 하는 여자입니다.”
재준은 엄지 척을 날려주었다.
대학 총장이라면 할 일이 너무 많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에 그렇다는 이야기다.
학생들 취업도 신경 써야 하고 대외적인 활동으로 대학 명성에 신경 써야 한다.
그리고 등록금에 대해서도 국가 보조를 타내느라 사정해야 하고 자금 집행에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투마로우 대학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정말 재준이 원하는 건 북한 내에 있는 천재를 데려오는 거. 그게 다였다.
총장에 앉으면 체면 때문이라도 열심히 인재를 찾아내서 데려오겠지.
대충 대학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김정은이 걱정이 묻어나는 톤으로 재준에게 말했다.
“이번에 미국과 러시아 비서실장이 크게 상했다던데. 괜찮은 겁니까?”
이야, 북한도 정보망이 나름 있나 보네.
“얻어맞은 놈이 입 닫아야죠. 이 사실이 알려지면 내가 쪽팔리겠습니까? 저쪽이 쪽팔리겠습니까?”
하하하.
“지금까지 성명 하나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입 꽉 다물고 있는 게 자신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네요.”
“혹시 지금 러시아 철도 공사나 자율주행 지역 합의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죠?”
“없어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던데. 그래서 더욱 의아해하고 있었습니다.”
“도둑놈이 제 발 저린 거죠. 그래도 북한에 대한 비난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뭐, 그 정도야, 예전에 핵무기 개발할 때에 비하면 칭찬으로 들릴 지경입니다.”
하하하하.
김정은도 참 단순하구나.
하긴 북한 안에서 갇혀 지냈으니 기껏해야 반대파 숙청 정도가 다였을 거고 돈 때문에 머리싸움을 해본 적이 있겠어.
이제 돈이 들어와 먹고살 만하니 숙청할 대상도 없어졌고 지금이 마냥 행복하겠지.
자, 건배하시죠.
다들 건배를 하고 술잔을 내려놓는데.
띠링.
윌켄의 문자였다.
[독일에서 할 일은 다 끝났습니다. 저희는 한국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박민수와 강호석도 같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음, 친절한 윌켄.
미국으로 건너가야겠네.
***
AAG 빌딩 66층.
“보스, 장난이 아니라니까요. 직접 봐야 했는데. 이거라도 보세요.”
워서스틴이 근심 어린 시선으로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보여줬다.
문자엔.
-임 보스 만나면 이번엔 그냥 안 넘어간다고 경고해. 아주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될 거라고. 내 모든 걸 걸고……. 하늘이 스스로 돕는 것 같지, 전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흠, 흠.
뭐 걸 것도 없으면서.
아닌가? 그만두면 큰일 나지.
워서스틴은 헛기침을 하는 재준을 매섭게 노려봤다.
“그러게 왜 총격전을 벌였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가뜩이나 지난번 시위대 총격 사건으로 총에 민감한 사람한테.”
“그냥 튀어나왔지. 그런 걸 생각하면서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
“허, 정말. 암튼 난 전했어요. 나중에 안 들었다. 못 봤다 하지 마세요.”
“이야, 워서스틴 그렇게 안 봤는데 치사하게.”
“아니 여기서 치사한 게 왜 나와요?”
“알겠다고. 알겠어. 뭐, 그래 봐야 죽기밖에 더하겠어. 투마로우도 이제 주인 잃은 강아지 신세가 되겠구나.”
아휴.
워서스틴은 박민수 문제로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북한은 뭔 조치를 이렇게 살벌하게 한 겁니까?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건 그렇다 쳐도 북에 있는 사람도 밖으로 못 나오는 건 좀 그런데.”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냐. 우리가 보기엔 이상해도, 봐, 북한 주민은 아무 변화가 없잖아. 그러면 그게 맞는 거야. 저러다 변화가 일어나면 그때 가서 풀겠지. 그리고 당분간은 봉쇄하는 게 우리한테도 좋잖아.”
‘좋은 울타리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살면 서로 협력하며 잘 산다는 말이다.
좀 더 확장하면 같은 민족끼리 모여 살면 큰 문제없이 잘 산다는 의미도 된다.
왜? 서로 같은 환경에서 같은 고난을 겪은 사람들이니까.
전 세계의 다툼 대부분은 다른 민족을 나라라는 이름에 욱여넣어서 같은 법과 윤리를 들이미니까 서로 충돌하게 된 탓이다.
좀 더 확장하면 글로벌이란 이름으로 지구 전체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려니 시위도 일어나는 거고 전쟁도 일어나는 것이다.
북한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외부에서 이러쿵저러쿵 저울질해 봐야 북한 입장에서는 간섭에 불과하다.
인권이니 윤리니 하는 평균의 잣대를 버리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잘 살 것이다.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지만.
워서스틴은 재준의 말을 십분 이해했지만, 개인적인 문제는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보스 아기는 북한에 저대로 내버려 둘 거예요?”
“그럼, 미국으로 데리고 와 봐야 동물원 원숭이가 될 게 뻔한데 왜 데려와? 지금은 북한이 제일 안전한 곳이고 투마로우 시티가 훌륭한 학교가 될 거야.”
“그렇긴 한데. 왠지 매몰찬 거 같아서…….”
매몰차다…….
그렇지. 밖에서 보기에 내가 아기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
솔직히 잘생기고 똑똑한 아들이 생겼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내 아들이 말이야……. 하면서.
하지만 처음 아기를 봤을 때 가슴이 저며 왔다.
난 그게 아기, 생명, 생기에 대해 인간으로서 가지는 감정인 줄 알았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연민이구나.
너도 나처럼 재벌로 살아야 한다는 그런 거.
아니, 어쩌면 더 심한 경쟁에 내몰리겠지.
‘재벌이란 삶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란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절대 지면 안 되고 발을 잘못 디뎌서도 안 된다.
재벌은 실패해서 배울 수 있는 시간도 없고 나를 믿고 따르는 이들의 무게를 온전히 혼자 져야 한다.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받아들이겠지만 지금처럼 차선책이 존재한다면 재벌로 살지 않고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다.
일단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잖아.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선택할 수도 있고.
뛰어난 재능이 있다면 음악을 해도 되고 미술을 해도 된다.
잘생겼으니 아이돌도 괜찮다.
스포츠를 좋아한다면 축구나 야구, 심지어 비인기 종목이 좋다면 해도 된다.
세계 여행을 최고급 코스로 돌면서 전 세계 문화유산을 탐구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재벌만 아니면.
픽.
재준은 그냥 실없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실 재벌도 재밌긴 해.
이때,
“보스.”
펠그리니가 불안함과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들어섰다.
쟤는 또 왜 저래?
“뉴스 봤어요? 라이트 캐피탈에서 40분 만에 4억 4천만 달러 손실을 봤어요.”
“얼마? 아니, 40분 만에? 어떻게 하면 그런 무지막지한 만행을 저리를 수 있는 거지? 40분에 4억 4천만 달러?”
미친 거 아냐?
저런 일을 저지르고 살아 있는 거야?
아들아 넌 재벌 하지 마라.
라이트 캐피탈.
라이트 캐피탈은 미국 최대의 자동화 주문 전문 회사로 나스닥 거래의 15%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기업이다.
“프로그램 업데이트를 하면서 서버 한 대에 실수로 업데이트를 빼먹었는데. 장이 시작되자 그 문제의 서버가 주문을 쏟아 내는 바람에 40분 동안 4억 4천만 달러의 손실이 났어요.”
“우와, 그래? 가만,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이후에 라이트 캐피탈은 헐값으로 중소기업에게 팔려간다.
그 전에 먼저 손을 써야지.
재준이 워서스틴과 페렐라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충격에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두 사람은 겨우 맘을 진정시키려고 심호흡을 길게 하고 있었다.
지금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워서스틴, 페렐라. 라이트 캐피탈 주가 폭락할 거니까. 일단 폭락한 주식 다 받아. 그리고 주가가 회복 시기에 접어들면 인수해.”
“네? 인수요?”
“그럼 지금이 적기잖아. 이보다 좋을 순 없어.”
“이미 투자자에게 인심을 잃어서 재기하기 힘들 텐데요.”
“왜 그래, 선수끼리. 인수 후에 이름을 투마로우로 바꾸면 되잖아. 거기 서버랑 프로그램만 건져도 남는 장사고.”
“아, 그러네요.”
“움직여. 누가 낚아채기 전에.”
“네.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워서스틴과 페렐라가 오랜만에 기업 인수라 흥분한 마음으로 서둘러 나갔다.
라이트 캐피탈을 인수하면 스톡 체인 점유율과 합쳐져서 자동화 주문 분야를 독점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에 해야 할 일은.
“펠그리니, 우리도 퀀트를 다시 한번 점검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저희 퀀트들은 제가 매일 매일 확인하고 있습니다.”
퀀트는 인간의 직감, 감정을 빼버리고 오직 수학과 알고리즘을 투자에 사용하게끔 연구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제 퀀트는 매크로를 넘어 인공지능까지 개발하여 투자에 이용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헷갈릴지 모르지만. 요즘 투자은행에서는 알고리즘, 시스템, 인공지능은 다 같은 맥락으로 사용된다.
아마 일반인들은 의아해하겠지만 투자은행만큼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집단도 드물다.
오죽했으면 투자은행은 IT 기업이라고 할 정도다.
투마로우도 펠그리니가 이끄는 퀀트 집단에는 다수의 IT 기업들이 포진해 있었다.
머신러닝으로 대출 자격을 골라내어 연결을 자동화시켜주는 콜렉트 닷컴, 기존 뱅커들의 자료를 대신 조사해주는 인공지능 개발업체인 콜&프린팅, AI 개발업체인 브레인모작, 딥러닝 전문 업체인 런트레인 등등.
이거 이러다 내가 할 일이 없어지는 거 아냐?
아니지, 이쯤 해서 나도 휴가라는 걸 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