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8화 하늘이 스스로 돕는 것 같지, 전혀(10)
임모탈.
“축하합니다.”
재준은 임모탈 사장 갓프리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갓프리드는 기꺼운 마음으로 재준의 손을 두 손으로 맞잡았다.
“감사합니다. 이게 다 투마로우 덕입니다. 저희가 이렇게 빠른 진척을 보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결과입니다.”
“에이, 이건 다 사장님의 인류를 위한 의지 덕이에요.”
하하하.
재준은 이어서 뱅가모바이오사이언스 사장 갠돌피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축하합니다.”
“아, 네.”
엉거주춤 손을 내민 갠돌피니는 지은 죄가 있기에 재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자, 앉으시죠.”
서열이 있는 듯 갓프리드와 갠돌피니가 양쪽에 앉고 재준이 중앙에 앉았다.
재준은 둘을 번갈아 가며 시선을 주었다.
“갓프리드, 첫 번째 대상자는 정해졌어요? 난 그게 누굴까 가장 궁금하던데.”
“하하, 돈이 돈이니 만큼 중동의 왕세자 중 한 명과 실리콘벨리에서 한 명, 월가에서 한 명이 우선 이달 안에 시술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엥? 겨우 세 명밖에 못해요? 지금 신청한 사람이 만 단위가 넘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하하하, 신청한 사람은 십만 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워낙 까다로운 시술이고 아직은 저희도 전문 인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큰일이네. 한 달에 천 명씩 팍팍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저희도 그러고 싶습니다. 사실 신청자 중에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인 사람도 많지만,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시술이라면 의사가 모자란 겁니까?”
“음, 그렇습니다. 정확히 의사는 아니지만, 의술이 필요한 건 맞습니다.”
“그럼 의과대학을 하나 세우시죠. 앞으로 계속 인력을 충당하려면 필요한 거 같은데.”
“그러잖아도 텍사스와 뉴욕에 부지를 알아보고 있는데 시민 단체 입김이 워낙 강해서 애를 먹고 있습니다.”
“텍사스와 뉴욕이요?”
아니, 좋은 곳 놔두고 하필 민감한 지역에 대학을 세워?
“여기 북한에 투마로우 시티에 세우면 되잖아요. 굳이 미국에 세우려 합니까? 우리야 미래지향적이란 뜻을 내세우지만, 아직 인간주의인 척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널린 곳이 미국인데.”
“북한에요?”
“원래 북한과 한국이 머리도 좋고 손재주도 뛰어난 민족이잖아요.”
“저도 인정은 합니다만…….”
갓프리드가 ‘여긴 북한이라서’란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북한에 투마로우가 대학을 세우겠습니다.”
“네?”
“우린 돈을 댈 테니. 교육을 맡아 주세요. 이게 병원이라면 임모탈 연구진들이 힘들겠지만, 오직 임모탈의 시술에 특화된 대학인데 서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가요?”
“그럼요. 일반 의과대학을 생각하지 말고 시술자 양성을 중심으로 특화된 대학으로 키워봅시다. 의과대학을 세우고 병원을 지어 환자를 받는 그런 대학 말고. 오직 임모탈의 시술에 적합한 인재만 양성하는 거예요.”
갓프리드는 잠시 재준의 말을 생각했다.
그렇지. 연구진과 시술진이 꼭 모든 지식을 공유할 필요는 없잖아.
아니, 오히려 시술진의 숙련된 손놀림이 늘어나면 연구진은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
재준은 뱅가모 갠돌피니 사장에게 시선을 옮겼다.
“갠돌피니는 어때요?”
“괜찮은 생각입니다. 좀 더 전문화된 인재를 양성할 수 있고. 전 좋습니다.”
“그럼 숟가락 하나 얹어요.”
“네?”
“대학에 뱅가모도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학과 몇 개를 개설해도 되잖아요.”
“그럼 저희야 좋습니다. 굳이 밖에서 인재를 찾을 필요도 없고.”
“그래요. 오후에는 엘론 버스크도 만나서 필요한 인재를 위해 투자하라고 할 예정입니다. 당장은 지금 인력으로 어떻게든 꾸려나가겠지만 10년, 20년 후에는 꼭 필요한 인재들을 영입하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투마로우 시티에 적합한 대학 하나 정도는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게 맞는 거죠.”
“음, 그렇군요.”
20년 후라.
그렇지. 지금도 인력이 부족해서 허덕이는데.
앞으로 더 많은 분야의 협력이 필요하게 되면 그때그때 어디서 인재를 데려오겠어.
근데,
임재준이 왜 아기에 대해서는 안 물어보는 걸까?
분명 레이와 셀레나가 다 말했을 텐데.
재준은 딱 보니 갠돌피니가 처음부터 안절부절못하는 게 뻔히 보였다.
지금은 지켜보겠어.
“자, 그럼. 난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재준이 일어서려는데 갠돌피니가 입을 열었다.
“저, 왜 안 물어보십니까?”
“뭐요?”
“레이와 셀레나에 대해서.”
“아, 내 아기?”
“네, 할 말은 없지만, 변명이라도 늘어놓고 싶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들을 필요도 없고 할 필요도 없는 것 같은데. 굳이 입만 아프잖아요. 혹시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알고 있어요?”
“아니요. 듣지 못했습니다.”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안 했네.”
재준은 빙글 웃으며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잘 들어요. 여기 오면서 두 명이 병신이 되었어요.”
“네?”
“한 명은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 제이콥이고 또 한 명은 러시아 대통령 비서실장 마카르예요. 한 명은 한쪽 눈에 총구가 박혔고 한 명은 여기, 여기.”
재준은 자신의 목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부러졌어요. 아마 조만간 임모탈에 와서 목소리를 되찾아 달라고 할지 모르겠네.”
제이콥과 마카르?
대통령 비서실장을?
“갓프리드, 둘 다 오면 잘해줘요. 그만한 돈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죄송합니다.”
“아니, 왜 갠돌피니가 사과를 해요. 잘못은 그놈들이 한 건데.”
후.
갠돌피니가 긴 숨을 내뱉었다.
재준이 갠돌피니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경고를 해주는 편이 좋겠네.
“하여튼 그놈들 내 아기 빼돌리려고 아주 떼로 덤비던데. 그거 알아요? 욕심을 부리는 건 좋은데 나를 대상으로 할 때는 자신도 뭔가는 걸어야 한다는 거. 그게 최소한 목숨이어야 할 겁니다.”
목숨?
“명심하겠습니다.”
“허, 거 참. 자꾸 사장님이 왜 그래요? 민망하게시리. 자, 이제 그럼 진짜 갑니다.”
재준이 일어서서 악수를 한 차례씩하고 나갔다.
후.
옆에서 지켜보던 갓프리드가 이제야 숨을 쉬었다.
“미안하네. 난 심장이 떨려서 말도 못 했어.”
“나도 겨우 한 거야.”
“근데 그거 아나?”
“뭘?”
“우리는 완전히 투마로우 시티에 갇혀 버렸다는 거. 이제 빠져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 임재준 아기 문제로 잠시 미국 본토로 갈까 고민한 적이 있는데. 하하, 연구 자료와 특허 모두 여기 있잖아. 시설도 그렇고. 소유권도 투마로우에 저당 잡힌 꼴이고.”
“그러게. 이제 대학까지 세우면 진짜 아무 데도 갈 수가 없게 돼. 더 중요한 건 거절을 할 수가 없다는 거야.”
“거절은 무슨 오히려 고마운 거지.”
“근데 왜 임재준의 아기에 대해서 우릴 내버려 두는 걸까?”
“내버려 뒀다고? 천만에.”
“그럼 다른 의미가 있는 건가?”
“우린 이제 꼼짝없이 임재준의 아기가 아무 탈 없이 자랄 수 있게 지켜야 하는 의무가 생긴 걸 모르겠어? 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죽는다고 봐야 해.”
“흠, 그래. 여긴 북한이니까.”
갠돌피니는 식어 버린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이거라도 마셔야 마른 입이 풀릴 것 같았다.
***
북한 옥류관.
재준은 평양냉면이 나오자 면치기를 시작했다.
후루룩, 후루룩.
음.
한동안 평양냉면을 먹으면서 맛을 음미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더니 드디어 슴슴하고 깊은 육수의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게 처음엔 맹물에 소금을 푼 것 같더니 먹을수록 중독성이 강하네.
이어 평양 소주를 한 잔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역시 뒷맛이 깔끔해.
엘리자베스는 평양냉면을 깨작깨작거리다 포크로 돌돌 말아 입에 쏙 넣고는 오만 인상을 썼다.
“도대체 이게 무슨 요리예요? 이건 나도 만들 수 있겠다.”
“넌 이 깊은 맛을 모르는 거야. 먹다 보면 느껴져. 음, 시원한 육수가 들어가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네.”
“그러시겠죠. 이런 게 맛있어지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요?”
“말하지 마.”
“바로 꼰대가 돼가는 증거라고요.”
“말하지 말라니까.”
“노인, 늙은이.”
“야, 나 아직 그 정도는 아니거든.”
하하하하.
짝짝짝짝.
재준과 엘리자베스가 손뼉을 치며 호탕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김정은을 바라봤다.
“임재준 동무랑 내가 생각이 통했나 봅니다. 나도 오랜만에 냉면 가락이 먹고 싶었는데.”
“내가 먹자고 했잖아요. 방금까지 먹기 싫다고 해 놓고.”
“험, 험. 무슨 말이야. 내가 먹자고 했는데.”
흥.
김여정이 김정은을 향해 콧방귀를 끼며 등장했다.
“어서 오세요. 잘됐네요. 그렇지 않아도 김정은 동지를 만나러 가려고 했는데. 자, 앉아서 술이나 한잔하시죠.”
“이야, 이거 오랜만에 낮술을 하는구만.”
“어제도 했잖아요.”
“흠, 흠. 거, 너는 왜 따라와서는.”
“내가 가자고 했다니까요.”
“알았다. 일단 앉아.”
김정은이 앉자 재준은 김정은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김여정의 잔에 술을 따르는데 눈빛이 날카로웠다.
잡아먹겠네.
“여정 공주님, 왜 그렇게 절 죽일 듯이 보는 겁니까?”
흥.
자신의 술잔을 단숨에 들이키더니,
탁.
탁자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지금 전 세계가 북조선을 거칠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불로장생이니 신인류니 하면서 아주 몹쓸 놈의 나라로 지적질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재준도 술을 단숨에 들이켠 후 입맛을 다셨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제 익숙해질 때가 된 거 아닙니까? 그게 다 자신은 하지 못하니까 입이라도 놀리려는 거잖아요. 그걸 뭐 일일이 다 챙겨 듣고 있어요.”
미국 정부가 일본 정치인을 충동질하고 국제기구에 로비를 펼치며 투마로우 시티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불로장생과 신인류가 웬 말이란 말인가.
돈 없는 놈은 이대로 죽어도 괜찮냐고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자율주행의 윤리적 선택 문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였다.
김정은은 재준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임재준 동무 말이 맞아. 뭐 뚫린 입이라고 나불대는데 그냥 흘려들어.”
“종간나 새끼들 북조선이 잘되는 꼴이 그렇게 보기 싫으면 한판 붙자고 해요. 아주 갈가리 부셔줄 테니까.”
어유, 저놈의 입.
지난번 일본한테 쏟아붓고 나더니 더 심해졌어.
대학 총장 자리에 앉히면 좀 자중하려나.
“아, 김정은 동지. 할 말이 있습니다.”
“네, 해보세요.”
“투마로우 시티 구역을 좀 넓혀야 하겠습니다.”
“구역을요? 더 들어올 기업이 많습니까?”
“그거 북조선 땅을 점점 침범하는 거 아닙니까?”
어유, 꽉 쥐어박아 버릴까?
재준은 김여정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대학을 지으려 합니다. 대학.”
“대학이요?”
“투마로우 시티에 맞춤형 전문 인력을 공급하려면 교육 기관을 세워야 할 거 같아서요. 앞으로 인재가 굉장히 많이 필요하니까요.”
“안 됩니다. 대학에 들어가는 돈이 얼만데. 지금 김일성 대학만으로도 벅찹니다.”
“거참, 돈은 저희가 댈 겁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북조선의 인재들이 투마로우 시티를 위해 봉사할 수는 없습니다.”
“총장하시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