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7화 하늘이 스스로 돕는 것 같지, 전혀(9)
한 달 후.
투마로우 시티 내 투마로우 빌딩.
[뱅가모바이오사이언스는 배아 유전체 변형 태아 다섯 명이 무사히 출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현재까지는 아주 건강한 상태라고 합니다. 뱅가모는 공식적인 발표를 아끼고 있지만,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성장이 끝난 시점에서 아이의 키는 2m에 몸무게는 90kg을 유지할 것이며 아이큐는 200 이상을 예상한다고 전해졌습니다. 또한, 앞으로 추가로 다섯 명의 태아가 출산을 앞두고 있어 세간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임모탈은 노화되거나 사고로 손상된 모든 신체를 부분적으로 교체할 수 있는 동물 실험에 성공했으며 조만간 지원자를 모집해 임상 시험에 돌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투마로우 시티에 지원자가 폭주하고 있는 상황이며 선별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불로장생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각종 언론에서 희망적인 비평과 비관적인 비판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하하하하하하.
재준은 신문을 보며 혼자 좋아 죽겠다고 웃었다.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재준을 바라보았다.
왜 저러는 걸까?
이게 웃을 일인가?
“보스, 그렇게 웃을 일만은 아닙니다. 걱정도 안 되세요?”
펠그리니가 구겨진 얼굴로 재준에게 말했다.
“무슨 걱정?”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잘못하면 신인류에 의해 현 인류가 지배당하는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고요.”
“그게 왜? 우리 모두 예상한 거 아닌가? 투마로우 시티를 왜 만들었는지 잊었어?”
“그렇기는 하지만.”
“에이, 우리가 앞으로 닥쳐올 미래를 지금 왜 걱정해? 지금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일은 주가가 얼마나 올라가느냐라고. 이거 봐 벌써, 어유 얼마를 번 거야?”
“그것도 그래요. 이럴 줄 알았으면 주식을 가지고 있을 걸 그랬어요. 괜히 팔았어요.”
쯧쯧쯧.
재준은 퀴니코를 보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뱅가모나 임모탈 주식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냐. 이거 보라고.”
재준은 신문마다 실려있는 투마로우의 투마로우 시티 지배력에 대한 기사를 가리켰다.
“살찐 돼지를 키우려면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그거야 잘 먹이는 거죠.”
“그렇지. 지금 다들 잘 먹고 포동포동하게 잘 자라고 있잖아. 우린 잘 키운 돼지를 언제 잡아먹을지 고민만 하면 되는 거야. 굳이 나까지 살찔 필요는 없다고.”
“그런가요?”
펠그리니는 그것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보스.”
퀴니코가 급하게 들어섰다.
“뱅가모가 드디어 일을 저질렀습니다.”
“무슨 일?”
“공식적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정란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세계 부자들이 너도나도 하겠다고 주문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네.”
“저희가 뭐 할 게 없나요?”
“우리가 할 게 뭐가 있어.”
“그래도 첫 번째 아기의 아빠가 보스인데요?”
“우린 그 어떤 사태가 벌어져도 절대 개입하면 안 돼.”
“네?”
“모두 투마로우 시티에 왜 오게 됐는지 잊지 마. 윤리니 법이니 하는 것 따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여기에 투자한 거야. 우리는 철저하게 지켜만 볼뿐이야.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말이지.”
“그렇게 까지요?”
“그래, 실수로 괴물을 만들었다면 그걸 해결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야. 우리가 뭘 알고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겠어? 당장에 중학교 수학 문제도 못 푸는 우리가.”
“그, 그러네요.”
“우린 우리 일을 하는 거야. 김정은하고 얘기 끝났어. 투마로우 로열티의 20%는 우리 몫이야. 우린 전 세계의 소재 기업들을 어떻게 인수할까 머리를 쓰면 돼.”
으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퀴니코는 재준이 왜 저렇게 웃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우리야 돈 벌어 좋긴 한데.
왜 저렇게 웃는 거야?
누가 들을까 내가 다 공감성 수치심이 드네.
***
백악관.
후후후.
새로 신임된 비서실장 서덜랜드의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긴 숨을 내뱉으면서 얼굴엔 미소를 지었다.
“결국은 무엇 하나 뜻대로 된 게 없다는 말이네요.”
“제이콥의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서덜랜드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내가 지시한 걸 모르는 건가.
“그러게 그럴 줄은 몰랐는데. 아까운 사람 하나 잃었군요.”
“한쪽 시력을 잃어도 크게 지장은 없을 겁니다. 워낙 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럴까요. 불의의 사고로 눈을 잃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임재준에게 당했다는 게 제이콥에게 큰 상처로 남을 거예요.”
도대체 몇 번을 기회를 날린 건지, 쯧쯧.
눈 하나만 잃은 게 다행이지.
“그건 그거고. 민주당 차기 대선 후보는 힐러리 클리프를 내세우도록 하세요.”
“그렇게 진행 중입니다만 여성이라는 점이 걱정입니다.”
“세계가 변하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한국도 여성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제 여성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되었어요. 그 점을 부각시키세요. 그리고 힐러리는 뉴욕주 상원의원과 국무장관을 지낸 경력도 화이트칼라에게 어필하기 좋아요.”
“알겠습니다.”
“공화당 쪽은 어떻습니까?”
“마이크 벤이 대선 후보로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요즘 방송에 도날드가 자주 등장하던데 도날드가 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거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도날드가 나오면 더 좋습니다.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와 방송에서 토크쇼를 진행하며 너저분한 농담을 하던 도날드라면 승부는 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대통령은 도날드의 유세 장면을 보면서 항상 맘에 걸리는 인물을 떠올렸다.
“뭐 잘못된 부분이라도 있습니까?”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라 그 도날드 옆에 있는 한국인 있잖아요.”
“서형길 말씀하시는군요.”
“네, 그 사람. 그 사람 임재준 사람 아닙니까?”
“맞습니다. 한국에서부터 가깝게 지내던 사이라고 합니다.”
“그럼, 본격적인 공화당 후보 선출 과정에서 임재준이 도날드를 밀어주면 도날드가 공화당 후보로 나올 가능성은 생각해 봤습니까?”
“임재준이요?”
서덜랜드는 대통령이 입만 열면 임재준을 거론하는데 의아함을 느꼈다.
대통령이 임재준에 대해 너무 과하게 반응하네.
내가 알기로는 임재준이 정치인과 친하게 지내도 선거에 개입하는 성격은 아닌데.
그리고 지금 투마로우 시티로 인해 정신이 없을 테고.
대통령은 신문을 톡톡 두드리며,
“암튼 대비는 해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서덜랜드는 대답은 했지만, 자신도 마땅한 대응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떤 대비를 하란 말이지?
민주당도 아니고 공화당 일을.
그리고 임재준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 봐야 공화당에 정치 후원금 정도 대는 정도일 텐데.
대통령의 말도 안 되는 걱정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투마로우 시티는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투마로우 시티는 좀…… 힘들지 않을까요?”
“예전에 일본이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을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국제기구들이 어쩔 수 없이 발표는 했지만, 연구가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입을 닫아 버렸습니다. 아마도 자신도 혜택을 받아야 하는데 전면에 나서서 비난할 용기는 없었을 겁니다.”
“그 이야기를 언론에 계속 흘리세요. 비난이 끊기면 찬양이 득세하는 겁니다. 지속적으로 찬반 여론을 조성해야 당장엔 쓸모가 없어도 언젠간 쓸 만한 칼이 되는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만 나가보세요.”
서덜랜드가 고개를 까딱이고는 나갔다.
대통령은 목이 말라 물 한잔을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겼다.
이야기하면서 메말랐던 가슴에 물이 들어가니 온몸이 적셔지는 기분이 들었다.
답답한 임기 말년을 보내고 있다.
내 임기 때 월가를 장악했어야 했는데.
월가를 장악하려면 먼저 연준을 손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 정부는 연방준비위원회의 악몽에서 벗어나야 했으니까.
세상에, 세계 경제 최강대국에 중앙은행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대통령이 물가 안정을 위해 지폐를 발행하는 연준과 상의해야 한다는 게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왜 미국 정부는 연방준비위원회를 없애고 중앙은행을 만들지 못하는 걸까?
역대 대통령들은 꾸준히 연준을 없애고 중앙은행을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연준은 이미 오래전부터 주 정부의 경제권을 인정했다.
연준을 없애려 들자 미국의 50개 주가 들고일어났다.
연준만 손에 넣으면 월가도 손에 넣을 수 있을 텐데.
후.
연준은 고사하고 투마로우 하나도 못 잡고 임기를 마치게 생겼다.
한심한 제이콥.
그렇게 얕보지 말라고 했거늘.
***
재준의 아지트.
“서형길, 너희 보스는 언제쯤 미국에 오는 거야?”
도날드는 아랫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술을 한잔 들이켰다.
“도이츠방크와 코베르방크 합병 후 온다고 하더니. 북한으로 가 버렸어.”
“북한? 음, 나도 북한 한번 가면 인기가 확 오를 텐데.”
“그래? 왜?”
“왜라니? 모르는 거야? 북한은 아무나 못 들어가잖아. 김정은이 초청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어.”
재준과 이야기를 나누던 김정은이 초청장이 없으면 북한에 발도 못 들이는 나라로 만들어 버렸다.
핵무기 개발 때도 북에 들어가려면 허락이 필요했는데 투마로우 시티 때문에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심지어 한국에서 북으로 올라간 사람을 돌려보내기까지 했다.
“누굴 초청하는데?”
“돈 많은 사람?”
“그게 뭐야, 돈 내면 다 들어간다는 거잖아.”
“글쎄, 그 돈이 10억 달러부터 시작이면 생각 좀 해야 하지 않겠어.”
“10억 달러?”
“그래, 임모탈 최소 시술 금액이 10억 달러야.”
헉!
한화로 1조가 넘는 돈이잖아.
하긴 죽는다는데 돈이 문제야.
1조가 아니라 10조라도 있으면 주고 사는 게 낫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 법이니까.
“그럼 10억 달러 주면 얼마나 더 사는 건데?”
“10년. 딱 10년은 아니고 10년부터 신체 부식이 진행된다고 하더라고.”
“이야, 나쁜 놈들 일부러 그런 거 아냐?”
“그런들 뭐라 할 수 있어? 살아야 하는데. 그리고 실제 현재 기술로는 10년이 한계래.”
“그럼 앞으론 더 발전하면 가격도 싸지겠네.”
“그렇겠지. 원래 처음이 비싼 거니까. 암튼 서형길 너는 임재준한테 잘 말하면 공짜로 할 수 있는 거 아냐?”
“공짜로?”
서형길은 재준을 떠올리자 미간이 확 펴졌다.
그러네.
도련님이 설마 내가 죽어 가는데 내버려 두시겠어.
아니,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죽긴 내가 왜 죽어.
“아유, 몰라. 죽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아니, 민주당은 대선 후보가 2명인데 공화당은 왜 12명이나 되는 거야?”
“저쪽은 힐러리가 있으니까. 기껏해야 버니 정도가 대항마지만 우린 스타가 없잖아.”
“와, 12명을 언제 다 까고 다녀. 이것도 일이네.”
“아니야. 그전에 임재준이 그런 말을 한 적 있어.”
“도련님이 뭐라고 했는데?”
“일일이 상대하지 말고 크게 크게 생각하라고.”
“크게 크게?”
“그래, 그래서 처음엔 불법체류자 문제를 꺼내고, 미국을 지키다 죽은 미군 상이용사에게 기부도 하고. 거 있잖아. 불편한 진실. 말하기 뭐하지만 했으면 하는 거.”
“아니, 정책 같은 게 아니라 감정싸움을 하란 말이잖아.”
“어차피, 금융위기 이후로 화이트칼라에 대한 감정이 안 좋잖아. 그걸 이용하라는 말 같던데.”
“그다음은?”
“그렇게 이목을 집중시키고.”
“시키고.”
“내 꼴리는 대로 하라던데?”
“뭐?”
“개판을 쳐도 되니 난장판을 만들라고.”
아니 잘 나가다가 개판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