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0화 하늘이 스스로 돕는 것 같지, 전혀(2)
리히텐슈타인.
“마가리따, 그거 꽤 위험한 발상입니다.”
재무부 장관 루카는 마가리따의 설명을 듣고 방송으로 사람을 찾는다는 아이디어를 적극 반대했다.
“왜요?”
“다른 조직도 그들을 쫓는다면서요.”
“그러니까 하루빨리 찾아야지요. 그들에게 알려야죠. 우리 품으로 들어오라고. 우린 당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다. 뭐 이렇게요.”
하하.
루카가 어이없어 한탄이 웃음으로 바뀌어 나왔다.
“마가리따, 당신이 그들이라면 그 말을 믿겠어요?”
“네? 우리를 믿는다…….”
내가 도망자라면 투마로우에서 당신을 보호할 테니 우리한테 와라 하면? 음, 바로 도망가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군요.”
“그럼요. 다른 나라로 도망가 버릴 겁니다. 거기다 다른 조직에게 ‘너희들이 찾는 인간들이 여기 있다’라고 소리 지르는 꼴이 됩니다.”
안 좋은 방법이었어.
“그럼, 어떻게 하면 좋죠? 혹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저희 리히텐슈타인은 군대도 없고 경찰이라 해봐야 130명이 다입니다.”
“아, 130명.”
이게 나라야 동네야.
전에 프랑스에서 봤을 때는 한 나라의 재무장관이라 해서 뭔가 있는 줄 알았는데 너무 초라하잖아.
“잠시만요.”
엘리자베스가 무언가 생각 난 듯 둘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너무 이상해요. 스위스나 오스트리아가 아기를 낳기에 훨씬 좋은 환경이잖아요.”
흠. 흠.
루카가 인정은 하나 이렇게 대놓고 자신의 나라를 비하하는 것이 못마땅한 듯 헛기침을 했다.
“아, 죄송해요. 리히텐슈타인을 낮추려는 의도는 아니에요. 하지만 올바른 추측을 위해서 한 말이니 이해해 주세요.”
“아, 괜찮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다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손가락으로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마가리따 언니.”
“응?”
“이 사람들 여기서 애를 낳고 스위스든 오스트리아든 이동하려는 것 같아요.”
“왜 여기서 애를 낳아?”
“등록시키지 않을 작정이에요.”
“뭐?”
“맞아요. 애를 낳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여길 온 거예요.”
“설마.”
“아이를 낳으면 어쩌면 독일로 숨어 들어갈지 몰라요. 실험을 위한 도구나 약이 필요할 테니.”
“그럼 우린 어쩌지?”
“찾아야죠.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여기.”
엘리자베스가 루카의 눈치를 살폈다.
“경찰이랑 우리 사람들 풀면 금방 찾을 것 같은데. 무조건 갓난아기만 찾으면 되니까.”
“그런가?”
“인구 4만도 안되는 나라잖아요.”
크기는 한국 성남시 정도에 인구는 3만 8천인 나라가 리히텐슈타인이다.
심지어 군대도 감옥도 없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에 빌려서 사용한다.
솔직히 아이를 낳아 다른 나라로 사라지면 아무도 모를 정도로 사회 기반 시설이 전무하다고 봐야 했다.
흠. 흠.
루카는 자신도 모르게 헛기침이 나왔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래도 마가리따에게 도움을 줘야 후일을 기약하겠지.
“경찰 인력을 전부 동원하겠습니다.”
“아, 네.”
그래 봐야 130명.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
“시간이 없으니 빨리빨리 움직였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말을 마치고 제발 자신의 추측이 맞기를 바랐다.
그래야 이 작은 나라에 애를 낳기 위해서 있을 테니까.
엘리자베스와 마가리따가 재무장관실을 나가자 루카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임재준의 아기가 여기 있습니다.”
상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
프랑스 샤를 드골 국제 공항.
제이콥은 공항을 나오자 현지 직원이 다가와 고개를 까닥였다.
“레이와 셀레나는?”
“프랑스에서 중고차를 한 대 샀습니다.”
“머리는 있는 모양이네. 버스나 기차는 흔적이 남으니까 자동차로 이동하겠다?”
“그런 것 같습니다.”
“주변 접경 국가를 통과하려면 출입국 사무소를 통과해야 하니까. 영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에 협조 공문 보내고……. 가만 스위스?”
스위스, 스위스라…….
아냐, 스위스 산골에 처박혀서 임재준 아이를 키우기에는 너무 위험해.
자칫 다치거나 몸에 이상이 발견된다면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곳이 낫지.
나라면 영국이나 독일을 선택했을 텐데.
영국을 가는데 굳이 여기서 중고차를 구입할 리는 없고.
그렇다면.
독일.
독일이야.
골몰히 생각에 몰두하는 제이콥에게 요원 하나가 다가왔다.
“실장님. 혹시나 해서 말을 하는데.”
“뭔데?”
“투마로우 엘리자베스와 마가리따가 프랑스에 며칠 머물었습니다. 둘 다 화려한 관광객 복장이라 그냥 넘어가긴 했는데. 마음에 좀 걸려서요.”
“뭐? 이런 멍청이들. 엘리자베스는…….”
차마 엘리자베스가 아기의 엄마라고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프랑스에 있을 때 워낙 떠들썩하게 돌아다녀서 저희는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이런, 그럼 프랑스에서 그들의 자세한 행적은 모른다는 거잖아.”
“그게 그렇긴 합니다. 워낙 요란스럽게 행동해서.”
“지금 어딨어? 당장 사람을 붙여.”
“그런데 며칠 전 사라졌습니다. 아마 미국으로 돌아간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쯧쯧쯧.
완전 당했네.
프랑스 어디에서 정보를 얻고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잖아.
가만. 미국 대사관이면 그들의 행동에 촉각을 세웠을 거야.
다행히 지금 미국 대사는 안면이 있는 사이고.
제이콥은 핸드폰을 꺼내 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전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 제이콥입니다. 대사님 좀 바꿔 주실 수 있습니까?”
-헉, 비서실장님? 잠시만요. 마침 계십니다. 전화 바꿔 드리겠습니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아니, 갑자기 프랑스엔 어인 일입니까? 아니, 어디십니까? 저녁이라도 같이하시죠.
“아닙니다. 지금 바쁘게 처리할 일이 생겨서 시간이 없습니다.”
-이런, 그럼 전화하신 거 보니 제가 도움을 드려야 하는 상황이군요.
“그렇습니다. 음. 그게, 혹시 마가리따가 웬 20대 여성분과 프랑스에 왔다는데 알고 계십니까?”
-그럼요. 엘리자베스, 카킬의 후계자와 같이 왔습니다. 저녁도 같이하고 술도 같이 한잔했습니다.
대사랑 식사도 같이했다고?
이상하네.
이런 일은 은밀히 움직이는 게 정상 아닌가?
“그러셨군요.”
-근데 왜 그러십니까?
“아, 네. 별일은 아닙니다. 그저 두 사람이 투마로우와 관계가 있으니 프랑스에 온 김에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이런, 이미 떠났을 겁니다.
“음. 혹시 어디로 간다는 말은 안 했습니까?”
-독일이요. 독일로 간다고 하더군요.
제이콥은 다른 요원에게 ‘독일’이라고 입 모양을 만들었다.
요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독일이요. 근데 왜 간다고 하는지 이유를 말하던가요?”
-그냥 관광이라고 하던데요.
“아, 그럼, 제가 한발 늦은 거네요.”
-하하하, 그런 셈입니다.
“그럼, 일 마치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되도록 뵈었으면 합니다.
“네. 저도. 그럼.”
통화가 끝나자 요원이 제이콥에게 다가왔다.
“독일로 간 사람 중 레이와 셀레나는 없답니다.”
“그래? 그럼 어디로 갔지?”
이때, 요원 하나가 통화 중 손을 들었다.
“스위스입니다.”
“스위스?”
“네, 엘리자베스와 마가리따가 스위스 출입국 사무소를 통과했답니다.”
“그래?”
독일이라고 하고 스위스로 갔다.
관광이라면 굳이 대사에게 다르게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우리도 스위스로 간다.”
“네. 스위스 요원에게 미리 연락하겠습니다.”
“되도록 빨리 신상을 확보하라 일러.”
“네.”
스위스라.
레이와 셀리나도 스위스로 간 거겠지.
아니면 둘이 갈라져서 찾았을 테니까.
제이콥이 차에 올라타자 차가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
AAG 빌딩 66층.
“코안 판결 나왔다며?”
재준이 워서스틴에게 물었다.
“지난번 18억 달러에 이어 이번에는 10억 달러 벌금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벌금으로 그친 게 아니라 자그마치 20년 형이 나왔습니다.”
헉.
완전히 갔네. 갔어.
감옥에서 완전히 나오지 말라는 거네.
“그리고 추가로 SEC이 GPR에 대한 소송을 진행 중이랍니다. SAK보다 더 나쁜 놈으로 만들 작정입니다. 이제 월가에서 내부자 거래는 진짜 불법이 될 것 같습니다.”
이걸 아는 척해야 하나?
“아이고, 제이크 바쁘다고 난리 치겠네.”
“그래서 박민수랑 강호석이 보스 핸드폰으로 들어온 문자 전달하러 갔다가 붙잡혀서 SEC에 감금되었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구출해 낼까요?”
나도 알아. 내가 보냈다고 내가.
어떡해, 그만한 인재가 없는걸.
“아니, 일단 모른 척해.”
재판 끝나고 나오면 또 나를 잡아먹을 듯이 덤빌 텐데.
한국으로 보내 버릴까?
안 되지. 그만한 인재가 없다니까.
모두가 박민수와 강호석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빌었다.
내부자 거래 문제는 이렇게 대충 마무리가 되었다.
월가에서는 투마로우가 또 투마로우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GPR 이외의 전문가 네트워크 기업들은 조용히 내부 정리에 들어갔다.
여기서 설쳤다가는 코안과 같은 방을 쓸 게 확실하니까.
잠시 침묵이 이어지는 이때.
“근데 보스는 엘리자베스 이야기는 왜 안 물어보십니까?”
퀴니코가 가장 급한 문제인데 너무 초연한 거 아니냐는 듯 물었다.
왜 안 물어보겠니.
너무 걱정되니까 티 안 내려고 안 물어보는 거지.
“천 실장님, 갔잖아. 잘 될 거야.”
“그분은 언제나 말이 없던데. 일은 잘하나 보죠.”
“천 실장님이 바로 17대 1로 싸웠다는 그 전설의 싸움꾼이거든.”
“아, 17대 1. 그렇군요.”
“어? 표정이 왜 그래? 안 믿는다는 얼굴인데.”
“믿어요. 보스가 그런다면 그런 거죠.”
그걸 믿느니 람보나 반담이라고 하는 걸 더 믿겠다.
그나저나.
“마가리따가 찾을 수 있을까요?”
“올리가르히도 찾았다니 나름 노하우가 있겠지.”
재준은 천천히 걸어가 모니터에 깜빡이는 점을 보았다.
엘리자베스와 마가리따에게 준 GPS 칩이 현재 위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리히텐슈타인이라.
영국으로 갈 줄 알았는데 반대 방향으로 가네.
스위스를 거쳐 리히텐슈타인이라면 최종 목적지는 독일이라고 봐야 하는데.
독일에 먼저 가서 준비 좀 하자.
“윌켄, 도이츠방크 상태 지금 많이 안 좋죠.”
“안 좋은 정도가 아니죠. 거의 코너에 몰려 있습니다. 그리스 국채가 가장 커다란 문제에다 이탈리아와 스페인까지 휘청여서 이쪽 국채도 많이 가지고 있어 신용도가 한참 떨어졌어요.”
“코베르방크는요.”
“거긴 더 하죠.”
“그럼 두 은행을 합병시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합병하는 게 아니라 두 은행을 합병시킨다고요?”
“당장에 독일 정부와 이야기를 하려면 무리수를 좀 둘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도이츠방크와 코베르방크는 합병을 추진했으나 무산되었다.
두 은행이 합병해서 건실하게 태어나려면 둘 다 건실하던가 아무리 못해도 하나는 건실해야지 둘 다 패잔병이면 곤란했다.
“어디를 손보실 겁니까?”
“코베르방크.”
이 시기 코베르방크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DCM(부채자본시장) 발행시장 부문 위상이 상당했다.
부채자본시장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각종 채권 발행으로 돈 만들어 주는 걸 말한다.
특히 중국과 한국물 유로채권발행 순위에서 한동안 상위권을 유지했다.
투자은행의 한 부서인 Sales & Trading의 일부 부서는 아시아에서도 상당 기간 시장을 주름잡아왔다.
특히 FICC 부문보다는 Equity 부문이 강했다.
FICC는 채권, 이자율, 외환, 원자재를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투자은행 내 부서 이름이고, Equity는 주가지수, 주식,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부서 이름이다.
한마디로 말해 Equity는 주식 파생상품, FICC는 주식 외 파생상품을 취급하니까 주식 파생상품이 강하단 소리였다.
하지만 미래에는 FICC가 더 큰 돈이 되는 시대가 도래한다.
그때를 위해서도 미리미리 사두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코베르방크에 어떻게 투자하죠?”
“투자? 그건 아니고. 일단 독일 재무부에 연락해 보죠. 코베르 본사 건물 매입하겠다고.”
“그 독일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