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6화 거 내 흉내 내니까 그렇게 되잖아(8)
투마로우 1층을 공략해야 한다는 루이스의 말에 대통령이 관심이 증폭되었다.
“자세히 말해 보세요.”
“투자은행 판매부서에 있는 사람들은 투자은행이 과도하게 보유하거나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에서 처분해야 하는 채권을 판매합니다. 하지만 이런 채권은 다른 기관도 과도하게 보유하고 있어서 일반 고객에게 판매해야 합니다. 이때, 감언이설과 접대 등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비싼 가격에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여기가 투마로우의 약점입니다.”
“투마로우는 아닐 수도 있잖아요.”
“판매부서는 다 똑같습니다. 그곳에서 교육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만약 어떤 고객이 잘못된 거래로 화를 낸다면 무시하라’입니다. 새로운 고객은 매일 탄생하니까. 만약 투마로우만 다르게 영업을 한다면 월가의 원성이 자자할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도 똑같이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아래. 임재준이 전혀 신경을 쓸 수 없는 아래를 공략해야 합니다.”
“루이스, 투마로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군요.”
“아닙니다. 이번 내부자 거래를 조사하면서 틈틈이 투자은행과 투마로우에 대해 조사를 한 것입니다.”
“역시 FBI입니다.”
“제가 다루는 인원이 4,000명이 넘으니까요.”
“4,000명이라.”
4,000명이라는 말을 들은 제이콥의 눈가에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이제 대놓고 저격하는구나.
4,000명. 대통령 비서실이 운영하는 조직의 인원이다.
루이스는 대통령 대신 제이콥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제이콥이 자신의 말뜻을 이해했다고 확신했다.
이제 내 패를 꺼냈으니 제이콥 당신의 패를 꺼내 보는 게 어때?
내가 당신을 밀어낼 수도 있는데.
***
대통령 비서실.
쾅.
거칠게 문을 닫고 제이콥이 들어섰다.
후.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방금 전 루이스의 도발을 상기했다.
루이스, 꽤나 고민했다 이거지.
투마로우를 하부를 공략한다.
하하하.
이거 내가 너무 루이스를 얕잡아 본 건가.
하긴 FBI 국장 자리에 몇 년을 앉아 있었는데.
그래, 상대의 약점을 찾는 건 나보다 낫겠지.
대통령의 표정을 보아하니 상당히 루이스로 기울었는데.
이제 역전 시킬 카드를 무엇으로 만들어야 하나.
임재준의 아기.
아니야, 이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
CIA와 공조도 해야 하는데.
이건 대통령이 절대 허락하지 않을 상황이야.
그렇다면 초점을 대통령의 설득이 아니라 루이스의 실각에 두어야 하나.
그럼, 루이스의 약점은…….
아, 그린스틴.
아니, 중국을 건드려 볼까?
그냥 임재준과 손을 잡아?
여러 가지 상념이 제이콥의 머리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그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자, 차분하게 루이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놈이 투마로우의 약점을 알아냈다고 치면 임재준을 공격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 허락할까?
대통령은 임재준의 약점을 자신이 가지고 있기를 원하지, 직접적인 공격을 원하지 않아.
그렇다면 루이스는 대통령의 곁에 있어야 한다.
후후, 내가 도리어 쫓겨나는 그림이네.
제길.
제이콥은 의자 뒤로 자신을 파묻었다.
아니지, 루이스가 찾은 약점을 가지고 내가 먼저 임재준을 치면 어떻게 되나?
‘시작은 대통령에게서 시작된 거군요.’
제이콥의 머리에서 재준의 말이 떠올랐다.
어쨌든 이 시작은 대통령이라고 알고 있으니까 공격을 당하면 대통령이라고 믿게 될까?
천만에. 임재준이라면 대통령에게 당장 확인부터 할 거야.
이 수는 너무 하수다.
루이스를 치냐, 임재준을 치냐.
아니면.
대통령?
대통령을 칠까?
대통령을 친다. 대통령을 친다.
너무 위험한데.
아니야. 가장 안전한 선택지가 필요해.
나한테 피해가 없는.
***
FBI 국장실.
“또 투마로우를 털자는 말입니까?”
부국장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국장의 말에 의문의 제기했다.
“이번엔 다르잖아. 임재준과 상관없는 곳이니까. 괜찮아.”
“판매부서의 채권 판매 행위는 투마로우, 월가, 아니, 미국 전역에 있는 은행이라면 당연하게 행해지는 겁니다.”
“당연하다고 불법을 묵과할 수 없잖아.”
“기껏해야 벌금으로 끝날 문제로 투마로우와 척을 질 수는 없잖습니까?”
“소송까지 가지 않을지도 몰라.”
“그럼, 뭐 하러 인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겁니까?”
거참, 대통령 지시라고 말할 수도 없고.
“임재준이 이번 항소심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잖아. 그럼, 다른 건 하나 쥐고 있어야 우리도 끌려다니지 않을 거 아냐?”
“겨우 그런 일로 수많은 은행원의 뒷조사를 해야 한다고요? 이게 어디 백여 명이면 생각해 보겠는데 수만 명입니다. 이걸 한다는 건 문제가 많습니다.”
“겨우 그런 일이라니. FBI가 한 기업에게 무시를 당해서 되겠어? 그리고 수만 명 중 한두 건만 알아내면 그 즉시 중지하면 되잖아. 어쨌든 증거만 있으면 돼.”
“한두 건만 알아내면 즉시 중지합니다.”
“그래, 다시 말하지만, 소송할 건 아니니까. 한두 명만 배정해.”
“알겠습니다.”
부국장은 인력이 최소화돼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행이긴 한데.
왜 이리 투마로우에 집착하는 건지.
이러다 진짜 큰일 나는데.
국장은 부국장이 가져온 서류를 흩어봤다.
“이거 SEC에서 가져온 자료를 토대로 불러들일 놈들 명단인가?”
“네, 거의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서 자백만 남았습니다.”
“자백할 가능성은?”
“거의 100%입니다.”
“그럼, 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네.”
그래, 코안 문제는 이걸로 마무리하면 되겠고.
“근데, 증거와 자백만 가지고는 승소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어려워? 아니 재판에서 증거와 자백이면 되지 또 뭘 들이밀어야 한단 말이야?”
“코안이 투마로우에 버금가는 최상의 법무팀을 꾸린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또 검사들이 변호사로 쓸려 나가는 거야?”
“최대한 이번 사건을 맡은 검사들을 다독이고 있지만 돈 앞에 장사 없으니까요.”
“이거 뭐, 임재준 때문에 검사 빼 가는 게 유행이라도 되는 거야?”
“이후 강력하게 경고도 하겠지만…….”
“아니야. 애쓰지 마. 가겠다는 놈을 어떻게 막겠어. 나라도 돈 많이 준다면 이놈의 FBI 때려치울 판인데.”
진짜 때려치울까?
요즘 들어서 할 일만 많고 실속은 없으니 할 맛이 안 나는데.
“근데 국장님.”
“왜?”
“이상한 낌새가 있다는 정보가 있는데요.”
“이상한 뭐?”
“비서실장이 코안을 만날 것 같다고 합니다.”
“누가 그래?”
“비서실에서 얻은 정보입니다. 비서실장이 먼저 전화했다고 하던데요.”
“비서실장이 먼저?”
이거 봐라.
첫 게임부터 망쳐 놓겠다는 거잖아.
“도청 가능해?”
“네?”
“비서실장은 어려워도 코안 쪽은 가능하잖아.”
“가능은 한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직 코안이 내부거래 위험이 있다고 검사에게 영장 발부해 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진짜 피곤하게 만드네.
***
뉴욕 허름한 바.
제이콤은 어두운 구석에 앉아 위스키 한 병을 시켜 놓고 홀짝이고 있었다.
저벅저벅.
중절모를 푹 눌러 쓴 신사가 그의 앞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조용한 곳도 많은데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보자고 해서 약간 당황했습니다.”
“장소는 사람에 따라 안전한지 위험한지 결정되는 겁니다. 여기에 와서 술을 먹는 사람들은 그다지 세상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기가 더 안전한 겁니다.”
“그런 철학을 가지고 계시네요.”
“철학이 아니라 경험이죠.”
중절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용건이 무엇입니까?”
“급하시긴, 한잔하세요.”
제이콥이 중절모의 잔에 술을 따랐다.
“돈이 필요하신 겁니까?”
“그럴 리가요.”
“사람이 필요한 건가요?”
“아닙니다. 이번엔 내가 코안, 당신을 도와주려고 그럽니다.”
“저를요?”
“네, 이번에 또 FBI와 소송전을 펼칠 거 아닙니까?”
“그런데요?”
비서실장이 나를 왜 도와줘?
그런데 돈도 아니고 인맥도 아니면서 무료 봉사라도 하는 건가?
“내가 당신 변호인단을 모집해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이거 뭐라고 감사드려야 하나…….”
코안의 입에 빈정거림이 넘실거렸다.
언제는 내부 거래자로 낙인찍더니, 이제는 도와준다고?
그것도 변호인단을 손수 모집해서.
코안의 삐딱함을 신경도 쓰지 않고 제이콥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한번 보세요. 맘에 들면 내가 말을 해 보죠.”
코안은 제이콥이 내민 종이에 적힌 이름을 죽 훑으면서 입술을 굳게 닫았다.
솔직히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름 앞에 있는 직함은 이름을 몰라서 미안할 정도로 직위가 높은 이들이었다.
“왜 이러십니까?”
코안의 태도가 급격하게 변했다.
마치 잘못해서 머리통을 한 대 맞은 곰 새끼처럼.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알아도 될까요? 이런 호의는 무척 당혹스럽습니다.”
“FBI 국장 루이스가 제자리를 넘본다면 충분한 이유가 될까요.”
“그런 사정이…….”
비서실장의 선의는 알겠는데 FBI 국장에게 찍히는 건 어떡하라는 거야.
“망설이시는 겁니까?”
“당연하게도 그렇습니다.”
“이번 재판에서 FBI를 이기면 어찌 될까요?”
“저를 말하는 겁니까, 아니면 SAK를 말하는 겁니까?”
“아니요. FBI 국장을 말하는 겁니다.”
“재판에 한 번 졌다고 국장이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요.”
“아무렇지 않다면 제가 회장님에게 제안을 했겠습니까?”
“그런 겁니까?”
둘 싸움에 내가 끼인 건가?
하지만 받을 수도 안 받을 수도 없게 되었는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재판을 이길 것이고 FBI 국장은 다른 이로 교체될 겁니다.”
“혹시 윗선에서 이야기가 된 것입니까?”
“그거야 물론 제가 말하기 나름이죠. 하지만 이길 때도 질 때도 제거될 당사자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군요.”
당사자라면.
나도 포함되는 거구나.
이거 상당히 난처한데.
“하하. 아직도 이해를 못 하시는군요. 임재준 재판이 어떤 재판인지 잊은 건 아니겠죠.”
“임재준 재판……. 그건, 그렇군요.”
임재준 재판은 내부자 거래 재판이다.
그럼 이게 내 재판에도 영향을 미치겠지.
이걸 노리는 건가?
연이은 재판의 패배.
FBI 국장을 코너로 몰아서 내려오게 만든다?
“결정하셨습니까?”
“안 받을 이유가 없네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변호사 비용은 부담해야 합니다. 아무리 제가 부탁을 한다 해도 돈이 적으면 마다할 테니까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내 편에게 줄 돈 깎을 생각은 없습니다.”
“잘됐네요. 그럼.”
제이콥은 코안에게 주었던 종이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철저한 놈.
코안은 종이를 건네주었다.
“자, 그럼 한배를 탔으니 건배를 들어야겠군요.”
쫄쫄쫄.
코안의 술잔에 위스키가 가득 담겼다.
독이 든 성배다.
***
[임재준의 항소심에서 일대 파란이 일어났습니다. 법원은 판결을 통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혐의로 트레이더를 기소하려면, 최초의 정보제공자가 받는 혜택을 해당 트레이더가 알고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법원은 정보제공자가 받는 혜택이 돈처럼 구체적인 것이어야지, 우정이나 호의를 베풀려고 정보를 제공한 경우에는 내부자 거래로 처벌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임재준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벌금 1억 달러도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현역 판사 중 몇몇의 반응은 아주 요란했다.
[어제 판결은 내부자 거래 금지법을 탱크로 밀어 버리듯 짓밟았습니다. 법을 너무도 크게 후퇴시켰기에, 어제까지만 해도 대다수 월가 관계자가 '저건 잘못된 행위야!'라고 말했을 활동을 정당화시켰습니다.]
리처드 호웰. 연방판사가 포문을 열었고.
[이번 판결은 파렴치한 행위에 대한 명백한 로드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마도마를 판결한 프리트 바렐 판사가 뒤를 이었다.
나머지 법조계 인사들은 이들이 왜 설치는지 의아해했다.
드디어 SAK 재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