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화 거 내 흉내 내니까 그렇게 되잖아(7)
“진짜 못 말리는 인간이라니까. 내가 FBI 국장이란 사실을 자꾸 잊게 만든단 말입니다. 미국에서 FBI 국장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도 않을 텐데.”
“루이스, 그건 당신한테 해당되는 말 같은데. 이미 나를 한 번 겪어 봤으면 제이콥이랑 손을 잡지 말았어야지요. 도대체 왜 그런 겁니까? 설마 자신은 감당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나요?”
“감당이라……. 그러면 당신은 나를 어떻게 할 자신은 있고요?”
“이제 보니 시간이 좀 지난 금융위기 때 일도 들추던데. 그린스틴의 자료가 나에게도 꽤 많이 남아 있어요. 아, 달로이트 회계법인 자료도 넘치고.”
음.
루이스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바로 자신이 깊숙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기 상장 카르텔의 이야기를 재준이 내뱉고 있었다.
그때 중국 기업이 상장 폐기당할 때 느꼈던 공포감이 다시 머릿속에서 슬그머니 번졌다.
“이미 지난 이야기를.”
“멍청하긴.”
“뭐요?”
“당신과 나는 잊을 수 있지. 하지만 중국도 잊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아직도 CDB 행장은 이빨을 갈고 있어요. 그때 당신은 정말 빠르게 발을 빼던데. 중국으로 오고 간 흔적을 중국이 자발적으로 지웠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죠?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그래, 중국이 떠들어 댄다면 FBI 국장 파면 정도는 일도 아니겠지.
하하하.
“좋아, 좋아.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간단해요. 당신 손으로 코안도 죽이고 제이콥도 죽이는 겁니다.”
뭐?
제길, 제대로 엮였네.
여기.
제이크가 루이스 앞에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루이스는 서류를 펼쳐 흩어보고는 탁자에 다시 내려놓았다.
SAK가 저지른 또 다른 내부자 거래 내역들.
“임재준, 원래 그리던 그림이 이거였습니까?”
“그럴 리가, 그림은 그리면서 달라지는 거예요. 처음부터 완벽한 그림은 없으니까. 하지만 처음 FBI가 휘두른 붓질이 너무 어설퍼서 뭐, 완성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내부자 거래로 엮으려는 루이스의 계획이 재준에게는 결말이 뻔히 보이는 스케치였다.
“완벽하진 않았어도 나름 괜찮은 그림이었는데.”
후후.
제이크가 루이스의 말을 비웃고 말았다.
“루이스, SEC가 설마 코안을 치리라고는 예상을 못 했겠지요. 평상시와 같이 보조를 맞출 거라 생각한 게 패착이었어요.”
“그런가?”
“코안을 치는 건 투마로우가 충고를 준 덕분이었어요. 사실 우리도 몰랐던 부분이었거든요.”
“난 그게 이해가 안 가는데. 코안의 내부자 거래는 FBI도 몰랐단 말이지. 어떻게 안 겁니까?”
“신문에 나와 있는데 몰랐어요?”
“신문?”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코안을 치면 제이콥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을 겁니다. 둘의 연결점은 전혀 없습니다.”
“둘의 연결점을 찾는 게 아니라 당신이 투마로우를 위해 수사한 자료들로 연결점을 만들어야지요.”
“제이콥을 거짓으로 엮으란 말입니까?”
“그럼요. 나는 되고 제이콥은 안 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허, 임재준.
둘 다 죽으라는 거잖아.
제이콥이 가만히 당할 인간도 아니고.
“못 하겠다면.”
“당신만 죽는 겁니다.”
재준의 말에 싸늘한 감정이 실렸다.
루이스가 이 말의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네가 둘을 죽이고 살아남아라.
아니면 너만 죽던가.
“시삼네스 이야기를 아나요?”
“시삼네스?”
“캄비세스 왕이 부당한 판결을 한 시삼네스를 산 채로 가죽 벗겨 그 가죽으로 의자를 만들고 그의 아들을 판관으로 앉혔지요.”
“잔인한 일이군요.”
“잔인한 일 이전을 생각해야죠. 당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 스스로 해결하세요. 이익을 자신이 얻되 손실을 남에게 전가하는 일은 절대 옳지 않아요. 어쩌면 당신의 아들이 당신의 가죽으로 된 의자에 앉을 수도 있어요.”
후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알겠소.”
루이스는 조용히 일어서서 재준을 바라본 후 아무 말 없이 나갔다.
루이스가 나간 후 제이크는 재준을 보고 쓴 미소를 지었다.
“한동안 잘 지낸 사이였는데.”
“자신이 선택한 일이니 어쩔 수 없어요.”
“아니까 더 씁쓸한 겁니다. 제이콥은 이해가 되지만 루이스는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했다는 게……. 어리석은.”
“코안이 어떻게 나올까요?”
“또 한 번 유죄 합의를 하거나 정면 승부를 택하겠죠. 하지만 루이스라면 코안을 무참하게 쓰러뜨릴 겁니다.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가다간 FBI 내에서도 입지가 좁아질 테고 월가 또한 그를 비웃을 테니까요.”
“그럼, 이제 제이콥만 남았군요.”
“그에 대한 대비가 있습니까?”
“대비라기보단 알려 줘야죠.”
“네?”
재준은 핸드폰을 들면서 빙글 웃었다.
띠리리링.
-임재준, 어쩐 일로 저한테 전화를 다 하셨습니까?
“제이콥, 경고 하나 해 주려고요.”
-경고라니.
“방금 내가 루이스에게 당신의 목줄을 끊어 놓으라고 했어요. 쉽진 않겠지만 잘 버티세요.”
-뭐라고요? 지금 무슨 짓을 벌인 겁니까?
“제이콥, 알면서 모르는 척하지 말아요. 내부자 거래 사건 뒤에 당신이 있었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요. 루이스를 설득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아마 힘들 거예요. 내가 약을 아주 많이 쳐 놨거든.”
-저, 정말 이런 식이라면.
“당신이 먼저 시작한 싸움. 당신이 마무리하세요. 그럼 잘해 봐요.”
뚝.
재준이 전화를 끊고 제이크에게 미소를 지었다.
허.
“이건 또 몰랐습니다. 제이콥에게 연락할 줄은.”
“싸움이란 모름지기 공평하게 시작해야 하니까요.”
오드와는 지금까지 광경을 다 지켜보며 점점 더 저 인간을 짐작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판에서 일부러 지고, 상대 검사를 전부 자신의 법무팀으로 만들었단 소식을 접하곤 ‘아, 그럴 수도 있구나’ 했다.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너무 달랐다.
하나는 FBI 국장이고 하나는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이게 마치 마피아 조직 내에서 서로 친한 부하 둘을 불러 놓고 서로 싸워보란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싸우란다고 진짜 싸우는 저 둘은 무엇이고.
FBI 국장과 대통령 비서실장이 다시 손을 잡고 임재준을 몰아붙일 가능성은 정말 없는가.
제이크가 임재준을 지켜보라고 했는데 무얼 배울지 과연 배울 수나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신이 했던 SAK 트레이너 수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아니, 애초에 상대하는 인간의 레벨이 너무 차이가 났다.
하긴 그러니까 투마로우라는 제국을 운영하는 것이지만.
근데 루이스는 어떤 칼을 쥐고 흔들지 알겠는데 제이콥은 어떤 칼을 쥐고 흔들까.
점점 제이크처럼 구경하게 되네.
***
백악관.
대통령은 비서실장 제이콥과 FBI 국장 루이스를 호출했다.
“일이 어떻게 이렇게 돌아갑니까? 제이콥, 투마로우 약점을 찾으라 그랬는데 핵심인력이 투마로우로 다 가 버려서 도리어 우리가 약점을 잡히게 생긴 것 같은데. 맞나요?”
제이콥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임재준이 어떻게 나오나 살짝 건드려 본 겁니다.”
“살짝 건드렸는데 이 정도 반응이 나온단 말입니까? 루이스, SAK를 수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투마로우와 관계가 있는 건 아니죠?”
루이스가 제이콥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저놈 대통령 앞이라고 전혀 긴장하지 않는 척한다 이거지.
SAK가 투마로우와 관계가 있다고 하면 SEC가 나서서 아니라고 나를 몰아세울 테고, 관계가 없다면 투마로우 약점은 안 잡고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할 텐데.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조사 중입니다.”
“아직도 조사 중이라고요? 그럼 SAK 수사는 왜 한 겁니까? 난 투마로우 약점을 찾을 거라고 보고를 받았는데.”
다시 루이스가 제이콥을 살폈다.
정면만 응시하고 있는 제이콥.
넌 지시만 내렸다 이건가?
“SEC에서 공조 수사 협조 요청이 있어 그쪽을 좀 도와준 것뿐입니다.”
“그래요?”
앞에 놓인 몇 장의 서류에 눈길을 준 대통령은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두 사람은 지금까지 한 일이 임재준의 반응을 보려고 소송을 걸었다가 된통 당한 게 전부군요.”
흠.
대통령의 질책에 그제야 고개를 내리며 제이콥이 말했다.
“이미 예상한 결과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겁니다.”
“제이콥, 난 이해가 가지 않는데. 그럼 지금까지 뭐 하러 임재준을 건드린 겁니까? 단지 그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라는 게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데. 차라리 그 시간에.”
잠시 말을 멈추고 루이스를 보았다.
‘임재준의 아이를 쫓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란 말을 아꼈다.
FBI가 알고 있다는 보고는 아직 받지 못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럼, 다음 계획은 뭡니까?”
제이콥은 다시 정면을 보았다.
마치 루이스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지금까지 월가에 내부자 거래가 만연해 있는 상황이라 임재준을 이용해 월가에 경고를 한 겁니다. 이제부터 임재준이 월가에서 인수한 은행을 중심으로 불법의 소지가 있는지 파고들 작정입니다.”
음.
인제 와서 다시 과거를 들춘다고?
“그건 별 효력이 없을 것 같은데요.”
루이스가 치고 들어왔다.
“월가는 유대계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그들이 임재준에게 월가의 주인 자리를 내준 건 그를 정말 주인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자신들의 과거를 들추면 오히려 유대인의 역풍을 맞을 수 있습니다.”
“음. 자신들이 인정한 사람을 깎아 내리는 건 자신들의 결정을 폄하하는 것이란 말이군요.”
“맞습니다.”
“제이콥, 그렇다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요?”
루이스, 이 여우 같은 놈이.
넌 도대체 임재준에게 어떤 약속을 받았기에 나를 몰아붙이는 거냐.
“거기까진 생각 못 했습니다. 그럼 해외로 눈을 돌려 남미와 유럽을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것도 별 효력이 없습니다.”
어라 이제 대 놓고 다 반대하겠다?
“남의 나라 사정입니다. 거의 대부분 그 나라의 대통령하고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자칫 국제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특히 유럽은 지금 그리스 문제로 미국에 대한 인심이 좋지 않습니다.”
“그럼, 아르헨티나를.”
“거긴 잘못하면 파업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또 세계 경제가 휘청입니다. 미국 핑계를 대며 또 디폴트라도 선언하면 국제적인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시선이 제이콥을 지나 루이스에게 머물렀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중국도 안 됩니다.”
여긴 잘못 건드리면 나에 대한 정보가 쏟아질지 모른다.
“북한은 투마로우 시티 때문에 안 되고 한국은 임재준의 출생지입니다.”
“그럼, 다 안 되는 거잖아요.”
“한 군데 있습니다.”
“거기가 어딥니까?”
“투마로우 자신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희는 임재준에게 너무 집중해서 투마로우 전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투마로우는 66층, 그리고 그 아래 65층, 64층, 63층, 그리고 내려가고 내려가면 1층도 있습니다. 임재준이 절대 신경 쓰지 않는 그곳에 약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