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244화 (244/477)

제244화 거 내 흉내 내니까 그렇게 되잖아(6)

AAG 빌딩 66층.

일주일 동안 재준은 아지트에서 나오지 않았다가 오늘 66층으로 출근(?)을 했다.

재준이 들어서자 모두 반가움에 벌떡 일어섰다.

초췌해진 재준의 몰골을 보더니 마음이 울컥했다.

보스, 맘고생이 심했구나.

그러나 재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아유, 속이 다 시원하네.”

뭐가요?

“다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워서스틴이 나서서 재준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괜찮으세요?”

“그럼,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보스, 재판에 지고 우울해서 일주일 동안 안 나온 거 아니에요?”

“내가? 설마. 기분이 우울한 건 쓸데없이 실력 없는 인간이 가지는 감정이야. 우울증 같은 병이라면 모를까.”

뭐지? 이 기분 나쁜 감정은?

분명 우리 전부는 걱정이 돼서 가슴을 졸였는데 정작 본인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말하네.

갑자기 화가 확 치밀어 오른다.

“우리 모두 걱정했다고요.”

“그러게 왜 쓸데없이 걱정하냐고. 우리가 한두 해 본 것도 아닌데.”

“재판에서 졌으니까요.”

“뭐? 내가 걱정 말라고 했잖아. 내가 알아서…….”

“그래요, 맞아요. 보스가 알아서 변론한다면서요?”

워서스틴이 정말 열 받은 표정으로 물었다.

“했잖아. 변론.”

재준은 자신이 아주 잘했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하지 않겠습니다’ 이게 변론이에요?”

“정확하게 나의 의견을 피력했어. 그보다 좋을 순 없었지.”

“그보다…….”

재준의 뿌듯해하는 표정에 워서스틴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아, 지저스.

“재판에서 졌어요. 벌금 1억 달러를 맞았다고요. 아니, 뭐 벌금이야 얼마 되지 않으니까 내면 되지만, 실추된 명예는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항소했잖아. 아직 재판은 끝난 게 아니라고.”

“그 무시무시한 놈들을 어떻게 이겨요.”

“무시무시하니까 이길 수 있는 거야. 걱정 마.”

워서스틴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고 내가 미쳐.

내가 말을 말아야지.

워서스틴이 답답한지 자신의 가슴을 두어 번 두드리고 냉수가 있는 곳으로 갔다.

다음으로 페렐라가 워서스틴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우리 법무팀을 다시 짜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기업 인수, 합병에 딱 최적화돼 있는 팀인데. 왜 다시 짜? 이번 재판은 그들이 잘할 수 있는 재판이 아니었어.”

“그러니까 새로운 팀을 만들자고요. 이번 재판을 잘할 수 있는 변호사로 구성해서요.”

“아, 그거, 곧 만들어질 거야.”

“곧이요?”

이때,

띠리리링.

“어, 벌써 왔나 보네.”

재준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올라오세요.”

-네.

페렐라는 윌켄을 쳐다봤다.

무슨 언질이라도 있었나요?

아니, 나도 처음 듣는 건데.

잠시 후.

띵.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여섯 명의 남자가 66층에 들어섰다.

로린 라이스너.

안토니아 앱스.

리처드 제이블.

패트릭 캐럴.

알로 데블런.

아멜리아 코트렐.

뭐야 저놈들은.

윌켄이 앞으로 나서며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이건 무단 침입 같은데. 난 당신들이 온다는 연락도 못 받았고 허락한 적도 없어.”

맞다. 이들은 이번 재판에서 재준에게 패배의 쓴맛을 안겨준 검사들이었다.

재판에 개정 진술로 나왔던 패트릭 캐럴이 윌켄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린 이미 허락을 받았습니다.”

“누구한테?”

후후.

“보스한테요.”

“보스?”

윌켄이 고개를 재준에게 돌렸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재준이 앞으로 나섰다.

“윌켄, 이번 항소에서 내 변호를 맡아 줄 팀이에요.”

네?

“일주일 동안 우리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패트릭 캐럴이 윌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같은 팀이 되었습니다.”

“아, 네.”

얼떨결에 손을 내밀어 악수하긴 했다.

아함.

약간 피곤한지 재준이 하품을 했다.

“자, 마지막 퍼즐을 맞출 거니까 다들 앉아요.”

퀴니코가 블록과 함께 뒤쪽에 있다가 자리로 움직이며 속삭였다.

“그럼, 저 검사들이 이제 우리 팀 변호사가 된 거잖아.”

“그렇지. 아마 역대 최강의 법무팀이 될 거다.”

“보스가 일주일 동안 안 나타난 게 저 인간들 꼬시려고 안 나타난 거고.”

“그렇지. 아마 보스와 독대하고 전부 홀라당 반했겠지.”

“지금까지 받아 보지 못한 돈도 약속했을 것이고.”

“그렇지. 이미 재판은 우리가 이겼네. 이겼어.”

모두 자리에 앉았다.

후.

워서스틴이 먼저 궁금한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보스, 그럼 재판에 일부러 진 거예요?”

“일부러 어떻게 져. 졌다기보단 판결을 확정지어야지. 안 그래?”

“판결을 왜 확정 지어요?”

“재판 전에 마도마 재판이 있었잖아. 내부자 거래가 어떤 처벌을 받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니까, SEC가 어떻게 하는지 봤지. 그랬더니 중간에 내부자 거래를 사기로 바꾸네. 그럼 일단은 내부자 거래로 형을 확정하는 게 좋겠다, 생각한 거야.”

“아, 그래서 일부러 그 깽판을 쳤다? 법정에서.”

“내가 언제 깽판을 쳤어. 시간을 절약하려 그런 거지. 잘못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여기 패트릭이 진술을 잘해서 된 거지 까딱하다가는 내가 이길 뻔했다니까.”

와, 게다가 이길 뻔했대.

“어떻게 이겨요. 아주 불성실하던데.”

“죄가 없잖아. 여기 패트릭이 이야기했어. 증거가 불충분해서 감정싸움으로 갔다고.”

하하하하.

새로운 법무팀이 동시에 웃었다.

뉴욕 남부지검 형사부 책임자였던 로린 라이스너가 입을 열었다.

“처음엔 우리가 왜 이 재판을 하게 되었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보스의 말을 듣는 순간 이번 정부가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죠.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다니. 그래서 일을 바로잡으려고 투마로우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퀴니코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로린을 바라봤다.

“돈이 아니고요?”

하하하.

“솔직히 아니라곤 말하지 못하겠네요. 하지만 잘못을 만회하고 투마로우 법무팀에 합류할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자주 오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곧 대통령 선거도 있고요?”

하하하.

“역시 투마로우라 그런지 거침이 없군요. 네, 그것도 이유가 됩니다. 이번에 민주당이 대통령 후보로 힐러리 클리프를 내세운다는 게 영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근데 이거 이런 얘기를 이렇게 막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에이, 뭐 이 정도 가지고. 남의 나라 대통령도 바꾸는데.”

자, 자.

재준이 더 깊은 얘기는 나중에 하자는 듯 재판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항소는 어떻게 진행할 생각입니까?”

기업사건전문인 안토니아 앱스가 이건 내 일이라는 듯 나섰다.

“일단 혐의가 확정되었으니 내부자 거래에 대한 기준을 뒤집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혐의로 보스를 기소하려면, 최초의 정보제공자가 받는 혜택을 보스가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또한, 정보제공자가 받는 혜택이 돈처럼 구체적인 것이어야지, 우정이나 호의를 베풀려고 정보를 제공한 경우에는 내부자 거래로 처벌하기 어렵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내부자 거래는 했는데 그게 돈을 받으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이렇게 주장하려는 겁니까?”

“네, 무조건 증거가 없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만약 했더라도 돈이 오고 가지 않았다면 전부 무죄를 주장할 겁니다.”

“음, 확실히 한 번으로 FBI의 모든 수사를 허사로 돌릴 수는 있겠네요.”

역시 베테랑이라 다르긴 달라.

죄는 인정 하되 벌은 받지 않겠다.

“자, 그럼, 구체적인 계획은 알아서들 하시고 난 자중하는 의미로 아지트로 갑니다.”

또 누굴 만나려고.

자중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해야 하는 거 아냐?

팀원들의 눈초리는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

SAK.

“뭐라고? 그럼 우린 뭐야? 왜 우리는 벌금을 내고 투마로우는 무죄라는 거야?”

코안은 분을 삭이지 못하는 듯 말을 마치고 이빨을 꽉 깨물었다.

“아직 재판이 끝난 건 아닙니다.”

“이걸 재판이 꼭 끝나야 아나?”

“재판에는 항상 변수라는 게 존재합니다. 특히 배심원들의 마음을 누가 흔드느냐가 중요하죠.”

“배심원 좋아하네. 실력이 있어야지. 이게 야구라면 투마로우에 1번부터 9번까지 전부 4할 이상을 치는 타자가 있는데 FBI엔 1할 이상 타자가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이야, 근데 이길 수도 있다?”

“그렇습니다.”

“아니지, 싸움은 우연을 바라서는 이길 수 없어. 그리고 상대가 너무 강해. FBI 측 검사가 법정에서 입이나 뻥끗하겠어?”

“…….”

마틴은 코안 회장의 말에 십분 공감했다.

어떤 변수가 있다고 말은 했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법정은 실력보다는 경력이 지배하는 곳이다.

지금 싸움은 마치 교사와 초등학생이 붙는 형국 아닌가.

그것도 여섯 명이나.

코안 회장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뭔가 결심한 듯 말했다.

“이번 재판 결과를 보고 우리 벌금도 반환하자고 청구 소송을 하는 건 어때?”

“가능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뭐?”

“우린 이미 마도마를 사기로 끝냈습니다. SEC이 SAK 내부자 거래를 전부 사기로 몰아가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투마로우 법무팀 같은 거물들을 섭외하면 되잖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저쪽은 임재준 한 명이지만 저희는 일곱 명을 변호해야 합니다. 거물급 변호사를 영입한다면 벌금보다 변호사 비용이 더 많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해. 이대로는 억울해서 잠도 못 잘 것 같아.”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당장 검사든 변호사든 다 섭외하라고.”

“알겠습니다.”

임재준, 무서운 놈이긴 하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검사들을 자신의 법무팀으로 만들어 버렸다.

로펌이었다면 어림도 없었는데, 아니, 검사부였어도 말이 안 되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모인 단발성 팀이다 보니 변호사로 전부 데려갈 수 있었다.

일부러 자신을 잘 알도록 유도했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진짜 이번 일은 왠지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기분인데.

***

SEC.

“어서 와요.”

FBI 국장 루이스를 맞이하는 제이크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무슨 일로 나를 다 보자고 한 겁니까? 또 협업할 일이 있나요?”

“그런 건 실무자들이 하는 일이고 우린 좀 더 건설적인 일을 해야죠.”

“어떤 일이 건설적이기까지 합니까?”

“일단 앉아요.”

심드렁한 루이스가 자리에 앉자 제이크도 마주 앉았다.

“왜 그랬습니까?”

앉자마자 하는 말치고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했다.

“말에 가시가 있네요.”

“손잡지 말아야 할 사람과 손잡고,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으니까.”

풋.

루이스의 웃음이 비웃음이란 티가 너무 났다.

“내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단지 위에서 시키니 했을 뿐입니다.”

“아니, 있었습니다. 단지 거절하기 싫을 뿐. 아닌가요?”

“거절하기 싫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저벅저벅.

“그럴지도 모르긴 뭐가? 그냥 정부의 개가 된 지 너무 오래돼서 자신이 인간인지도 모르는 거지.”

루이스가 고개를 숙이고 키득키득 웃었다.

이제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다.

임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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