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거 내 흉내 내니까 그렇게 되잖아(4)
FBI.
[투마로우 임재준이 내부자 거래 협의로 FBI에 긴급 체포되었습니다. 이는 이례적인 일로 소환에 충분히 응할 수 있는 기업인을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FBI에 들어온 지 이틀이 거의 다 되었다.
어쩐 일인지 48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더니 2시간 정도 남은 시점에서 제이크가 재준과 마주 앉았다.
“자, 차 한잔하시죠.”
루이스가 재준에게 향이 좋은 차를 권했다.
“깜짝 놀랐어요. 이런 무리수를 둘 줄이야.”
“제 모든 걸 걸어보려고 합니다.”
“그래요? 근데 그게 가능하겠어요?”
저벅저벅.
“안 될 것도 없지요.”
뒤에서 누군가 들어서며 나지막이 말했다.
재준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제이콥, 당신일 줄 알았어요.”
“그렇습니까?”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겁니까? 48시간 중에서 46시간을 그냥 날렸네. 여기 FBI 국장이 얼마나 똥줄이 탔겠어요?”
“저인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FBI 국장이 벌이기에는 너무 정치적이잖아요. 근데 이런 일을 벌이려는 거 대통령은 알고 있습니까?”
“절반만 알고 계시다고 해야 하나.”
“시작은 대통령에게서 시작된 거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제 독단적인 결정일 수 있는데.”
피식.
재준이 제이콥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아는 정치인 중에 책임을 지겠다는 인간은 없었는데. 제이콥 당신이라고 다를 것 같진 않네요.”
“책임이라면 이미 충분히 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웃기고 있네. 무슨 책임. 내가 방금 물어봤잖아요. 대통령이 알고 있냐고 물어봤는데, 아니라며, 당신 자리에서 할 일도 제대로 못 하는 인간이 무슨 책임을 진다는 겁니까? 책임이란 매우 단순한 건데. 알고 있어요? 지금처럼 복잡한 건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작에 불과해요.”
“난 오직 대통령을 보필하려고 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보필하지 말라니까. 당신이 나대면 나댈수록 대통령은 욕을 먹게 되는 거예요. 지금도 그래, 만약 실패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하하하.
“실패는 없습니다.”
“그래요? 투마로우 법무팀은 꽤 일을 잘하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알고 있습니다. 아주 잘 알지요. 그래서 우리도 잘 준비하고 있습니다.”
“뭐 그러면 싸워 볼 만하겠네.”
재준이 잘 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제이콥이 웃었다.
“근데 굳이 싸울 필요가 있습니까?”
“이거 봐. 도통 자기 맘대로라니까. 내가 먼저 시비를 건 싸움인가요? 제이콥 당신이 먼저 들어온 건데 이제 와서 싸울 필요가 없다니. 그래, 의도가 뭡니까?”
“투마로우를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으로 분리하는 겁니다.”
푸하하하하.
재준이 배를 잡고 웃어댔다.
“지랄하고 있네.”
뭐? 지랄?
“제이콥, 잘 들어요. 내가 지금부터 대통령 둘인 미국으로 가자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그건.”
“말이 안 되죠. 근데 왜 안될까? 할 수도 있는 일 아닌가요? 맘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안 그래요?”
“불가능한 이야깁니다.”
“아니, 아니지. 불가능하지 않아. 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나도 마찬가지예요. 나도 하고 싶지 않아. 정 하고 싶으면 투마로우를 인수해서 당신이 직접 분리하세요.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그놈의 간섭.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입만 살아서 남의 일에 간섭 질이나 하고.”
“말이 안 통하는군요.”
“말은 원래부터 통하지 않았어요. 먼저 보여줘 봐요. 그럼 내가 생각해 볼게요.”
“뭘 보여 줍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비서실장까지 할 머리면 돌아가도 한참 돌아가야 할 머린데. 뭘 보여줘야 임재준이 마음을 돌릴까 생각해 보라고요.”
후후.
“그럴 필요까지야.”
“그것 봐. 그저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는 거지. 아, 그래, 만약 투마로우를 분리했는데 실패해서 쫄딱 망하면 어쩔 겁니까?”
“그걸 왜? 경영자의 잘못을 왜 정부가.”
“이런 미친놈.”
뭐?
“말을 가려서 하세요.”
“미친놈한테 미친놈이라고 하는데. 가릴 말이 어딨어요? 경영자? 눈뜬 장님이십니까? 당신 눈에는 은행이 망하면 직장을 잃는 국민은 보이지 않아요? 일부러 갈라놓고 망하면 내 탓이 아니다?”
“그건.”
쯧쯧쯧.
재준이 시계를 보며 일어섰다.
“시간 다 되었으니 이제 가볼게요. 뭐 잡아 둘 명분 있으면 다시 부르든가.”
“…….”
“아, 그리고 제발 최고의 검사들로 구성해서 법정에서 봅시다. 괜히 재판에서 져서 대통령 쪽팔리게 하지 말고.”
“…….”
사라지는 재준을 보고 루이스가 제이콥에게 말했다.
“역시 임재준이네.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그전에도 저렇게 버릇이 없었나?”
“약간 후회가 되는데.”
“뭐가?”
“제이콥, 당신의 말을 들은 거.”
“무슨 말이야?”
“저게 임재준이라고 생각하나? 그저 버릇이 없다고?”
후후.
“그럼 아닌가?”
“예전에 그린스틴 회장이 임재준에게 당했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굉장히 얌전한 편인데. 제이콥, 임재준에 대해 좀 더 알아봐. 한 번에 임재준의 목줄을 틀어쥐지 않으면 네가 크게 당할 거야. 어쩌면.”
“어쩌면 뭐?”
“아니야. 정말 실력이 뛰어난 놈들을 찾아서 팀을 만들어 법정에 세우라고. 정말 대통령 얼굴에 똥칠하지 말고.”
“자네까지.”
난 오직 미국을 위해 투마로우를 갈라놓는 것이다.
제이콥은 자신이 정당하다고 믿었다.
간섭주의자들.
예전에 리비아가 독재자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외부세력이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온건주의 반체제 세력을 조직화하고 훈련하고 활동하도록 지원해 주었다.
이 온건주의 세력이 알카에다가 되었고, 9.11 테러 사건을 저질렀다.
리비아에서 독재자를 축출하고 정권을 바꾼 시도가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고, 결국 사하라 인근에서 붙잡힌 아프리카인들이 세계로 팔려 나가는 노예시장도 존재하게 만들었다.
21세기에 이게 말이나 되나.
하지만 아무도 책임을 지는 이는 없었다.
인권을 위해, 평화를 위해, 나라를 위해라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정작 자신은 뒤에 입만 터는 아가리 파이터들이었다.
***
AAG 빌딩 66층.
보스.
재준이 들어서자 팀원 모두 벌떡 일어섰다.
“괜찮아요?”
“그럼.”
재준이 어깨 으쓱해 보이자 모두 동시에 ‘휴’ 하고 숨을 쉬었다.
“도대체 왜 그런 겁니까? 갑자기 긴급 체포라니요.”
“나서면 안 되는 인간이 있어서. FBI가 나선 거야.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야.”
“나서면 안 되는 인간이 누군데요. 대통령이라도 되는 겁니까?”
“맞아. 거의 대통령이지.”
“정말이요?”
후후.
재준은 FBI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떠올리자 웃음이 나왔다.
“재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럼,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네요.”
“그럴 필요 없어. 준비는 저쪽이 해야지. 우리가 왜 수고스럽게. 우리도 법무팀이 있는데.”
“저쪽이 막강한 검사들로 팀을 이루면 우리가 당할 수도 있어요. 월가 최고 변호사로 팀을 만들어요.”
“괜찮다니까. 내가 변론하면 돼. 걱정하지 마.”
자기가 직접 변론을 한다고?
언제 법도 공부한 거야?
아니면 저쪽 약점이라도 알고 있는 거야?
“자, 정리 좀 해 봅시다. 블록, 일본은 어때?”
“일본 기업들은 대부분 한국으로 생산공장을 이전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장기 불황에 빠져들어서 이제 회복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히려 대부업체가 호황을 맞아 매출이 대폭 늘 전망입니다.”
“그럼,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네. 윌켄, 중국은 어때요?”
“일대일로 사업이 당분간 주춤할 정도로 투마로우 시티 기업들 주식 사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딩쉐이 주임이랑 통화 한번 해야겠네요.”
“왜요?”
“한 기업당 5% 이상 매입하면 일본 꼴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놔야죠.”
관리를 잘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게 인간이다.
“근데, 보스. 북한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아요.”
퀴니코가 재준을 향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문?”
“미국 비서실에서 전체 기업을 돌면서 저희 이야기를 수집해 갔다고 합니다.”
“그래? 거, 별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는 게 취미인 사람들이네. 그래서?”
“근데 뱅가모에서 저희한테 직접 연락이 왔는데. 그 뭐냐. 보스 유전자가 아직 살아 있는 걸 비서실에 말했다고.”
“뭐?”
휙, 재준의 시선이 엘리자베스 복부를 향했다.
“아닌 것 같은데.”
“아저씨, 어딜 봐요?”
“너 배 안 나왔지.”
“당연하죠.”
재준이 다시 퀴니코를 바라봤다.
“아니라는데.”
“그게 아니라 수정란이 하나가 더 있었대요. 레이와 셀레나가 지금까지의 실험 일지를 회사 CEO에게 보내고선 잠적했다고 합니다.”
벅벅.
재준이 자신의 머리를 긁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은 땡칠이 모습이었다.
지금 뭐라는 거야.
그러니까 나와 엘리자베스 수정란이 하나 더 있었다?
또 엘리자베스랑 결혼하네 마네 골치 아픈 이야기 나오는 거 아냐?
“모른 척해.”
“근데 그게 유전자 수선이 108번이나 이루어진 수정란이었다는데요.”
108번?
그전에 두 번이 안정권이라 했는데.
108번의 수선을 거친 수정란이 살아 있다고?
끼악!
엘리자베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왜?”
“아저씨, 108번이래요. 108번. 그럼 할 수 있는 건 전부 고친 거잖아요.”
“할 수 있는 거?”
“그래요. 잘생기고 성격 좋고 몸매 좋고 건강하고 똑똑하고 어쩌면 초능력 이런 거 있을지도 모르는데.”
“너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
“아니, 그렇잖아요. 108번이라는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을걸.”
“왜요?”
“그래, 잘생기고 성격 좋고 몸매 좋고 건강하고 똑똑하고 어쩌면 초능력까지 있다고 쳐 봐. 그럼 그게 인간이야? 괴물이지. 올바른 생활이 가능하겠냐고. 그리고 뱅가모에서 가만있겠어? 자신들의 작품인데. 당장 찾아서 데려다 가두고 실험하겠지.”
으.
엘리자베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아이예요.”
“그래서 뭐 어쩌려고. 네가 직접 찾으러 갈 거야?”
“네.”
뭐?
모두 엘리자베스에게 시선이 꽂혔다.
“혼자?”
“네.”
“위험한데.”
또각또각.
“내가 같이 갈 거야. 걱정 마.”
“마가리따. 작정하고 숨은 사람이에요. 못 찾는다고요.”
“내가 예전에 올리가르히 중에 영국을 망명한 뒤 잠적한 사람을 페루에서 찾은 경험이 있잖아.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엘리자베스와 같이 갈 거야. 뭐 어차피 경호 인력 잔뜩 데리고 다니는 건데 위험할 게 뭐 있어.”
그런가?
근데 왜 걱정이 되지?
“엘리자베스, 그 사람들 찾으면 어떻게 할 건데.”
“전부 데리고 카킬로 들어갈 거예요.”
“카킬로.”
“밖은 여전히 안전하지 않아요. 일단 뱅가모로부터 보호해야겠어요.”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네.”
그래도 걱정이 되네.
“가만, 비서실. 미국 비서실도 이 사실을 안다는 거잖아.”
안 돼.
“저 갈게요.”
엘리자베스와 마가리따가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왜 다들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거야.
이건 정말 내가 일으킨 사건이 아니라고.
다들 알면서 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