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241화 (241/477)

제241화 거 내 흉내 내니까 그렇게 되잖아(3)

AAG 빌딩 66층.

“소송에 이길 자신 있어요?”

엘리자베스가 말은 뾰족하게 하면서도,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재준에게 물었다.

얘는 별걱정을 다하네.

“아니, 아직 이기기 힘들지.”

“아직 이기기 힘든 건 뭐예요? 그럼 나중에는 이길 수 있고요?”

“누가 검사로 나오느냐에 따라 시간이 단축되느냐 장기전이 되느냐 결정될 거야.”

“뭐야, 그런 말이 어딨어요. 얼마나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냐가 문제지. 상대 검사에 따라 달라지는 건 뭐예요?”

“당연히.”

띵.

재준에게 한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FBI가 도청을 시작했습니다.’

발신자 번호는 없지만, 제이크가 보낸 게 틀림없었다.

도청이라.

FBI면 이 정도는 해야지.

재준은 블랙워터 테론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도청당하고 있어.’

“무슨 일이에요?”

엘리자베스가 갑자기 말을 하다가 조용해진 재준에게 다가왔다.

쉿!

재준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 도청당하고 있대.”

“헉! 정말요? 나 유명인 된 거예요?”

뭐라는 거야.

이럴 땐 유명인이 아니고.

“범죄자겠지.”

네?

흥.

얼마 후 몇 대의 탐지기를 가지고 테론과 카빌이 들어왔다.

둘은 서로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삐삐삐삐.

신호음이 엘리자베스 핸드폰에서 울렸다.

카빌이 핸드폰 뒷면을 열어 작은 칩을 꺼내 물컵에 빠뜨렸다.

“다 됐습니다.”

“고마워.”

“당분간 저희가 앞에서 출입을 통제하겠습니다.”

“오케이.”

테론과 카빌이 나가자 재준은 엘리자베스를 노려봤다.

“칠칠맞게 도청 칩이나 달고 다니고.”

“와, 근데 언제 내 핸드폰에 칩을 숨겨놨대요?”

“그만큼 네가 핸드폰 관리를 안 하는 거지.”

“아니, 누가 핸드폰을 관리해요.”

“다 관리해. 너만 빼고.”

“한 달에 한 번씩 신상으로 바꿀까?”

헉!

내가 말을 말아야지.

돈 많은 거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띵.

이번엔 윌켄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어왔다.

“보스, FBI가 월가 전체를 조사하고 다닌다는데요.”

“월가 전체를?”

“웬만한 헤지펀드는 다 조사를 하고 있나 봐요.”

“내부자 거래 때문이겠지.”

“근데 몇 군데에서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흘리는 말로는 투마로우를 저격한다고 했다는데요.”

“우리를?”

이것 봐라.

나랑 같은 수법을 사용하네.

상대에게 말이 들어가게 한다 이거지.

우리 반응을 보겠다?

“그냥 우리도 흘려들어요. 신경 쓰지 말고.”

“우리는 준비 안 해도 되나요?”

“우리도 법무팀 있잖아요.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해요.”

“알겠습니다.”

윌켄은 너무나 평온한 재준을 보았다.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는 것 같은데.

평소의 보스답지 않게 빈틈이 너무 많이 보여.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냐?

띵.

퍽 더 비치.

이번엔 워서스틴과 페렐라가 들어서며 쌍욕을 날렸다.

“보스, 이것 보세요. 나랑 페렐라에게도 소송을 걸었어요?”

“이번엔 어디야? 또 캐나다야?”

“네, 이번엔 캐나다 중앙은행입니다. 지난번 금융위기 때 캐나다 은행 몇 군데를 인수했는데. 그때 우리가 시장에 인수 기업에 불리한 소문을 냈다는 거예요.”

“금융위기 때?”

이야, 그게 언제 적 이야긴데.

아니 시간은 둘째 치고 금융위기에 불리한 소문을 냈다는 건 또 뭐야.

그때는 다 불리한 거 아냐?

이건 그냥 소송을 남발하는 건데.

“어떻게 할까요?”

큭큭큭.

이 간섭주의자들.

“군주는 말이야, 싸울 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 해. 전쟁이 남발하던 시절엔 황제가 직접 군대를 지휘하면서 싸웠는데. 죽기도 하고 굴욕을 당하기도 하면서. 자신이 온전히 책임을 졌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근데 요즘은 자꾸 자신은 숨고 남을 내세운단 말야. 실패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피해가 없게 설계를 한다고. 우리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우린 FBI를 직접 타격하자. 싸우려면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싸워야지.”

“어떻게 하려고요?”

뭘 어떻게 해.

기억에 있는 강력한 사건 몇 개를 터뜨리는 거지.

이때쯤 어떤 사건이 있었더라.

***

[투마로우에 따르면 FBI 요원이 자신이 감시하던 테러리스트와 사랑에 빠져 당국을 속이고 시리아로 건너가 이중 결혼까지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투마로우에 따르면 FBI는 뉴욕·뉴저지 폭발사건의 용의자 아흐마드 칸 라하미의 테러리즘 관련성을 2년 전에 조사했지만 별다른 혐의가 없어 사건을 종결한 것으로 FBI의 허술한 조사를 문제 삼았습니다]

***

FBI.

하하하하하하.

국장 루이스가 신문을 보며 미친 사람처럼 웃자 주변 요원들은 인상을 썼다.

웃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결국, 부국장 에드거가 나섰다.

“뭐가 그렇게 웃깁니까? 모두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응?

국장은 에드거를 보며 알겠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웃기지 않아? 이 기사 말이야. 이거 일급비밀 아냐? 절대 외부로 발설되어서는 안 되는.”

“맞습니다.”

“근데 이게 왜 신문기사에 실렸을까?”

후.

“내부에 투마로우와 연계가 된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당장 색출해야.”

아니, 아니.

국장은 다시 손을 가로저어 부국장의 말을 잘랐다.

참나, 하긴 알 리가 없지.

“이봐, 부국장. 이거 임재준이 나한테 보내는 메시지잖아. 모르겠어?”

“이게 우리 치부를 앞으로도 계속 드러내겠다는 뜻인 건 알고 있습니다.”

“아니, 아니라니까. 우리가 지금 투자은행 내부자 거래를 수사 중이잖아.”

“그렇죠.”

“그 말이라고. FBI도 내부자 거래에 자유롭지 못하다. 서로 내부자 거래를 계속해 보자. 이거라고. 알겠어?”

하하하하하하하.

“그럼, 우리 중에 내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잖아요. 당장.”

“아니라니까. 그렇게 해서는 임재준과 싸움이 안 돼. 이봐, 부국장. 당장 당신 통장에 1억 달러를 꽂아 줄 테니, FBI 사소한 자료 하나와 거래합시다 하면 거절할 자신 있어?”

“1억 달러라면…….”

“거봐, 생각하잖아. 당신을 탓하려는 게 아냐. 나 같아도 1억 달러면 FBI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지. 내부 거래자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임재준이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그런 게 아니지.”

“그럼 뭡니까?”

“그건…….”

내가 겪어봐서 잘 알지.

사기 상장 카르텔을 박살 낼 때 옆에서 지켜봐서 너무 잘 알아.

“이 기사의 맨 앞에 있는 이 글. 투마로우가 직접 기사를 제공했다고 대놓고 말하고 있잖아. 리스크를 감수하라는 거야. 협잡꾼 짓은 그만하라고.”

“그렇다고 우리를 드러낼 수는 없잖습니까?”

“아니, 그 정도로는 안 되지. 임재준 긴급 체포해서 데려와.”

네?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나도 알아. 하지만 뒤에서 움직이는 것도 한계가 있어. 이봐, 부국장. 지금까지 한 수사로 투마로우 그 누구라도 잡아넣을 자신 있어?”

음.

“그건 어렵습니다.”

“바로 그거야. 임재준이 말하고 있잖아. 우리가 대화할 시간이 됐다고. 이렇게 대놓고 말이야. 그러면 응해 줘야지.”

“알겠습니다.”

이제 당사자끼리 말을 할 때가 됐어.

***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

SEC 집행국 변호사 산제이 오드와는 SAK 내부자 거래 사건 팀장으로 있으면서 전체를 총괄했다.

제이크는 오드와를 불러 지금까지 상황을 보고 받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 SAK에서 제약 관련 거래에서 큰일이 벌어졌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습니다. 엄청난 거래였고, 엄청난 이익이 발생했습니다. 회사 내에서도 많은 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코안 회장은 가담한 것 같아?”

“수사하는 과정에서 코안에 대한 증언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코안은 소폭의 주가 등락에 대규모 베팅을 하는 등 지속 불가능해 보이는 방식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수익을 올리는 주식거래는 대부분 주가를 급등, 급락시킬 뉴스가 터지기 직전에 일어났습니다.”

“구체적으로 증거는 있고?”

“RBC 캐피털 마켓이라는 증권회사에 근무하는 트레이더가 저희에게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1년 전 제약회사 엘란&와이어스의 연구진이 시카고 국제 알츠하이머 컨퍼런스에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인 신약의 임상2상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SAK는 임상시험 결과발표 전 이틀 동안 15개 계좌를 통해 주식을 대량 매도했습니다. 임상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이로써 코안은 1억 8,200만 달러의 손실을 회피했습니다. 엄청난 거래 규모와 그로 인한 막대한 잠재적 이익이 아주 수상한 시점에 발생했다고 조사를 의뢰했습니다.”

“1년 전 이야기를 왜 지금 하는 거야?”

“FBI에 먼저 의혹을 제기했지만, 거래의 불법성을 조사한다며 1년 동안 아무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답니다.”

“FBI와 커넥션이 있는 건가?”

“거기까지 우리가 수사를 하려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렇겠지.”

FBI는 투마로우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우리도 움직이면 되고.

“또 다른 수사는 뭐지?”

“SAK의 마도마란 트레이더입니다. 생명공학 기업 인터진이 폐섬유증 환자에게 도움이 될 치료제 에스브리엣을 개발 중이었습니다. 인터진이 FDA의 승인을 받는다는 소식에 주가는 폭등했는데 SAK만 대규모 매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FDA가 에스프리엣의 출시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SAK는 대규모 손실을 피했습니다.”

“그럼, 마도마를 소환하든가 잡든가 해야겠네.”

“이미 체포해서 모든 내용을 진술했습니다.”

뭐? 체포했다고?

“뭐가 그렇게 쉬워?”

“제가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의리가 없는 놈들은 처음 봤습니다. 살인, 강도, 절도 같은 악랄한 범죄에 가담한 범죄자들도 최소한 친구와 가족은 배신하지 않고 의리를 보였는데. SAK 트레이더들은 수사진이 약간만 부추겨도 술술 다 불어 버렸습니다. 마도마는 제일 친한 친구라는 길먼도 불었습니다.”

“길먼는 또 누구야?”

“코안의 측근입니다.”

“길먼만 엮어 넣으면 끝난다는 건가?”

“네. 하지만 코안까지 엮으려면 길먼이 코안에게 정보를 제공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가만, 가만.

제이크는 불현듯 임재준이 떠올랐다.

‘SAK가 작년 GPR에게 53억 달러를 지불한 것도 알아요?’

돈, 돈을 빼앗으란 말이구나.

“오드와, 코안 회장 변호사에게 연락해서 딜을 하자고 하세요.”

“딜이요?”

“지금까지 파고들었으니 코안도 생각을 하겠지. 피해야 하는지, 아니면 싸워야 하는지.”

“되도록 피할 거란 말씀이 십니까?”

음.

“코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회사 책임을 걸고 넘어지세요. 그리고 SEC 벌금 사상 최대 금액인 18억 달러로 딜을 하는 겁니다.”

“18억 달러요? 너무 많은데. 하려고 들까요?”

“아니면 코안 개인을 파고든다고 협박하면 됩니다. 내부자 거래는 국민이 보기에도 확실한 범죄잖아요. 그럼, 우리도 국민에게 할 말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음, 알겠습니다.”

그래, 일단 돈을 받은 후에 다시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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