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9화 거 내 흉내 내니까 그렇게 되잖아(1)
AAG 빌딩 66층.
“캐나다 제약회사 바이오테일이 보스와 퀴니코가 자사 주식을 공매도하고 주가를 조작해 끌어내렸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워서스틴의 말에 재준은 이 뚱딴지같은 이야기에 반응을 어떻게 보여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내용이 뭔데?”
“바이오테일 측이 주장하기로는 퀴니코와 트레이더들이 공모해서 50달러의 바이오테일 주가를 18달러로 끌어 내렸답니다. 어디 보자, 아, 고소장에서 ‘투마로우는 보스의 지시에 따라 어떠한 비용을 들이더라도 정보를 입수하도록 자사의 트레이더, 매니저, 직원, 대리인들을 극도로 압박했다’로 되어 있네요. 큭큭. 압박했네. 압박했어.”
너 왜 이런 심각한 일에 웃으면서 말하냐?
나중에 보자.
“퀴니코, 바이오테일 알아?”
“알죠. 북한 투마로우 시티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떠들던 놈들이었죠. 뭐, 그래서 공매도를 지시했어요.”
“아하, 그래서 주가가 떨어졌구나. 근데 왜 우릴 고소해?”
“글쎄요?”
퀴니코는 좀 의아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일단 법무팀에 준비하라고 일러.”
거참, 저놈들이 왜 투마로우를 걸고 넘어지지?
이때,
벌컥.
박민수가 급하게 들어오며 서류를 들어 올렸다.
“여기, 캐나다 보험사인 패어핵스 파이낸셜 홀딩스가 퀴니코를 고소했어요.”
엥? 또? 캐나다? 왜 전부 캐나다고 왜 전부 퀴니코야?
“무슨 내용인데요?”
“CEO 프렘이 투마로우 퀴니코가 패어핵스에 대한 부정적 리서치 정보를 퍼뜨리고, 패어핵스 중역들까지 괴롭혔다는데, 아는 회사입니까?”
“패어핵스? 퀴니코, 아는 회사야?”
“아뇨, 저는 모르겠네요. 부정적인 정보를 퍼뜨리고 중역을 괴롭혀요?”
“그래. 멤피스에 있는 리서치 업체의 애널리스트 모건 코건이 투마로우와 손잡고 패어핵스에 관한 거짓된 정보를 퍼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네. 모건 코건이 패어핵스 보고서를 발표하기 전, 보고서 초안을 투마로우에 보낸 걸 암시하는 이메일도 발견되었다는데. 헤지펀드들의 입맛대로 조작한 리서치 보고서를 이용해 내부자 거래를 했다고 쓰여 있어.”
“모건 코건이요?”
“누군지 아는 사람이야?”
“당연히 알죠.”
퀴니코의 고향이 멤피스였다.
얼마 전 시간을 내서 고향 친구들하고 저녁을 거하게 먹은 적은 있었다.
“모건 코건이면 제 친구인데요.”
“이메일을 주고받은 적은 있고?”
“약속 장소와 시간을 굳이 이메일로 보낸다길래 그러라고 했죠.”
“이거 꼭 영화 같은 데서 나오는 함정 같은 느낌인데.”
“또 있어. 패어핵스를 회계부정을 일삼는 기업으로 매도하는 익명의 웹사이트들을 개설하였고, 투마로우 퀴니코는 FBI와 SEC가 패어핵스의 회계부정 가능성을 조사하도록 로비했고. 투마로우 트레이더들은 패어핵스 주식을 공매도해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수익을 얻었다는데.”
“제가요? FBI?”
재준은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바이오테일이니 패어핵스같은 기업은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세부적인 정보인데.
“그럼, 공매도 사건이니까. 소송과는 상관없이 SEC가 나서겠네.”
“그렇겠죠.”
시기하는 건가?
월가의 뱅커들에게 투마로우는 가장 수익성이 높고 공격적인 헤지펀드였다.
해마다 수천억 달러를 굴리는데 30~50%의 수익률을 올리면서 한 해도 손실을 기록하지 않는 투마로우를 불가사의한 존재로 여겼다.
재준이 팀원을 이끌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동안, 월가에서는 투마로우로 인해 거대한 변화가 있었다.
상업은행은 경제성장의 엔진으로 더 큰 공장을 짓고 신제품을 개발하며 더 많은 직원을 채용하려는 기업들에게 자본이 흘러가도록 돕기 위해 존재했다.
근데 투자은행(대표적으로 헤지펀드)가 생겼다.
상업은행은 돈을 빌려주고, 투자은행은 주식과 채권의 거래, 기업공개, 합병과 기업매수를 촉진함으로써 자본이 더 큰 돈으로 부풀려지는 엔진을 돌아가게 만들었다.
근데 문제는 투마로우였다.
투마로우가 버는 돈의 단위가 너무 컸다.
수십억 달러의 자금이 엄격한 규제를 받는 대형은행에서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 헤지펀드로 이동했다.
헤지펀드 업계가 다양한 부채들을 증권화함으로써 이해하기 힘든 새로운 금융상품들을 발명해내는 동안, 트레이더들도 새로운 기법을 개발했다.
금융을 혁신한다는 점에서 헤지펀드는 실리콘밸리와 같았다.
하지만 혁신이 존재하는 곳엔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존재했다.
내부자 거래.
“내부자 거래도 모자라 FBI와 SEC에 로비를 했다고?”
“월가의 은행은 우리와 다르니까요.”
윌켄이 재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왜 그렇게 웃어요?”
“보스는 수천억 달러도 아무렇지 않게 굴리지만, 월가에서 그 자금을 굴리려면 때론 불법이 발생해요.”
“그러니까. 다른 투자은행을 조사해야지 왜 투마로우를 공격할까?”
월가에서 대형은행들이 투마로우에 투자하고 싶었지만 투마로우가 투자를 원하는 돈은 극히 일부분이었다.
주로 윌켄을 통해서 투자되는 돈들.
그리고 월가 헤지펀드들은 투마로우의 행보에 따라 투자를 감행해서 큰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
그러니 대형은행이 월가 헤지펀드에게 몰려들 수밖에.
헤지펀드가 점점 더 대형은행의 중요한 고객으로 떠오르자 막대한 주식거래를 하는 헤지펀드가 내는 거래수수료가 대형은행의 주요 수익원이 되었다.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가 되었다.
결국 월가 헤지펀드는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헤지펀드는 수억 달러의 수수료를 내는 대가로 특별서비스를 요구했고, 대형은행은 헤지펀드를 고객으로 붙잡아 두고자 무슨 일이든 하기 시작했다.
먼저 대형은행들이 고객의 정보를 털었다.
가장 공격적인 헤지펀드들은 애널리스트가 특정 주식을 매수의견을 낼지 매도 의견을 낼지 남들보다 먼저 알길 원했다.
“우리가 밖으로 떠도는 사이 월가에서 헤지펀드들이 시장을 조작하는 행위가 만연해 있는 거 같아요.”
“멍청한 거 아냐? 시장이 조작된다고 조작이 되나?”
“예전에 블록이 하던 독립적 리서치 있잖아요.”
“알지. 내가 그 두더지 소굴 같은 곳을 직접 찾아갔으니까.”
빠직.
“나름 밝은 곳이거든요.”
블록이 재준을 향해 턱을 치켜들었지만 모두 윌켄의 말에 집중할 뿐이었다.
“블록이 성공한 후에 특정 기업의 주식을 사야 할지 팔아야 할지 객관적 의견을 제공하겠다는 소규모 리서치 업체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헤지펀드가 이런 소규모 업체에 접근해 특정 기업을 분석한 보고서를 사겠다고 제안한 다음 내용까지 조작한다는군요. 요즘 유행하는 헤지펀드가 시장을 조작하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하나? 그럼 또 있어?”
“전문 네트워크 기업이라고 합니다.”
“그거 다단계 아냐?”
“하하, 제가 듣기론 투자자들을 상장회사 경영진들과 연결을 도와주는 기업이라고 합니다. 대충 신약 개발에 참여한 수백 명의 의사들과 테크놀로지 기업의 중역들이, 전문가 네트워크 기업을 통해 헤지펀드 트레이더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돈을 챙기면서 부업을 하는 곳이에요. 헤지펀드들은 내부자인 상담자들에게 수백만 달러를 지급한다던데. 누구나 입수 가능한 정보를 얻으려고 이런 고액을 지급하겠습니까? 내부자 거래지요.”
“뭐, 다 이해는 하겠는데. 그동안 월가에 없었던 나랑 퀴니코가 왜 고발을 당하냔 말야.”
“지금 월가의 내부자 거래가 위험 수위에 올랐으니 본보기를 보이려는 게 아닐까요? 투마로우에 소송을 걸고 패소해도 월가에선 움찔할 테니까요.”
“아, 투마로우도 고발을 당할 수 있으니 알아서 몸 사려라?”
“그렇죠. 그러니까 일부러 캐나다 기업을 등장시킨 것 같고요.”
“거참, 기분 찜찜하게 만드네.”
가만, 내부자 거래라면?
우리가 아니라 SAK 사건 아닌가?
SAK, 월가 최대의 내부자 거래 사건.
***
FBI.
FBI 특수수사요원 데이비드는 SAK의 애널리스트를 앞에 두고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봐, 친구. 스위스 은행 UBB의 투자심의위원회에서 일하는 친구로부터 당신이 내부정보를 받고 있다는 혐의를 제보받았는데. 맞아?”
“그런 적 없는데.”
삐딱하게 말하는 애널리스트.
“그래? 그럼, 이건 뭐야?”
데이비스가 작은 소형 플레이어를 작동시켰다.
‘리치, 내 말을 무슨 말인지 알지? 이 일을 망치지 마.’
‘알고 있어.’
‘암튼 회사는 실적이 저조할 거야.’
‘오케이, 그럼 공매도 들어갈게.’
‘이대로 가자고. 내 몫 두둑이 챙겨둬.’
“여기 있는 게 당신 목소리 아닌가?”
“음성 조작일 수……. 변호사를 불러줘. 더는 아무 말 안 할 거야.”
“물론 변호사를 불러 줄 수 있지. 그전에 이 사진을 한번 보자고.”
탁.
탁자에 여러 장의 사진이 흩뿌려지고.
“여기 남자가 방금 목소리의 주인공이지. 맞네. 그 목소리의 남자가 옆방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변호사보다는 자백이 낫지 않을까?”
“변호사.”
“아, 당신 회사 동료 그, 뭐라더라. 아, 슐레인. 어디 보자. 아, 여기 있네. 슐레인이 자백한 사람들과 거래 내역.”
탁.
자료를 보는 애널리스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아직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거야? 그럼 이건 어때?”
다시 소형 플레이가 작동되었다.
‘내가 자네에게 바라는 것은 남들은 모르고 우리만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가져오는 거야. 자네는 지인, 기업이나 투자은행 직원들, 컨설턴트 등 자네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 그러한 정보를 얻어 내야 한다고.’
미친.
이걸 어디서 녹음한 거지.
설마 SAK 전체에 도청을?
“이 목소리는 당신의 상사 호바스의 목소리 같은데.”
후.
FBI에 제대로 걸렸다.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일단 여기에 당신이 정보를 얻었거나 주었던 은행을 예쁘게 적어. 그리고 내가 주는 종이에 사인만 하고 집으로 가면 돼. 어때?”
“집으로?”
데이비드는 애널리스트 앞에 이미 인쇄가 되어있는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습관처럼 내용을 흩은 애널리스트의 눈이 어딘가에 머물며 커졌다.
하하하.
미친놈들.
“투마로우?”
“넌 그냥 사인만 하면 돼.”
“못하겠다면.”
“그럼 네가 뒤집어쓰든가?”
“후회나 하지 마.”
애널리스트는 미련 없이 사인을 했다.
사인이 끝나자 FBI 요원 둘이 들어오더니 애널리스트의 팔짱을 끼고 밖으로 끌어냈다.
“이거 놔, 날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 이거 놓으라고. 이거 놔.”
애널리스트의 목소리가 멀어지자 데이비드는 핸드폰을 꺼냈다.
“네, 사인 받았습니다.”
-한 개로 부족해.
“몇 군데 더 받아 내겠습니다.”
-조용히 잘 처리해.
“네.”
핸드폰을 끊고 데이비드는 미간을 찡그렸다.
하라고 해서 하긴 하는데.
투마로우를 건드려서 좋은 꼴을 못 봤는데 이래도 괜찮을까?
데이비드는 FBI다.
정보에 치이는 직장을 다닌다.
투마로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FBI 실장이 투마로우에 대한 거짓 내부자 거래 증거를 만들라고 지시를 내렸다.
하필 투마로우냐고.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투마로우는 그냥 큰 기업이 아니다.
커도 너무 커서 심지어 국가를 좌지우지한다.
얼마 전 일본, 경제 순위 3위의 일본을 침몰시켰다.
미국도 두려웠겠지.
그래서 투마로우를 통제할 수 있는 목줄 하나 정도 만들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근데 머릿속에서 또 하나의 정보와 부딪혔다.
다음 대통령은 공화당에서 나오면 어쩌려고.
자신이 알기로는 서형길이라고 임재준 팀원 중 하나가 공화당에 살다시피 한다고 했다.
공화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지금 하는 작업은 자신에게 아주 위험한 물건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보험을 하나 들어 놓아야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