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3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7)
중앙판공청.
시앙핑이 아프리카 순방을 떠난 사이 각 부장들이 모여 시급한 의제들을 논의하고 있었다.
시앙핑이 꼭 해 놓으라고 한 일 세 가지가 있었는데.
“주석이 지시한 것 중 이루어진 게 하나도 없네요. 투마로우 시티 기업 주식은 왜 한 주도 못 산 겁니까?”
딩쉐이가 두 눈을 커다랗게 치뜨며 재정부장에게 따지듯 물었다.
“주관사에서 배정을 안 해 주는 걸 어쩌란 말입니까?”
“그럼 시장에 나온 주식이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직 북조선 증권 시스템과 연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못 할 겁니다. 중국 자본은 받지 않는다고 대 놓고 말하더군요.”
“그러면 미국을 통해 우회해서 사면 되잖아요?”
“북조선 증권과 연계한 나라들은 제3국의 자금 유입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살 방법이 없어요.”
딩쉐이가 얼굴색이 시뻘겋게 물들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평정을 찾으려 애썼다.
임재준이 중국 자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거구나.
그놈이라면 맘먹으면 못할 것도 없지.
“그럼 그 기업들 주식을 소지하고 있는 곳의 주식을 삽시다. 간접적인 통제라도.”
“그것도 시도해 봤는데 어렵습니다.”
“왜요?”
“전부 해외에 있는 투마로우 간판을 단 은행들이 가져갔습니다.”
“네?”
북한에 증권 시장을 만들어서 투자를 유치하는 척하더니 전부 투마로우 입속으로 들어간 거야?
그럼 도대체 얼마를 번 거야?
현재 상장 후 반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열 배 가까이 시총이 뛰었다.
월가와 유럽, 특히 중동에서 시장에 나오는 소량의 물량을 공격적으로 매수해대고 있었다.
그냥 장이 시작할 때부터 상한가에서 시작한다고 보면 됐다.
막말로 돈이 없으면 뒈지는 시장이 되었다.
지금도 한 달에 십여 개의 기업이 상장을 통해 시장에 나오는 듯했지만 1% 남짓 주식만 시장에 뿌려질 뿐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50%나 되는 주식이 투마로우로 흘러 들어갔다.
이게 말이 되냐 싶겠지만 예전부터 월가뿐만 아니라 증권 시장에서 상장할 때 쓰는 방식이다.
주관사가 선정되면 주관사는 대략 5~10곳의 증권사를 선정해 물량을 배분해 준다.
물량을 배분받은 증권사가 어디에 팔지는 자기 마음이다.
시장에 다 풀어도 되고 돈 많으면 자신이 다 가져도 된다.
북한 증시에 하나 있는 증권사가 북조선 증권인데 말이 북조선이지 여기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 투마로우 직원이라고 봐야 했다.
물론 재준의 팀원들도 당분간 여기에 있기로 했고.
근데 물량을 배분해 줄 증권사가 북한에 없으니 어떡해.
해외에 있는 증권사를 선정해서 물량을 소화할 수밖에.
근데 그게 아주 우연히 투마로우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곳만 선정되었다.
딩쉐이는 힘겹게 이해했다.
정말 힘드네.
아니 왜 주석은 아프리카 순방을 가면서 이런 힘든 일을 던지고 간 것일까.
하긴 자기가 하기 힘드니까 시키고 갔겠지.
그래 주식은 그렇다 치고.
“북한 국채는 왜 못 산 건데요?”
“안 판답니다.”
“그러니까 왜?”
“애초에 투마로우가 전량 매입하기로 약조가 되어 있답니다.”
“아, 애초에.”
그럼 국채도 남의 떡이고.
“자율주행 도시 선정은 되는 겁니까?”
니콜라 모터스에서 평양을 이은 자율주행 도시를 주변국에서 찾겠다고 발표를 했다.
당연히 중국, 한국, 러시아를 비롯해 많은 국가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것도 애초에 중국 쪽으로 눈도 돌리지 않고 있습니다. 뭐, 뻔하게도 한국으로 선정될 겁니다.”
“도대체 왜?”
쾅.
이때 가만히 듣고 있던 왕삼 중국 외교부장이 책상을 내리치며 일어섰다.
“북한 하나 잡겠다고 대국이 매달리는 꼴이라니, 이게 뭡니까? 내가 해결하겠습니다.”
딩쉐이는 한 성질 하는 왕삼 외교부장을 향해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그래, 왕삼 부장.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찍어 눌러야지요.”
“그러니까 뭐로 찍어 누릅니까?”
“그야 힘이지요.”
“그러니까 무슨 힘?”
딩쉐이의 목소리가 점점 짜증을 실었다.
하지만 왕삼의 목소리도 이에 지지 않게 커졌다.
“돈이든, 군대든, 뭐든 우리가 압도적으로 센데. 그까짓 북한 하나 굴복시키지 못한단 말입니까?”
“북한이 아니라 투마로우입니다. 당신, 임재준이 누군지 알고 하는 소립니까?”
중국이 돈이 없고 군대가 없어서 헤이룽장성을 빼앗긴 줄 아냐?
“흥, 그까짓 놈. 내가 나서겠습니다. 감히 주석님을 고충에 빠뜨리는 놈은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해 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나한테 맡기세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한국을 치는 겁니다.”
“한국?”
갑자기 한국은 왜?
“그놈이 한국 출신인 거 다 압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한국에 경제 제재를 하면 그놈도 바로 꼬리를 내릴 겁니다.”
“정말 그럴 거로 생각하는 겁니까? 임재준이 한국을 어떻게 다루는 줄 알아요? 마치 죄인 다루듯 합니다. 죄인.”
“그게 다 애정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실제로 자기 가족은 야단칠 수 있어도 남에게 야단맞는 가족을 못 보는 겁니다.”
“뭐, 그렇다 치고. 근데 한국에 무슨 구실로 경제 제재를 가한단 말입니까?”
“구실을 만들어야지요.”
“그러니까 어떻게. 좀 방법부터 말을 하세요. 자꾸 결론만 말해서 되묻게 하지 말고.”
“판공청 주임 꽤나 다혈질로 변했습니다.”
후.
크게 숨을 쉰 딩쉐이가 진정했다.
그래,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 자꾸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아졌어.
침착하자.
“죄송합니다. 일단 방법을 말해 보세요.”
음.
“동북아 미사일 방어체계를 신양에 세운다고 발표하는 겁니다.”
“미국이 말하는 사드를 중국에 세운다고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했는데?”
“중단했는지 어떻게 압니까? 믿을 수 없는 놈들이 북한인데.”
음. 안 믿는다면 안 믿는 거지.
“일리 있는 말이긴 하네요.”
“그럼, 미국과 한국에서 펄쩍 뛸 겁니다. 우린 그걸 꼬투리 잡아 한국 제재에 들어가면 됩니다. 네까짓 게 뭔데 중국의 일에 간섭이냐. 뭐, 이런 거죠.”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왜 이리 맘에 안 드는 걸까?
괜히 미국을 자극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임재준이 전면에 나설까?
“그러면 한국은 중국과 대화를 하려고 할 겁니다. 그때 우리가 너그러이 북한에 투자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한국 정부는 임재준을 압박할 테고. 어쩔 수 없이 중국의 손을 잡을 겁니다. 이렇게 일은 외교적으로 풀어야 하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거기에 더해. 이번에 일본과 중국이 손을 잡았으니 일본은 북한 제재에 들어가는 겁니다.”
“일본까지 끌어들인단 말입니까?”
“지금 일본은 유전자 변형 문제를 국제기구와 함께 비난하고 있지 않습니까. 투마로우 시티에 들어가는 소재를 제재한다면 버티기 힘들 겁니다.”
음.
저건 맘에 드네.
소재라…….
“좋습니다. 그럼 발표할 시기를 잡아 봅시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오늘 당장 발표합시다. 발표한다고 미사일 방어체계를 시작하는 것도 아닌데.”
역시 저돌적인 인간이야.
그래, 이번엔 임재준을 압박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럽시다.”
***
[중국에 위협이 되는 상황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미사일 방어 체계를 신양에 세울 것입니다]
드디어 왕삼 외교부장이 투마로우에 대해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일본은 인류 평화를 위협하는 투마로우 시티의 연구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일본산 소재 전량을 수출 규제 목록에 넣을 것입니다]
코베도 중국의 규제에 동참을 선언했다.
근데, 미국도 한국도 북한도 반응이 없었다.
이거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
현재증권.
“네, 그렇죠. 계속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대통령님도 잘 설득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우린 이대로 침묵하겠습니다.
뚝.
“미 국방부 장관이 네 말대로 한다고 하냐?”
임병달은 미국과 통화를 마친 재준을 채근했다.
“네, 뭐 자기들도 괜한 돈 들이기 싫은데 잘된 거죠.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포기했는데 일부러 돈 들여서 미사일 방어 체계를 한다니 미국으로선 왜 저럴까 싶은 거죠.”
“근데 왜 저러는 거냐?”
“글쎄요. 이번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뭐 하는 것인지.
사드(미사일 방어 체계)는 한국에 설치하고 중국이 길길이 날뛰어야 하는데 왜 자기들이 사드도 설치하고 성질도 자기들이 부리는 걸까?
그리고 일본은 한참 뒤에 한국에 소재 수출 규제를 해야지, 왜 엉뚱하게 지금 북한에 수출 규제를 하겠다고 나서는 거야?
이거 살짝살짝 꼬이던 역사가 북한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니 왕창 뒤틀린 것 같은데.
아니지, 이게 바로 멀티유니버스지.
원래 역사는 알아서 진행되고 여긴 다른 역사라고 할 수 있어.
그나저나.
쟤는 왜 저런 걸까?
톡톡톡톡톡톡톡.
엘리자베스도 부산스럽게 탁자를 손톱으로 두드리며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야, 그것 좀 치지 마. 정신 사나워.”
흥.
톡톡톡톡톡톡톡톡톡.
엘리자베스는 재준의 성화에 더 빠르고 크게 두드렸다.
“으이그 내가 말을 말아야지.”
“난 알 것 같아.”
엘리자베스가 재준을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
“뭐가?”
휙.
“할아버지. 중국이 북한을 싫어하나요?”
엥?
나한테 질문을 하는 거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지. 예전에는 둘이 잘 붙어 다녔는데 중국이 돈 벌려고 북한을 등한시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중국의 말을 안 듣자 서로 형식적인 관계만 유지하고 있단다.”
“그럼 저 미사일 방어 체계는 북한 때문이란 건 뻥이네요. 저건 한국을 노린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형식적인 관계라는 건 서로 얽히고 싶지 않은 거잖아요. 그런데 굳이 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하겠다 선언하면서 북한과 얼굴을 붉힐 일이 있나요?”
“없겠지.”
“그런데 중국이 세게 나왔는데 당사자가 아무 반응이 없으면 다음은 한 발 더 나갈 텐데. 미국을 건드리는 건 자살 행위고, 북한을 제재할 수단은 없고, 만만한 게 한국밖에 없잖아요.”
“오, 너 재준이랑 다니더니 똑똑해졌구나.”
“헤헤헤, 제가 원래 천재라서.”
천재는 무슨.
“할아버지, 시건방지지만 엘리자베스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준비해야겠습니다.”
“갑자기 뭘 준비한단 말이냐. 아직 중국이 제재할 게 뭔지도 모르는데.”
“뻔하지요.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는 돈의 주인을 제재하겠지요.”
“그게 어딘데.”
“현재증권이요. 현재증권이 투마로우라고 생각하니까요.”
“엥? 우리를? 어떤 제재를 한다는 거야?”
“현재증권이 보유 중인 주식 중 비중이 큰 기업부터 손을 대기 시작할 겁니다. 주가가 떨어지면 현재증권이 손해를 보니까요. 그게 한두 개가 아니면 우리도 곤란을 겪을 거다. 뭐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게 가능하니? 아무 이유 없이 손을 대는 게?”
“우리는 안 그런가요? 소방법이나 세금 포탈이 의심스럽다고 달려들면 되는 일인데요.”
“그럼 어쩌냐?”
“자, 그럼 우리도 중국처럼 먼저 발표부터 하는 겁니다.”
“뭘?”
“중국 자본이 많이 들어간 기업과 일본에 본사를 둔 기업을 적대적 인수하겠다고. 발표만 하는 겁니다. 발표만.”
뭐지?
서로 말로 싸우겠단 말이야?
“그럼 일본은 어떻게 할 거냐? 일본 소재는 첨단 과학 연구에 꼭 필요한 거잖아.”
“과연 그럴 정신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재준이 말을 하고는 빙글 웃었다.
헉, 저놈 또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구나.
“이번엔 일본과 중국이 싸우게 될 건데.”
뭐? 갑자기 왜 둘이 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