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4)
“맞습니다. 주로 소형 로켓을 연구합니다. 그래야 우주여행 경비를 절약할 수 있으니까요.”
“소형? 그럼 소형 대륙 간 탄도도 가능하단 말이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북한에서 연구하겠다는 겁니까?”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뭘 살펴봐요? 북한에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뭐 혹시 북한 소식통을 이용하겠단 생각은 아니죠?”
“하지만 그쪽 외에는 정보를 취합할 방법이 전무합니다. 투마로우 시티에는 도시 전체가 관계자 외에는 출입이 불가능합니다.”
도대체 너희는 하는 일이 뭐야?
투마로우 시티 안에서 무얼 하는지 모른다?
너무 위험한데.
“근데 일본 기업은 투마로우 시티에 왜 안 들어가는 겁니까? 내가 보니 한 군데도 없던데. 혹시 일본을 배제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일본 기업은 자발적으로 투마로우 시티에 들어가는 걸 거부했습니다.”
“왜요?”
“거긴 연구 정보를 100% 공유하게 되어있습니다.”
“아니, 남의 정보를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최고의 지성이라는 사람들이 단체로 미쳤나?
연구를 공유한다고?
북한도 공유하는 거잖아.
한국도 공유하는 거고.
무슨 생각들이지?
“미국은 뭐라고 합니까?”
“찬반으로 갈려서 아직 의견이 정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디가 반대입니까?”
“그것도 애매합니다.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반반씩 섞여 있습니다.”
왜 그래?
민주당인지 공화당인지 정해져야 로비를 하든 하지.
당 차원에서 의견이 일치가 안 된다는 게 말이나 되나.
도대체 미국 대통령은 뭐 하고 있는 거야?
“모두 나가봐요. 미국 대통령이랑 전화 통화를 해야겠어요.”
네.
우르르 장관들이 방을 비우고 코베 총리는 핫라인을 돌렸다.
띠리리링.
-네, 코베 총리. 어쩐 일입니까?
“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북한이라면 아직 결정된 건 없습니다.
정말 한가한 사람들이네.
“그럼 대통령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하하, 저라고 별수 있습니까.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뭐, 개인적인 생각으론 찬성입니다.
“찬성이라뇨?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요.”
-투마로우가 하고 있으니까요.
“투마로우를 믿으신다고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한낱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을?
그것도 미국의 대통령이?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해할 필요 없습니다. 언젠간 겪게 되실 겁니다. 그때 임재준을 상대하려 하지 마세요. 제 충고를 흘려듣지 마시고 임재준과 손을 잡는 쪽으로 생각하세요.
“알겠습니다.”
이후 대충 통화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다.
코베 총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 대통령이 임재준을 감싸고 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지?
세계 최고 국가 미국의 대통령이 일개 기업인을 감싸고 돌다니.
그것도 북한과 손잡은 조센징을.
조센징. 조센징.
건방진 조센징.
***
투마로우 시티.
우와. 우와.
엘리자베스는 투마로우 시티에 들어서면서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대단하네. 대단해.
마가리따도 탄성을 내뱉기는 마찬가지였다.N
지금 지어지는 건물들은 연구센터이다 보니 마냥 높지는 않지만, 대신 서로 누가 누가 더 첨단 과학 연구소답게 생겼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건물 디자인이 미쳤다.
구불구불하기도 하고, 어떤 건 사방으로 뻗는가 하면 투명 피라미드부터 원형에 가까운 건물도 보였다.
원형 건물은 공간 낭비 아닌가?
“첨단 과학도시라더니 무슨 공상 과학 영화에 나올 법한 건물들이 즐비하네요.”
“다 자존심 싸움이지. 외형에서 절대 질 수 없다 뭐 그런 거.”
“벌써 편의 시설도 다 들어왔네요.”
“여기 한 번 들어오면 나가질 않아.”
“나가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나간다고요? 집에 안 가요?”
“집에 갈 생각이 없지. 과학자들이 원래 그렇잖아. 저기 중앙에 평범한 흰색 건물 보이지.”
투마로우 시티 중앙에 정확히 정사각형으로 된 5층짜리 건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저게 투마로우 은행이야. 그 옆에 비슷하게 생긴 단층 건물 보이지?”
“꼭 형 동생 같이 생겼네요.”
“근데 저 단층 동생은 지하가 10층이야. 저 지하에 투마로우 시티의 모든 정보가 저장되고 보호되고 있어. 저기 있는 정보를 공유하면서 연구를 하다 보면 집에 누워서 편하게 쉴 생각 따위는 버리게 된대. 과학자들도 알고 보면 약간 변태야. 고통을 즐기는 걸 보면.”
엘리자베스가 손차양을 한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있는 무언가를 바라봤다.
“저거 로켓 발사대 아니에요?”
“맞아, 한국과 러시아 과학자들이 우주여행 프로젝트를 위해 설치한 거지. 정확히는 발사대가 아니라 발사 시스템이야. 지하에 어마어마한 시설이 있어.”
“우주여행?”
“그렇지. 단돈 천만 원에 우주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안전한 소형 우주선을 개발 중이래.”
우와!
“저건 뭐예요?”
이번엔 마가리따가 거대한 공사가 진행되는 곳을 가리켰다.
공사라기보단 땅파기에 가깝고 건물은 올라가지 않았다.
“강입자 충돌기를 만들고 있어요. 언제 완성되는지 모르겠지만.”
“저걸 누가 만들어요.”
“저건 투마로우가 자금을 대기로 했습니다. 총 40억 달러.”
“왜요?”
“왜라니, 저런 게 상징적인 존재 아닌가요? 강입자 충돌기 정도는 있어야 ‘나 과학 도시야’라고 명함을 내밀죠.”
여기 진짜 큰일이 벌어지겠는데.
셋은 투마로우 뱅크 안으로 들어섰다.
행장실로 들어서자 익숙한 인물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어, 윌켄, 퀴니코.”
그 외 모두 안녕.
엘리자베스가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자 모두 웃으며 손을 들었다.
윌켄이 재준을 보고 피식 웃었다.
“보스, 우리 없이도 굉장한 일을 했던데요.”
“아이고, 그러게, 정말 삭신이 다 쑤셔요. 혼자 이리저리 동분서주했어요. 누구는 있으나 마나 하게 사람이나 갈구고. 뭐, 어차피 능력도 없는 수다쟁이라 그러려니 하지만.”
마가리따가 엘리자베스 어깨에 손을 얹고 가볍게 토닥였다.
“근데 우리는 왜 부른 거예요. 이제 다 끝난 것 같은데.”
“아니야. 이제 시작이지. 한국의 현재증권이 북한 증시를 만들 겁니다.”
“북한에 증권 시장을 열겠단 겁니까?”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면 다른 곳에 상장할 텐데. 그럼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거잖아.”
“아마 전쟁터가 될지도 모릅니다.”
윌켄은 처절한 사투가 눈에 훤히 보였다.
자율주행이든 유전 조작이든 AI든 우주여행이든 무엇 하나 시장에 민감하지 않은 종목이 없었다.
전 세계의 글로벌 대형 기업들은 이 중 하나라도 자신의 손에 넣으려고 천문학적이 자금을 쏟아부을 것이다.
누가 불로장생을 마다하겠으며, 누가 자신의 자손이 슈퍼인간으로 거듭나길 원하지 않을까. 누가 우주에서 부유하며 한 끼의 식사를 마다하겠는가.
“그래서 생각이 많아.”
페렐라가 피식 웃었다.
“보스도 고민할 때가 있네. 그럼, 아예 상장을 안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물론 그렇지, 상장이라는 게 자금 확보가 우선이니까. 채권을 발행해서 도와주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기업에게 채권 이자는 큰 부담이 될 거야. 분명 IPO(상장)를 원하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을까.”
“IPO를 하고 주식을 투마로우가 거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돈에는 한계가 있어. 무조건 우리가 거두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지.”
퀴니코가 가만히 듣다가 손을 들었다.
“당분간 공매도는 금지하세요.”
“그러려고. 연구자들에게 기업 주가까지 신경 쓰게 하고 싶지는 않아.”
펠그리니도 이야기가 끝나자 손을 들었다.
“보스, 나 여기 취직해도 돼요?”
“그럼, 근데 그거 알아? 러시아 바이칼 호수 꽤 차갑다. 아마 얼음 화석이 된 최초의 인간이 될지도 몰라.”
헉!
전쟁을 겪고 나더니 아주 과격해졌는데.
펠그리니의 얼굴색이 파리하게 변했다.
“농담이야. 나도 아직 바이칼 호수에 가 본 적은 없어.”
하하하.
모두 북한 증시에 대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는 도중.
벌컥.
“임재준 동무.”
김정은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들어섰다.
어쩔 수 없이 재준도 두 팔을 벌려 환영했으나 그 의미를 자신의 방문을 기쁨으로 안 김정은이 재준을 포옹하고 팡팡 등을 두드렸다.
그리고 감히 김정은이 이동을 해서 찾아 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지 않을까.
만약 노동당 간부들이 이 장면을 보면 ‘종간나 새끼’라며 총을 뽑았을 장면이었다.
“어디 오늘 동무의 팀원이 온다고 하던데 이분들이십니까?”
“아, 네. 여긴 윌켄.”
“압니다. 정크 본드의 왕.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거칠게 하는 악수에 윌켄의 몸이 다 흔들렸다.
그렇게 모두 한 번씩 몸을 들썩였고 김정은은 두 여인들에게는 싱긋 웃음으로 때웠다.
“그리고 여기 내 동생 김여정입니다.”
재준과 김여정은 작게 고개를 숙여 침묵으로 말을 대신했다.
김정은은 아주 맘에 들은 표정을 지었다.
“임재준 동무, 무슨 일로 팀원을 모은 겁니까?”
음.
“이제 북조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의미로 북한 증권 시장을 개장하려고 합니다.”
“증권 시장이요? 그거 돈 되는 장사 아닙니까?”
“오빠, 자본주의의 상징입니다.”
“아, 자본주의.”
쩝.
김정은은 김여정의 말에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하나뿐인 동생에게는 깨갱 하는 김정은이었다.
신기하네.
김정은이 동생한테 꼼짝을 못 하네.
“지도자 동지 동생분.”
재준의 살가운 말투에 팀원 모두 뭘 잘못 먹어서 배가 뒤틀린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왜 저래.
그러거나 말거나 재준은 김여정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자본주의에 대해 잘 알아요?”
“흥, 잘 압니다.”
“얼마나요?”
“동무만큼 압니다.”
“흠, 이상하네.”
재준은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아직도 하나도 모르는데요.”
재준의 말에 경계심 가득한 김여정이었다.
흥, 어디서 말재주로 나를 넘기려고.
“뭐, 그렇다 쳐요. 그럼 공산권에 있는 증권 시장은 뭐죠?”
“그건…….”
“너무 경계하지 마세요. 증권은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때문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을 위해 있는 거예요.”
“돈놀이하는 곳 아닙니까?”
“음. 맞아요. 하지만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주는 방법입니다.”
“증권 시장으로 북조선은 자본주의 나라에 개방될 겁니다.”
“개방이요? 누가 주식을 사려고 북한에 온다고요? 어떤 바보가? 요즘은 전부 인터넷으로 주식을 사요. 객장에 가지 않아요.”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하하하하.
김정은은 호탕하게 웃으며 재준에게 말했다.
“우리 여정 공주가 궁금한 게 많은 겁니다.”
“그래요? 그럼 이번 증권 시장을 만드는 데 같이 해 보실래요? 그래야 증권이 자본주의의 산물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재준이 김여정을 보며 빙글 웃었다.
개고생을 해봐야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근데 귀하신 몸이 진짜 하겠어?
“좋습니다. 제가 참여하겠습니다.”
뭐야 진짜 하겠다고?
“여정 공주님. 경제는 배우셨나요?”
“당연하죠. 김일성종합대학 특설과정으로 배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북한 증시를 만드는데 한 분야를 담당하시죠. 깔끔하게……. 워서스틴. 어디가 좋을까?”
워서스틴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 담겼다.
“IPO.”
“음. 상장. 괜찮다. 괜찮아. 어때요, 여정 공주, 할 수 있겠어요?”
“당연합니다. 저에게 맡겨주세요.”
IPO, 기업의 첫 상장.
그만큼 그동안의 회계와 영업활동, 그리고 미래가치를 면밀히 분석하여 상장 가격을 정하는 업무다.
투자은행 영업에서 가장 머리를 쥐어뜯으며 가격을 산정하는 분야다.
IPO가 왜 수수료가 가장 많겠는가.
다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김여정이 쓸데없이 의지를 다지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운데 머리가 없던데.
소갈머리 없는 여자 되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