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5화 역시 구경은 싸움 구경, 불구경이지(8)
청와대.
“이건 심각한 국가보안법 위반입니다.”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에게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래서요. 임재준을 체포라도 할 생각입니까?”
재무부 장관이 빈정거리자 법무부 장관 인상이 구겨졌다.
“못할 것도 없습니다. 분명히 북에 가는 걸 불허했는데 우리 말을 어기고 들어간 거 아닙니까? 국가 안보를 크게 위협하는 행위입니다.”
“이보세요. 법무부 장관님. 김정은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게 했습니다. 핵 개발을요. 그게 어떻게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가 됩니까? 오히려 우리에게 잘된 일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가 환영의 뜻을 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노벨평화상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요. 근데 무슨 국가보안법 위반을 들먹입니까?”
“결과를 놓고 보면 안 됩니다. 이번 일을 용인하면 너도나도 북에 몰래 들어갈 겁니다. 그러면 국가 안보가 크게 흔들리는 일이 언젠가는 터진단 말입니다.”
“참 나, 이제 북을 자유롭게 오가도록 하는 게 더 올바른 결정 아닙니까? 저 개성공단에 투마로우 시티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과학 도시가 건설되고 있어요. 대한민국이 얼마나 큰 기회를 얻을지 모르는 겁니까?”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그 자리에 최첨단 과학 도시가 건설 중이다.
그런데 아직 북한에선 한국에 일절 말 한마디가 없었다.
바로 앞에서 천문학적인 돈이 오고 가니 통일부와 재무부는 똥줄이 타는 듯했다.
하지만 돈보다는 명예에 집착하는 법무부 장관은 단호했다.
“북한이 우리에게 한 짓을 아직도 잊은 겁니까? 저 투마로우 시티도 곧 개성공단 꼴이 날 겁니다. 두고 보세요.”
허.
“두고 보긴 뭘 두고 봐요. 개성공단이 북한에 무슨 이득이 되었습니까. 기껏 해 봐야 노동력에 대한 임금 수입이 다였는데. 지금 투마로우 시티가 북한의 위상을 얼마나 높여주고 있는지 아십니까? 저기 투자되는 돈이 얼마인지 아냐고요.”
“그거 다 불법적인 실험을 묵인해 주는 대가 아닙니까? 국가가 어떻게 저런 파렴치한 짓을 앞장서서 저지른단 말입니까. 그 선두에 임재준이란 범법자가 있는 겁니다.”
“범법자 좋아하네. 지금 외화은행 불법 매각으로 국제중재에서 대한민국이 범법자가 되어가고 있어요. 저기가 아니라 우리가요. 소송이나 이기고 말하세요.”
중재 과정에서 금감원과 로운스타의 밀착이 낱낱이 드러났다.
한국이 이기고 지는 게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 전 세계는 중재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불법 사실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탁탁.
그만!
듣다 못한 대통령이 좀 그만하라고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뭣들 하는 건지. 참.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 좀 합시다. 통일부 장관, 지금 미국 상황은 어때요?”
흠.
헛기침을 한 통일부 장관이 목을 가다듬었다.
“미국 정부는 핵무기 개발 중단에 대해서는 환영의 뜻을 보였지만 북한의 도시 건설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임재준과 접촉도 없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먼저 임재준과 면담을 요청하는 건 어때요?”
“대통령님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그는 범법자입니다.”
“거, 법무부 장관은 입 좀 다무세요. 아까부터 시대에 뒤떨어지는 소리 좀 그만하라고요.”
험, 험.
통일부 장관이 다시 헛기침을 해서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대통령님이 직접 만나보실 겁니까?”
“네, 김정은과 직접 만난 사람인데. 한국에서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하지 않겠어요?”
“네. 연락을 취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정부 때문에 한국 자동차 기업들이 투마로우 시티에 합류를 못 하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아, 네. 북으로 가는 게 민감한 사안이라.”
하하.
어이가 없다는 듯 대통령이 웃었다.
“잘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어요. 미래 중요 사업 중 하나인 자율주행에서 우리는 로열티나 지불하는 나라가 되겠군요.”
“죄송합니다.”
“자율주행 말고 또 다른 기업들이 투마로우 시티로 이전한다고 하던데. 어떤 분야입니까?”
“유전 공학도 몰리고 있습니다. 북한은 유전자 조작에 대한 그 어떤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고 발표했습니다.”
“그건 좀 민감한 부분이군요. 과학기술부 장관 어떻게 생각해요?”
흠, 흠.
“미국은 2001년 ‘세 부모 배아법’을 금지시켰지만 13년 후인 올해 영국은 이를 허용했습니다. 어차피 허용할 문제인데 윤리를 들먹여 시간만 낭비한 꼴이란 비난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세 부모 배아법’은 두 명의 부모가 시험관 시술로 수정을 했을 때 수정란 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가 결함이 있을 경우, 제3자의 미토콘드리아를 가져와 교체하는 시술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안에 핵과 별도의 독자적인 유전자를 가진 채로 존재하는데 결함이 있으면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킨다.
그래서 미토콘드리아를 부모 외의 다른 사람 것으로 교체한다.
그럼 하나의 세포는 부부의 핵과 제3자의 미토콘드리아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게 실제로 2000년에 미국 미시건 주에서 세 부모 배아법을 시술한 아기가 태어났다.
부모가 셋인 아기가.
당연히 윤리적인 문제를 들어 이 시술은 금지되었다.
근데 미토콘드리아에 결합이 있는 걸 알게 되면 수정란을 그냥 죽여야 하나? 아니면 질병으로 죽을 걸 알면서 아기를 낳아야 하나?
윤리고 나발이고 둘 다 살인 행위다.
윤리라는 논쟁에 살 수 있는 아기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결국, 영국이 총대를 멨다.
“북이라면 이런 비논리적인 논쟁을 할 필요가 없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세 부모 배아법’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유전자 수선도 있습니다.”
음.
“유전자 수선이라…….”
“네, 처음엔 비난하겠죠. 하지만 수정단계에서 유전자를 수선해서 맞춤형 아기를 만들어지면, 좀 더 강한 면역력을 가지고 높은 기억력에, 뛰어난 외모, 강력한 신체를 가진 슈퍼 인간이 태어납니다. 이를 비난만 하고 있을 국가는 없습니다. 다들 따라 하기 시작할 겁니다.”
“과연 이게 미래를 위한 일일까요?”
“꼭 뛰어난 인류를 만들지 않더라도 질병을 위해서 필요한 과정입니다.”
후후후.
과기부 장관 말에 대통령이 허탈하게 웃었다.
“핑계군요.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한다. 나머진 원하지 않는 결과였다. 뭐 이런 거요.”
“그렇게 생각하셔야 맘이 편하실 겁니다.”
“그렇군요.”
“그리고…….”
“네, 허심탄회하게 말해보세요.”
“구구의 자회사 ‘임모탈’도 북한으로 들어갔습니다.”
“임모탈이라면 불로장생을 연구하는 회사잖아요.”
“맞습니다. 북한으로 들어갔으니 연구에 박차를 가할 겁니다.”
“불로장생이라…….”
임모탈은 불로장생 1차 목표를 10년으로 잡았다.
10년에 한 번씩 노화 조직을 재생하고 손, 눈, 뇌의 성능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10년은 더 진보된 기술이 기다릴 것이고.
당연히 인권단체에서 들고 일어났다.
자식보다 젊은 부모.
외모만 젊은 게 아닌 신체 나이도 어린 부모란다.
근데 왜 이게 윤리적인 문제가 되는 것일까?
부모는 꼭 자식보다 늙어 보여야 하는 건가?
뭐, 윤리적인 문제도 있긴 하다.
부모가 자식의 친구랑 재혼하는 경우?
그런데 그럼 안 되는 것인가?
윤리라는 것이 어쩌면 인류 진화의 최대의 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임모탈이 북한으로 들어간다면 과감한 연구가 진행될 것이고 10년 단위가 아닌 20년, 30년 아니 100년 단위가 가능할지 모른다.
돈만 있다면 돈이 넘치는 월가에서 실제 불멸의 인간이 활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이제 북한은 온갖 윤리와 법이 정한 틀에서 행하지 못하는 과학 연구가 진행되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인권이니 환경이니 하면서 편을 가르고 과학의 발전을 방해하는 나라들은 도태될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군요.”
“빠른 시간 안에 임재준과 미팅을 잡겠습니다.”
대통령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북으로 간다고 할 때 적극적으로 나설 걸 그랬어.
이때,
띠링.
임재준에게 붙여 두었던 꼬리에게서 문자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임재준, 현재증권에 있습니다.’
지금 가 보아야 하나?
***
현재증권.
으아아아아아아아.
재준이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고 회장실로 들어섰다.
임병달은 멍한 눈으로 재준을 바라보았다.
“북에 간 일은 잘 했고?”
“뉴스 안 보셨습니까? 완전 대박이라고 난리입니다.”
“그래, 알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칭찬이 자자하더라.”
“하하하하. 제가 아주 큰 일을 했습니다.”
“그래, 그 큰일 뒤에 아주 지랄 맞은 일도 해서 그렇지.”
“왜요? 그것도 괜찮은 결과를 만들었는데요.”
“재준아, 사람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 거다. 자율주행까지는 뭐라 하지는 않겠는데. 유전 공학은 좀 그렇지 않을까? 신문에 연일 너의 만행을 성토하는 기사로 도배가 되고 있어. 너 한국에 들어온 거 알면 기자들이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헉!
다시 북으로 가야 하나?
“그래도 상관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욕먹는 것도 아닌데.”
“왜 우리가 욕을 안 먹어? 네가 벌써 북한을 도와주고 있다고 소문이 다 났는데. 근데 왜 북한이냐? 왜 북한을 부국으로 만들어 주려고 하느냔 말이다.”
“부국이요? 제가요?”
임병달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놈이 뭔가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아니냐? 아니지?”
“당연하죠. 제가 왜 북한을 도와줘요. 아니지. 조금은 도와주는 것 같네요.”
“그럼 우리는 뭐가 이득인데.”
“음. 뭐 굳이 말하자면 투마로우라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죠.”
“그건 또 무슨 말이냐?”
“할아버지, 김정은은 저에게 매달 조공을 바쳐야 할 겁니다.”
“조공?”
“그럼요. 제가 수틀려서 북한을 버리고 다른 나라를 찾아 나서면 어떻게 되겠어요?”
“뭐?”
임병달은 재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북한을 버려?
“지금이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김정은은 서서히 알게 될 겁니다. 북한은 투마로우라는 토양에서 자라는 나무라는 것을요. 하지만 그걸 알아차릴 때는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란 것도 함께 깨닫게 되겠죠. 하하하하, 지금 북한과 같이 윤리니 법이니 하는 것을 저버릴 수 있는 국가가 없겠어요?”
“뭐?”
그렇구나.
북한은 재준이가 달라면 주고 먹으라면 먹는 노예가 된 건가?
밖으로는 큰소리 뻥뻥 치고 어깨 쫙 펼 수 있겠지만 항상 투마로우 눈치를 보며 저놈 앞에서 아양을 떨겠지.
투마로우가 떠난 북한은 예전으로 돌아갈 테니까.
핵무기도 없는 초라하고 가난한 국가로.
이제 재준이란 존재에 공포를 느끼게 되는구나.
그뿐인가.
이제 빈국들은 북한의 길을 따라가고 싶어 안날이 날 거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국민을 굶겨 죽이는 나라가 윤리니 법이니 그런 걸 따질 때는 아니지.
김정은은 재준과 만나는 빈국의 대통령을 보면서 갑갑한 마음을 부여잡고 신음할 거고.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이 땅을 치고 후회하겠네.
러시아는 경제가 더욱 파탄이 났고 중국은 당분간 공장을 가동해도 예전만큼 기력을 회복하기 힘드니까.
이런 와중에 북한이 투마로우와 손을 잡고 벌인 일들을 보면 당장 재준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지 않을까.
근데 저놈은 그걸 확 뿌리치겠지?
손자놈이 아주 똑똑해졌다고 해야 하나.
인정사정없는 냉혈동물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이제 정말 내 손자를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어.
“북한에서 너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지 않으면 어쩌냐?”
“에이, 할아버지. 투마로우 시티 안에 은행이 투마로우 은행밖에 없어요.”
“뭐? 독점이라고?”
“그럼요. 일단은 모든 돈은 투마로우를 거쳐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팡팡.
재준이 가슴을 자신 있게 두드렸다.
“전부 저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요.”
하하하하.
이게 현실이 맞나.
이때,
띠링.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회장님, 청와대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