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1화 역시 구경은 싸움 구경, 불구경이지(4)
청와대.
통일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긴급하게 보고할 내용을 가지고 청와대를 방문했다.
“자, 앉으세요.”
“네.”
“그래 무슨 일이기에 직접 보고를 한다는 겁니까?”
굉장히 궁금한 대통령이 앉으면서 물었다.
“아, 네. 곽형택 투마로우리츠 사장이 찾아 왔었습니다.”
“아, 그분 저도 잘 압니다. 부동산의 큰손이시죠.”
“곽 사장이 허락을 구해왔습니다.”
“그래요? 뭔데요?”
“그게…….”
통일부 장관은 선뜻 이야기를 꺼내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아야 허락을 하든 하죠.”
음.
“투마로우 임재준이 북으로 가고 싶답니다.”
임재준이면 그 투마로우라는 미국 은행의 오너잖아.
“일개 은행장이 북을 간다고요?”
그전에도 북으로 간 사람이야 많았지만, 그들은 목표가 있었다.
평화를 위해서, 사업을 위해서, 계약을 위해서, 나름 자신의 영역에서 북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은행이? 북에 은행 지점이라도 내겠다는 건가?
아니면 증권사? 이건 더 말이 안 되잖아.
북에 국제 회계 기준에 부합된 기업이 있을 리가 없을 테니.
아니지, 꼭 은행 개설이 아니더라도 지금 개성공단 문제로 서로 옥신각신하는데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
“개성공단 재개와 관계가 있는 겁니까?”
“개성공단 재개와 관계없을 겁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 임재준은 개성공단 재개를 반대한다고 합니다.”
“뭐요? 반대? 도대체 왜?”
제까짓 놈이 뭔데 반대를 하는 거야?
돈 좀 만진다고 건방이 아주 하늘을 찌르잖아.
“그건 그렇고 왜 북에 간다는 겁니까?”
“그게, 북한에 투자를 한다는 것 같습니다.”
“북에 투자를 해요? 거기 뭐가 있는데? 전에 신문을 보니 광물이 좀 있다는데. 거기 투자를 할 생각인가요?”
“그건 속단하기 어렵지만, 임재준이라면 광물에 투자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광물이 있다는 기사는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광물이 있었다면 북한 지도층들이 벌써 채굴해서 외화벌이에 활용하지 않았을까요? 북한 광물에 대해선 신문 기사를 믿지 마십시오.”
“아, 그렇군요. 그럼 투마로우가 곡물 기업도 가지고 있는 거로 아는데 북한에 곡물을 수출하려는 걸까요?”
“저도 그게 가장 확실해 보입니다. 다만 수출이 아니라 북한을 곡창지대를 만들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요? 곡창지대라니 그것도 의외네요.”
“북에서 곡물을 생산하는 건 꽤 괜찮은 생각입니다. 땅과 사람은 충분하니까요. 선진 기술과 기계화만 갖추어진다면 수확량이 급격하게 늘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아직 하루 8시간이란 노동시간에 대한 개념도 없고요.”
하루 12시간을 일해도 군소리 없는 곳이 북한이지.
대통령은 북한에 곡물이 자라는 상상을 했다.
일단 자급자족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남는 곡물을 수출할 수도 있고.
그런데 북이 풍족한 삶을 산다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까?
핵무기를 만드는 이유가 원래 먹을 식량을 원조받기 위해 서니까, 곡물이 풍족해지면 핵무기는 저절로 포기할 것 같은데.
“장관님 생각은 어때요?”
“임재준에 대해 아직 제대로 조사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뭐라고 속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도 그러네요. 아니, 잠시만요.”
대통령은 버튼을 눌러 비서실장을 호출했다.
잠시 후 비서실장이 들어와 대통령 옆에 섰다.
“부르셨습니까?”
“음, 실장님. 혹시 임재준에 대해 알고 있나요?”
“투마로우 임재준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그 사람이에요.”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 중 해외에서 유명한 사람들은 저희가 전부 정보를 따로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최근 근황은 어때요?”
“중국에서 컨테이너 10,200개 분량의 광물을 수입해서 연천군 일대에 쌓아놓았습니다.”
“컨테이너 몇 개요? 만 개? 그게 가능합니까?”
“임재준이니까 가능한 겁니다.”
“그래요? 그 사람 은행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갑자기 광물은 왜 수입을 합니까?”
“임재준은 투자은행을 운영하기 때문에 기업에 투자해서 주가가 올라가면 이익을 취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곡물도 그런 일환에서 투자한 걸로 보고 있습니다.”
“그럼 임재준이 움직일 수 있는 곡물은 어느 정도입니까?”
“간단하게 말을 드리면 지구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70%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70%가 도대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겁니까?”
“북미, 남미, 유럽 대부분의 물량을 통제합니다.”
뭐야, 호주 빼고 전 세계 곡창지대가 전부 투마로우 손에 있다는 소리잖아.
“투마로우는 원래 은행 아닌가요?”
“임재준의 투자은행은 대통령님이 생각하시는 한국에 있는 투자은행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왜요?”
“규모가 다릅니다.”
“얼마나 크죠?”
“일단 한국에 현재증권과 투뱅코, 그리고 40여 개의 금융 자회사가 있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한국에선 공룡 기업에 속합니다. 그러나 투마로우는 월가에서 1위부터 10위권 안에 들었던 은행들을 전부 먹어치웠습니다. 증권도 온라인 오프라인을 전부 휩쓸었고요. 그리고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 이탈리아, 덴마크까지 각국의 제1의 은행을 계열사로 두고 있습니다. 거기에 아르헨티나, 브라질.”
“그만. 어지러워요.”
“아, 네.”
대통령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어렴풋이 들은 것보다 너무 크다.
스케일이 너무 커.
이런 놈이 북한으로 들어가면 북한이 발전하는 건 시간문제다.
“실장님, 만약 임재준이 북에 들어간다면 왜 들어가려고 할까요?”
“임재준이 북에요?”
“통일부에 허락을 구하려고 왔습니다.”
“아, 네.”
임재준이 북으로 가면…….
“무조건 막으셔야 합니다.”
“왜죠?”
“임재준은 미국 정치에도 깊숙이 관여하는 인물입니다. 저희 한국을 배제하고 북미회담이 개최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고?
“그건 안 됩니다.”
“그리고 따로 투자도 진행된다면, 투마로우가 아무리 작게 투자한다고 해도 100억 달러 이상은 북으로 들어갈 겁니다.”
“100억 달러요?”
“북에 자금이 흘러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고 계실 겁니다.”
“골치 아파지는군요.”
“네.”
대통령은 잘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장관님, 허락할 수 없다고 통보하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은 모두 나간 뒤에 핸드폰을 들었다.
“저예요.”
-네, 대통령님.
“임재준, 사람 좀 붙이세요.”
-알겠습니다.
뚝.
정부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안 들어갈 놈이 아닌 것 같아.
***
호텔신라 23층. 라연.
“와, 그래서 아저씨가 드디어 한 방 먹은 거예요?”
엘리자베스가 재준을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이게 또 왜 한 방 먹은 거야?”
“맘대로 안 된 거면 한 방 먹은 거죠. 이제 들어갈 방법도 없잖아요.”
“왜 없어. 중국을 통해 들어가면 되지.”
“그러면 한국 정부에 찍힌다는데. 잡혀갈 수도 있고. 그 뭐지? 국가보안법?”
“누가 그래?”
“박민수 아저씨가요.”
“그래?”
그놈의 국가보안법,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법이니 걸면 걸릴 수도 있겠네.
이때,
“즈드라스트부이쩨(안녕하십니까)?”
여덟 명의 올리가르히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재준은 일어서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시다니 고맙습니다.”
“뭘요, 한국에 오셨으니 제가 한 번은 대접해야죠.”
오늘은 올리가르히들과 간단하게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자, 오늘은 제가 대접하는 자리이니 마음껏 드세요. 오랜만에 술도 한잔하고요.”
“오, 그럼 발렌까야도 있습니까?”
“한국을 어떻게 보고, 한국엔 없는 술이 없어요.”
재준의 요청으로 직원이 보드카를 수십 병 가져왔다.
그중 하나를 재준이 들어 올렸다.
짜잔.
러시아의 국민 술 발렌꺄야였다.
“진짜로 있군요. 먹은 지 30년은 더 된 것 같은데. 돈 벌었다고 비싼 술만 찾았는데. 요즘 이 맛이 입안에 맴돌더라고요.”
“뭐든 말 만하세요.”
“이거면 됩니다.”
하하하하.
여러 가지 한식 요리가 나오고 그동안 한국 생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한국 정부가 재준을 엿 먹인 이야기로 한바탕 웃음이 쏟아졌다.
“임재준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군요.”
“나무에 가시가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어쩝니까, 다른 나무를 타야지요.”
하하하하.
이때, 알리셰르가 재준에게 제안을 했다.
“제가 북한에 타진해 볼까요?”
“네? 알리셰르가 북한에 아는 사람 있어요?”
“잘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요? 누군데요.”
“우리들이 흔히 하는 말로는 지도자 동지라고 부릅니다.”
“네?”
올리가르히는 별 반응이 없었는데 재준의 일행은 일제히 눈을 크게 떴다.
와!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제 아들이 어릴 때부터 스위스 베른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근데요?”
“근데요라뇨. 김정은도 스위스 베른에서 공부했습니다. 제 아들과 아주 친하게 지내는 사이죠. 지금도요.”
헉!
“그 북한에 초청받았다는 친구가 바로 알리셰르 아들입니까?”
강호석이 놀란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맞습니다. 초청받아 북에 2박 3일 갔다 왔습니다. 하하하.”
“그 사람의 아버지가 여기 있을 줄이야.”
하하하하.
근데 그뿐이 아니었다.
“뭐 저도 일찍이 김정은과 식사를 몇 번 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 광물 개발 문제였지요. 하하하.”
빅토르도 말했다.
“저는 호텔 공사 문제로 본 적이 있습니다.”
블라디스라프가 말했다.
“아마 올리가르히는 거의 전부 만나봤을 겁니다. 북한과 러시아는 같이 해온 사업이 많으니까요.”
재준은 오랜만에 좀 놀랐다.
와, 진정 올라갈 나무가 이렇게나 많다니.
살려서 데려오길 잘했다. 잘했어.
나 몰라라 했으면 어쩔 뻔.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는데 전혀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근데,
“어떻게 들어갑니까?”
“블라디보스톡에서 들어가야 합니다. 중국을 통해 들어가도 되는데. 북한은 어디로 들어가냐에 의미가 달라지는 곳이거든요.”
“그럼, 누가 같이 가실 겁니까?”
누구라니?
모두 재준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다 같이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일이란 모름지기 숫자가 많아야 합니다.”
아, 이놈의 대륙 근성들.
질보단 양이다.
그래도 문제가 있는데.
“푸챠르가 가만히 있을까요?”
하하하.
빅토르가 재준을 향해 크게 웃었다.
“걱정 마세요. 유럽에 있는 러시아는 아시아에 있는 러시아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음, 역시 땅이 너무 커.
좀 잘라서 가져 볼까?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
러시아 크렘린궁.
“보복성 계좌 동결?”
“아니라고 하지만 확실합니다.”
시앙핑은 중국에 진출한 러시아 기업들이 전부 세금 탈루라는 불법을 저질렀다며 세무 조사가 끝날 때까지 계좌를 동결시켰다.
‘이는 전 세계에 일고 있는 평화적 분위기에 중국도 일조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중국은…….’
그리고 엉뚱하게 미국과 유럽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을 시사하는 듯한 발표를 했다.
미친놈. 너무 대놓고 러시아를 구박하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