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0화 역시 구경은 싸움 구경, 불구경이지(3)
“어라, 딩쉐이, 얘 뭐하는 겁니까?”
딩쉐이가 의자를 들고 있는 박혁을 향해 미간을 찡그렸다.
“너 따위가 감히. 당장 내려놔. 뭐 하는 거야?”
딩쉐이의 반응에 박혁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임재준이 이 정도였나?
중앙판공청 주임이면 주석 다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꼼짝 못 하는 정도를 넘어서 아주 존경을 하고 있잖아.
“우릴 어쩔 생각입니까?”
“뭘 어째, 앞으로 투마로우를 위해 분골쇄신하며 살아야지.”
“뭐라고요? 그건 북조선인민공화국을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이봐, 그 북조선인민공화국이 잘사는 방법을 내가 알려주려는 거야. 핵무기 따위나 만들지 말고. 좀 밝고 건설적인 미래를 바라보라고.”
재준의 말에 박혁이 뭔가 이상하단 느낌을 받았다.
정말 왜 이러는 걸까?
밝고 건설적인 미래?
지도자 동지를 만나려는 것인가?
“쓸데없이 좋은 머리 굴리지 말고 거기 앉아 봐.”
박혁이 의자를 끌어다 재준 앞에 앉았다.
박혁.
2018년에 미국은 박혁을 컴퓨터 사기 음모를 꾸민 협의로 기소한다.
2002년부터 온라인 게임과 도박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 이후 이메일과 전자통신을 이용해 사기를 계획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서 사기라고 하면 우리가 아는 보이스피싱 정도로 생각하는데 천만에, 스케일이 다르다.
전 세계 은행들이 사용하는 거래 프로그램인 스위프트를 조작해서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에서 10억 달러 이채를 시도했다.
10억 달러면 한화로 1조가 넘는 돈이다.
누가 감히 스위프트를 조작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시절에 미국 연방준비은행에 스위프트 공문을 보내 방글라데시 외환 보유 달러를 인출시켰다.
연준도 당연히 스위프트를 통한 공문이기에 달러를 원하는 계좌로 보냈다.
결과적으론 이런저런 이유로 10억 달러 중 800만 달러만 가지고 튀었다.
하지만 스위프트를 조작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해커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이었다.
이것에 비하면 한국 테러는 아이들 장난에 불과하고.
이런 놈은 잡아 가두고 건설적인 일에 시켜야 해.
물론 나쁜 짓을 했으니까 한 3년 동안 만두만 먹이고.
“박혁, 넌 오늘부터 투마로우를 위해 일을 하는 거야.”
“난 북조선…….”
“그만.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조선 타령이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내 말은 너의 조국을 배신하라는 얘기가 아냐. 내가 너의 지도자 동지를 만나면 잘 얘기해 줄 테니 넌 나랑 일하는 거야.”
박혁은 더 할 말이 없었다.
우선은 옆에 딩쉐이 주임도 가만히 있는데 자신이 나서서 뭐라고 변명을 하겠는가.
“먼저 러시아 은행을 마비시켜.”
“러시아요?”
“그래, 그다음 러시아 군대 통신 체계를 해킹해서 오고 가는 내용을 들을 수 있게 하고. 뭐, 이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지. 안 그래?”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러시아는 한국보다 시스템이 허술합니다.”
뭐라?
“이거 봐, 이거. 벌써 드나들고 있잖아. 내가 딱 알아봤다니까.”
“근데 러시아를 왜 교란시키는 겁니까?”
“러시아가 중국에 전쟁을 선포할 거니까?”
“네?”
박혁보다 딩쉐이가 더 놀랐다.
“임재준, 무슨 소립니까? 러시아가 도발한다고요?”
임재준이 뭐 놀라운 일도 아니지 않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잖아요. 미국과 유럽이 경제 제재를 시작하고 석유, 가스값 떨어져서 루블화 엉망이잖아요. 중국에 있는 러시아 기업도 제재당하고, 그런데 마침 은행 시스템이 일순간 마비가 됐어요. 그럼 러시아 국민들이 푸챠르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당연히 원망하겠죠.”
“그럼 내부의 일을 봉합하려면 외부로 관심을 끌어야 할 거 아닙니까. 마침 이미 크림반도를 먹은 경험이 있으니 어딘가로 진격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 아닐까요?”
“그러면 중국과 러시아가 전쟁한단 말이잖아요.”
“하면 어때요? 이미 어디로 올지 다 알고 있고, 놈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도 다 듣고 있는데. 매복하고 있다가 덮치면 승리는 따놓은 단상이죠.”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전쟁이라고요.”
쩝.
재준이 입맛을 다셨다.
“뭐가 이렇게 겁이 많습니까. 멀리서 155mm 자주포만 날려도 겁을 먹고 도망갈 텐데.”
“현대전은 공중전입니다.”
거참. 해커 앞에 두고.
“박혁, 전쟁 나면 공군 시스템 잠시 먹통으로 만들 수 있지?”
“아예 못쓰게는 힘들어도 잠시 혼란은 줄 수 있습니다.”
“봐요. 뭐, 이 정도면 그냥 죽빵을 양쪽으로 때리고 시작하는 거네. 거기에 전쟁이 나면 미국이 러시아에 경고를 날릴 거고, 유럽도 한목소리를 내고, 나토군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유럽에 불똥이 튀기만을 기다릴 텐데.”
멍.
딩쉐이는 정신이 없었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이야긴가?
“아, 필요하면 라트비아를 건드렸다고 소문을 내서 나토를 끌어들여도 되겠네. 그것도 괜찮다.”
“잠깐, 잠깐. 그러다 정말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납니다.”
“왜 그래요, 그럼 좋은 거 아니에요? 유럽과 러시아가 붙으면 전쟁물자 팔아서 떼돈을 벌 텐데.”
“잠깐, 잠깐. 잠암깐만요.”
이 인간 진짜 미친놈이네.
아니 무슨 전쟁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으키려 하는 거지?
죽어가는 사람들은 생각 안 하나?
“사람이 죽습니다.”
“그러니까 사람 안 다치게 잘 싸워야죠.”
사람 안 다치게 어떻게 전쟁하냐고.
“일단 주석님에게 보고를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하기 싫어도 해야 할 거니까.
“그리고 박혁, 러시아에 집중해. 딴 곳에 한눈팔지 말고.”
“그러나 이미 당에서 내려온 지시가 있습니다.”
“써니 픽쳐스 해킹하는 거.”
박혁의 눈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커졌다.
지도자 동지와 나만 알고 있는 걸 어떻게?
지도자 동지가 다른 사람에게 얘기한 건가?
그렇다면 투마로우와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써니 픽쳐스는 북한의 지도자를 암살하는 이야기를 영화화했다는 이유로 1년 후 박혁의 해킹 공격을 받는다.
회사 내부 자료가 유출되고 임직원 연봉이 공개되고 미개봉 영화가 털려 인터넷에 돌아다니게 된다.
그야말로 한 해 장사가 폭삭 망한 거다.
“지도자 동지와 아는 사이십니까?”
“당연하지. 그러니까 내 말대로 러시아에 집중해. 아니야, 그럴 게 아니라, 딩쉐이, 차라리 라자루스 팀을 북경으로 데리고 가죠. 괜히 북한 감시원이 쓸데없이 방해할지도 모르는데.”
“옳은 말입니다.”
박혁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니, 갑자기 투마로우 임재준이 나타나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니 해킹하라고 하고 이제는 자신의 팀을 북경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이게 이렇게 흘러가도 되는 건가.
진짜 당이 허락을 할까?
***
현재증권.
재준아!
한국으로 돌아온 재준은 다음 날 아침 곽형택의 방문을 받았다.
“아저씨, 건강히 잘 지내셨어요?”
“네 덕에 고생, 고생 상고생 중이다.”
“그래도 얼굴은 밝아 보이는데요. 뭐 몸에 좋은 거 많이 드시나 봐요.”
“아, 회장님이 몸에 좋은 보약을 6개월에 한 번씩 지어다 보내 주셔서 아주 건강해지고 있다.”
헉! 내가 써먹는 수법을 할아버지가.
잘 먹여서 더 많은 일을 하게 만드는…….
재준이 임병달을 보자.
험, 험.
임병달은 재준의 매서운 눈빛을 애써 무시했다.
재준은 곽형택에게 고개를 돌리며 빙글 웃었다.
“하하하, 아저씨를 보니 또 할 일이 번뜩 떠오르네요.”
“무슨 일?”
음.
잠시 뜸을 들이고.
“지금 개성공단 재개하냐 마냐를 놓고 말들이 많잖아요.”
“그렇지. 통일부에서 아주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모양이야. 한다고 하다가 안 한다고 하고, 다시 하겠다고 하다가 안 하겠다고 하고. 그놈들 정말 엉망이야.”
“투마로우 리츠(REITs)에서 개성공단을 방문해서 부동산 투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통일부에 찔러 볼 수 있어요?”
“북한에 가려고?”
“네. 거기 기회의 땅이잖아요. 선진국보다 먹을 게 훨씬 많거든요.”
“그리고 죽음의 땅이기도 하지. 거기 정말 위험한 놈들 천지인 곳이야.”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죠. 뭐.”
허.
임병달이 재준의 말을 듣고 기가 막힌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이놈아, 이제 하다 하다 북한도 들어가서 깽판을 치려고?”
“제가 언제 깽판을 쳤다고 그러세요? 지금까지 서로 윈윈 하면서 잘되었는데.”
“윈윈의 기준이 둘 다 너한테 있는 건 아니고?”
“지금 러시아와 중국이 심상치 않아요. 이럴 때 북한을 이용해 큰돈을 벌어야 한다니까요.”
임병달이 큰돈이란 말을 의미심장하게 듣긴 했다.
이건 자신도 생각하고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가 싸운다면 북한은 고립된다.
기회이긴 한데,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지.
“중국과 러시아가 왜 갑자기 싸워? 가뜩이나 미국 제재가 심해서 둘이 손을 잡을 거라고 전문가들이 내다 보고 있던데.”
“아니, 어떤 엉터리 같은 전문가가 그래요? 지금 중국이랑 러시아가 얼마나 으르렁거리고 있는데.”
재준이 벌인 만행은 어느 언론이든 단 한 자도 보이지 않았다.
중국은 중국 나름대로 러시아는 러시아 나름대로 언론을 철저히 통제했다.
솔직히 말하기 엄청 쪽팔리는 이야기니까.
중국은 투마로우에 끌려다니는 모양새고 러시아는 재준에게 홀라당 벗겨 먹음을 당했으니 언론에 어떤 이야기도 실리지 않도록 철저히 봉쇄했다.
오죽했으면 CCTV에서부터 지나가는 사람까지 잡아들였을까.
이를 모르는 임병달은 재준의 말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허풍에 불과했다.
“진짜 이번엔 안 된다. 네가 생각하는 대로 절대 될 리가 없어. 북한은 아직 우리를 받아들이기에 경제가 너무 낙후되어 있어.”
“그거예요. 바로 그거.”
“뭐? 경제가 낙후된 게 네가 바라는 거라고?”
“그렇죠.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저 밑바닥 경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돈이라면 영혼이라도 팔 기세. 저한텐 그게 필요합니다.”
재준이 연단에 선 강사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자, 임병달은 식겁했다.
“너 혹시 북한 사람 빼돌려 중국에 팔아먹으려는 건 아니지?”
띵.
재준은 너무 어이가 없어 눈이 풀렸다.
“할아버지, 차라리 나라를 팔아먹을게요. 제가 왜 인신매매를 해요? 돈도 쥐꼬리만 한데.”
“돈이 많이 되면 하고?”
“안 한다고요. 안 해. 그건 절대 하고 싶지 않아요.”
곽형택은 이 의미 없는 대화를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비처럼 머릿속에 쏟아져 내렸다.
“그만. 둘 다 그만두세요. 머리가 어질어질해요. 아무튼, 재준이 너는 북측에 접촉하고 싶다는 거지?”
“지금 지도자 동지가 미국이라면 무조건 살랑거리는 중이잖아요. 투마로우라면 만나고 싶어 할 겁니다.”
“그래?”
“네.”
“네가 직접 만나서 개성공단을 다시 열게 하려고?”
“아뇨. 아예 여기서 개성공단을 폐쇄해야죠. 열면 뭐해요. 돈도 못 벌면서 세금만 축내고 다시 닫힐 텐데. 아예 닫아 버리는 게 낫지.”
“그러니까 아예 없애 버린다?”
“네. 그래야 제가 돈을 벌거든요. 이 기회에 아주 싹을 확 잘라 버려야 해요. 개성공단은 무슨 개성공단.”
“넌 동포애도 없냐?”
쉿!
갑자기 재준이 입에 손가락을 대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임병달과 곽형택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북한이 아마 세계 제1의 부자나라가 될 거예요. 아, 물론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지만.”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