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219화 (219/477)

제219화 역시 구경은 싸움 구경, 불구경이지(2)

라자루스 그룹.

사이버 보안 업계에서 북한 해커들은 부르는 용어다.

성경을 보면 나자로라고 죽었다가 부활한 인물이 있는데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라자루스가 만든 바이러스는 막아도 막아도 다시 살아난다고 해서 붙였단다.

“그래서 라자루스가 투마로우 상업은행 전산망을 뚫었다는 말이에요?”

엘리자베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재준을 쳐다봤다.

투마로우 같은 대형 은행이 그렇게 허술하게?

“전산망을 뚫고 들어 온 건 아니고 이메일 첨부 파일에 바이러스를 심었다고 했어.”

“아, 첨부 파일……. 그런데 왜 안 잡고 구경만 하는 거예요?”

“펠그리니는 걔네가 뭘 하는지 알고 싶대.”

“그러다 털리면요?”

“자신 있으니까 두고 보는 거겠지. 하여튼 지금은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나 봐.”

“그래요?”

엘리자베스는 신기한 듯 고개를 까딱까딱 좌우로 움직였다.

영화에서 보면 해킹하는 장면은 CG로 처리되어서 현란하게 보였지만 실제 전산 안에서 보면(?) 그저 알 수 없는 숫자들로 도배되어 있지 않을까.

“이제 아저씨는 어떻게 할 거예요? 라자루스는 북한에 있을 텐데. 잡을 수도 있잖아요.”

“북한에 없어. 설마 북한에 초고속 인터넷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어, 그런가?”

“라자루스 그룹은 중국 다롄시에서 활동하고 있어.”

“그래요? 그런 건 어떻게 다 알고 있어요?”

“아, 그건.”

재준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신문을 봐서 알겠지.”

심통스러운 표정을 지은 박민수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신문이요?”

“우리 임 대표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신문에서 얻거든.”

“근데 왜 말투가 그래요. 꼭 빈정 상한 사람처럼.”

“엘리자베스, 더 겪어 보면 알게 될 거야. 저 인간은 신문을 핑계로 뭔가 대단한 음모를 가진 인간이란 걸.”

“뭔 소리예요. 음모?”

뭐라는 거야?

“음모는 무슨 음모예요? 진짜 내가 무슨 음모를 꾸미는 사람인 줄 알겠네.”

흥.

박민수는 재준을 노려보고는 강호석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저 아저씨는 왜 아저씨를 잡아먹지 못해서 난리죠?”

“음. 그건 말이야. 음. 휴가를 못 가서?”

“투마로우는 휴가도 안 줘요?”

“아니, 그게 뭐랄까. 휴가를 갈 만하면 사건이 터져서 어쩔 수 없이 돌아오곤 했지.”

빠직.

“임재준, 말 똑바로 합시다. 사건이 터진 게 아니라 사건을 만든 거잖아.”

박민수는 그냥 가던 길이나 갈 것이지 가다가 멈춰서 이쪽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흠, 흠. 이제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됐지?”

“뭐, 대충. 그럼 아저씨는 다롄으로 갈 거예요?”

“가야지.”

“굳이 갈 필요가 있어요?”

“만날 사람이 생길 것 같아서.”

“누구요?”

“북한 해커.”

“그…….”

엘리자베스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박민수 아저씨가 이해되네.

***

중난하이.

시앙핑은 딩쉐이가 펼친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사진은 분명히 중국인은 아닌 자들이 폭발물을 설치하는 듯한 CCTV 화면을 캡쳐한 것이었다.

“딩쉐이, 네 생각은 어때? 내 생각과 같은 것 같은데.”

“KGB입니다. 튀르크라고 하기에는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이것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감히 중국에 테러를 감행한단 말이지.”

“저희도 러시아에 파견할까요?”

“아니야, 그건 너무 뻔해. 하지 마.”

이미 러시아 내에 감시가 강화되고 있을 거고 새로운 인물을 들여 보낸다 해도 공항에서부터 감시가 붙을 게 뻔했다.

픽.

웃음이 나왔다.

이럴 때 임재준 얼굴이 떠오르는 건 뭐지?

이놈이라면 생각지 못한 보복을 가할 것 같은데.

“임재준에게 전화 넣어 봐.”

“네? 임재준이요?”

“물어볼 게 있어.”

“네.”

띠리리링.

벨이 울리고 재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딩쉐이. 무슨 일입니까?

“주석님이 통화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요? 바꿔 주세요.

딩쉐이가 핸드폰을 시앙핑에게 건넸다.

“납니다.”

-러시아가 문제지요?

“알고 있었습니까?”

당연한 거 아냐?

러시아가 금도 못 받아 광물은 날려 먹었는데 가만히 있는 게 이상한 거지.

-안다기보다는 촉이죠. 촉. 제가 한 촉 하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러시아한테 뭐 당한 거라도 있습니까?

“그게…….”

러시아 테러를 말해도 될까?

시앙핑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금세 생각을 정리했다.

어차피 같은 비밀을 짊어지고 가는 사이에서 뭘 더 숨겨서는 올바른 해결책을 바랄 수 없었다.

“러시아가 중국에 테러를 가하고 있습니다. 큰 건 아니지만 벌써 여섯 건이나 일어났습니다.”

-당연히 러시아란 증거는 없을 거고요.

“맞아요. 사진 몇 장이 있지만 확실하진 않아요. 심증뿐입니다.”

-그럼, 중국은 대놓고 테러를 가하세요.

“그건 무슨 소립니까. 그럼 진짜 전쟁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러시아같이 쫌스런 방법 말고요. 지금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잖아요. 거기에 발만 걸치는 겁니다.

“어떻게요?”

-중국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사업가들 흠집을 잡아서 계좌 동결시키세요. 그리고 이유로 미국과 유럽 핑계를 대는 겁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뭡니까?”

-두 가지가 있죠. 하나는 테러에 대한 대가를 간접적으로 지불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차하면 러시아를 고립시키겠다고 압박하는 겁니다.

“아. 그렇게.”

역시 이놈은 필요하다면 적과도 손을 잡을 놈이라니까.

-그런데 나라면 성이 차지 않을 것 같아요.

“성이 차지 않는다고요?”

-당연하죠. 날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하잖아요.

“그건. 그렇겠군요.”

재준에게는 중국에 대한 경고도 포함하는 말이었다.

싸우려거든 팔다리 하나는 내놓아야 한다는 거.

어쩌면 목이 잘릴 수도 있다는 거.

“그럼, 또 다른 제재는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다롄에 있는 북한 해커를 동원하세요.

“온라인 공격을 하란 말입니까?”

-그것도 무차별적으로. 국가가 마비될 정도로.

“뭐요?”

-그 정도는 돼야 어설픈 공격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주는지 깨닫게 되는 거예요.

후.

이놈 금을 강탈한 건 그냥 장난 정도다.

진짜 맘만 먹으면 국가 하나는 통째로 어둠 속으로 떨어뜨릴 놈이다.

“알겠습니다.”

-근데 할 수 있겠어요? 잘 알겠지만, 시기라는 게 있는 거예요. 미국과 유럽이 벼르고 있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러시아의 못된 버릇을 고칠 기회는 오지 않아요. 못하겠다면 빨리 말하세요. 내가 할 테니. 근데 그건 알아야 해요. 내가 나서면 중국이 피해를 입든 말든 난 상관 안 한다는 거예요.

끙.

시앙핑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숨을 쉴 수가 없네.

“우리가 할 겁니다. 나서지 마세요.”

-그래요. 잘 하리라 믿어요.

뚝.

전화가 끊어지고 나자 시앙핑은 뒷머리가 흥건하게 젖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친놈. 딩쉐이, 찬물 한 잔 줘.”

딩쉐이가 재빠르게 차가운 물을 떠서 가져왔다.

“주석님, 외람된 말이지만 임재준과 손을 잡은 건 잘한 것 같습니다.”

“그러게, 소름끼치는 놈이야.”

“다롄은 제가 가겠습니다. 북한 해커들은 칠보산 호텔을 본거지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 다녀와. 난 좀 쉬어야겠어.”

“네.”

딩쉐이가 나가자 시앙핑은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그래, 잘한 거야.

***

선양시 칠보산 호텔.

다롄시에서 별로 멀지 않은 388km 떨어진 선양시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이건 지극히 중국 중심적인 거리 감각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325km인데.

딩쉐이는 다롄에 있는 북한 해커 박혁을 만나기 위해 미리 연락을 취한 후 칠보산 호텔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매혹적인 한반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다채로운 색상의 이불보와 북한식 요리, 노래와 춤을 추는 여종업원으로 유명했다.

딩쉐이가 들어서자 호텔 지배인이 뛰어나와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어서 오십시오. 예약된 룸으로 모시겠습니다.”

“박혁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휘적휘적 걸어가며 주변을 샅샅이 살피는 딩쉐이.

혹시나 러시아 KGB의 시선이 있을지 모를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9층 구석진 룸으로 안내된 후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박혁이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구부렸다.

“그냥 앉아요.”

박혁이 앉자 맞은 편에 딩쉐이가 앉았다.

“중국 생활은 할 만합니까?”

“네, 보살펴 주신 덕분에 아주 편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내가 박혁 씨를 보자고 한 것은.”

딩쉐이가 말을 하려는 순간 호텔 전화벨이 울렸다.

뭐지?

딩쉐이가 고개를 끄떡이자 박혁이 일어나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입니까?”

-거기 딩쉐이 주임을 만나고 싶다는 분이 있습니다.

“잠시만요.”

박혁은 전화기를 붙잡고 딩쉐이를 쳐다봤다.

“주임님을 보고 싶다는 분이 찾아 왔답니다.”

딩쉐이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여기 온건 주석님 말고는 모르는데.

“누군데?”

박혁이 수화기에 대고 물었다.

“누굽니까?”

-투마로우 임재준이라고 합니다.

“네? 투마로우 임재준이요?”

임재준이 왜 여기에.

딩쉐이가 벌떡 일어서며 고함을 질렀다.

“당장 올려 보내라고 전해.”

“네?”

“못 들었어? 당장, 아니 내가 가서 직접 모셔 와야겠어.”

딩쉐이의 반응에 박혁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셔 와? 중앙판공청 주임이 직접?

“나가시면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 빨리 모시라고 해. 당장.”

“네.”

박혁의 얼굴이 굳었다.

“모시랍니다.”

-네.

임재준이라니.

설마 투마로우 해킹 한 일로 날 찾아온 건 아니겠지?

미친놈. 생각하는 거하고는.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런 거면 공안이랑 왔겠지, 혼자 왔겠어?

그것도 임재준이 직접.

이건 딩쉐이 주임을 만나러 온 게 확실해.

잠시 후.

재준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먼저 딩쉐이가 당황한 어투로 물었다.

“여긴 어쩐 일입니까? 아니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뭐야, 나 주석님이랑 통화하는 거 들었잖아요. 다롄으로 가라고 한 게 나인데.”

“아, 그렇지요. 근데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러시아 일은 제가 처리할 수 있는데요.”

“아, 그건 알아서 하세요. 난 여기 박혁에게 볼일이 있어요.”

재준이 박혁을 향해 빙글 웃었다.

“이야, 당신이 박혁이군요. 라자루스 그룹의 팀장.”

“저를 아십니까?”

“그럼, 그렇게 지저분한 흔적을 남기고 다니는데 모를 수가 있나.”

“무슨 말씀이신지.”

“하하, 무슨 말은 무슨 말. 쥐새끼처럼 투마로우 전산 안에 숨어 있지 말고 당장 나가라고 전하세요. 그러다 역추적당하면, 아니지. 이미 여기 내가 와 있네. 추적하고 말 것도 없네.”

“그건 고의가 아니라.”

“이 사람이 웃기는 마라탕이네. 그럼 고의로 한 건 어떻게 할 건데?”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중국에 있을 때 한국에 사이버 공격했잖아. 컴퓨터가 몇 대가 고장 난 줄 알아? 3만 2천 대나 날려 먹었어. 그리고 방글라데시 같은 빈국의 중앙은행은 왜 털어? 어, 방글라데시는 아직 시작을 안 했던가? 미안.”

박혁은 충격에 휩싸였다.

2년을 준비한 방글라데시 은행 스위프트 해킹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지금 자신의 앞에.

멍한 박혁을 재준이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 이러면 완전 나가린데. 그지. 해킹 역사에 길이 길이 남을 스위프트 해킹을 내가 미리 말해 버렸네. 안타깝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다.”

박혁은 뒤로 물러나며 의자를 들어 올렸다.

“당신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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