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218화 (218/477)

제218화 역시 구경은 싸움 구경, 불구경이지(1)

“잘 들으세요. 러시아는 지금 미국과 유럽에게 경제 제재를 받는 처지입니다. 유일하게 러시아를 지지하는 게 중국이고요. 은혜를 받았으면 고마워해야지. 살려주니까 보따리 내놓으라는 꼴 아닙니까? 본인들의 일은 본인들이 처리하세요. 만약 중국에서 하자가 발생했다면 우리가 책임을 지지만 우린 잘못 처리한 일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니 책임을 못 지겠다는 말이군요.

“책임을 못 지는 게 아니라 책임이 없는 겁니다.”

-증거가 없다. 알겠습니다.

뚝.

푸챠르가 갑자기 통화를 끊어버렸다.

“이런 못 배운 놈 같으니라고. 누가 KGB 출신 아니랄까 봐. 증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휴.

어쨌든 골치 아프게 생겼네.

이거 괜히 임재준 때문에 러시아랑 틀어지는 거 아냐?

아니, 뭐 틀어져 봤자지.

미국 방패막이 아니면 쓸모도 없는 놈들.

시앙핑이 잠시 피곤함을 못 이기고 잠이 들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벌컥.

딩쉐이가 급하게 달려 들어왔다.

시앙핑이 의식적으로 시계를 봤다.

잠깐 눈을 붙인 건데 벌써 한 시간이 지났네.

“임재준과 통화는 잘 마무리했어?”

“아, 네. 절대 발설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래, 잘됐네.”

“근데,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뭔데?”

딩쉐이가 TV를 틀었다.

[지린성 창춘(長春)시에 위치한 지린 바오위안 펑친예공사의 공장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아직 정확한 집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최소 200여 명의 직원이 건물 안에 있는 것으로…….]

“이게 왜?”

“폭파 직전 CCTV에 외국인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촬영되었습니다.”

“그럼, 테러라는 거야?”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디야? 또 튀르크 놈들인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알았어. 저 TV나 꺼. 시끄러워.”

“네.”

딩쉐이가 TV를 끄려는 순간.

[속보입니다. 푸젠(福建)성 샤먼시에서 한 버스가 주행 도중 갑자기 불이 나 47명이 사망하고 34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고는 영상으로 보시는 것과 같이 운전자의 실수가 아닌 기계 결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은.

이때.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는 속보입니다. 황다오구 친황다오로와 자이탕다오로 교차점에 위치한 중국석유화학 웨이팡지사 송유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현재 30명의 사망자와 1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중국은 하루에도 수백 건의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사실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니었는데.

신경 쓰이네.

시앙핑의 귓가에 푸챠르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증거가 없으니 책임을 못 지겠다는 말이군요.’

증거?

“딩쉐이.”

“네.”

“이 사건들 철저히 조사해. 만약 러시아가 개입되었다는 단서가 나오면 바로 나에게 알려.”

“러시아요?”

“그래, 푸챠르 놈이 통화 중에 의미심장한 말을 했어.”

“네. 알겠습니다.”

이 미친 새끼.

진짜 중국을 향한 테러라면 가만두지 않는다.

막연한 의심이 아니다.

시앙핑이 누군가.

오직 생존 본능으로 상하이방과 공청당의 견제에서 살아남아 여기까지 온 인물이었다.

그의 촉이 말을 하고 있었다.

큰놈이 온다.

***

현재증권.

“할아버지.”

갑자기 나타난 재준을 본 임병달은 벌떡 일어났다.

“재준아!”

“그동안 건강하셨어요?”

“으, 응, 그래. 나야 항상 건강하지. 근데…….”

네가 왜 갑자기 나타난 거냐?

차마 오랜만에 만난 손자에게 할 말은 아니라 속으로 삭였다.

그리고,

재준과 함께 들어 온 마가리따와 엘리자베스를 보고 다시 재준을 보았다.

여자?

드디어 정착을……. 하기에는 둘 다 애매한 나인데.

할아버지가 어리둥절하게 두 여자를 보자 재준이 눈치를 채고 중간에 끼어들었다.

“아, 여긴 로이드레퓌스의 전 회장인 마가리따 여사고요. 여기 이 꼬맹이는 카킬의 후계자 엘리자베스예요.”

“‘전’은 좀 빼지.”

“후계자 아니에요.”

앙칼진 두 목소리가 튀어나오자 임병달은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반갑습니다.”

“엘리자베스예요.”

마가리따가 다짜고짜 임병달을 포옹하더니 양쪽 뺨을 대고 떨어졌고, 엘리자베는 건방지게 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어, 어. 일단 앉아요.”

모두 자리에 앉자 뒤늦게 박민수와 강호석이 들어와서 허리를 90도로 구부려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회장님.”

“어, 오랜만이야. 정말 오랜만이야. 이리와 앉아.”

둘도 자리에 앉았다.

임병달이 모두를 죽 둘러보는데,

이거 봐, 나를 봐야지.

왜 거기다 눈을 부라리는 거야?

하나같이 어디 싸움터에서 방금 돌아온 얼굴로 유독 재준에게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 눈빛들. 한 인간에 대한 저주가 가득한 건 기분 탓일까?

임병달은 마침내 재준을 보았다.

“그래, 한동안 뉴스에서 네 이름을 보지 못했는데. 어디 조용한 곳에서 휴양이라도 하고 온 거냐?”

“하하하, 그런 셈이죠.”

임병달이 한마디 했더니,

“네? 휴양이요?”

“그걸 휴양이라고 부르면 우리가 겪은 건 뭐라 불러야 하나? 아포칼립스?”

“한번 겪어 보셔야 그런 말씀이 안 나오시는데.”

“아저씨 할아버지야? 너무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

모두 한마디씩 던지며 ‘휴양’이라는 말에 적극적 대응에 나섰다.

“그래, 어디 있다가 온 건데?”

“중국이요.”

지옥이겠지.

“중국엔 무슨 일로?”

“사업차 들렀다 오는 겁니다.”

그걸 사업이라 부르면 사업가는 전부 특수부대원이냐?

“어떤 사업인데 중국까지 간 거야?”

“은행을 좀 이용했어요. 중국이 얼마나 투자 가치가 있나 알아보려고요.”

와! 은행을 이용했대, 러시아와 중국을 이용했겠지.

“그래, 중국에 진출할 생각이냐?”

“아니요. 아직은 선진화가 덜 되었더라고요.”

이용가치가 낮은 거겠지.

“그렇겠지. 아직은 돈만 많은 건달에 불과할 테니.”

“건달은 의리라도 있어요. 양아치 수준이에요.”

넌 양아치가 가지고 있는 것도 없잖아.

“그럼, 아무 성과 없이 갔다 온 거야?”

“그런 건 아니죠. 갔으면 뭐라고 해야죠. 기업 몇 군데에 적당히 투자하고 왔어요.”

적당히? 그건 과한 거지.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과한 거야.

재준이 임병달과 대화를 하는 도중에 모두의 날카로운 시선은 여전히 식을 줄 몰랐다.

임병달은 이 어색한 분위기를 좀 풀어 보려 했다.

이럴 땐 먹는 게 최고지.

“그래, 밥은 먹었냐?”

“아니요. 오랜만에 한국 밥상을 먹고 싶네요. 중국에서 너무 기름진 것만 먹었어요.”

“그럼 안 되지, 오늘은 담백한 전통 한국 음식을 먹으러 가자.”

“우와.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도네요.”

임병달이 일어서려는데 강호석이 임병달의 손을 잡았다.

“회장님.”

“응, 강호석. 왜? 무슨 할 말 있어?”

“밥 먹으러 가기 전에 누군가를 시켜서 창고를 알아봐야 합니다. 시간이 3일 밖에 없습니다.”

“무슨 소리야? 창고 하나 얻는 데 반나절도 안 걸릴 텐데.”

“그건 일반적인 경우고요. 지금은 아주 특별하고 긴급한 상황입니다.”

“특별하고 긴급한? 얼마나?”

“임 대표가 광물을 좀 과하게 많이 샀습니다.”

“얼마나 샀는데. 많으면 많은 거지 과하게 많은 건 뭐야?”

“20피트 컨테이너 10,200개입니다.”

“몇 개?”

“10,200개요.”

“뭐?”

“제가 오면서 조사를 좀 했는데 인천항이 일 년 컨테이너 처리 실적이 3천 개 좀 넘더라고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중국에서 한꺼번에 들어오는 건 아니더라도, 오는 족족 실어서 어딘가에 쌓아놔야 합니다.”

“그걸 어디서 산 거야? 아니 그런 양을 파는 미친놈이 누구야?”

“러시아입니다.”

“그러니까 러시아에서 광물을 사다가 중국에 쌓아 놓고 있었다고?”

“그렇죠. 그리고 저 광물 당분간 팔지도 않을 겁니다.”

“왜?”

“가격 오르라고요.”

“미친놈이네. 미친놈이야. 팔지도 않을 걸 사서 시세 조작을 하겠다는 거 아냐?”

야, 이놈아.

임병달이 재준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어쩐지 사고를 안 쳤다 했다 이놈아. 뭐? 적당히 투자했다고? 도대체 뭘 샀기에. 아이고 두통이.”

“회장님.”

강호석이 쓰러지는 임병달을 겨우 부축했다.

“뭘 산 거냐? 도대체 뭘 샀기에 컨테이너가 10,000개가 넘어?”

“그냥 이것저것 러시아에 나는 광물 대부분을 샀어요.”

“얼마나?”

“절반이니까……. 한화로 130조 원 정도. 아닌가 좀 더 되려나?”

“뭐?”

꿀꺽.

임병달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아, 거기 어딘가 다이아몬드 원석도 있어요. 그건 좀 비싸게 주고 샀네. 치사한 녀석들. 운임비 많이 들어가니까, 좀 가공해서 보내라는데도 절대 안 된다고 하데요.”

임병달은 아무 말도, 아니 그냥 할 말을 잊었다.

어쩐지 조용하다 싶었는데.

뉴스가 차단된 중국에 있었으니 전해질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나름 선진국이라는 곳에서 사고를 쳐서 법의 보호를 받겠거니 하면서도 가슴을 졸였는데.

이번엔 법의 보호를 무시하는 나라에서 사고를 쳤다.

만약 알았으면 벌써 병원 신세를 지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다음엔 아마존이나 쿠바 같은 곳에서 사고를 칠 놈이 분명했다.

그리고 저 반성 없는 표정은 뭐란 말인가.

“할아버지, 밥 먹으러 가요.”

밥이 넘어가냐? 밥이.

지금 당장 도대체 얼마나 넓은 장소가 필요한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데.

이걸 어떻게 하지?

막막한데.

아, 이럴 때는 곽형택이 있었지.

“할아버지, 밥 안 먹어요?”

“조용히 안 해, 이 사고뭉치야! 지금 밥이 중요하냐?”

에잉, 다들 기대하는 눈치인데.

저것 봐. 다들 눈에서 살기가 비치잖아.

배고파서일 거야.

밥 먹으면 금방 좋아져.

암, 당연하지.

임병달은 곽형택에게 전화를 넣었다.

-네, 형님.

“회장님이라니까.”

-거, 전화상인데 어때요? 근데 왜 전화했어요? 나, 무지 바쁜데.

“그 바쁜 일 다 집어치우고 당장 만 평짜리 창고, 아니 2만 평짜리 창고. 아, 모르겠다. 컨테이너 2만 개 정도 들어갈 창고 섭외해 봐.”

-거, 아침에 뭘 잘못 잡수셨어요? 그런 창고가 어딨어요? 세계를 다 뒤져도 있을까 말까 한데. 왜 그러시는데요?

“몰라, 재준이 놈이 왕창 사고를 쳤다. 3일 후부터 컨테이너 만 개가 들어 온단다.”

-네? 재준이 들어왔어요? 근데 컨테이너 만 개는 무슨 소리세요? 정말 만 개예요?

“그래, 지금 소식 전하고 그럴 시간 없다니까. 빨리 알아 봐.”

-가만, 가만. 그러니까 컨테이너 만 개라고 했죠?

“그래, 대답하기 귀찮으니까. 네가 재준이에게 직접 전화를 하든지 알아서 해.”

-일단 알았어요.

뚝.

후.

전화를 끊고 임병달은 깊게 아주 깊게 심호흡을 했다.

“할아버지, 밥 먹으러 가요.”

저 악마 같은 놈.

한국에 있어도 말썽, 해외 가서도 말썽.

아니지, 말썽이라고 하기에는 돈이 너무 커.

그래, 밥부터 먹이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다.

이때,

띠리리리링.

재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 펠그리니, 왜?”

-보스, 누가 자꾸 해킹을 시도하는데요?

“누가? 어떤 미친놈이 목을 내놓고 사는 거야?”

-노스 코리아.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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