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4화 이게 금괴야. 난 이걸 쓰레기라고 부르지(15)
교환이란 말에 푸챠르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그 영화에서 보면 다리 사이에 두고 인질을 교환하잖아요. 그거 한번 해 보고 싶은데.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
실제로는 보이지 않지만, 푸챠르의 시야에는 재준이 깔깔거리고 웃는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이놈의 술수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금 절반을 줄게요. 올리가르히 가족과 교환하는 건 어때요?
“반?”
왜 반이야?
-사실 올리가르히 가족을 이렇게 만든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내가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경우가 있지. 그렇다고 금을 다 줄 수는 없고. 저도 뭐 남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지금까지 한 일이 있는데 보상은 받아야죠.
휘말리지 말자.
“거절한다면.”
-거절한다고요? 음, 그럼 뭐 어쩔 수 없죠. 난 충분히 노력했는데. 러시아 대통령이 싫다고 언론에 발표해도 되죠? 저도 면죄부는 있어야 하잖아요. 그리고 금은……. 중국에 팔든지 미국으로 가져가든지 할게요. 가뜩이나 요즘 중국이 귀찮게 하는데.
중국이 손을 뻗는다고?
이놈이 어디서 신경전을 벌이려고.
하지만 진짜 중국이 손을 쓰면 골치 아플 수도 있긴 한데.
그렇다고 반만 가져오는 건 내 성격과 맞지 않고.
“나머지 반도 원한다면.”
-그래요?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하하하, 욕심부리지 마세요. 그러다 전부 날아가는 수가 있어요. 하지만 니켈을 준다면 생각해 볼게요.
“니켈?”
이거였나?
-맞아요. 니켈. 난 금보단 니켈이 더 좋더라고요.
“왜지?”
-니켈은 중요한 광물이니까요. 러시아가 비축분도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고.
“비축분이라. 러시아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나 본데.”
-증권업이란 게 그래요. 남의 기업이나 들추고 살거든요.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니까.
“니켈이 가격이 급등하나 보군.”
-또 왜 이러실까. 급등은 하는데 한 10년 후에 금보다 훨씬 비싸져요.
“10년을 보관했다 이윤을 얻는다, 겨우 그게 이유인가?”
-겨우? 채권 수익률 2% 보고도 10년씩 투자하는 게 은행인 거 모르세요? 10년만 보관하면 두 배는 오를 텐데.
“그래서 니켈을 달라고?”
-자꾸 같은 말 하게 만들지 말고 결정하세요.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요.
이놈의 말투는 정말.
“좋아, 니켈을 주지. 금하고 바꿔.”
-역시 호탕하시네요. 그럼, 나중에 자세한 거래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툭.
전화가 끊어지고 푸챠르가 비서실장에게 눈길을 줬다.
“어떻게 생각해. 임재준이 너무 순순히 나온 거 같지 않아?”
“올리가르히가 목숨 걸고 중국으로 갔습니다. 임재준은 할 수 없이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임재준이 어쩔 수 없는 경우일 수 있습니다.”
“음, 일리 있는 말이야. 올리가르히를 전부 내가 처리했어야 했는데 중국에 나타나니 당황했겠지.”
영국에서 중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내버려 둔 게 정말 잘한 거였어.
“그런데 문제는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야?”
“임재준 주위에 사설 부대가 있습니다. 블랙워터라고 미국 특수부대 출신들로 꽤 명성이 있는 놈들입니다. 그들이 거래할 때 나타나 저희 니켈만 갈취하고 금을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사설 부대가 있었어.
“그럼 우리도 국가근위대와 같이 움직여.”
“알겠습니다.”
이렇게 러시아가 스페츠나츠(특수부대) 중 하나인 국가근위대를 출동시켰다.
***
우수리강.
러시아와 중국의 경계를 흐르고 있는 강이다.
새벽이라 바로 앞 시야도 정확히 확인되지 않을 정도로 뿌연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이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앙에서 재준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 역시 날을 잘 택했어. 이거 봐 진짜 영화의 한 장면 같잖아.”
“긴장 좀 하세요. 살 떨려 죽겠어요.”
태평한 재준과는 달리 박민수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긴장한 티를 팍팍 냈다.
“서류 한 장 주고받는 게 다인데 떨기는. 그리고 눈에는 안 보이겠지만 블랙워터가 열심히 경계하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총을 꺼내서 막 갈기면.”
“영화를 나보다 더 많이 봤나? 여기 현실 세계예요, 박 형. 총에 손만 대면 벌집이 될 텐데. 누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해요?”
“그런가? 아, 아, 그래도 진정이 안 돼요.”
“오, 저기 오네.”
이때, 저 앞에서 차량 여럿과 버스 한 대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박민수의 두려움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오네.”
아이고, 오금 저려.
아니, 서류를 주고받는데.
꼭 이런 장소에서 해야 하나.
조용하고 안전한 호텔도 있고 레스토랑도 있는데.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야.
박민수는 이제는 재준의 행동에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직도 멀었다는 걸 알았다.
끼이익.
러시아 측 차량이 모두 정지했다.
대통령 비서실장 마카르는 차에서 내렸다.
“골라도 꼭 이런 날을.”
손전등 불빛이 없다면 100미터 앞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안개가 시야를 방해했다.
이쪽에서 먼저 손전등을 들고 세 번 깜빡이자 저쪽도 세 번 깜빡였다.
중앙에서 만나자는 신호.
저벅저벅.
고요한 다리 위에 두 사람의 발소리만 울렸다.
드디어 희미한 사람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익숙한 얼굴을 한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며 먼저 말을 걸었다.
“오느라 수고했어요.”
“꼭 이런 곳에서 만나야 했습니까?”
박민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마카르였다.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유명인사 둘이 만나면 좋겠어요? 그쪽도 언론에서 떠들어 대는 건 원치 않잖아요? 가뜩이나 인권침해니 뭐니 시끌시끌한데.”
이놈이 보자마자.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 그렇게 만든 거 다 압니다.”
“에이, 그걸 사람들이 믿어 줘야 말이지. 러시아에 대한 인식이 워낙 좋지가 않잖아요. 아, 러시아는 일부러 그런 결과를 만든 거죠? 없는 거 티 내지 않으려면 그 방법이 좋긴 해요.”
이놈과 말을 섞지 말라고 했다.
“말이 많군요. 서로 필요한 일만 합시다.”
“그럴까요? 그럼 올리가르히 가족부터 보내세요.”
재준이 한 손에 선하 증권이 든 서류를 흔들어 보였다.
마카르가 뒤를 돌아 손전등을 네 번 깜빡였다.
부르릉.
버스 한 대가 서서히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버스가 재준을 지나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잠시 후 손전등이 네 번 깜빡였다.
가족은 무사하다는 신호.
“가족은 됐고. 그럼 니켈을 실은 배는 언제쯤 도착하나요?”
“45일 후.”
“됐네, 자, 여기.”
재준이 서류 봉투를 내밀었고 마카르도 재준에게 서류 봉투를 내밀어 서로 교환을 마쳤다.
마카르는 서류를 받더니 꺼내서 흩어본 후 미간을 찡그렸다.
“양이 좀 모자라는데.”
배에 실린 금의 양이 20톤 정도 모자랐다.
“에이, 그걸 내가 떼어먹었을까 봐?”
재준이 뒤에 대고 손전등을 네 번 깜빡였다.
부르릉.
컨테이너 한 대가 재준의 뒤에서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다가왔다.
끼이이익.
컨테이너 한 대가 그들 옆에 섰다.
“이거 가져가세요. 가서 대통령에게 보여주고 배가 도착할 때까지 좋은 꿈 꾸라고.”
“이게 뭡니까?”
“금.”
“금?”
“컨테이너 한 개 정도는 먼저 가져가요. 저 안에 12억 달러어치 금이 들어있으니까.”
마카르는 빙글 웃는 재준을 한참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인간이네.
컨테이너 기사가 내려서 재준의 뒤쪽으로 달려갔다.
자신의 할 일은 여기까지라는 듯.
마카르가 무전기를 꺼내 조용히 읊조렸다.
“거기 컨테이너 몰 수 있는 사람 하나 보내.”
마카르는 무전을 하며 재준의 행동 하나하나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근데 재준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더니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저놈 왜 저래?
이때 부대원이 뒤에서 나타나자 마카르가 컨테이너 뒷문을 열어 보라고 고갯짓을 했다.
부대원이 컨테이너 문을 열자.
번쩍.
컨테이너 가득 금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부대원이 컨테이너로 뛰어 올라가려는 찰나.
이때.
거기 꼼짝 마!
공안이다.
너희를 모두 체포한다.
안개 속이라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수십 명은 족히 되는 발소리가 들렸다.
마카르는 재빨리 총을 꺼내 자세를 취했다.
이거 뭐야?
“임재준, 와서 해명해야지.”
자신의 목소리만 넓게 퍼지는 게 들렸다.
당한 건가?
이런 식이면 니켈을 받지 못할 텐데.
공안들이 여러 명이 중구난방으로 소리를 질렀다.
“거기, 러시아, 총 내려놔. 총 내려놔.”
이때 마카르 뒤에서 붉은 불빛 수십 개가 공안들의 소리 나는 방향으로 비쳤다.
하지만 짙은 안개는 붉은 불빛을 머금었다.
공안 팀장의 소리가 울렸다.
“조용히 따라오는 게 좋을 거야.”
마카르가 소리 나는 방향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천만에, 이건 엄연히 정상적인 거래야. 임재준 어디 있나? 이리 나와.”
그러나 공안 팀장의 이해할 수 없는 고함이 들렸다.
“여긴 아무도 없다. 너희는 밀거래 협의로 체포한다.”
마카르는 조용히 무전기를 들어 지시를 내렸다.
“컨테이너를 가지고 여기를 뜬다. 상대 발포가 있을 시 엄호 사격을 허락한다.”
누가 먼저 발포하느냐.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부대원이 컨테이너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자 공안 측에서 잽싸게 다가와 반대편 컨테이너 운전석에 올라탔다.
퍽, 팍, 빡.
컨테이너 안에서 둔탁한 타격음이 들리고 운전석이 들썩였다.
그리고.
악!
컨테이너 반대쪽으로 공안이 떨어져 나가자.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런 누구야?
어디서 쏜 거야?
중국이야? 러시아야?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탕탕탕탕탕탕탕.
핑핑핑핑핑핑핑.
사방에서 총격이 시작되었다.
짙은 안개 속이라 누가 누구에게 총을 쏘는지 몰랐지만 무작정 총질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 후.
마카르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공안 쪽에서 총알이 날아오지 않는 것이다.
무전기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사격 중지.”
일순 멈춰진 사격.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기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혹시 저쪽 전멸한 건가?
가서 확인해 봐야 하나?
아니지, 이대로 뜬다.
“모두 철수.”
마카르가 올라타자 컨테이너가 출발해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리무진 한 대가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
차에서 내린 재준이 마카르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빙글 웃었다.
“거 참,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네.”
“너무 위험했습니다.”
재준의 뒤에서 딩쉐이가 안개 속에서 나타나며 말했다.
“위험하긴. 이 차 방탄유리에요. 그것도 B7급 방탄유리. 수류탄도 막아요.”
허.
딩쉐이는 기가 막힌 듯 재준을 바라보았다.
누가 방탄유리를 모르나.
상황이 위험했다고 상황이.
누가 이런 식으로 사업을 하냐고.
제준은 딩쉐이를 보며 빙글 웃었다.
“공안이 먼저 총을 쏜 겁니까?”
“공포탄이었습니다.”
“러시아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자기들 피해가 전혀 없으니 합리적인 의심은 하겠죠.”
“국경지대에서 총성이라……. 내일부터 재밌는 이야기가 퍼지겠는데요, 큭큭큭.”
딩쉐이는 재준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나저나, 컨테이너를 빼앗겨서 어쩝니까? 12억 달러어치 금인데.”
“아, 괜찮아요.”
“괜찮다고요?”
“그거 짝퉁이거든.”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