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8화 이게 금괴야. 난 이걸 쓰레기라고 부르지(9)
러시아 크렘린 궁전.
“중국에서 뭐? 금?”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 푸챠르는 딩쉐이와 비공식 만남을 가졌다.
근데 딩쉐이가 헤이룽장성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알리자 전혀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딩쉐이가 더 당황했다.
“모르시는 내용이십니까?”
“모르는 내용입니다. 전혀. 확실히 러시아에서 금이 중국으로 건너갔단 말이죠.”
“맞습니다.”
딩쉐이는 속으로 짜증이 밀려왔다.
자신의 예상이 완전 빗나갔다.
러시아 정부의 비호 아래 금이 중국으로 들어온 줄 알았는데 러시아 정부는 전혀 관련이 없다니.
물론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도 있긴 한데 푸챠르는 이런 식으로 정치를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고 선이 확실한 성격이었다.
“금이 얼마나 건너갔습니까?”
“정확한 수량을 알 수 없지만 상당한 양인 건 확실합니다.”
“근데 금을 이동시킨 이가 투마로우 임재준이라 그거죠.”
“지금까지 저희 정보로는 그렇습니다.”
“확실한 겁니까? 확실해야 어떤 조치를 취할 거 아닙니까?”
“확실합니다.”
“증거는 있습니까?”
끙.
딩쉐이는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임재준이 금과 중국 국채를 교환하여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럼 확실하겠군요. 대충 금액이 얼마인지 파악은 했습니까?”
“그건…….”
“그냥 말하세요. 저만 알고 있을 테니.”
하여튼 중국 이놈들은 나중에 다 밝혀질 일은 꼭 숨기려 한단 말이야.
“그럼, 믿고 말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임재준에게 건너간 채권액이 2,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뭐요?”
이런 정신 나간 놈을 봤나.
판 놈이나 산 놈이나 그걸 넙죽 받아먹었단 말야?
푸챠르가 놀란 건 러시아의 1년 예산이 2,000억 달러였기 때문이다.
지금 러시아의 1년 예산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이다.
“확실한 거죠.”
“네, 국채로 계산한 거니 정확합니다.”
“2,000억 달러가…….”
평소에 차분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푸챠르의 눈매가 떨려왔다.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금이 유출되는 건 뻔하지.
이 올리가르히 새끼들.
아직 살 만하다 이거지.
2,000억 달러를 해외로 빼돌려서 세탁하겠다고.
그걸 임재준이 도와주고 있는 게 확실하고.
“중국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직 딱히 임재준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없습니다.”
“그냥 지켜만 보겠다는 겁니까?”
“중국 입장에서는 불법이 아니니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러시아가 나서도 되겠습니까?”
“그건 저희가 상관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혹시나 해서 말을 드립니다. 임재준이 러시아에서 석유나 가스를 사겠다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석유요?”
올리가르히 놈들 돈으로 석유를 산다고?
이거야말로 놈들 돈세탁을 완벽하게 만들어 주는 거잖아.
“거래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임재준이라도 중국으로 들어가는 석유는 중국 정부와 협의를 거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중국 생각은 어떠십니까?”
“저희는 러시아가 거래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합의를 본 거로 생각해도 되겠군요.”
“네.”
그래, 이러면 일단은 임재준의 계획은 저지했다.
이외에 몇 가지 양국 간 형식적인 현안을 이야기한 후 당쉐이는 크렘린궁을 떠났다.
푸챠르는 비서실장을 호출했다.
비서실장이 들어서며 잔뜩 일그러진 대통령의 표정에서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직감했다.
“부르셨습니까?”
“당장 올리가르히 놈들 다 들어 오라 그래.”
“네.”
“그놈들 들어와서 나랑 이야기가 끝나면 전부 체포해서 감옥에 집어처넣어.”
“전부 다 말입니까?”
“전부 다.”
“네. 알겠습니다.”
푸챠르의 올리가르히 소탕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
미하일 프로로프 저택.
8명의 올리가르히가 급하게 모였다.
모두 긴장으로 눈빛이 흔들렸고 서로 말을 아끼는 듯했다.
미하일 프로로프가 무척이나 긴장했는지 계속해서 마른 침을 넘기며 다른 이를 번갈아 쳐다보고 말했다.
“대통령이 우릴 호출했다는데 이유를 알고 있나?”
“모르지. 가 봐야 알겠지.”
“간다고? 지금 그놈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고 하던데. 거길 왜 들어가?”
브라디슬라프 도로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들은 바로는 중국에서 누군가 왔다 가면서 화가 났다던데.”
“중국? 혹시 우리가 금을 보낸 게 들킨 건가?”
빅토르 셀베르크가 한심하다는 듯 다른 이들을 흩어봤다.
“들키면 뭐 어때? 이 나라를 뜨면 되지. 이미 가용할 수 있는 재산은 전부 중국에 들어가 있는 거 아냐? 난 그런데. 자네들은?”
“나도 여기서 손 털어도 미련이 남진 않아. 지긋지긋한 놈 눈치 보는 것도 이제 지겹고.”
알리세르 우스마프가 걱정되는 눈빛으로 미하일을 바라봤다.
“달러는 언제 입금되는 건가?”
“우리가 영국으로 건너가면 채권으로 받기로 했어.”
“아, 그래?”
“그래, 이미 투마로우클레이스가 중국 국채를 보관 중이라고 했고.”
“중국 국채? 그것참 똑똑한 놈이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처리하다니.”
“그럼 다 된 거 아냐?”
“뭐가 되었다는 거야?”
“뭐긴 지금 당장 이 나라를 뜨자는 거지.”
“대통령 눈을 피해 지금 어떻게 이 나라를 뜬다는 건가?”
알리세르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기차.”
“기차?”
“우리도 금을 실은 기차를 타고 아시아로 넘어가자고.”
“그게 가능한가?”
“몰라, 나도 모른다고.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지. 지금 크렘린궁에 들어가면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거야.”
음.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대통령은 20명의 올리가르히 중 12명을 크렘린궁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사라졌다.
정확히 어딘가 감금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재산은 전부 정부에 귀속되었다.
“가족은?”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서두르자고.”
벌떡.
빅토르가 일어서더니 전부를 한번 흩어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한 명이 나가자 연달아 모두 같은 행동을 했다.
자신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라는 듯.
올리가르히가 전부 떠나고 미하일도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였다.
이미 손자들이 영국으로 유학 중이라 자식들도 영국에 머물고 있었다.
이제 와이프와 나이 많은 친척 몇 명만 데리고 떠나면 됐다.
빌어먹을 러시아.
“지금 당장, 떠날 준비를 하라고. 짐은 필요 없어. 나중에 다시 사면 되잖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대통령이 우릴 노린다고. 당장 서둘러.”
후.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최소한 400억 달러라는 돈을 영국에서 받으면 아예 유럽을 떠나 미국이나 캐나다로 들어가면 끝난다.
마가리따, 너를 만나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2,2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세탁할 수 있는 임재준의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것도 중국 국채라니.
이래서 젊은 피가 중요한 거라니까.
가방에 꼭 필요한 추억의 소품들만 챙긴 미하일은 방문을 나서기 직전.
띠리리링.
블라디슬라프 도로?
이 바쁜 와중에 웬 전화질이야?
“왜? 지금 나가려는 참인데.”
-TV, TV를 보라고. 망했어, 망했다고.
“뭐?”
미하일은 급하게 리모컨을 눌러댔다.
투마로우클레이스?
그리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뭐야.
당장 돈을 찾을 수 없다고?
***
영국과 월가가 또 한차례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저희 투마로우클레이스는 투마로우와 합병한 후 자체 감사를 진행하는 중에 관행적으로 리보금리 조작에 가담하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이는 클린한 투마로우 기업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사항이며 전 세계 채권 금리에 악영향을 끼치는 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지금 진행 중인 영업 외에 한 달간 모든 신규 영업을 접고 검찰 조사에 착실히 임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투마로우클레이스가 영업을 중지했다.
[SEC은 이번 리보금리 조작 사건에 연루된 은행들을 전부 조사 중에 있습니다. 이중 리보금리 조작에 깊숙이 관여한 독일의 도이치방크, 스위스의 USS, 스코틀랜드의 왕립은행, 영국의 클레이스를 집중 조사할 것입니다.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관련자 전원 고소와 함께 은행엔 벌금을 부과하겠습니다.]
-월가가 또 요동치겠구나. 어떻게 금리를 조작할 생각을 했대.
-그게 담당자들이 워낙 오래전부터 처리해온 일이라 지금 담당자들은 조작인지 몰랐다는 거야. 그냥 장 마감하면 당연히 메일로 전해오는 금리를 책정했다나 봐.
-이러는 거 보면 투마로우는 꽤 양심적이야.
-그렇지. 아마 투마로우클레이스 벌금이 4억 6,000만 달러, 스위스 USS는 약 15억 달러,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은 6억 2천만 달러의 벌금이 부과될 거라고 하던데.
-그건 약과지. 도이치방크 벌금은 25억 달러야.
-도이치방크 요즘 왜 이러냐? 지금 소송 중인 내부제보자 건도 있고, 영업권 상각 비용처리를 삭제한 거며 부가가치세 탈루에 이번엔 리보금리 조작까지. 미친 거 아냐? 이렇게 썩어도 되나?
-또 터질 거야. 영국 보보폰 매각 때 CEO가 엄청난 뒷돈을 받았다고 조사 중이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 판매하면서 고지 의무를 소홀히 한 것도 SEC에서 조사 중이잖아.
-정말 총체적 난국이란 말이 딱 어울리네.
-근데 그거 알아?
-뭐.
-리보금리 조작을 찾아낸 게 투마로우의 수학 천재라는 거.
-그래?
-놀라지 마라. 그 사람한테 돌아갈 보상금이 SEC가 받게 될 벌금의 30%래.
SEC은 증권 사기 사건을 제보한 제보자에게 10~30%를 제보의 중요도에 따라 지급했다.
-뭐? 대충 60억 달러인데 그 사람이 받는 돈이 18억 달러라고?
-근데 그 천재가 그런 돈을 받을 수 없다고 완강히 거절하고 있대.
-미친놈 아냐? 나 같으면 당장 받을 텐데.
-그러게.
***
중국 헤이룽장성.
“큭큭큭큭, 그래서 18억 달러를 안 받겠다고?”
-네, 보스. 그건 너무 많아요. 지금까지 받은 성공보수도 1억 달러가 넘는데. 전 그거로 만족하고 싶어요.
“하여튼, 너도 나만큼 별종이다. 그런데 네가 그걸 안 받으면 SEC이 꿀꺽할 텐데.”
-어쩔 수 없죠. 이미 제 돈이 아니라고 맘을 먹었습니다.
음.
“그러지 말고. 학교 하나 세우는 건 어때?”
-무슨 학교요?
“너같이 수학에 미친 놈들만 모아 놓고 자유롭게 공부하는 공간? 괜찮잖아. 돈이 없어서 사라지는 천재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럴까요?
“그래, 넌 결정만 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펠그리니와 통화를 마친 재준은 피식 웃음이 났다.
미친놈.
18억 달러면 한화로 2조인데.
이놈도 돈에 대한 감이 없긴 하네.
이때,
띠리리리링.
미하일?
“전화할 시간이 있으세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는데요? 본인이 더 잘 알면서. 난 당신들이 해 달라는 대로 했어요.”
-우리 돈은 어떻게 된 거냐고!
“무슨 소리세요? 러시아 잘 빠져나와서 영국에 도착하면 찾을 수 있는데. 열심히 탈출해 보세요. 이번 기회에 영화 한 번 찍는 것도 인생을 살면서 나쁜 경험은 아닐 거 같은데.”
-이거 다 네가 만든 건가?
“설마, 내가 무슨 신도 아니고 러시아 대통령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어요?”
-뭐야? 여긴 어떻게 알고. 내가 누군지 알고, 아아악, 이거 놔. 이 새끼들아. 내가 누군지 아냐고!
수화기 너머로 미하일의 비명이 들렸다.
아마 며칠 동안 어디 비밀 별장에서 숨어 있다가 발각된 모양이었다.
이로써 올리가르히들은 세상에서 지워지는 건가?
쯧쯧쯧.
자, 이제 미친놈 둘이 치고받고 싸우는 일만 남았네.
러시아와 중국이 붙으면 볼 만은 할 거 같은데.
이 기회에 진짜 제대로 붙어서 둘 다 주저앉게 해볼까?
핵만 안 쏘면 되잖아.
아닌가, 핵을 한 방씩 쏴야 하나?
뭐, 그건 알아서들 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