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207화 (207/477)

제207화 이게 금괴야. 난 이걸 쓰레기라고 부르지(8)

AAG 빌딩 65층.

“이봐, 펠그리니, 그러니까 정말 자신하는 건가? 100% 리보금리가 조작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냐고?”

SEC 회장이란 신분으로 일개 은행을 방문한다는 걸 기자들이 알면 내일 헤드라인을 장식할 수 있는 특종이라고 길길이 날뛸 만한 사건이었다.

그만큼 SEC가 움직인다는 것은 증권업계 어딘가에서 범죄행위가 벌어졌다는 걸 의미했다.

그것도 회장이 직접.

SEC 회장 제이크는 펠그리니에게 제발 아니라고, 자신이 잘못 계산한 거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펠그리니는 수다쟁이이긴 하지만 거짓말을 못 하는 인간이었다.

“당연하죠. 100%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숫자는 거짓말을 할 수 없죠. 여기, 이렇게 다 나와 있잖습니까. 자그마치 10년간 종가 금리가 다음날 시가 금리와 일치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만 줄 아십니까? 차라리 내가 10년간 슈퍼볼 로또를 연속으로 맞힐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을 겁니다. 금리가 무엇입니까. 전 세계 200개국에서 사람들이 사고팔면서 정해지는 인간의 욕망이란 말입니다. 이 욕망이 정확하게 일치한다고요?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세계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욕망을 통제할 수 있을 테니까요.”

멍.

제이크와 론은 괜히 펠그리니에게 한마디 했다가 최소한 백 마디를 듣는 고행을 자초했다.

뭐라고 떠드는 거야?

자신 있다, 없다만 말하면 될 일을 무슨 세계 평화까지 들먹이고.

외부에서 보는 펠그리니는 고고한 수준의 수학자라고 알려졌는데 수학이란 학문은 머리와 손으로 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제이크는 일단 펠그리니의 계산이 맞다고 인정하고 그다음 현실이 악몽이 되는 상상으로 펠그리니를 몰아치기로 결심했다.

“좋아, 그럼, 이 사실이 외부에 발표된다면 너는 어떤 반응이 나타날 거라 예상하지?”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혹시 앞으로 나타날 반응이 무서워 범죄행위를 숨겨 보자 이겁니까? 저의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신 줄 아십니까…….”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자신이 미국으로 건너와 당했던 설움을 숨기며 살던 그때를 아십니까?

이게 다 범죄에 대한 자신의 단호함이 없었던 것이며…….

다시 또 펠그리니의 따발총 같은 백 마디가 시작되었다.

왜 자꾸 열지 말아야 할 수다라의 상자를 열어서는.

“알았어. 알았다고. 그만. 그럼, 이게 전부 사실이고 우리는 여기 있는 모든 은행에 벌금을 부과해야 해. 근데 한 가지 걱정이 있는데.”

“그게 뭡니까?”

“계산만 했지 어떤 은행인지는 살펴보지 않은 거야?”

“은행이요?”

“그래.”

“당연히 기억하죠. 자금력 순으로 따지면 독일의 도이치방크, 스위스의 USS, 스코틀랜드의 왕립은행, 영국의 클레이스…….”

펠그리니가 하던 말을 멈추었다.

계산할 때는 오직 숫자에 빠져 몰랐던 사실이 그의 말을 잡았다.

클레이스.

이거 우리 은행이잖아.

이걸 왜 몰랐을까?

제이크가 펠그리니의 변화를 놓칠 리 없었다.

굳이 표정이 굳은 걸 파악하지 않아도 그가 내뱉던 말이 멈춘 것으로도 충분했다.

“이제 알겠어? 클레이스가 리보금리 조작에 가담했다는 말이야. 투마로우도 이 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한단 말이야. 알겠어?”

“어, 이게 왜 이렇게 되었지?”

“자, 우리 잠깐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마련하자고. 시장에 꼭 알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보스는요? 보스도 이걸 알 텐데.”

“알아, 나도 임재준과 통화를 했어.”

“보스는 뭐래요?”

“도이치방크, 도이치방크만 투자은행에서 손 떼게 하면 끝이라고 말했어. 론, 너도 들었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내가 통화한 것도 아닌데.

하지만 속마음과 다르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확실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제이크가 론의 말에 힘을 얻었다.

“거봐, 우리 도이치방크만 처리하는 선에서 이 사건을 덮자고. 우리 SEC가 나머지 은행에게 경고 조치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거야. 어때?”

펠그리니가 제이크를 매섭게 노려봤다.

이대로 덮는다고?

보스가 범죄를 모른 척 지나가자고 했다고?

믿을 수 없어.

보스는 인간성이 더럽고 무모해도 불법을 용인하는 성격은 아닌데.

“보스에게 물어봐야겠어요.”

“임재준에게? 내가 통화했다니까.”

“아니요. 제가 직접 들어야겠어요.”

“그래, 맘대로. 뭐, 임재준도 내 해결책이 무척 맘에 들 거야.”

펠그리니는 핸드폰을 스피커 폰으로 전환하고 재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펠그리니. 무슨 일 터졌어?

“그런 건 아니고요. 여기 SEC 회장님이 찾아오셨어요.”

-그 한심한 양반 왜 거기까지 갔어? 그렇게 할 일이 없대? 하긴, SEC이 할 일을 우리가 다 해 주고 있으니 일이 없긴 하겠네. 이참에 확 잘라 버리자고 공화당에 연락할까?

흠, 흠.

“저, 보스. 이거 스피커 폰. 스피커 폰.”

잠시 침묵의 시간이 강요되었다.

-라고 누군가 이야기를 하더라고. 내 얘기가 아니라 남의 얘기야. 남의 얘기. 거기 제이크 오해 말아요. 남의 얘기니까.

빠직.

제이크가 이빨을 꽉 깨물었다.

참자, 여기서 화를 냈다가는 리보금리 조작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 안 될 수도 있다.

“괜찮습니다. 저도 남의 이야기라고 믿습니다. 그럼요. 남의 얘기겠죠.”

-하하하, 역시 호탕하시네. 근데 무슨 일로 연락을 하셨나요?

“보스, 이번 리보금리 조작에 클레이스가 가담되어 있습니다.”

-아, 그거. 알고 있지.

예스.

제이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알고 있다면 앞으로 수월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SEC의 생각은 도이치방크만 처리하고 나머진 경고 수준으로 이번 사건을 무마하자고 보스가 제안했다는데. 맞습니까?”

-내가? 내가 언제? 아니,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펠그리니, 난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없어. 오히려 사건을 더 키워야지 왜 축소를 한대? 제이크, 듣고 있어요? 키우라니까. 전 언론이 떠들썩하게 키워요.

“키워요? 왜 키워? 클레이스가 위험한데도요?”

-뭐, 투마로우도 잘못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리고 이게 너무 오랫동안 해온 거라 관행이 되어 버렸잖아요. 하지만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는 변명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도 벌금을 부과해요. 괜찮으니까.

“벌금이 꽤 될 텐데요?”

-괜찮아요. 몇억 주고 몇천억 벌면 그게 남는 거지.

“네? 몇천억을 벌어요?”

헉, 이놈의 주둥아리.

-아, 하하하. 그렇다는 거죠. 벌어서 벌금 내겠다. 뭐, 그런 의미죠. 하하하.

재준은 실언이 제이크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거 꼭 일부러 클레이스를 끌어들이는 것 같은데.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이런 느낌이야.

-펠그리니, 그러지 말고. 이번 사건은 우리가 자수하는 거로 하자.

“자수요?”

“자수?”

-그래, 그게 그림이 좋잖아. 그 시기를 봐서 내가 다이돈에게 이야기할게. 클레이스가 기자회견을 열어 리보금리 조작을 자수하는 거로.

“음, 자수라.”

제이크는 꼴깍 마른침을 삼켰다.

아니, 일을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드는 거지.

대충 조용히 경고하고 지금부터 하지 않으면 되잖아.

이걸 꼭 이렇게 세상에 떠벌려서 자진해서 욕을 먹고 싶은가?

아, 정말이지.

SEC을 그만둘 때가 된 건가.

-제이크, 내 말 알아들었죠. 곧 클레이스가 자진해서 발표할 테니 미국은 가담 은행들 조사하고 있어요.

“알아는 들었습니다.”

후.

한숨이 절로 나오는 제이크.

앞으로 펼쳐질 지옥 같은 세상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또 얼마나 많은 기자들에게 시달려야 하고.

또 얼마나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자신을 사정없이 몰아붙일까.

아, 벗어나고 싶다.

가만, 지금 임재준 중국에 있다고 했지.

그것도 헤이룽장성.

연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이번 기회에 연변 거지들에게 연락 한번 해 봐?

만 달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준다는데.

***

중난하이.

부주석은 비서 딩쉐이에게 이상한 보고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헤이룽장성 전체에 천문학적인 양의 금이 쌓이고 있다 이 말이지?”

“네. 헤이룽장성 13개 은행에 골고루 쌓이고 있습니다.”

“근데 그 배후에는 임재준이 있고.”

“거의 확실합니다. 금과 중국 국채를 교환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채라…….”

앞으로 몇 달 후면 부주석은 주석으로 올라선다.

그 전에 큰 사건이 터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입을 틀어막고 있는데 임재준이 중국으로 들어왔다.

사람 몇을 붙였는데 어디서 쥐어 터졌는지 길바닥에 나뒹굴고 심지어 자신들이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른단다.

그리고 다시 헤이룽장성에 등장한 임재준이 러시아에서 금을 들여와 중국 국채를 마구 사들이고 있다?

“이봐, 딩쉐이. 자네 생각은 어때? 임재준이 왜 이딴 짓을 벌이는지 알겠어?”

“헤이룽장성은 곡창 지대입니다. 임재준이 거길 자신의 세력 거점으로 삼는 게 아닐까요?”

“왜? 하필 헤이룽장성일까?”

“저는 러시아 때문이라 봅니다. 지금 막 러시아 대통령이 바뀌었습니다. 푸챠르의 장기 집권이 시작되었습니다. 임재준이 러시아에 들러 중국에 왔다고 보고 받았고요. 헤이룽장성의 곡물을 러시아에 팔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 저희 정부가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국채를 대량 매입해서 나중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히든카드로 쓸 생각이란 예상이 듭니다.”

“이 자식 가뜩이나 모자란 대두를 러시아로 팔려는 거군. 그래야 곡물 메이저들이 우리에게 대두를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으니까. 진짜 징그러운 놈이야. 중국을 무서워하질 않아. 돈이라면 뭐든 한다니까.”

하지만 딩쉐이 생각은 달랐다.

“하지만 제 생각은 대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왜?”

“러시아 식량 자급률은 100%인데 굳이 대두를 또 수입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 그럼 뭘 수출하려는 것일까?”

“그걸 아직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딩쉐이의 말이 흐려졌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 분명했다.

“뭔데? 괜찮으니까 말을 해 봐.”

“러시아에서 수입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뭘?”

“석유나 가스 같은 에너지원입니다.”

“그럼 우리가 좋은 거 아닌가?”

음.

딩쉐이는 부주석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 알고 당하는 게 더 아픈 법이니까.

“곡물 때도 그랬습니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 저희가 투마로우에 곡물을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험, 험.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른 부주석은 기침으로 진정시켰다.

“그래서.”

“이번엔 석유나 가스로 저희를 옥죄어 오면 투마로우에 중국이 모든 걸 내주는 꼴이 되는 겁니다.”

“그건 안 돼!”

부주석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에너지까지 손을 벌릴 수는 없어. 당장 러시아에 연락해. 임재준과 그 무엇도 거래를 하지 못하게 막아.”

“제가 직접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겠습니다.”

“그래, 당장 가서 결딴을 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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