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203화 (203/477)

제203화 이게 금괴야. 난 이걸 쓰레기라고 부르지(4)

SEC(증권거래위원회).

“알겠습니다.”

제이크 회장은 방금 재준과 통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바라봤다.

SEC은 미국 증시를 감시, 감독하는 준사법적 권한까지 가지고 있는 기관이다.

방금 재준이 사건을 의뢰했다.

이런 사건이 있었어?

자신도 모르는 도이치방크 채권 사건이 보류 중이니 다시 한번 조사해 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레버리지드 슈퍼시니어 채권?

자신이 알고 있는 슈퍼시니어 채권은 사건으로 문제 삼기에는 너무 우량 채권이고 거래가 활발하지 않았다.

근데 레버리지드는 뭐야?

이게 왜 앞에 붙어 있는 거지?

모르면 물어봐야지.

제이크는 담당자를 불렀다.

잠시 후 채권 담당자가 행장실에 도착했다.

“론, 어서 와요. 앉아 봐.”

“네.”

SEC에서 채권을 담당하는 론은 약간 긴장한 모습이었다.

평소에 회장이 담당자를 부르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부른 걸 보면 혹시 또 대형 사고가 터진 게 아닐까.

“론, 여기.”

제이크가 자신이 메모한 종이를 탁자에 놓으며 말을 이었다.

“슈퍼시니어 채권은 알겠는데 레버리지드 슈퍼시니어 채권은 뭐야?”

“아, 이거요. 슈퍼시니어 채권은 CDO 구조화 채권의 가장 위에 있어서 이렇게 부르는 건 아시죠?”

“그건 알지. 수익률 최악인 채권 아닌가. 신용등급 AAA. 최우량 블루칩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 거의 부도 확률이 제로에 가깝지. 그래서 금리도 쥐꼬리만 하고.”

“맞습니다. 그래서 수익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레버리지 0.01% 정도를 일으켜서 수익을 만든 겁니다.”

돈이 안 되니까 연기금이나 보험사들이 이 채권에 대한 신용보험을 은행들에 팔고 0.01%의 프리미엄을 취하는 것이다.

0.01%면 너무 적은 거 아닌가 싶겠지만 물량이 엄청나면 수익은 남는다.

레버리지를 일으키기 위해 도이치방크는 슈퍼시니어 채권의 80%인 1,300억 달러어치를 사들였다.

그리고 여기저기 레버리지 거래를 중개해서 2억 7,000만 달러의 수익을 만들었다.

“그래? 근데 이게 왜 문제가 된다는 거지? 정상적인 방법인데.”

“누가 이게 불법이라고 했습니까?”

“투마로우 임재준이.”

“네?”

투마로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잠시만요. 제가 도이치방크 재무제표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래요. 기다릴게.”

론이 나가고 제이크는 비서 호출 버튼을 눌렀다.

-네, 회장님.

“오늘 일정 전부 취소하세요. 아니, 내일 일정도 취소해요.”

-네, 알겠습니다.

제이크는 뭔가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중압감을 느꼈다.

이 사건이 투마로우에 직접적인 손실을 일으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왜 도이치방크의 슈퍼시니어 채권을 지적한 것일까.

후다닥.

론이 다시 도이치방크의 재무제표를 가지고 돌아왔다.

급하게 뛰어갔다 와서 약간 숨을 헐떡였다.

론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바로 재무제표를 펼쳐서 살피기 시작했다.

“투마로우가 지적한 시점이 어딘지 아십니까?”

“2008년 금융위기를 살펴보라고 했지.”

2008년, 2008년.

여기인데, 어디 보자.

“어, 이상하네요.”

론이 재무제표에서 2008년 3분기, 4분기 채권 평가손을 보고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왜?”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갭 옵션이 반영이 안 되었는데요.”

“뭐?”

갭 옵션(Gap Option)이란 채권 가치변동으로 담보 가치가 사라질 위험을 나타내는 말이다.

연기금과 보험사들이 갭 옵션을 위해 도이치방크에 원금의 10%에 해당하는 국공채를 담보로 제공했는데 2008년 금융위기에 슈퍼시니어 채권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담보가액을 넘어가 버렸다.

담보 가액을 넘어간 금액은 도이치방크가 채워 넣어야 했다.

쉽게 말해, 1억을 담보로 제공했는데 금융위기로 채권이 1억 5천만 원이 떨어졌다.

담보를 팔아도 5천만 원이 손해가 났다는 의미다.

“네, 여기 3분기 4분기 6개월 동안 대차대조표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1분기에 헤지(hedge)했다고 기재했는데요.”

2008년 6월이라…….

“평가손이 얼만데.”

“전 분기로 계산해도 대충 100억 달러가 넘습니다.”

“뭐? 100억 달러를 장부에서 지웠다고?”

100억 달러면 한화로 12조가 넘는 금액이다.

왜 도이치방크가 6개월간 자신의 손실을 지웠다가 다시 기재했을까.

“그럼, 2008년 도이치방크의 자기자본이 얼마지?”

“3160억 유로에 대한 자기자본은 323억 유로로 나타나 있습니다. 기준치인 8%를 넘긴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어라? 설마.

“그럼, 100억 달러를 유로로 환산한 70억 유로를 자기자본에서 빼면.”

“네, 그럼 자기자본이 8% 아래에 있게 됩니다.”

“이런 빌어먹을.”

이거였다.

한창 금융위기로 정부가 금융권에 자기자본 8% 이하는 전부 칼을 댔다.

도이치방크는 장부를 조작하여 8% 이상인 척하면서 부실한 상태로 영업을 지속해 어물쩡 넘어갔다.

어쨌든 지금 살아있으니 다 잘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만약 도이치방크가 부도를 맞았다면?

도이치방크 크기로 봤을 때 정부가 미처 대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형은행 부도의 파장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증권 시장에서 불법을 저지른 금융기관을 잡아내는 SEC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이것들이 자기네 나라에서나 할 것이지 미국에 와서 이 지랄을 한 거야? 당장 도이치방크에 연락해.”

제이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가뜩이나 금융위기 이후 4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자신들의 부실을 숨긴 것이 여기저기 터져 나와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자잘한 수준이어서 대충 벌금 정도로 무마해 주었는데 도이치방크는 그 수준이 도를 지나쳤다.

100억 달러라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서야.

띠리리링.

도이치방크 미국 지사 회장의 전화가 연결되었다.

-제이크 회장님. 급하게 저를 찾으신다고요.

“이봐요, 안스 지안 회장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2008년 3, 4분기에 100억 달러가 왜 장부에서 사라진 겁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부에서 사라지다뇨. 그때 S&P500 지수 하락 풋옵션을 사서 채권 포지션을 헤지했습니다.

하, 이놈 봐라.

“누가 그런 식으로 장부를 조작하라고 했습니까? 그게 정상적인 헤지입니까?”

당연히 정상적인 방법이 될 수 없다.

지수 하락 풋옵션으로 헤지를 했다면 이것 또한 장부에 남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장부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고 지금에 와서야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렇게 화를 내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이미 지나간 일인데.

“지금 뭐라고 한 겁니까? 지나간 일이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때 기억이 가물거려서 세부적인 사항이 뭔지도 모르는데. 대뜸 화부터 내시니 그런 거 아닙니까?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건 둘째 치고 따지고 든다고?

“알겠습니다. 이만 끊어요.”

툭.

전화를 끊은 제이크는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빨리 무언가 해야 했다.

저 말투로 봐서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지금부터 관련 서류가 파기되고 있을 테니까.

이거 악질적인 놈들이네.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투마로우가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갈 뻔…….

가만, 그럼 투마로우는 어떻게 알았을까?

미처 임재준이란 이름에 떨려서 어떻게 이 사건을 알았는지 물어보질 않았다.

띠리리링.

처음 보는 전화번호?

누구지?

“네, 제이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투마로우의 블록입니다. 지금쯤이면 고민하고 계실 거라고 보스가 이야기하던데. 도이치방크 부정행위는 다 파악하셨습니까?

“아, 네. 후, 근데 딱히 제재를 가할 증거가 부족합니다.”

-아, 그건 염려 마십시오. 소송은 저희가 걸겠습니다. SEC는 지원 사격만 해주십시오.

“지원 사격이요?”

-네, 소송을 진행하면 언론에 노출이 될 것입니다. 그때 나서서 중재를 해 주시면 됩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끝까지 싸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 투마로우가 중간에 중재했단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하하하, 설마 저희가 이대로 끝내겠습니까. 여론에 좀 더 노출시키고 시간도 끌려고 합니다. 2탄, 3탄 줄줄이 예약되어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때마다 SEC는 사실 여부를 파악해서 중재에 나서 주시면 됩니다.

무슨 소리야?

한 개가 아니란 소리야?

“아, 네.”

-그럼 나중에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아, 네. 네.”

제이크는 2탄, 3탄이란 말에 심장이 답답해 왔다.

투마로우가 싸우기 시작하면 상대는 쓰러지고 싶어도 쓰러질 수 없다.

쓰러지는 것도 투마로우가 허락을 해야 쓰러진다.

아무리 도이치방크가 잘못했다지만 부도라도 나면?

상상하기도 싫다.

이제 부도라면 지긋지긋한데.

가만, 중재라고 했지.

임재준도 시장을 생각해서 내린 결정인가.

암튼 우리도 준비는 해야겠지.

제이크는 다시 담당자 전화 버튼을 눌렀다.

“론, 도이치방크 다 뒤져서 뭐라도 좋으니 찾아내세요.”

-네, 회장님.

***

러시아 카페 푸쉬킨.

마가리따는 신기하게 이미 예약이 마감된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카페 푸쉬킨은 19세기 맨션으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재준의 일행은 웨이터의 안내로 4층 공간으로 안내되었다.

겉에서 보기엔 3층인데.

원래 이 레스토랑은 3층까지 운영되고 4층은 특별한 손님을 위해 마련되어있었다.

4층은 돈이 있어도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

주변이 어두컴컴해지자 그리 밝지 않은 조명이 아래에서 위로 건물을 비춰 마치 영화에 나오는 악당의 은신처처럼 보였다.

엘리자베스는 드라큘라가 나올 것 같다며 좋아하지는 않았다.

역시 아이라 현대식을 좋아하는 건가.

방 안은 중세풍의 가구와 골동품으로 장식이 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화려한 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굳이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해야 하나?”

“제 말이요.”

강호석과 엘리자베스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러시아에 와서 이곳을 지나치면 안 되거든. 음식도 맛깔나고 종류도 많아. 아마 음식은 엘리자베스도 좋아할 거야.”

마가리따가 입술이 댓 발 나온 엘리자베스의 어깨를 토닥이며 달랬다.

모두가 앉자 윌켄이 재준에게 물었다.

“보스, 도이치방크를 아예 치울 생각입니까?”

“아니요.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야죠. 괜히 월가 흉내 내다 가랑이 찢어졌으니까. 아냐, 그 정도가 아니지. 불법을 너무 많이 저질렀어요. 실적에 매몰돼서 주변을 못 본 거죠. 정신을 차리게 해 줘야죠.”

윌켄이 더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

그도 알고 있다. 실적에 매달려서 자신이 무얼 하는지도 모른 채 달려가는 뱅커들이 어디 한둘인가.

뱅커에게 어느 정도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무조건 정해진 법과 규정을 지켜야 한다.

왜? 은행은 너무 많은 돈을 다루기 때문이다.

은행 한 개가 무너지면 피해를 보는 건 투자자가 아니라 전 국민이다.

은행은 자신의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관리한다.

한국만 해도 자그마치 5천만 명의 돈을 겨우 스무 개도 안 되는 은행에서 나누어 관리한다.

자그마치 5천만 명의 돈을.

대충 어린이와 노인을 빼고 3천만 명이 매달 백만 원씩만 은행에 맡겨도 30조다.

1년이면 360조가 쌓이고 10년이면 3,600조가 쌓인다.

단지 백만 원인데.

요즘 하루 8시간 알바를 해도 백만 원 이상은 받을 테니 은행에 묶이는 돈이 얼마나 많은지 알 것이다.

은행이 너무 많은 거 아니냐고 했던 적이 있는데. 아니다.

은행은 지금보다도 더 많아야 한다.

한두 개 은행이 부도가 나도 시장에 영향이 없을 정도로 수를 늘려야 한다.

누구는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누구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듯한 향기로운 음식에 기분 좋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오랜만에 즐기는 여유.

그리고 이런 즐거움을 질투하는 그 누구.

재준이 엘리자베스를 보며 빙글 웃었다.

“맛있게들 먹어. 식사가 끝나면 중국으로 갈 거야.”

어디? 중국?

일순 모든 이의 손이 멈췄다.

심지어 박민수는 씹는 것도 멈췄다.

어쩐지 러시아에 와서 일이 너무 싱겁게 끝나는 것 같았다.

사람 몇 만나고 처음만 허들이 있었을 뿐 나머진 그냥 오케이를 외쳐 댔다.

너무 술술 흘러가는 게 이상했다.

여기서 확실히 내 의견에 대해 못을 박아야 해.

“제가 꼭 가야 되는 건 아니죠?”

“박 형이 가야지 누가 가? 그러려고 데려온 건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