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202화 (202/477)

제202화 이게 금괴야. 난 이걸 쓰레기라고 부르지(3)

AAG 빌딩 65층.

블록과 펠그리니는 자료와 씨름을 하던 중이었다.

“어? 이거 왜 이래?”

“왜, 뭐 대단한 거라도 발견한 거야?”

블록은 도이치방크의 대차대조표를 펠그리니에게 들이밀었다.

“어디가 이상한데?”

“보스가 뱅커컨피던스 영업권 상각 비용처리를 보라고 했잖아. 근데 여기 영업권 항목에 12년 전에 인수한 뱅커컨피던스 영업권 가치가 제로로 표시되어 있어.”

“뭐? 뱅커컨피던스라면 그때 투자은행 순위 6위에 벌지 브래킷이었는데 영업권이 제로? 말도 안 돼.”

영업권이란 인수 합병 시에 인수자가 지불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이다.

실현되지 않는 미래의 가치를 말한다.

즉, 벌지 브래킷이었던 은행의 가치가 빵, 없다는 말이다.

“이거 냄새가 나는데.”

“그렇지? 인수 당시 2.3배인 101억 달러를 주고 샀는데 가치가 없다니 말이 안 되지.”

아.

펠그리니는 뭔가 생각난 듯이 탄성을 질렀다.

“미래가치니까, 대차대조에 담아 두려면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8억 달러를 쌓아 두거나 아니면 처분해야 하잖아. 하지만 뱅커컨피던스를 처분하기엔 아깝고 8억 달러를 쌓기는 힘드니까 상각시켜버린 거 아냐?”

“그걸 포함시키면 도이치방크는 지금 적자야. 주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네. 그리고 이거.”

블록은 탄소배출권 관련 증명서를 보여주었다.

유럽은 탄소 배출할 수 있는 권한을 유가증권으로 만들어 사고팔았다.

펠그리니는 이번에도 혀를 쯧쯧 차며 손가락으로 기업들을 이어붙였다.

“이렇게, 이렇게 이어진다고 봐야겠네. 거래금액이 일치해. 이것들 부가가치세를 안 내려고 서로 탄소배출권을 사고팔았네. 여기 독일 기업 사이에 다른 국가 기업이 하나씩 끼워 넣어져 있고.”

“이건 불법 아냐?”

“불법이지. 독일에선 아주 커다란 죄야.”

“이제 하다 하다 탄소배출권으로 장난을 다 치네.”

독일 기업은 자국 내에서 탄소배출권을 사고팔면 부가가치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다른 국가 기업과 거래를 하면 부가가치세를 면제해 줬다.

독일 기업과 독일 기업끼리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데 이걸 도이치방크가 중간에 다른 나라 기업을 끼워 넣어 부가가치세를 면제받도록 수작을 부렸다.

“그러면 중개수수료로 벌어들인 돈이 여기, 2억 1,000억 유로란 말이네.”

“많이도 해 먹었다.”

“이거 보스가 알면 도이치방크 미국 지사 정도는 뺏어올 것 같은데.”

“그 정도면 다행이지.”

둘은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다른 대형 사건이 있어서 뉴욕대에 다녀올게.”

“대형 사건? 이거 캐면 캘수록 도이치방크 장난 아니네. 월가에 진출하고 나쁜 것만 배웠어.”

“전부 다 파헤쳐야겠어.”

“그래, 수고해.”

나도 리보금리 조작을 끝장내 볼까.

펠그리니도 서류에 시선을 고정했다.

***

미하일 프로로프 저택.

마가리따의 주선으로 만나게 된,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부자인 미하일 프로로프는 푸챠르의 집권에서 살아남은 올리가르히 중 하나였다.

이번 대선에 출마하여 푸챠르의 들러리를 자청했다.

역시 살아남는 인간들은 그만한 능력자들이었다.

푸챠르에 찰싹 붙어 있었다.

마가리따와 재준 일행이 접견실에서 한참을 기다리자 다급한 발걸음이 들렸다.

급하게 자신의 저택으로 달려오는 소리.

탁 탁 탁 탁 탁 탁.

벌컥.

“마가리따. 마가리따. 이거 정말 미안해요. 갑자기 대통령이 보자고 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마가리따가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여전히 바쁘시네요. 전 요즘 한가해서 괜찮아요.”

재준이 마가리따를 노려봤다.

당신만 한가한 거야.

난 아주 바쁘다고.

마가리따의 손등에 입을 맞춘 미하일 프로로프는 재준을 향해 살짝 고개를 까딱였다.

마가리따가 중간에서 서로를 인사시켰다.

“미하일, 이쪽은 투마로우 임재준, 이쪽은 미하일 프로로프, 러시아 제일의 갑부죠.”

“오우, 무슨 이제 이인자로 밀려났습니다.”

“호호호, 겸손하시군요. 언제든 일인자로 올라설 수 있으면서.”

“아닙니다. 이 나이에 최고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차라리 이대로가 좋습니다.”

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맘만 먹으면 더 벌 수 있다는 말이네.

맘만 먹으면 해외로 더 많은 재산을 빼돌릴 수 있다는 말로 들리기도 하고.

“오, 이런 실례가. 자 모두 앉으시죠.”

미하일이 손가락을 튕기자 미리 대기했는지 사람들이 몰려와 간단한(?) 다과를 회의 탁자 가득 올려놨다.

그리고 보드카.

재준이 엘리자베스를 보았는데 이 애가 입맛을 다시며 보드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얜 좀 다른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얘 나이를 착각하게 만드는.

“자, 한 잔씩 합시다.”

마가리따가 그랬다.

러시안이 보드카를 마시자는 건 이미 자신과 친구가 됐다는 뜻이라고.

그만큼 미하일은 마가리따를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홀짝.

탁.

엘리자베스가 이 독한 보드카를 원샷을 때리고 탁자에 잔을 내리쳤다.

카.

맞네. 능력이네, 능력이야.

미하일이 아버지 미소로 엘리자베스를 바라보며 흐뭇해했다.

그리고 마가리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다 찾아 왔습니까?”

마가리따도 보드카를 단숨에 들이켜고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투마로우가 마히일을 도와주겠다고 해서요.”

“저를요?”

미하일의 시선이 재준에게 향했다.

“저를 어떻게 도와주신다는 겁니까?”

재준이 보드카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뜸을 들인 후,

“아실 것 같은데. 저는 은행을 주업으로 살고 있어요.”

“그래서요?”

음.

“조만간 당스케방크와 도이치방크가 미국 법무부의 조사 대상에 포함될 거예요. 굳이 위험한 곳에 일을 맡기시니 걱정이 좀 돼서요.”

흡.

미하일의 표정이 굳어졌다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하.

“그쪽은 안전하다는 겁니까?”

“전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그게 어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미국에는 달러가 기다리고 있고요.”

“당스케와 도이치를 건드린 겁니까?”

“내가 건드린 게 아니라, 도이치가 워낙 위험한 일을 많이 해서요. 조만간 당스케와 도이치가 미하일, 당신을 먼저 손절할 걸요.”

딱.

미하일이 손가락을 튕기자 비서로 보이는 남자가 서류철을 가져왔다.

미하일이 서류를 천천히 살펴보고 다시 건네주었다.

“아직은 이렇다 할 변화가 없군요.”

“변화가 일어나면 이미 늦지 않을까요?”

“일이 생기면 그때 생각해 보겠습니다.”

“네, 뭐, 그렇게 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알아 두셔야 합니다. 우선순위가 있다는 걸.”

“우선순위요?”

“네, 우리는 바로 블라디슬라프 도로에게 갈 겁니다. 다음은 빅토르 셀베르크, 그다음은 알리셰르 우스마프. 누군가 먼저 이득을 보지 않을까요? 누구는 미국 재무부의 감시 대상이 될 테고.”

후후후.

미하일은 재준을 바라보며 지그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디로 보내면 됩니까?”

“중국.”

중국?

미하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너무 위험한 거 아닙니까?”

“위험이요? 누구에게 위험한데요?”

“누구에게라. 그렇군요. 우리가 위험하다 생각하는 나라에 중국은 없군요. 하지만 중국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중국을 믿을 수 있냐 없냐가 문제가 아니라 중국까지 가는 게 문제 아니에요? 중간에 강도라도 당하면 큰일인데.”

“그건 걱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에도 우리 물건을 건드리지는 못합니다.”

“그럼 됐어요. 중국에 도착하면 달러는 송금될 겁니다. 계좌는 영국 투마로우클레이스를 이용하세요.”

미하일은 보드카를 재준의 잔에 따르고 자신의 잔에 따랐다.

워셔스더 로이에(건배).

그리고 둘은 단숨에 들이켰다.

탁. 탁.

동시에 탁자에 잔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

뉴욕 재준의 아지트.

블록은 벤 에릭 뉴욕대 교수와 함께 미키의 요리와 클랜파클라스를 한 잔씩 주고받았다.

벤 에릭은 술맛을 즐기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블록이 벤 에릭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여긴 아무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아지트입니다. 그렇지? 미키.”

“오늘 영업하지 않는 날입니다.”

미키가 블록의 말에 한마디를 더 보탰다.

벤 에릭은 전화 한 통을 받고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이리로 달려왔다.

자그마치 투마로우에서 자신에게 전화를 준 것이다.

‘도이치방크 일을 알고 싶습니다.’

벤 에릭은 1년 전 그랜드월에서 퀀트로 리스크 관리에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도이치방크에 스카웃 제의를 받고 입사했다.

그리고 바로 해고당했다.

블록은 너무 조심스러워하는 벤 에릭을 다독였다.

“한 번 그런 일을 겪으면 모든 게 어려워 보입니다. 저도 그랬고요. 저는 살해 위협도 당했거든요.”

놀란 눈의 벤 에릭이 블록을 바라봤다.

“그 정도였습니까?”

“네, 중국 기업을 털어서 은행에 주면 은행은 공매도로 돈을 벌었거든요. 근데 그게 제 일이었고 그거 외에는 돈을 벌 방법이 없었어요. 그때 우리 보스가 나타났지만.”

“그래서 지금은 위협이 전혀 없습니까?”

“당연하죠. 감히 어느 누가 투마로우를 건드려요.”

블록이 벤 에릭에게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투마로우에 사설 부대도 있습니다. 블랙워터라고. 지금도 어디선가 우리를 지키고 있어요.”

네?

“정말입니까?”

“그럼요. 아니면 제 보스는 벌써 몇 번은 죽었을 겁니다.”

“역시 투마로우라고 하더니 다르긴 다르군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근데 보스가 당신을 만나라고 해서 만나는 건데 도대체 도이치방크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후.

벤 에릭이 숨을 크게 쉰 후 입을 열었다.

“도이체방크에서 저를 스카우트해서 업그레이드된 리스크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담당자들이 파생상품 거래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추적했습니다.”

오호.

블록이 대충 어떤 내용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벤 에릭의 말은 이어졌다.

“근데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도이치방크는 회계부정을 저질렀습니다. 레버리지드 슈퍼주니어 채권을 아십니까?”

“고위험 파생상품이잖아요.”

“맞아요. 저는 이 채권이 시장가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를 사후에 조사하는 미들오피스 업무를 했습니다. 한데 도이치방크는 재무제표와 숫자가 맞지 않은 겁니다.”

“어떻게요?”

“부채 항목에 나타나야 할 최대 104억 달러가 2008년 2009년 재무제표에 의도적으로 누락되어 사라진 겁니다.”

“의도적 누락이요? 그걸 불법이잖아요. 투자자를 대상으로 사기를 친 건데.”

“맞습니다. 그래서 항의했죠. 그런데 저를 해고하는 것도 모자라 제가 있던 부서를 아예 없애 버렸습니다. 부서를 독일 본사로 이전해 버린 겁니다. 증거를 인멸하려는 거죠. 그리고 그 이후에도 월가를 떠나라는 온갖 협박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뉴욕대 교수로 들어갔습니다. 전 월가의 뱅커가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도이치방크 때문에 그쪽으로는 발도 내디딜 수가 없습니다.”

블록은 벤 에릭의 잔에 위스키를 따라 주었다.

벤 에릭은 단숨에 들이키고 후, 하고 숨을 내쉬었다.

“걱정 마세요, 벤. 내가 보스에게 잘 말해보겠습니다. 투마로우에서 같이 일합시다.”

블록의 말에 벤 에릭이 번쩍 정신을 차렸다.

“정말입니까?”

“당연하죠.”

블록은 재준을 상상했다.

이거면 보스가 도이치방크 행장 얼굴에 침 좀 튀기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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