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99화 (199/477)

제199화 그렇게 해서 밥은 먹을 수 있겠어?(15)

AAG 빌딩 66층.

재준은 자신 앞에 있는 금발 머리 소녀의 말을 듣고,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네가 날 협박하는 거네.”

“맞아요. 날 채용하든지 상장을 포기하든지 선택하세요.”

그렉 파이가 엘리자베스라는 소녀를 데려와서는 이 소녀가 카킬 상장의 키를 쥐고 있으니 소녀의 소원을 들어 달라고 했다.

소녀의 소원은 임재준 밑에서 일하는 것.

소녀의 외모와 말에서 뭔지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한 떨기 가녀린 백합인데 손가락만 한 가시가 있는?

“좋아, 그래서 넌 뭘 잘하는데?”

“저 천재예요.”

“아, 천재. 천재라고. 천재라. 꼬맹아. 저기 보이는 저 사람.”

재준은 펠그리니를 가리켰다.

“저 사람 아이큐가 200이 넘어. 그리고 옆에 있는 저 사람.”

재준은 블록을 가리켰다.

“중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변호사야. 중국어, 변호사. 둘 다 어렵다는 건 알고 있지. 월가에서 ‘나 천재예요’라고 하는 건 하버드에서 초등학교 때 올백 맞았다고 자랑하는 거랑 똑같아.”

“알아요. 하지만 전 잘 해낼 수 있어요.”

“잘 해낸다……. 언제? 우린 당장 사람이 필요한데. 언제 배우고 언제 일을 해? 그렇게 해서 밥은 먹을 수 있겠어? 아니다. 곡물 기업이니까 밥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그만.”

엘리자베스가 재준을 말허리를 잘랐다.

“전 아저씨가 뭐라 해도 투자은행 일을 배울 거예요.”

“아니, 내가 안 된다면 넌 일할 수 없다니까.”

“그러면 카킬 상장도 물 건너가는 거예요.”

이런 맹랑한 아이를 봤나?

카킬을 주는 대신 자신을 고용해 달라니.

“아니, 그것보다 카킬을 이어받아서 더 크게 키울 생각은 안 하고 왜 투자은행 일을 배우려는 거야?”

“아저씨도 똑같은 질문을 하네요?”

“내가?”

“네, 지금 밖으로 나가 월가 사람에게 곡물 기업과 투자은행 중 하나를 고르라면 뭐라고 하겠어요?”

헉!

당연히 투자은행이라 하겠지.

“좋아, 투자은행 일을 배우고 싶다면 투자은행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기업금융(Corporate Finance)팀에 넣어 줄 테니. 그쪽에서 배우고.”

“싫어요.”

또 말 허리를 잘랐다.

“아저씨 팀인 Prop Desk에 있을 거예요.”

프롭 데스크는 투자은행의 자산을 직접 운용하는 팀이다.

프롭 데스크는 또 어디서 주워들은 거야?

“이, 고집불통.”

“흥, 빨리 결정하세요. 카킬 상장이 늦어지면 중국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으.

이거 내가 주로 사용하는 협박인데.

내가 당하니 기분이 그리 썩 좋지는 않네.

엘리자베스는 재준을 노려보며 절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다 끝난 마당에 이 작은 알박기는 뭐지?

그 와중에 제법 단단하게 박혀 있어서 확 빼버릴 수가 없네.

“카킬은 한 해 매출이 1,000억 달러가 넘는 기업이에요.”

“그러니까 네가 직접.”

“지루해요. 전 역동적인 일을 하고 싶어요.”

엘리자베스가 이를 꽉 깨물면 말하기까지 했다.

20대 나이에 카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뭔데?

기껏해야 비서실장 직함 달고 CEO에게 하루 종일 스케줄이나 읊어주는 게 다일 텐데.

엘리자베스는 그렉 파이에게 이야기해서 이사회에 상장이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일단 숨겨달라고 했다.

자신이 직접 재준과 딜을 하겠다고.

어쨌든 신주를 발행해도 자신의 지분은 5%는 된다.

매출 1,000억 달러가 넘는 회사 지분을 5%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임재준이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저 봐, 임재준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 있잖아.

“좋아, 일해. 아주 역동적으로 굴려주지. 나중에 후회하지 마. 너무 힘들어서 투마로우 쪽을 보고 침도 안 뱉게 될 거다.”

“전 침을 뱉는 비위생적인 행동은 하지 않아요.”

“누가 진짜 침을 뱉으래. 비유한 거잖아, 비유.”

“비유도 적당한 걸 해야죠. 더럽게 시리.”

으.

강적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다가올 미래에는 그리 평탄할 것 같지 않았다.

띠리리링.

이거 봐라.

벌써 중국에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악운을 몰고 다니는 아이가 분명해.

“네. 임재준입니다.”

-접니다. 전화 통화하기가 어렵군요.

“그건 매너 없이 새벽에 자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니까 그렇죠. 입장 바꿔서 내가 부주석님이 자고 있는 새벽에 전화를 걸면 받겠어요?”

-당연히 받습니다.

“그래요? 상당히 잠이 없으신 모양이네요.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진다더니. 벌써 그런 나이가 되신 겁니까? 이거 중국의 미래가 심히 걱정이 되네요.”

끙.

전화기 너머로 부주석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제가 전화한 용건은 대두를 공급받기 위해서입니다.

“그걸 왜 투마로우에 요구하십니까? 곡물 기업에게 해야지. 뭐, 채권 발행이라면 모를까, 상당히 당황스럽네요.”

-흠. 다 알고 있습니다. 투마로우가 이미 곡물 메이저를 다 쥐고 있다는 거. 그러니 거래합니다.

거래?

“이상하네. 거래라니. 부주석님 단어 선택이 매우 잘못됐는데요. 거래라면 쌍방이 동등한 입장에서 행하는 상행위를 말하는 거잖아요. 근데 우린 동등한 입장이 아닌데.”

-압니다. 국가와 기업이라는 거.

“그거 아닌데. 국가와 기업은 동등하죠. 서로 매매의 주체니까요. 중국과 투마로우는 그런 동등한 입장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많이 유리한 입장 아닌가요?”

-그러니까 불리하더라도 거래를 하려고 하는 겁니다.

“아, 불리하더라도.”

-그래요.

“뭔가 착각하시거나 아직 못 배우신 건가? 지금 우리 같은 관계에서는 거래가 아니라, 부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겁니다. 부탁. ‘뭐뭐뭐 해 주십시오’ 하고.”

-뭐요?

“또 그 ‘뭐요’ 하시네. 하지 말라니까.”

후, 후, 후, 후.

수화기 너머로 부주석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후~

부주석이 길게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좋아요. 부, 부, 부탁합니다. 대두 거래를 허락해…….

차마 ‘허락해 주십시오’를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그럼, 하나만 경고하겠습니다.”

겨, 경고.

이번에도 혼잣말이지만 재준이 듣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앞으로 뭘 하려거든 이 일이 투마로우에 손해가 되는 일일까 아닐까 생각을 좀 하시고 결정하세요. 지난번처럼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위안화 절하하고 그러면 안 돼요? 흐름이라는 게 있지. 자기 맘대로 하면 되겠어요?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죠? 또 투마로우가 이유도 없이 손해를 보면 13억 인구 몇 달은 쫄쫄 굶을 수도 있어요. 알겠어요?”

꿀꺽.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

부들부들.

수화기가 떨리는 소리.

-알겠소.

“네, 그럼 우리 함께 잘살아 보아요.”

-알겠소.

후,

안도가 되는지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대로 끝낼 재준이 아니었다.

“아, 잊은 게 있는데. 대두 가격 100% 오른 건 아시죠?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대두 수입할 생각은 마세요. 거기 이미 ADM이 120% 올려놨으니까. 괜히 트집 잡고 싸우지 말고. 역시 대두는 미국산이라니까요. 하하.”

-알겠소.

“그럼, 이만 끊습니다.”

말을 마친 재준이 핸드폰을 귀에서 멀찍이 떨어뜨렸다.

빠직, 쾅.

통화를 끊지 않았더니 저쪽에서 수화기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허, 거, 사람. 이제 곧 중국 주석이 될 사람이 성질머리하고는. 하여튼 TV에서 근엄 있는 척하는 거 다 구라라니까.”

엘리자베스는 지금까지 통화하던 재준을 멍하니 바라봤다.

사람이 화를 내거나 머리가 텅 비어 버리는 느낌을 받는 것은 자신의 예측을 벗어난 상황이 닥쳤을 때이다.

이게 정말 방금까지 나에게 갈굼을 당하던 그 아저씨가 맞나?

방금 통화 중에 부주석이라고 한 것 같은데.

주석이란 직위가 있는 나라면 중국?

부주석이면 이미 주석으로 내정된 인물이잖아.

근데 그런 인물을 무슨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 다루듯이 한다고?

음. 내가 배울 게 정말 많겠는데.

엘리자베스가 의지를 불태우는 순간이었다.

재준에게 쪼르르 달려가 물었다.

“아저씨, 방금 그분 중국 부주석이죠.”

“이런 명석한 녀석. 맞아. 중국 부주석이야.”

“맞네. 그런데 그렇게 함부로 막 대해도 돼요? 자칫하다간 큰일 날 수도 있어요. 중국이 보통 대단한 나라가 아니잖아요.”

“큰일? 네가 말하는 큰일이 뭔데? 혹시 킬러를 고용해서 사람 막 죽이고 그러는 거? 아니면 경제 제재라도 해서 투마로우를 곤경에 빠뜨리는 거?”

“둘 다요.”

“일단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킬러를 고용하는 건 이미 한 번 실패해서 안 할 거야. 지난번엔 증거가 없어서 그냥 넘어갔지만, 이번에 걸리면 망신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경제 제재는 중국에 수출하는 기업에게나 해당되는 거잖아. 난 중국에 수출한 게 없는데. 중국한텐 돈도 안 꿔 줬고. 물론 중국 국채는 좀 많지. 오히려 돈 갚으라고 우리가 닦달할 수 있는걸.”

“그런가요? 역시.”

또다시 의지를 불태우는 엘리자베스.

투자은행이 짱이다.

제조업이 아니니까 눈치 볼 일이 없다.

곡물 메이저 중에 최고라는 카킬도 눈치를 봐야 하는 국가가 절반은 넘는데.

“이제 아저씨 옆에 붙어서 배우면 되는 건가요?”

음.

“그건 네 맘대로 해. 아직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지만 너한테 맡길 일은 없으니까.”

“그럼, 계약서 하나 쓰시죠. 나중에 딴말하지 말고.”

헉!

진짜 내 미래가 걱정된다.

***

백악관.

연임에 성공한 대통령은 카킬을 인수하겠다는 재준이 아예 곡물 메이저를 전부 쥐고 흔들고 있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거기다 연이어 중국으로부터 위안화를 달러에 맞춰 고시하겠다는 연락을 받자 바로 재준을 백악관에 초대했다.

벌컥.

재준이 들어서자 대통령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오랜만입니다.”

“연임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몹쓸 난관에 맘고생 좀 했지만, 무사히 승리했습니다. 자, 앉으시죠.”

“네.”

서형길과 트롤링의 무차별 인신공격에 당한 대통령 얼굴 살이 홀쭉해 보였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대통령이 말했다.

“솔직히 중국을 이 정도까지 몰아붙일 줄은 몰랐습니다. 어느 정도 정치적인 싸움도 예상을 해서 준비도 나름 했는데. 이제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때마침 우연히 아르헨티나가 파업을 하고, 수에즈가 프랑스 곡물을 독점하고, 러시아 대통령이 바뀌어서 일이 수월했습니다.”

뭐지? 내가 보고 받기론 투마로우가 뒤에서 벌인 일이라고 알고 있는데.

“다 우연이라고요?”

“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더니, 저를 두고 하는 말인 거 같습니다. 하하하.”

음.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제 위안화는 당분간 신경 안 쓰셔도 될 겁니다.”

“아, 네. 중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하하.

무엇이 그리 통쾌한지 대통령은 최대한 체면을 손상하지 않는 선에서 예의를 차려 웃었다.

제일 골칫거리 중 하나인 위안화가 안정된다면 당장 일어나 팝핀 댄스를 추어도 모자랄 판이었지만.

여기에 찬물을 확 끼얹은 재준.

“약속대로 투마로우 지분을 가져가셔야죠.”

이게 왜 찬물일까?

두고 보면 안다.

“정말 미 정부가 투마로우의 지분을 살 수 있는 겁니까?”

“그럼요.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그럼 정말 감사합니다.”

대통령은 속으로 이게 웬 떡이냐를 부르짖었다.

투마로우와 손을 잡는다면 뉴욕을 위시한 남부 지역은 민주당 세력권 안에 있게 된다.

거기에 중서부의 그레인 벨트와 라이스 벨트에서도 힘을 보탤 수 있다.

“뭐, 고맙기까지. 근데 얼마나 지분을 소유할 생각이십니까? 투마로우 주식이 좀 비싼데.”

“각오하고 있습니다.”

가격을 좀 올려서 받겠다.

괜찮다. 미 정부가 그만한 돈이 없으려고.

“말씀해 보세요. 주당 얼마입니까?”

하하하.

“네. 주당 50만 불입니다.”

뭐? 얼마? 오오오오십만 불?

한화로 6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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