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198화 (198/477)

제198화 그렇게 해서 밥은 먹을 수 있겠어?(14)

음, 음.

불편한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상장해서 나온 돈은 어디에 투자하실 생각인가요?”

“그건 이사회를 거쳐.”

“아저씨, 지금까지 잘해 오셨잖아요. 이사회는 의미가 없습니다. 아저씨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차갑다.

거리감이 상당히 멀게 느껴지는 소녀다.

이때.

“엘리자베스, 선을 넘었어. 그만 앉거라.”

단호하게 엘리자베스의 말에 제동을 거는 이는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네.”

그렇게 차가운 아이는 다른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대신에 아이의 아버지가 대신 그렉 파이에게 다른 질문을 했다.

“상장을 피할 수 없나요?”

그렉 파이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답을 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4대 메이저 시대는 허물어졌습니다. 지금부터 전쟁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겁니다.”

“실감이 안 되는군요.”

“그러십니까? 그럼, 이건 어떠십니까? 중국이 카킬과 거래를 끊을 겁니다.”

“뭐라고요?”

“중국의 인구는 세계의 1/5이며 전 세계 곡물의 15%을 수입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카킬과 거래를 중단할 겁니다. 제가 봤습니다. 투마로우 임재준의 협박 한마디에 꼬리를 내리더군요.”

-뭐라고?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럼 우리 점유율이 15%나 깎인 거야?

-그건 아니지. ADM도 어느 정도 수출을 하고 있으니까.

“이제 실감이 나십니까? 카킬은 공격적인 투자를 할 자금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렇다고 상장을 해야 할 정도로 자금이 부족한 겁니까?”

그렉 파이는 방금 말에 입술을 꿈틀거렸다.

“아니요.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럼, 왜 상장을 하겠다는 겁니까?”

“여러분이 3년간 배당을 받지 않으면 됩니다. 한 해에 70억 달러. 3년이면 210억 달러. 이 정도면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자금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배당이 없으면 우린 뭘 먹고 살아요?

이 욕심쟁이들 지금까지 쌓여있는 돈이 얼만데.

그렉 파이는 피식 웃었다.

자, 어떤 대답이 나올지 뻔하지만 기대해 본다.

이사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찬반을 투표하겠습니다. 여기 용지를 나누어.”

그때, 다시 엘리자베스가 손을 들었다.

“그냥 기수로 하시죠. 다들 같은 마음이신데.”

험, 험.

“그럼, 그럴까? 자, 상장에 찬성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30명 중 28명이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반대는 두 명.

엘리자베스와 그의 아버지였다.

“그럼, 상장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그렉, 상장 주관사를 정하고 준비합시다.”

“네.”

모든 과정을 마치고 카킬 가문은 하나둘 찢어져 나갔다.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가문.

이게 바로 구심점이 부재한 결과였다.

창업자 카킬과 그의 아들 카킬, 그의 손자 카킬은 회사를 위해 죽도록 일했다.

카킬 가문은 그게 다였다.

130년이 지난 지금은 그저 부유한 집안의 한량들.

그렉 파이도 자리를 떠나려는데 엘리자베스가 다가왔다.

“아저씨.”

“응, 엘리자베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은 좀 따뜻한 표정으로 하는 거란다.

그런 무서운 얼굴은 부탁이 아니라 협박이지.

“말해 봐. 들어 줄 수 있는 거면 다 들어줄게.”

“저를 투마로우에 취직시켜 주세요.”

“뭐? 왜? 넌 카킬에 취직해야지.”

“곡물, 별로 흥미 없어요. 혹시 임재준 만나봤어요?”

“그럼, 만나봤지. 하하. 어찌나 대단한 친군지. 나도 잔뜩 긴장했었다.”

“그래서예요. 그래서 그 사람 밑으로 들어가 일해 보고 싶어요.”

“그건 괜찮은 생각이긴 한데.”

그 밑에 들어가면 네가 지금까지 쌓아온 임재준의 환상이 다 깨질 거야.

***

로이드레퓌스.

마가리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아랍 연맹 13개국. 수에즈 곡물 기업과 공급 계약 체결]

[러시아 식량안보 정책 채택으로 자국 곡물 자립도 99.7%를 목표로 내세우며 수출 금지]

망했다는 표현이 적절한 시점이었다.

프랑스에 수에즈가 나타날 때 아니, 임재준이 자신을 방문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투마로우. 투자은행이란 단어에서 ‘투자’를 보지 못하고 ‘은행’이란 단어에 얽매여서 아름답지 못한 추억만 남았다.

사업, 길게 감당할 자신이 없다.

사실 여자의 몸으로 아니, 경험이 부족한 여자로서 수많은 직원을 보살피고 또는 누군가를 해치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 이놈의 기업에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가리따는 모든 걸 내려놓는 순간이란 걸 알았다.

똑똑.

“투마로우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올 것이 왔다.

“들어 오라고 하세요.”

재준이 반갑게 손을 들어 보이며 들어섰다.

“오랜만이에요. 아줌마.”

저놈이.

“그래, 무슨 일로 왔는지 아니까 필요한 말만 하고 가. 고민해서 알려줄게.”

“까칠하네. 예전에도 느끼는 거지만 역시 사업가 체질은 아닌 것 같아요. 차라리 명품 사업을 해보시는 건 어때요. 그쪽 계통이 까칠한 사람들이 많다던데. 제가 투자할게요.”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쪽은 유행에 민감한 인간들이나 하는 곳이야. 나처럼 사시사철 똑같은 곡물이나 들여다본 인간과 맞지 않아.”

“이상하네. 잘할 것 같은데.”

마가리따가 콧등을 찡그렸다.

“그만하라니까.”

“하여튼 성질머리하고는. 좋아요. 단도직입적으로 로이드레퓌스, 수에즈에 팔죠?”

“그 말이 나올 줄 알았어. 하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 이제 곡물 메이저 영역이란 게 깨진 것 같은데. 버티실 수 있겠어요? 적이 많이 생길 텐데. 아프리카 농장 쪽 작물은 진출한 기업이 많아서 싸움에 휘말릴 가능성도 크고. 그리고 끝내 밀려나겠죠.”

아프리카 대표 작물인 커피와 면화는 전쟁터다.

달랑 4대 곡물 메이저 시대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기업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커피만 해도 그렇지, 와, 이건 경쟁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나도 알아. 하지만 망설여지는 건 어쩔 수 없어.”

“아, 아직 급하지 않으시구나. 그래요. 급하지 않으면 계속 생각하세요. 하지만 제가 여길 나가면 후회할 시간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아셔야 해요.”

“저 악마 같은 놈.”

“그런 건 속으로 하는 거예요.”

“너도 나한테 아줌마라고 했잖아.”

“아줌마보고 아줌마라고 하는 거랑 악마가 아닌데 악마라고 하는 건 다르죠.”

“시끄러.”

후.

마가리따는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사실 빚이 많아. 회사가 빚으로 잠식되어 있어.”

“아니 곡물 기업이 왜 빚이 많아요? 아무리 명품을 매일 산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닌데. 아닌가? 명품을 매일 열 벌씩 샀나?”

으이그 진짜.

“그 입 좀.”

재준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꼭 다물었다.

“사실 블라드미르 신스키 사업에 투자했어.”

“네? 아줌마 미쳤……읍.”

“내가 러시아 출신이잖아. 남편이 죽고 기업이 나에게 떨어지자 나에게 찾아왔어. 올리가르히잖아. 절대 망할 리 없는 올리가르히. 근데 그게 이렇게 되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어.”

올리가히르 중 하나인 블라드미르 신스키는 러시아 미디어 재벌이었다.

횡령 등의 비리 혐의로 감옥에 갔지만, 우리 푸틀러 형님의 협박으로 자신의 기업 전부를 국영기업에 매각한 후 스페인에서 잠적했다.

즉, 마가리따가 투자한 돈을 러시아가 꿀꺽한 것이다.

“아니, 왜, 일을, 이렇게나 엉망으로.”

“로이드레퓌스를 수에즈와 합병할게. 대신 러시아에 투자한 8억 달러를 그쪽이 받아다 줘.”

“그걸 왜 내가…….”

재준은 할 말은 많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걸 받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로이드레퓌스를 인수하면 아프리카의 농장을 얻는 것까지는 좋은데 은행 빚을 갚아 줘야 한다.

은행 빚이야 벌어들이는 돈으로 천천히 갚으면 된다.

근데 러시아에서 돈을 받아 달라는 건 좀.

받아 주겠다고 차일피일 시간을 끌 수도 있지만 이건 재준의 성격하고는 안 맞았다.

안 하면 안 했지 유치한 짓거리는 적성에 안 맞는데.

그렇다고 러시아와 대판 싸울 수는 없고.

“안 돼? 못 하겠어?”

“아, 좀 기다려요. 저도 생각이라는 걸 해야죠.”

“방금 나한테 생각하지 말라며.”

“지금 그거랑 이거랑 같아요? 자그마치 러시아와 싸워야 하는데.”

“러시아보다 센 미국하고는 잘만 싸우던데.”

“그건 상황이 좋았을 때잖아요. 금융위기, 알잖아요. 한데 지금 러시아가 상황이? 아니, 그리고 자신이 투자를 잘못해 놓고 왜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겁니까?”

“책임지려고 회사를 넘기잖아.”

“아, 그게. 그러네. 음.”

러시아와 싸움이라.

하지 않을 뿐 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

기분이 이상해지네.

미국, 중국, 러시아가 한꺼번에 꼬이는 것 같은데.

이제 일본만 더하면 진짜 진흙탕 싸움이 절정에 달한다.

***

중난하이.

부주석은 끌어 오르는 화를 간신히 진정시키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자신이 투마로우에서 나온 후 석 달도 안 돼서 4대 곡물 메이저에서 수출 불가 통보를 받았다.

그뿐이면 직접 찾아가 협상이라도 해서 곡물을 받아 오겠는데.

“벙기도 투마로우가 적대적 인수 중이고 로이드레퓌스도 수에즈와 합병 절차를 밟고 있고 ADM은 투마로우에 주식의 10%를 갖다 바치고 카킬은 연락할 때까지 기다려라? 맞습니까?”

“네.”

망할 놈의 투마로우.

“그래서 방법은.”

“당분간 옥수수로 대두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옥수수는 자급률이 90%에 가까우니까 가능한 조치였다.

하지만.

“옥수수가 대두의 두 배는 비싸니까 돼지고기도 비싸지고 식용유가 비싸니까 음식값도 비싸지고. 맞아요?”

“아, 네,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다.

그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지 말고.

투마로우 하나 때문에 아주 피곤해 죽겠어.

“중국에서 대두를 재배하는 것도 어렵습니까?”

“저희가 대두 자급률을 100% 맞추려면 중국 전체 농지의 1/3을 사용해야 합니다. 거기다 기계화가 이루어져 있지 않아 수확량도 현저히 떨어집니다. 지금 심는다고 해도 3개월에서 6개월은 기다려야 합니다.”

이 하찮은 대두.

“이봐, 당신 생각은 어때요?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땜질하는 수준으로는 앞으로 어렵지 않겠어요?”

새로운 쿠프쿠 사장은 부주석을 향해 허리를 구부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지만 심기가 불편하실 겁니다.”

“뭔데요?”

꿀꺽, 다시 한 번 뜸을 들인 사장이 결심한 듯 말했다.

“투마로우와 손을 잡으십시오.”

후후후.

부주석은 사장의 말에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비웃음은 아니고 그저 밀려오는 허탈함이었다.

앞으로 13억 인민을 다스릴 내가.

기껏해야 중국 성 하나만도 못하는 한국 출신 임재준에게 숙이고 들어가란 말이지.

부주석은 이번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차기 주석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전화 넣어요.”

사장이 전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통화를 시도했다.

-네, 새벽부터 웬일입니까?

건너에서 들려오는 짜증 섞인 대응.

“잠시만, 부주석님을 바꾸어 드리겠습니다.”

사장이 수화기를 부주석에게 건네자 받아들었다.

“만나고 싶습니다.”

툭.

투투투투투투.

전화가 끊기고 신호음만 울렸다.

“이런 개자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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